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스미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과 그 이후의 ‘일반지성’(요약 번역)

토니 스미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과 그 이후의 ‘일반지성’(요약 번역)

The General Intellect in the Grundrisse and beyond

 

-많은 이탈리아 맑스주의자들이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하 ‘요강’)에서의 ‘기계에 대한 단상’과 ‘일반지성’ 개념의 중요성을 오래도록 주장해왔다. 이 논문은 비르노와 베르첼로네의 일반지성에 대한 최근의 논의에 대해 검토한다.

 

비르노와 베르첼로네의 일반지성의 역사와 이론

 

-형식적 포섭/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실질적 포섭/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마르크스는 요강을 쓸 당시 산업 자본주의가 가까운 미래에 공산주의로 대체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기계에 대한 단상’을 요약하면,

1)자본은 필연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한다.

2)생산성 향상은 일반지성에 기초한다.

3)사회적 행위자들이 창조적인 배움과 실험을 누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수록 일반지성은 더욱 풍부해진다.

4)자본주의에서의 생산성 향상은 필요노동시간을 줄인다. 적어도 원칙적으로, 이는 사회적 행위자들에게 일반지성이 풍부해지는 데 필요한 자유시간을 허용한다.

5)그러나 자본은, 오직 잉여노동시간을 늘이기 위해서만 필요노동시간을 줄인다. 잉여노동시간 확대를 위한 추동은 대부분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창조적인 배움과 실험이 연계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다시 말해, 자본은 풍부한 일반지성의 물질적 전제조건을 창출하면서도 동시에 실질적으로 풍부해질 가능성을 차단한다.

6)자본의 시대가 지속된다면 이 모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해질 것이며 사회 부조리의 지속적 확대로 이끌 것이다.

7)사회 부조리의 증가는 창조적인 배움과 실험을 위해 자유시간을 활용하는 대안적 사회 질서를 향한 투쟁을 추동할 것이다. 이 대안이 공산주의다.

-비르노, 베르첼로네: 마르크스는 확대된 일반지성의 사회적 에너지를 결합하는 자본주의의 능력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일반지성의 발전의 최대치를 과소평가했다. 마르크스의 시대와 20세기 포드주의 시대의 기술과 사회조직 형태 사이에는 ‘표준화된 상품의 대량생산’이라는 연속성이 있다. 포디즘은 계획과 실행의 무자비한 분리를 추구한다. 마르크스가 ‘실질적 포섭의 논리의 심화는 산노동이 잉여노동의 부분을 자유시간으로 되돌리는 한에서 지식의 총체적인 재전유에 유리한 조건을 창출한다’고 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는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에서 지식의 총체적인 재전유가 이루어질 것을 예견하지 못했다.

-베르첼로네: 산업 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이 지식 접근권의 사회화를 위한 일반적 투쟁을 고무시킨다. 이 투쟁이 성공한 결과 복지국가는 이미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상당한 부분을 사회화하고 대중교육에 투자하였다. 계급으로서 임금노동자는 그들의 인생에서 전례 없는 시간을 공식 비공식 교육과 훈련에 사용하고 있다.

-‘기계에 대상화 될 수 없는 인지능력의 저장고’에 대해 비르노는 ‘대중지성’, 베르첼로네는 ‘확산 지성(diffuse intellectuality)’으로 개념화.

-이는 포드주의의 위기의 주요한 원인이다. 산업 자본주의에 적절했던 산 노동과 죽은 노동 사이의 대립에서 자본의 죽은 지식과 노동의 산 지식 사이의 새로운 형태의 적대로 변화된다. 포드주의의 위기는 산 노동이 부속품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포드주의의 위기에도 자본은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유동하고 결합하는 확산 지성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비르노에게 있어 이는 소품종 소량생산 포스트 포드주의 생산 네트워크의 탄생이다. 일반지성의 공유는 모든 종류의 실천에 효과적인 기반이 되었다.

-마르크스는 사회생활 체계의 조건을 통제하는 일반지성은 오직 공산주의에서 충분히 실현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비르노는 포스트 포드주의에서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한다. 베르첼로네는 포스트 포드주의라는 범주가 산업경제 시기와 현대 지식경제의 단절을 과소평가한다고 보기 때문에 ‘인지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나 비르노의 핵심에는 동의한다.

-베르첼로네: 가치 이론은 직접노동(immediate labour)이 시간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며, 이는 사회적 부를 측정하는 적당한 방법이다. 노동이 점점 추상적으로 되는, 지적이고 창조적인 특질이 없는 시기에 이 가정들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요강에서 정확히 생산에서의 자율성 때문에 추상적 지식이 생산의 주요 동력이 될 것이며 조립라인의 지겨운 노동은 부차적인 지위로 변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공산주의에서.) 그러나 자본주의의 변형을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노동가치 이론으로부터 지식-노동가치 이론으로의 통로가 필요하다. 사회의 지식이 축적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주요한 고정자본이다. 베르첼로네와 비르노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마르크스 가치이론의 적용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토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위기 경향은 일시적으로만 해소될 수 있으며 공산주의만이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태제는 수용한다.

