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나  대구나 똑같습니다 ,

대구만 그런게아니라 ..정부가 경상도정권으로 

졸라 밀어줬지만 ,,그래봤자 도루묵 ㅋㅋ현재 부

산시나 대구시나  똑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대구만 그런게 아니라 ㅋㅋ

[본문스크랩] 성장을 멈춘 절망의 도시 大邱 이용제한  개쌍도 사람 연구

2006/04/16 00:19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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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돌에핀꽃 | 석화
원문 http://blog.naver.com/1437psj/60023033603
[심층취재]     성장을 멈춘 절망의 도시 大邱
 
순환·경쟁·상호비판 없는 同種교배의 도시
 
『망할 기업은 다 망했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다』

● 1인당 GRDP(지역국민소득) 13년째 전국 꼴찌
● 대형 재난사고 속출, 젊은 층 이탈 심화, 노령화 지수 증가
● 대구의 정치적 획일성이 다양성의 부재 낳아
金泰完 月刊朝鮮 기자 (kimchi@chosun.com)  
『미치겠다』
 『景氣(경기)요? 망하는 일만 남았심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어예』
  
  『그런 거 묻지도 마소. 짜증나니까』

  
  설을 앞둔 지난 1월23일~25일 사이 大邱(대구)에서 만났던 택시기사·주부·상인·섬유업체 사람들의 이야기다. 大邱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칠성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경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한참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미치겠다』
  
  대구가 처한 시름과 울분이 「미치겠다」는 한마디에 모두 압축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월1일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대구는 「현직 광역단체장」, 「지방자치 10년」, 「거주 만족도」 등 3개 평가에서 모두 꼴찌를 차지했다. 16개 市·道에서 대구사람들만 유일하게 「살기 나쁘다(52.8%)」는 의견이 「살기 좋다(41.0%)」는 응답보다 많았다.
  
  칠성시장 건어물 상점에서 만난 주부 한상미(56)씨는 대구가 살기 나빠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TK(대구·경북)가 잘 나갈 때 「TK 단물」을 요리조리 빼먹던 사람들이 정작 TK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입니까. TK를 대표한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 중에 지금 대구 내려와 사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한씨의 해석이 과격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정치적이어서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더니, 한심하다는 듯이 기자를 쳐다보았다.
  
  상인 박성무(45)씨는 『TK가 정권을 잃은 뒤 대구의 몰락이 눈에 띄게 가속화됐다』며 『현재 大選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TK 출신 朴槿惠(박근혜)·李明博(이명박)씨가 정권을 잡으면 대구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칠성시장은 서문시장과 함께 대구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이다. 與野 정치인들이 대구에 내려오면 서문시장 아니면 칠성시장에 들른다. 그만큼 대구 民心(민심)의 바로미터가 이곳이다. 칠성시장엔 설 대목이라 상가마다 물품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평일인 데도 낮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이 주부와 노인들이었다. 하지만 기자의 눈엔 흥정이 이뤄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30~40분 가량 시장 골목을 돌아봐도 빈 장바구니 행렬이 대부분이었다.
  
  
  외국인 投資 전국 최하위
  
2005년 12월29일의 화재로 인해 붕괴 위기에 처한 서문시장 2지구.

  대구는 朴正熙-全斗煥-盧泰愚 정권을 거칠 때까지 전국 3大 도시의 위상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가장 가난한 도시가 돼 버렸다. 3大 도시 서열을 인천에 내준 지 오래다. 1998년 이후 전국 각 市·道별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의 경우 울산이 6년 연속 전국 1위를 차지한 반면, 대구는 6년 연속 전국 최하위를 나타냈다. 연평균 성장률도 꼴찌였다.
  
  성장률이 떨어지니 외국인 투자액도 전국 최저 수준이다. 1997년 이후 8년간 대구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 투자액은 3억8400만 달러로 전국 최하위였다. 이는 서울의 1.3% 인천의 9%, 부산의 18% 수준이었다.
  
