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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6/13
    소비자를 전략적으로 유혹하는 방법
    티코
  2. 2005/06/13
    잊혀진 여성 철학사 되살아나다
    티코
  3. 2005/06/13
    미군 문화 잔재의 생생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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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6/13
    아우또노미아
    티코
  5. 2005/06/13
    신좌파의 상상력
    티코

소비자를 전략적으로 유혹하는 방법

어떤 곳에서 우리는 호기심, 편안함, 만족감, 매력 등을 느끼는데, 왜 어떤 곳은 금세 싫증이 나며, 당장 나가고 싶어질까? 마케팅에도 심리학적으로 연출된 전략적인 컨셉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금지된 장소 연출된 유혹
크리스티안 미쿤다 / 참솔 / 413쪽 / 25,000

/ 리뷰 : 김혜숙 <참솔 편집자>

[2005/5/09] 제품에서 분명한 질적인 차이가 거의 사라진 시대에 소비자가 모이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잘 짜여진 시나리오(연출)가 있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 이벤트, 런칭쇼, 쇼핑은 가상의 파라다이스로서 인포테인먼트(인포메이션+엔터테인먼트)가 되어야 하고, 박물관, 미술관, 관광지, 놀이동산, 레스토랑은 특별한 문화체험공간이 되어야 한다.

영화, 방송, 광고, 디자인, 건축, 호텔 역시 고유한 경험과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더 이상 단순하고 밋밋한 산책로를 원하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연출된 컨셉이 주는 인포테인먼트(인포메이션+엔터테인먼트)를 원한다.

이 책은 홍보와 마케팅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바치는 공개적인 시나리오, 다양한 연출법이다.

또 마케팅에 바치는 한 천재의 선교자적인 열정이기도 하다.

미국의 거대한 쇼핑몰과 최고급 백화점, 세빌랴의 세계무역박람회, LA 디즈니랜드, 소니의 뉴욕 매장, 메르세데스 벤츠의 런칭쇼,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라스베이거스의 초호화 호텔, 브로드웨이 뮤지컬, 할리우드 MGM영화사, 스타들의 기자회견과 공연장, 각종 광고, 앞서가는 레스토랑 등을 예로 들면서, 점차 엔터테인먼트화, 가상화, 체험화, 모험화 되어가는 마케팅 기획전략을 소개한다.

이 책은 이벤트, 전시, 프레젠테이션, 광고, 방송, 디자인, 건축, 영화, 공연, 관광, 선거 등 마케팅과 홍보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마케팅서적인 동시에 문화서적이다.

현대는 마케팅 전쟁의 시대이다. 미국의 유명한 마케팅전문가 세스 고딘은 자신의 저서 『퍼플 카우Purple Cow』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인상적인 제품과 마케팅만 살아남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결국 마케팅에도 상식을 깨는 전략적인 연출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책은 마케팅 컨셉의 결정이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마케팅 관계자들이 잘못된 선택과 크고 작은 실수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한편, 실전 경험이 필요 없는 순수한 독자도 기발하고 특이한 발상을 간접체험함으로써 흥미와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즉 전략적인 연출에 대한 이해가 커져, 더욱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다. 또 광고나 마케터, 기획자의 의도와 전략을 간파하여 쇼핑문화, 레저산업, 문화사업, 정치세계에 숨겨진 이면을 뚫어볼 수 있는 냉철한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늘 우리를 둘러싸고 유혹하는 마케팅과 홍보라는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이자 경이다. 특히 마케팅, 광고, 홍보, 방송, 영화, 이벤트, 디자인, 건축 등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나아가 지은이는 자신의 전략적인 유혹의 다양한 기법이 상업적인 목적 이상임을 주장한다. 즉, 공익적인 목적에도 적절하며, 우리 시대의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으로까지 제시함으로써, 전략적인 연출법을 보다 가치 있는 기법으로 만들고 있다.

21세기는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겨온 질서나 현상까지 파괴하는 전복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당연히 기존의 마케팅이론으로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소비와 마케팅 문제를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다.