-포스트 포디즘/인지 자본주의는 자본이 헤게모니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자본은 이제 사회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고용불안정의 강화, 대량의 가계부채, 순환과정 안의 임금노동자의 화폐적 의존관계를 강화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 형식적 포섭의 메커니즘에 점점 기댈 것을 강요받고 있다. 자본의 형식적 포섭에의 의존이 커질수록, 일반지성에 의해 열린 역사적 가능성에 대한 자본의 억압도 분명해진다.

 

일반지성과 가치이론

 

-만약 가치이론이 단지 상품에 체화된 단순노동이 적절한 부의 척도라는 주장일 뿐이라면, 오늘날 적은 설득력을 지니지는 않을 것이며, 이전 역사에서도 유효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부의 창조는 항상 ‘공짜로 주어지는 것(free gifts)’에 결정적으로 의존했다.(자연,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 작업장 밖에서 확보되는 인지적 신체적 능력 등) 부의 생산에서 이러한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항상 엄청나게 컸다. 따라서 체화된 노동이 부의 적절한 척도가 되는 시기는 있어본 적이 없다. 마르크스는 이를 모두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그 목적이 부의 측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사회를 구성하는 서로 무관심한 개별자들의 절대적이고 상호적인 의존’으로서 분열된 사회성(dissociated sociality). 생산이 개별적으로 착수되나 반드시 화폐 교환을 통해 사회적으로 유효하게 되어야 하는 일반화된 상품생산체제다. 생산이 사회적으로 유효한 상품은 그 다양한 자연적 속성을 떠나 ‘가치’라는 사회적 속성을 획득한다. 일반화된 상품생산에서는 화폐를 위한 상품교환이 사회적 검증의 형태다. 따라서 화폐는 가치의 유일한 사회적 객관적 척도이다. 특별한 속성을 지닌 가치를 지닌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이 ‘추상노동’으로 개념화한다. 이런 맥락의 추상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속성을 지닌 다양한 노동행위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 노동 수치는 화폐로 측정되는 상품의 추상적 속성 생산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추상노동 개념은 적절하다. 마르크스는 투자한 화폐에 비해 더 거대한 양의 화폐(M’)를 전유하기 위한 투자에 지배된 일반화된 상품생산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화폐가치 시스템은 단순한 단위노동의 생산에의 기여를 측정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아니다. 이는 가장 중요하게는 자본/임노동 관계인 자본의 사회적 관계 재생산 메커니즘이다. 가치관계의 (재)생산과 부의 생산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비르노와 베르첼로네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일반지성이 풍부화하는 것을 과대평가하면서, 산업혁명에서 포드주의까지 시기에서 일반 지성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대중지성이 생산력에서 점점 중요해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 옳다. 이러한 변화가 마르크스의 이론을 철 지난 이론의 쓰레기 더미로 밀어 넣을 것인가. 사회조직이 계속 자본주의로 존재한다면 그럴 것이다. 가치관계가 그대로 있는 한, 확산 지성의 성취는 다른 종류의 ‘공짜로 주어지는 것’처럼 자본에 의해 전유될 것이다.(기업의 오픈소스 활용 등)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에서의 일반지성

 

-요강에서의 형태규정(form-determination)과 물신주의 개념.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계의 재생산을 탐구한다. 형태규정은, 일반화된 상품생산 사회에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형태의 결과인 주관적인 기호, 인간행위자들의 태도가 이 사물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방법을 참조한다. 화폐와 자본은 사회적 삶의 기구라기보다는 개별적 사회 주체들에 반하여 서있는 사회성의 형상이다.

형태규정의 관점에서 자본은 존재론적으로 개별 행위자들의 행동과 의향에 비해 우위에 선다. 자본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의 선택, 주관적 선호, 행위는 (무자비하게 강요되는 자본의 잉여가치 생산에 대한 명령인) 가치증식명령(valorisation-imperative)에 의해 형태규정 된다. 임금을 위해 산노동을 판매하는 자의 경우 정반대로 규정된다. 자본을 단순히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는 사회적 힘의 도구라고 여기는 것은 오류다. 사회적 생산의 힘을 그의 힘으로 전유하는 ‘초월적인 권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물건들은 그 스스로 초월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일반화된 상품생산의 특유한 ‘생산의 사회적 특징’ 때문에 그렇게 드러난다. 자본은, 생산과정의 결과로서 그것의 바깥에서 실재들로 존재하게 되는 ‘산 노동에 들어있는 잠재력’의 내부이다.