  대구 서구 비산염색공단을 둘러봤다. 염색공단은 한때 대구 섬유산업을 이끄는 한 축이었다. 1980년대 「폴리에스테르 가공 붐」이 일어 전성기를 구가할 때만 해도 염색공단 사장 명함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단을 市 외곽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될 정도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일부 한계 업체들은 공단 용지가 상업지구로 바뀌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공단內 도로 곳곳에 원단을 실은 트럭이 정차돼 있었고, 東南亞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이 눈에 띄었지만 대체적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공단에서 만난 S염색 관계자는 『高유가와 환율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공장을 돌린다』며 『주위의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중국으로 공장을 옮긴 상태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災害 無대책 지역
  
  택시를 잡아타고 서문시장으로 향했다. 택시 운전 경력 3년째라고 밝힌 김성도(44)씨는 『사납금도 맞추기 어렵다』고 했다. 『오전 6시에 나와 오후 3시까지 5만3000원을 벌었다』며 손가락으로 미터기를 가리켰다.
  
  서문시장에는 호객 행위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싸다』, 『떨이 제품이다』는 고함 소리가 요란했다.
  
  지난해 12월29일 불이 났던 상가 2지구에 가보았다. 2지구 건물의 안전 펜스에는 「임시매장 이전안내」, 「시장 화재 왕창 세일」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나붙어 있었다. 피해 상인들이 노점을 연 것이다. 50代 후반으로 보이는 한 상인은 이불을 펼쳐 놓고 『2만원짜리 이불을 1만2000원에 판다』고 외치고 있었다.
  
  「서문시장상가연합회」에 의하면 시장 화재로 피해를 입은 점포수는 1019개이고, 피해액은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비대위 간사라고 밝힌 全瑩旭(전형욱·50)씨는 「보상은 받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되레 『보상은 무슨 보상을…』하고 면박을 줬다. 그는 수십 년간 학생복 파는 일을 해왔다고 했다.
  
  『성금 모금을 하고 있다는데 성금이 피해상인에게 직접 지급되지 않는다고 하데예. 대부분이 영세상인들인데 당장 명절상도 차리기 어렵게 됐심더. 피해상인 대부분이 충격과 공허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도 새벽 5시만 되면 잠이 깹니더. 수십 년간 이룬 것을 한꺼번에 날렸으니….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주지도 않았어예. 생각 같아서는 이 일(화재수습)이 정리되면 대구를 떠나고 싶습니다』
  
  시장 근처에 임시 점포(이불 도매)를 연 한 상인은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찾아와 이불을 세 채씩 사 가는 사람이 있다』며 『자기들도 어려울 텐데, 일부러 찾아와 애를 쓰니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온 주부 김정자(39)씨는 『할인마트가 편하긴 하지만 서문시장에 큰일을 당했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서문시장 상인연합회는 시장 부근 베네시움 건물(점포 900개)과 주차빌딩 지하 1, 2층(점포 150여 개)을 대체상가로 정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재기의 터전을 마련한 셈이다.
 

  
  계속되는 참사와 「대구病」
  
  서문시장 화재는 대구를 「사고도시」로 각인시켰다. 최근 몇 년간 대구에는 크고 작은 재난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1995년 4월28일 발생한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도시가스 폭발사고(101명 사망, 202명 부상),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전동차 방화(191명 사망) 사건은 잊을 수 없는 대형 참사다. 1863년 영국 런던에서 지하철이 처음 개통된 뒤 140여 년의 세계 지하철 역사에서 100명 이상 사망자를 낸 3大 참사 가운데 2건이 대구에서 발생한 셈이다.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학산공원內에 있는 「상인동 지하철 참사 위령탑」을 찾았다.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위령탑 주변에서 몇몇 노인이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열린 10주기 행사를 끝으로 외부 추도식 행사를 갖지 않기로 해서인지, 평일 낮이어선지 적막해 보였다.
  
  대구지역에서 재난사고가 연이어 터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안전 불감증」, 압축성장 과정에서 불거진 「설마 의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고는 하지만, 유독 대구에서 재난이 끊이질 않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한 사회학자는 「대구의 정치적 단일 지배구조와 정치·행정 조직의 도덕적 해이가 지역사회를 경직시켰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10여 년 가까이 한나라당 간판만 달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될 정도였으니, 대구사회가 긴장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최소한의 긴장감마저 풀린 결과가 대형 참사』
  
  대구大 洪德律(홍덕률) 교수(사회학과)는 『대구 정치권과 主流사회가 一黨(일당)에 의한 장기독재와 비판과 견제가 부재한 기형적 구조로 고착됐기 때문에 순환·代謝(대사)·경쟁·견제·상호비판이나 교체가 없었고, 지역사회가 젊음이나 혁신을 누릴 수 없는 것도 당연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洪교수는 『엄청난 재난사고가 일어나도 정치적 일당 지배구조 때문에 책임소재가 분명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역경제마저 어려우니 의기소침하게 되고 최소한의 긴장감마저 풀려 사고가 터지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계명大 洪元植(홍원식) 교수(철학과)는 현재 대구가 처한 현실을 「대구病(병)」으로 규정했다.
  