마케팅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이 책이 한계와 벽을 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네 단계로 구성된 전략적인 연출이론이 21세기형 홍보와 마케팅, 현명한 소비로 가는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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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 철학사 되살아나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에서 현재까지 철학사의 뒤편에 머물러 있던 여성 철학자들을 발굴해내어, 그들이 철학사에서 갖는 의미와 가치를‘의식적으로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소개한 철학 인문서이다. 이를 통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여성적인 철학함에도 오랜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 철학자
마리트 룰만 외 / 푸른숲 / 832쪽 / 32,000

/ 리뷰 : 이진 <푸른숲 편집자>

[2005/5/27] 테아노와 히파티아, 레온티온과 라이스, 하케보른의 메히트힐트와 마그데부르크의 메히트힐트, 이소타 노가롤라와 라우라 체레타, 안나 마리아 폰 슈르만과 마리 르 자르 드 구르네, 올림프 드 구주와 해리엇 테일러­밀, 클레르 데마와 메리 아스텔 등등. 왜 우리는 이들의 이름과 작품을 철학사에서 보지 못하는가?

최근 몇 십 년간 많은 변화와 진전이 있기는 했지만, 철학사의 대부분의 시대에 여성은 철학의 주체로서도, 철학의 대상으로서도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다. 여러 저명한 철학자들에 의해 수많은 종류의 철학사가 집필되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말해지고, 쓰이지 않은 역사는 정녕 역사가 아닌가?

여성 철학자들의 활약과 업적은 지금껏 역사가 되지 못한 채 시간 속에 흩어져 있었다. 마리트 룰만 등 8명의 저자는 이 잊혀진 여성 철학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그들이 본래 있어야 할 ‘올바른’ 자리를 찾아주고 있다.

잊혀진 여성 철학자들의 철학적 성취와 잘못된 서술들의 목록을 열거하자면 한참 이어질 것이다. 그 목록은 아스파시아가 기초를 만든 ‘소크라테스적’인 대화법에서 시작해 라이프니츠가 발표한 단자론의 진정한 뿌리인 앤 콘웨이를 거쳐, 몽테뉴의 『수상록』보다 20여 년이나 앞서 최초의 철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에세이를 쓴 아빌라의 테레사에 이르기까지 철학사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처럼 이 책은 남성 중심의 철학사에서 배제되고 왜곡되어온 여성 철학자들을 찾아내어 여성적인 주제의 추가라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확장이 아니라,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철학과 그 바탕에 깔린 가부장적인 가치와 규범들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철학자』는 철학사의 전개에서 뚜렷한 기여를 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망각되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 이들을 발굴해 내고, 복권시켜 주려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철학사를 읽다보면 여성 철학자들은 마치 20세기 이후에나 등장한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우리가 철학이라는 말과 더불어 떠올릴 수 있는 여성이라고는 고작 한나 아렌트, 줄리아 크리스테바, 시몬 드 보부아르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묶여 나오고도 한참이나 모자랄 만큼 역사 속에는 수많은 여성 철학자들이 존재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반쪽짜리 철학사를 읽어왔던 것이다. 이 책은 그 숨겨진 반쪽에서 역사의 두꺼운 먼지를 털어내고, 하나의 철학사를 향해 가는 길목으로서의 ‘또 하나의 철학사’를 제시한다. 온갖 차별과 모욕을 감수하며, 철학적 사유와 함께 정체성의 고민도 놓지 않아야 했던 이 잊혀진 이름들을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불러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의 철학을 하는 여성들은 이미 역사를 쓸 수 있는 펜을 쥐고 있다. 학문의 세계에도 여전히 성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펜조차 빼앗아버리는 시대는 지나갔다. 여성들도 이제 그들의 역사를 쓸 수 있고, 나아가 그것을 포함하는 ‘역사(History)'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 여성 철학자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이 책이 담지 못한 철학사의 또 다른 일면이 우리의 철학계와 여성학계에, 나아가 학문 전반에 미뤄오기만 했던 어떤 의무를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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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문화 잔재의 생생한 보고서