마르크스가 물신론에서 지지하는 산노동의 창조적 힘은 전통적인 인간주의의 초역사적인 주체가 아니다. 요강에서의 산노동은 자본에 의해 구매된 이후 자본의 형태가 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상품 사용 형태로서의 산 노동이다. 그것이 만드는 힘은 이 사회적 형태 안에서 발달하고 이 사회적 형태 때문에 발달한다. 만약 사회적 관계와 물질적인 사회적 실천이 구조적으로 변형된다면, 즉 분열된 사회성이 다른 종류의 사회성으로 대체된다면, 화폐와 자본의 초월적 힘은 곧 존재론적 거짓말로 드러날 것이다. 마르크스의 가치이론의 최종 목표는 심판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이런 거짓말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다.

비르노가 정의하는 일반지성은 자본주의 역사에 걸친 집단적인 사회적 노동의 표현이다.(언어능력, 지식처리, 기억, 추상 및 연관 능력, 자기반영) 20세기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물신성 이론은 모든 종류의 다양한 자본주의가 ‘객관화할 수 없는 인지 역량의 저장소(depository of cognitive competencies that cannot be objectified)’, 즉 즉 생산과정과 생활세계를 조직하는 사용가능한 물질성(operational materiality)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비르노와 베르첼로네는 일반지성이 산업혁명에서 포드주의시기까지 확산된 정도를 과소평가 한다. 이는 집단적인 사회적 노동의 힘이 물신화된 형태로서 기계로 고정된 자본을 과대평가하면서 (고정)자본의 한쪽측면만을 고찰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산업혁명 시기는 일반지성이 전문가들의 과학기술 지식의 형태로 고정자본에 체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요강을 쓸 때는 아직 기술 혁신에 대해 고찰하지 않았다. 자본을 쓸 때가 되면 그림은 더욱 복잡해진다.

-마르크스는 과학자, 기술자 등, 그리고 다른 한편의 노동자들의 창조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종합적이고 실천적인 경험의 결과 임금노동자들이 얻는 생산과정의 암묵지와 명시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각각의 특정한 과정을 어떻게 실행할지와 다른 부분적 과정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기계와 화학에 의해 보조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론적 개념은 대규모의 축적된 경험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자본에게 사회적 생산력,교류,지식 등의 모든 발전 정도는 그것이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제약으로 나타날 뿐이다.”

-비르노와 베르첼로네가 마르크스의 시대에서 포드주의 시대까지의 시기에 노동자들이 기계의 단순한 부속품이 될 정도로 줄어드는 경향, 그리고 개별적인 노동자들이 과학기술 지식이 체현된 기계들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자본에서의 설명은 종합적 경험과정에서 동시적으로 개발되는 새로운 능력과 새로운 형태의 지식까지 포함하고 있다. 산업혁명 시기에 이미 일반지성과 같은 것들은 소규모 과학기술 전문가들에 의해 독점되지 않고 확산되고 있었다.

-SNS, 피어투피어 공유 프로그램 등 ‘확산 지성’의 현대적 표현은 ‘일반지성의 공유는 모든 실천의 효과적인 기반이 될 것’이라는 비르노의 주장을 정당화해주는가? 자본에 의한 산 노동의 실질적 포섭은 인지자본주의에서 서서히 사라진다는 베르첼로네의 주장을 정당화해주는가? 아니다.

-자본은 언제나 자본형태의 외부에서 생산되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에 의존해왔다. 포스트 포드주의/인지자본주의에서 그 수준은 헤아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사회 형태는 일반지성이 실질적으로 완전히 실현되는 것을 막아왔다. 오늘날 우리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에 새로운 대중지성의 생산물을 포함해야 한다.(아마추어에 의한 소프트웨어 코드 개발 등.) 이는 마르크스가 요강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예견한 것처럼 실질적으로 완전히 실현됨으로써 자본형태의 권력을 해체하지 않는다. 일반지성의 공유는 자본형태에 의해 체계적으로 한정된다.

-아마추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자본주의 작업장에서의 실질적 포섭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고, 실질적 포섭으로부터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임금노동자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한줌의 예외적 사례들로부터 일반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현대자본주의는 막대한 다수 노동자들이 혁신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시간, 훈련, 물질적 지원을 거부하며, 새롭고 극단적인 방식의 표준화와 감시로 대한다.(남반구의 콜센터 노동자,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일해야 하는 지식노동자.)

-그럼에도 비르노와 베르첼로네는 옳다. 일반지성에 대한 자본주의의 기생적 성격에 대해 강조함으로써 요강의 인식을 더 나아가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산의 기초제공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한다. 비르노와 베르첼로네의 작업은 민주적 자기조직화에 기반한 비자본주의적 사회 질서로 벗어나는 데에 기여했다. 이 기여에 비하면 다른 단점들은 부차적인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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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8 17:09 2014/02/0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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