  『대구는 지금 「대구病」을 앓고 있어요. 다양성의 부족으로 대화가 끊긴 채 스스로 배타와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누가 일부러 가둔 것이 아니에요. 스스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자신 없어 하지는 않은지 반문해 봐야 합니다. 
  
  대구는 보수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바람직하고 제대로 된 보수인지, 혹은 수구는 아닌지,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따져 봐야 합니다. 
  
  대구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수십 년간 공적 합리성이 결여된 채 연줄에 기대 왔어요. 내용을 못 채우고 생산적 비판도, 포용도 없이 「남탓」만 하고 스스로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이런 모습은 조선시대 영남 남인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집권할 때는 마구 누리지만, 실권하면 닫아 버리는 습성 말입니다』
  
  洪교수에 따르면 「대구病」은 제3공화국에서 시작돼 집권의식과 小중앙주의에 빠진 뒤 5, 6공화국을 거치면서 더욱 굳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YS·DJ 정권에서조차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비판적으로 돌아보지 않아 대구의 의식·생각이 성장을 멈춰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대대적인 의식개혁 운동을 벌여야 한다』며 『私的(사적) 결단이 아니라 지식인과 學·官·財界 사람이 합심해 혁신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민들의 無力感
  
1995년 4월2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발생해 등교하던 초·중·고교 학생을 포함해 101명이 숨지고 117명이 부상당했다.

  상담·심리학자들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이나 사고를 빈번하게 경험하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대구시민이 무력감에 빠져 있는 것도 삶에 대한 내적 통제감을 잃고 외부 여건이 바뀌기만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영남大 全鐘國(전종국) 겸임교수(심리학과·카운피아교육연수원장)는 『대구지역이 활기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회·심리적으로 무력감을 느끼면 활기가 없습니다. 대구지역에서 유난히 자주 일어나는 대형 참사가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삶의 터전이 훼손당했지만, 그 원인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에 의해 일어났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게 되니 「운이 없다」, 「재수가 없다」는 식으로 「내 탓」이 아닌 「네 탓」을 해버립니다. 재난의 교훈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고 심드렁해져 버리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부산이 고향인 연세大 黃相旻(황상민) 교수(심리학과)는 『대체로 대구를 보수적인 도시로 여기는데, 대구사람들은 보수적이란 말을 「고집 세다」는 점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현상은 대구를 지배하던 主流사회가 수십 년간 바뀌지 않아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둔감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위기를 맞고도 계속 배타성 고집
  
  黃교수는 『TK로 상징되는 대구·경북 인사들이 중앙권력을 잃게 되면서 되레 지역사회가 내부 결속력이 강해지고 상대적으로 배타성이 커지게 됐다』며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게 현실을 바라볼 수 없다면 외부인이라도 데려와야 하는데 오히려 배척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대구의 배타성을 특정 학교 인맥의 서열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洪德律 교수의 설명이다.
  
  『「경북고등학교」로 상징되는 學脈(학맥)·人脈(인맥)이 대구 主流사회를 형성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끌어 주는 봉건적 연고주의가 學-금융-기업-관료-언론 조직을 지배해 왔습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졌고, 결과적으로 公的(공적)인 의사소통 영역까지 질식시켰습니다. 
  
  물론 고교 평준화 이후 학맥 중심의 서열화가 많이 붕괴돼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은 경북高 인맥입니다』
  
  대구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대구향교를 찾았다. 대구향교는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보수적 이념의 산실과 같은 곳이다. 향교 앞뜰에는 옛 경상도 관찰사의 공덕비가 즐비하게 서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孔子의 제사인 「釋奠(석전)」을 올리며, 한문·예절교육 등 전통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구향교의 좌장격인 都鎬京(도호경·71) 典敎(전교)를 만났다. 경북도 교총 회장을 역임한 그는 2005년 5월 지역 유림 대표들이 모인 향교유림총회를 통해 선출됐다. 
  