"미군문화 잔재의 생생한 보고서"




부끄러운 미군문화 답사기
다큐인포 / 북이즈 / 464쪽 / 13,000
미군 주둔 54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황폐화된 우리 땅과 상처받은 우리 국민들의 삶. 이 책은 동두천, 매향리, 평택, 용산, 춘천, 대구 등 93개 미군 기지부터 노근리, 제주도, 신천리 등의 양민학살 현장까지 두루 답사하며 미군기지 주변의 문제점들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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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조현경 <북이즈 편집자>

[2004/9/9] 지난 해 출판된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일제잔재편)』에 이어 이번에는 『부끄러운 미군문화 답사기』가 출판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가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 시리즈가 출판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부끄러운 미군문화 답사기』는 『부끄러운 문화 답사기(일제잔재편)』의 저자인 ‘다큐인포(Docuinfo)’의 두 번째 작품으로,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하면서 남긴 아픈 상처들을 다큐인포 회원들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기록한 책이다.

1년 6개월 동안의 답사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이 책은 ‘미군문화를 발견하다’, ‘르포-미군기지를 가다’, ‘미군이 남긴 상처, 오염된 문화’의 세 분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미군문화를 발견하다’에서는 미군에 의해 변질된 의식(衣食)문화와 미술, 문학, 영화, 방송(AFKN), 고학력 비정규 노동부대인 카투사 등에 대해 재조명했다.

두 번째 ‘르포-미군기지를 가다’에서는 주한미군기지 93개 가운데 동두천, 의정부, 파주, 부평, 평택, 춘천, 군산, 대구, 매향리 등을 답사해 기지 주변의 심각한 문제들을 현장 취재했으며, ‘US 오키나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군기지가 집결해 있는 일본의 오키나와를 답사해 주일미군 현황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특히 미군철수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대학의 아라사키 모리테루 교수도 직접 만나 일본을 비롯한 한국, 아시아,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세 번째 ‘미군이 남긴 상처, 오염된 문화’에서는 제주 4.3항쟁과 노근리 사건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과 미군위안부 문제, 휴전선, 혼혈인, 미군이 저지른 환경오염과 범죄, 불평등한 SOFA협정 등에 심도 있게 다뤘다.

이 책의 저자인 다큐인포 회원들은 미군문화와 미군기지를 답사하면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와 10년이 넘도록 혼혈인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해 그들의 어려운 삶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사진작가 이재갑 씨,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의 생존자인 정구호 씨,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고유경 간사, 기지촌 여성 운동단체인 두레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미군기지 주변에 살고 있는 농민들과 시민들의 협조를 얻으며 ‘부끄러운 미군문화 답사기’를 엮었다.

다큐인포 회원들은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에 관한 기록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주한미군이 남긴 역사와 문화의 잔재,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는데 노력했다”며 미군이 남기 잔재는 한 권의 책으로 엮기에도 벅찰 정도로 많았다고 여는 글을 통해 밝혔다.

또한 전준석, 임진순, 조현경, 신동민, 김규남 등 다섯 명의 다큐인포 회원들은 “이 땅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그 날까지 부끄러운 미군문화 답사기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각오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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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또노미아


"좌파 지성 네그리의 삶과 사상을 만난다!"




아우또노미아
조정환 / 갈무리 / 520쪽 / 20,000
다중의 자율을 향한 네그리의 항해! <제국>의 통제와 온 몸으로 싸우며 21세기 인류의 대안적 삶을 고민해온 안또니오 네그리,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세계 최초의 본격 연구서, 맑스주의의 현대적 재구성을 위한 입문서. 이 책은 ‘아우또노미아’(자율)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안또니오 네그리(1933~ )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기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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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양돌규 <갈무리 편집장>