  都전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도 나라를 굳건하게 지킨 뿌리가 바로 대구』라며 『보수적이란 지적도 있지만 대구는 문향의 고장이자, 우직한 의리의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으며 우국지사·학생들의 비밀결사운동이 끊이질 않았고, 6·25 때에는 낙동강 전투의 마지막 보루였으며 2·28,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어요. 대구의 형편이 지금 말이 아니지만, 저력의 도시인 만큼 再도약할 것입니다』
  
  대구사람들이 외지인에게 배타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都전교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제 주변 사람을 봐도 광주·대전·충북에서 온 사람들이 대구에 와서 장사를 잘하고 있다』며 『배타적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편견이거나 와전된 이야기일 것』이라고 했다.
  
  잇단 재난사고에다 젊은이들이 대구를 떠나는 현상에 대해 都전교는 『슬픈 일이지만 대구·경북 사람들이 정직하고, 윗대에서 받은 기운을 80~90% 가지고 있어 지역 발전을 위해 여러 일을 할 것』이라고 애써 강조했다.
  
  
  火氣가 많다
  
2003년 2월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방화로 완전 전소된 지하철 객차 내부를 소방관들이 조사하고 있다.

  대구에서 재난이 끊이질 않는 이유를 동양학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趙龍憲(조용헌·46) 원광大 초빙교수는 대구에 火氣(화기)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구에서 일어난 대형화재사건의 원인을 「고려사」식의 오행사관으로 풀어 보면, 「대구는 火氣가 많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대구의 산세가 그렇습니다. 팔공산과 비슬산은 험한 바위가 돌출돼 있는 巖山(암산)들로 오행으로 보면 火體(화체) 산들에 해당합니다. 흔히 경상도 사람의 기질을 泰山喬嶽(태산교악)과 같이 무겁고 뚝심이 있다고 표현하는데, 그 태산교악의 기운이 대표적으로 뭉쳐 있는 곳이 바로 대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산세입니다. 그래서 대구사람들 가운데 뚝심 있고 다혈질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水氣의 부족입니다. 주변 산은 지글지글 끓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이 불을 식혀 줄 물이 적어요. 실제로 대구는 더운 도시입니다. 금호강과 新川(신천)이 있지만, 이 정도의 수량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생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물을 보강하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조선 정조가 즉위하던 1776년 대구 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제방을 쌓고 물길을 돌려 오늘날의 새 하천(新川)을 만든 뒤 재난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趙교수는 『장기적으로 대구는 新川과 같은 하천 증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火氣를 내리려면 물을 보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대구에서 일어나는 불과 관련된 참사를 火氣와 연계시킬 때 대구 음식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흔히 대구 음식은 맵고 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입안이 화끈거리고 더워서 땀이 나는 것도 모두 熱(열)의 작용이다. 왜냐하면 火氣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대구韓醫大 학장을 역임한 한의학 박사 朴宰賢(박재현·47)씨는 『매운 음식은 열을 발산시키는 효과가 있는 데다 火氣가 강한 지역에 사는 대구사람들의 열을 발산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더욱 선호하게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경상도 사람의 성격을 두고 「무겁고 뚝심이 있지만 성극이 급하고 화를 잘 낸다」고 말하는데 이 역시 한방에서는 火(화)에 속한다고 한다.
  
  
  음주 교통사고율 전국 최고
  
  대구는 여름 한낮 기온이 29~35℃에 달하고, 밤 기온도 25℃를 유지하면서 체감온도가 40℃를 넘나들 정도의 혹서로 유명하다. 전국 최고의 술 소비를 자랑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술을 「大熱(대열)·大毒(대독)」이라 하여 많이 마시면 熱이 쌓여 갖가지 병을 일으킨다고 한다. 
  
  朴박사는 『대구지역 대형 할인점의 매출 1위가 술이고, 명절 선물로 대구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도 술인데 전국 평균의 2배가 넘는다』면서 『인구당 술과 담배의 판매량을 기준으로 조사한 청소년 유해환경지수는 대구 중구가 서울 종로구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고,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음주 교통사고율은 대구가 전국 대도시 가운데 최고』라고 말했다.
  
  
  『대구는 리더십 眞空상태』
  
  대구시의회를 찾아갔다.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대구의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서였다. 대구시의원은 비례대표를 포함해 27명으로 한나라당 23명, 열린당 1명, 무소속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시의회 姜聲浩(강성호) 의원(경제교통위원장·무소속)은 『과거 대구의 정치·행정 조직은 군부독재에 길들여진 리더십을 가진 문화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며 『시장과 국회의원, 구청장과 같은 지역의 리더가 있지만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盧泰愚 정권 이후 획일적 리더십이 사리지자 순식간에 리더십 진공상태에 빠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일방 독주 속에서 내부 경쟁이 사라지니 사회를 순기능化하는 면역력이 약화돼 버렸고, 자생력도 떨어졌습니다. 자연히 시민들이 활력을 잃게 된 거죠. 당과 당, 세력과 세력이 토론과 경쟁을 통해 내부 시스템을 혁신시켜야 하지만 대구는 신진대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폐쇄구조가 돼 버렸습니다』
  
  姜의원은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출향인사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구·경북 출신 출향민도 이제 대구를 보고 코웃음을 쳐요. 과거 호남 정권은 정치적 득실에 따라 표심이 갈렸지만 대구는 「못 먹어도 고(go)!」, 「이왕 이리(이렇게)된 것 갈 때까지 가보자」란 심정으로 정치적 편향성을 고집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활력이 없고 의리만으로 밥 먹고 살 수 없는 데도 외딴 섬처럼 버티고 있다는 거예요. 한편으로 고향이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지만 너무 맹목적이어서 대구 가는 게 싫어진다고 해요』
  
  얼마 전 대구시의회에서는 국회에서나 볼 수 있는 날치기 사건이 일어나 법정 분쟁까지 빚어졌다. 「대구시 구·군의원 선거구와 선거구별 의원 정수에 관한 개정 조례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소속 광역의원끼리 모여 의안을 처리한 것이다. 
  
  
  대구시의회의 새벽 날치기
  
  크리스마스 전야인 2005년 12월24일 오전 5시50분쯤 본회의장 조명을 끈 채 손전등만 켜고 5분 만에 일사천리로 안건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례안 처리 과정에서 열린당과 무소속 시의원 4명에게는 「거사」 20분 전인 오전 5시31분쯤 마지못해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알렸다.
  
  열린당 대구시黨 관계자는 『뒤늦게 열린당 당직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본회의장 문이 잠겨 있고 불빛만 새어 나왔다』면서, 『문을 두들기니 다시 실내 불이 꺼졌고, 본회의장에서 의사봉 소리가 두 차례 들렸다』고 말했다.
  
  현재 열린당과 무소속 시의원 네 명이 「조례안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대구지방법원에 낸 상태다.
  
  기자는 시의원들에게 「10년 뒤 대구가 무엇을 먹고살지」를 물어보았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걱정뿐이었다.
  
  행정자치委 소속 孫明淑(손명숙) 의원(한나라당)은 『섬유수출이 막히면서 대구 사회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땅값이 비싸 기업유치도 어려운 형편』이라며 『게다가 공무원들은 「안 된다」라는 말부터 먼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孫의원은 『대구의 여러 경제지표들은 전국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으며, 조직 안에서 합심해서 무엇을 만들어 보려는 動因(동인)이 없고,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갈 젊은이마저 대구를 떠나고 있다』고 걱정했다.
  
  2005년 말 대구의 총 인구는 252만5836명으로 2004년 말보다 1만3902명이 줄어들었다. 인구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출산율 저하로 0~9세 아동이 1만8066명(-5.9%)이나 줄어들었고, 20~19세는 1만4216명(-3.4%), 30~34세는 8659명(-3.8%)이 줄어드는 등 젊은 연령층의 감소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20代 초반에서 30代 초반 연령층의 감소는 학업 및 취업 등으로 인한 인구 유출이 주된 요인』이고, 『특히 서울·경기 등 수도권으로의 전출률이 높으며, 울산·대전·충남 등으로의 이동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빠져나가는 젊은이들
  
  金忠煥(김충환) 의원은 『대구의 미래에 빨간불이 켜졌다』며 『전통산업인 섬유·기계산업만으로 대구 경제를 견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金의원은 대구사회의 「연고·서열주의」를 지적했다.
  
  『젊은 사람이 기존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바른 소리를 하면, 「아직 나이도 얼마 먹지 않았다」거나 「어른에게 버릇없이 군다」는 식으로 폄하해 버리는 일이 일상화됐습니다. 중앙정치권에서는 「40代 기수론」 같은 얘기가 일상화됐지만 대구에서는 요원한 남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대구시의회를 나와 열린당 대구시黨을 찾았다. 때마침 鄭東泳(정동영)·金槿泰(김근태) 前 장관이 한꺼번에 내려와 기자간담회를 가진 뒤라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기자 출신인 李在觀(이재관) 대구시黨 대변인은 『대구에는 경쟁도, 자극도 없었다』면서 『자극이 있어야 상대방을 의식하게 되는데, 새로운 변화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고 대구의 분위기를 지적했다.
  