[2003/10/16] 새로운 세기의 벽두인 2000년에 마이클 하트 Michael Hardt(1960~ )와 함께 쓴 안또니오 네그리의 역작 『제국』의 출간 이후 전세계적으로 『제국』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9.11 테러와 그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이른바 ‘제국 논쟁’은 전세계적인 현상이 된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좌파평론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는 ‘제국 논쟁’을 특집으로 다뤘고 에띠엔느 발리바르, 슬라보예 지젝 등의 논평, 지오반니 아리기와 같은 세계체계론자,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같은 국제 사회주의자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네그리에 관한 세계 최초 연구서이자 입문서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6월 맑스 코뮤날레에서 네그리와 네그리의 사상은 마치 유령처럼 행사 전반에 자리하고 있었다. 맑스 코뮤날레 Marx Communale의 후속 행사로 지난 9월 5일 열린 첫 번째 쟁점 토론회의 주제가 ‘제국주의인가 제국인가’였던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서 그에 대해 불고 있는 폭발적인 대중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이 책은 지난 10여 년간에 걸쳐 네그리에 대해 연구해온 정치철학자 조정환이 펴낸 세계 최초의 네그리 사상에 관한 연구서이자 네그리 사상을 체계적이고 쉽게 소개하는 입문서이다.

최근 미국에서 『제국』에 대한 연구서가 출간 예고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의 사상 전반에 대해 연구한 책은 『아우또노미아』가 유일하다. 조정환은 네그리의 40여 년에 걸친 삶의 시간적 축을 씨줄로 삼고, 가치론, 계급구성론, 사회편성론, 제국론, 국가론, 코뮤니즘론, 조직론 등을 날줄로 삼아 국내 유일의 네그리 연구가답게 능숙한 솜씨로 엮어 간다.

21세기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의 삶은 19세기나 20세기의 혁명가들이 겪었던 수배, 투옥, 해외 망명, 재투옥, 연금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것은 그가 그만큼 치열하게 시대의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해 왔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탈리아 아우또노미아 운동은 이탈리아의 전통적 노동운동과 맑스주의 운동에서 발전해 나왔지만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하게 1968년 혁명의 새로운 힘을 흡수하면서 성장했다. 그것은 1977년에는 생태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시민운동 등 새로운 사회운동과 연합하여 이탈리아 사회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79년 4월 탄압으로 아우또노미아 운동은 지하로 스며들었지만 1980년대에 그것은 이탈리아의 은밀한 공간에서, 그리고 프랑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전통적 사회운동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운동의 갱신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의 상황에서 다시 사회의 표면으로 솟아오른 자율적 운동들은 이탈리아에서는 ‘사회 센터’ 운동으로 나타났고 멕시코에서는 사빠띠스따 운동으로, 브라질에서는 ‘땅 없는 농민들의 운동’으로, 그리고 온 세계의 사회 각 영역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새로운 사회운동들로 나타났다.

칼 맑스와 질 들뢰즈를 통합한 21세기 인류의 대안적 철학자

여성, 학생, 생태 등의 운동 외에 동성애자 운동, 독립 미디어 운동 등이 그것이다. 네그리는 자율적 운동들의 이 맥맥한 흐름을 끊임없이 주목하면서 그 운동의 구성과 재구성의 고비고비마다 운동의 전진을 위한 이론적 개념화를 시도하고 정치적 제안들을 내놓았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자율적 운동들을 1917년 혁명과 구별되는 새롭고 특이한 변혁 운동의 개시로 이해하면서 이탈리아 및 국제적 신좌파 운동 속에서 이탈리아 자율운동의 고유성과 네그리의 아우또노미아 사상의 새로움을 살핀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안또니오 네그리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정환은 네그리에 대한 구좌파의 왜곡과 신좌파의 비난을 반박하면서 그를 칼 맑스와 질 들뢰즈를 통합한 21세기 인류의 대안적 철학자로 위치시킨다.

조정환이 네그리의 위치를 잡기 위해 검토하고 있는 다양한 사상, 이론가들의 목록은 이 책에 실린 사진만큼이나 많다. 고전적 맑스주의자로부터 푸코, 들뢰즈, 가타리에 이르는 포스트 구조주의자, 구좌파, 세계체계론자,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부터 다른 많은 자율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네그리와의 변별점과 공명의 지점을 밝힘으로써 그가 단순한 ‘세계화 찬양론자’도 ‘반세계화론자’도 아님을, 보다 깊이 이해해야만 할 대안적 철학자임을 드러내주고 있다.

일본어 출간을 위한 일본 출판사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 책은 100여 컷이 넘는 풍부한 사진자료를 함께 실었다. 여기에는 인물사진에서부터 역사적 사건에 관한 사진에 이르기까지, 책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진을 실었다.

또한 이것은 학술서적이 빠질 수 있는 권위주의로부터 탈피하여 다중과 함께 호흡하는 책을 만들기 위한 출판사의 고심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거나, 소개 되었더라도 학술 서적에서 간략하게 취급되었던 사상가들의 사진을 구해서 실음으로써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친숙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네그리와 아우또노미아를 이해하기 위한 상세한 용어 해설, 네그리 공부의 길잡이가 되어줄 저작 목록, 자율주의 경향의 웹사이트들과 색인이 함께 묶여 있어 더욱 활용도가 높은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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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의 상상력


  신좌파의 상상력

'신좌파의 상상력'을 쓴 조지 카치아피카스  올해초에 나온 '신좌파의 상상력'이라는 책이 생각보다 꽤 많이 읽힌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68년의 유럽과 70년의 미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보통 68혁명으로 통틀어져서 불리는 반전, 흑인민권운동, 교육 운동, 반문화 운동 등의 일련의 운동들은 이전의 몇몇 중요한 혁명들과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는 다르다. 서구의 혁명들. 1793년 프랑스 혁명, 1848년 2월 혁명, 1871년 파리 코뮌, 1917년의 러시아 혁명 등등. 이 혁명들에는 모두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열정들이 담겨져 있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들. 68혁명은 그런 점에서 기존의 혁명들과 닮아있다.

  하지만 68혁명이 기존의 혁명들과 차별점을 가지는 것은 바로 기존의 권력을 전복시키고 그 권력을 획득한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변혁에 대해서 열망했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건 나타내려 했다는 점이다. 물론 기존의 혁명들에서도 권력을 바꿈으로써 삶의 변화를 꿈꾸고 실천했다. 하지만 68혁명처럼 그 문제가 혁명의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른 적은 없었다. 또 68혁명처럼 문화와 정치가 융합될 가능성을 표출했던 적은 없었다.

  이러한 68혁명은 기존의 몇몇 혁명처럼 정치권력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68혁명은 서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부분들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변화는 철학적 논의 및 유럽의 공산당과 맑스주의 내부에서도 존재했다. 선험적 진리를 구하려고 했던 근대 철학이라는 사실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유럽 맑스주의는 68혁명 속에서 공산당과 좌파 실천가들의 보수적 태도에 반성을 시작했고, 그 반성에서 비맑스주의적인 철학적 조류들과의 절합이 시도되었다. 특히 프로이트와 언어학의 유산을 이어받은 구조주의 이론들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탈구조주의.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그 진리를 추구하려는 힘을 찾아내려는 니체의 영향. 그리고 소련이라는 사회를 거쳐서 해석된 맑스가 아니라 처음의 맑스로 돌아가 다시 새롭게 해석되는 맑스. 크게 이러한 3가지 바탕 아래에서 맑스주의 및 사회 이론에 대한 재구성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그 중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신좌파 이론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상들은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가타리 등의 사상이다. 특히 문화과학이나 서울사회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들의 사상에 대해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필자의 능력과 지식 부족으로 그것들을 모두 소개할 수 없다. 또 그들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계간지 '문화과학 18호'에서도 보듯 아직 이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논란들이 오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들의 입장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서 아직 우리 나라 사회에서는 신좌파라는 개념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그 개념들이 제대로 작동해본 적도 별로 없다. 신좌파들의 주장이 기존의 한국 진보 사상과 실천들에 유의미한 점들이 있을 듯한데 처음부터 오해되고 거부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글에서는 필자의 무식함을 드러낼 각오를 하고 몇 가지 유의미한 논의들을 알튀세르와 들뢰즈/가타리의 이론을 바탕으로 풀어내보겠다.


  알튀세르의 이론

알튀세르  사회과학을 많이 공부한 것도 아니고 알튀세르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자세하게 말할 자신은 없다,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알튀세르에게서 중요했던 이론에 대해서 설명해보겠다. 우선 알튀세르에게서 가장 중요했던 개념으로 '모순의 중층결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꽤 오랫동안 그리고 현재도 상당히 맑스주의의 중심 도그마가 되었던 '토대구조(경제)에 상부구조(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등)가 제약된다'는 이론에 대해서 알튀세르가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지배 계급과 이에 대항하는 피지배 계급이라는 이항적 관계 속의 변증법을 통해서 세계가 진보한다는 생각에 수정을 가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이런 태도로 인해 상대적으로 경제 이외의 부분들이 부각되기 시작되었고 현재의 지배 체제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 중 특히 우리나라에서 알튀세르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론들이 문화라는 부분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틀거리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알튀세르에게서 중요한 개념은 바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다. 맑스주의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그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 알튀세르 이전에는 일부 예외(라이히 정도?)를 제외하고는 의식의 문제로 여겼다. 그래서 혁명을 사고할  때도 지배 계급의 허위적 의식의 폭로를 통한 기층 민중들의 사고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사고했던 부분은 바로 무의식의 차원이었다. 당시의 구조주의 이론들을 맑스주의에 도입하면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 체제에 순응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에 중요한 장치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얘기했다. 특히 알튀세르가 중요하게 분석했던 것은 가족제도와 교육제도였다.

  이런 알튀세르의 이론은 우리나라에서 80년대 말 이후로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는 대중문화라는 부분에 대해서 분석하고 개입해 들어가는 이론적 틀거리로서 작용하고 있다. 강내희 교수의 말을 빌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가족과 교육의 영향력을 압도하였고, 그 문화를 분석하는데도 알튀세르의 논의가 유용하다는 것이다. 이런 알튀세르의 논의를 통해서 결국 강조될 수 있는 부분은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재생산'의 문제, 이진경의 말을 빌자면 '생산양식'이 아니라 '주체생산양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기존의 맑스주의가  생산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착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사고하고 그것을 전복시킬 꿈을 꾸었다면, 알튀세르는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관계에 편입되어 들어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그 메커니즘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실마리를 제시했던 것이다. 결국 혁명이나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의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장치와 배치'에 주목을 해야하고, 그것은 기존의 자본주의 지배적인 집단들 뿐 아니라 맑스주의자들 내부에게도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들뢰즈/가타리의 이론

들뢰즈  알튀세르의 이론들은 사회를 분석해내는데 유용한 해석틀을 제시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알튀세르의 이론들은 '그럼 누가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들뢰즈/가타리의 공동 연구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지 않을까 싶다. 들뢰즈/가타리는 저항과 탈주의 문제를 사고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니체의 유산을 많이 물려받았다. 수많은 근대 철학자들이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진리의 문제를 추구하던 때에 니체가 한 일은 바로 '누가 왜 진리를 추구하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니체는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진리로 만들어 통용시키려고 하는 권력의지와 그 권력의지에 의한 진리효과만이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신(진리)은 죽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이 사상을 들뢰즈/가타리는 어떻게 자신들의 사고틀로 끌어들였을까? 들뢰즈/가타리가 강조하는 것은 진리효과를 생산하는 힘에서 끊임없이 탈주하는 '생산적인 욕망'이다. '유목민적 삶을 지향하는 욕망'은 그 삶들을 한 곳에 고착시키려는 '영토화'의 힘에 맞서서 '탈영토화'를 감행한다. 이런 벗어남에 대해서 다시 '재영토화'의 위협이 가해져 오지만 고착된 그 지점을 벗어나려는 욕망들은 결코 죽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들뢰즈/가타리가 꿈꾸는 삶이다. 이런 그들의 태도는 정치적으로 '몰적 경직성'을 반대하고 '분자적 미시정치'를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욕망하는 기계들의 복수성은 단일한 목적하에 훈육하고 위계화할 수 있는 표준화되고 질서정연한 체계들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 상이한 지층들은 계급, 연령, 성별, 출생지, 직업 유형,  성적(性的) 성향 등으로 구획되는 서로 다른 사회집단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결코 한 덩어리의 바위 같은 통일성을 이루지 않는다. 대중들의 투쟁에 통일성을 기초짓는 것은 바로 그들의 욕망의 단성성(單聲性)이지, 그 욕망을 표준화된 목적들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통일성은 욕망의 복수성을 방해하지 않지만, 반대로 이 욕망들이 대표자로서 당이라는 전체주의, 총체화기계에 의해 '처리'되는 경우, 통일은 욕망의 복수성에 장애가 된다.(펠릭스 가타리, 파시즘의 미시정치 中)

  재영토화하는 힘에 대해서 끊임없이 탈주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는 틀에 박힌 자본주의사회의 규율적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이것은 기존의 운동 집단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어떤 메타 담론 아래에서 일사분란하게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선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나가는 운동을 하는 것. 하지만 이러한 분자적 미시정치가 거시정치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

학이나 화학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던 분자들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여 에너지의 이동을 가져오듯이,  미시정치도 거시정치로 전화할 가능성들은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떤 총체화하는 힘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흐름 속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빌자면 '수목적 활동성'이 아니라 '리좀적 활동성'을 지지하는 것이다.


  신좌파에게서 주목해야 할 점

  이러한 알튀세르와 들뢰즈/가타리의 이론을 배경으로 신좌파에게서 주목해야 될 점들을 내 나름대로 3가지로 정리해 보겠다.

  첫째로 미시정치와 거시정치의 절합 가능성이다. 구좌파들이 거시정치에 집중적으로 역량을 쏟아온 것이 사실이고, 지난 10년 동안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문화적 조류와 함께 개인을 중시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은 메타 담론을 파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사회 성원들을 폐쇄적 나르시즘에 빠져서 소비자본주의라는 또다른 메타담론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신좌파의 탈근대적 기획은 주체들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되 그것이 폐쇄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갈등과 쟁점 사이에서 새로운 연관을 맺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미시정치를 행하되 연대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거시정치에 대한 가능성을 항상 활짝 열어놓는 것이다.

신좌파의 사고를 통해 이 10대들의 일탈을 제대로 이해하고 개입할 수 있을까?  둘째로 생산성 개념에 대한 다른 인식이다. 기존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생산된 잉여가치를 누가 가져갈 것인가를 가지고 계급 투쟁을 벌였다. 그러한 계급 투쟁은 화해할 수 없는 두 계급간에 끊임없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런 계급 투쟁 속에서 알게 모르게 기본 전제로 깔고 있었던 것은 '잉여가치의 무제한적 축적'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의 경우에도 임투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이러한 기본전제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별로 없다. 신좌파들은 이러한 잉여가치의 무제한적 축적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본, 자원, 필요노동시간의 사용을 줄일 것을 주장한다. 대신 그 남는 시간을 자기 이해와 자기 충족성을 증진시키는데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최근에 얘기되고 있는 '문화사회 실현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의 주장은 바로 이런 배경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진보의 개념도 '분배적 평등'에서 '자율성과 욕망'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된다.

  셋째로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이해이다. 기존의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이해는 주로 의식적인 면에서만 강조되었다. 허위 의식을 통하여 성원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거나 묵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신좌파들은 '욕망/감성적신체/무의식'을 강조한다. 자본주의에  적응하고 그 체제의 충실한 수행원이 되는 과정에는 단순히 의식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장치들에 의해서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신체적 규율과 무의식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대중문화에 대해서 분석할 때 의식의 문제만을 강조하게 된다면 대중 문화의 폐해에 대해서 비판은 열심히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별 뾰족한 개입을 해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대중문화 속에 투영된 욕망들을 읽어나갈 태도를 가졌을 때 그 욕망들을 어떤 식으로든 분석할 수 있고, 그 욕망들을 자본주의의 질서에서 이탈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할 여지가 남겨진다.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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