  『맹목적으로 한나라당만 지지했습니다. 무슨 전략적 판단이 있었던 게 아니고 무작정 金大中·盧武鉉이 싫다는 거예요. 엄연히 존재하는 여당의 가치를 활용하지 못해 잃은 게 더 많았습니다. 대구사람들은 음식점을 가도 단골만 찾지 맛·서비스·가격을 두루 따지는 법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번 좋다고 하면 설사 죽일 놈이라고 해도 신물 나게 좋아하고, 미워하면 끝까지 미워해요』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 위치한 「(사)아시아 사이언스파크 협회(ASPA)」를 찾아 朴賢淑(박현숙) 대외홍보실장을 만났다. ASPA는 아시아 산업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30여 개 아시아 국가의 민간회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朴실장은 『대구는 사람들의 氣가 세고 강인하며 보수성이 강한 도시』라며 『근대화 과정에서 집합된 힘을 가지고 밀고 나갈 때에는 유리한 점이 많았고 일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일정 궤도까지 당겨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朴실장은 『변화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개성시대에 이같은 보수성과 집단주의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으며, 현재의 대구는 완전히 고인 물처럼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 대구의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초선인 徐相箕(서상기) 의원에게 물어보았다.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미국 포드자동차 연구원, 대학교수 등을 두루 거친 그는 대구 의원 가운데 가장 먼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개인 사무실을 연 상태다.
 
대구 성서4단지는 대구시가 위천단지 조성이 무산된 뒤 10여년 만에 조성한 산업단지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생각
  
  ―대구 경제의 몰락이 심각합니다. 국가 산업단지의 경우 전국적으로 41곳이나 되지만 대구에는 아예 없고 지방산업단지도 5개(전국 비중 9.1%)에 머물러 있습니다. 대구의 지역총생산(GRDP)은 1990년 7조2000억원 규모로 국내 비중이 4%대였으나 2000년 3.4%, 2001년 3.5%로 낮아졌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시대는 변화하는데 그것에 대비를 해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이 적었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대구·경북이 정권을 잃은 뒤에도 계속 헛된 정치권력에 막연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도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정치권력에 의존하려는 기대를 버리고 살아남기 위한 과감한 변신을 했더라면 오늘날 대구가 이처럼 몰락하진 않았을 겁니다』
  
  ―표현이 거칠지만, TK가 권력을 잡지 못한 지난 10여 년간 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했을까요.
  
  『경제는 한 번 시기를 놓치면 따라잡기가 불가능합니다. 삼성이 지금 일류기업이 된 것은 20~30년 전 故 이병철 회장이 심어 놓은 씨앗이 지금 싹을 틔우고 있기 때문이죠. 경제는 한 번 타이밍을 놓치면 반전하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YS 정권 때부터 야당도시가 됐으니 정책적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이라도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대구가 이렇게 수렁에 빠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요.
  
  『대구시장이나 정치인만 나무랄 일이 못 되지만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공동 책임을 져야지요. 그러나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100m달리기에서 한 발이 뒤지면 막판 스퍼트에서 따라잡을 수 있지만, 두 발 뒤지면 선두를 영영 탈환할 수 없어요. 대구는 지금 한 발 뒤진 상태예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대구가 변신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어떻게 바꿔야 합니까.
  
  『혹자는 확 뒤집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방법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바꿔야 한다는 기본 철학을 분명히 하되, 멀리 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민들로 하여금 바꿔야 한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氣가 죽었다』
  
  이번에는 대우경제연구소장·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지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李漢久(이한구)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역시 『예삿일이 아니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라고 큰 걱정을 했다. 李의원도 한나라당의 대구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대구 사회가 수십 년간 낙후된 이유가 오랫동안 지속된 한나라당 일당지배구조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대구 學界·官界·기업 등 사회 지도층들의 氣가 모두 빠져 있어요. 입이 딱 벌어질 정도입니다. 게다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불평만 늘어 놓고 있는 지경입니다. 물론 한나라당도 잘못했고 욕먹을 짓을 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지도인사들이 「뭔가 해보자」, 「잘 살아 보겠다」는 절박한 의욕이 없으니 시민들도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어요. 기업인이나 공무원들도 게을러 빠졌습니다. 
  
  한마디로 내부혁신을 위한 動因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내부혁신이 안 되면 외부에서 끌어다 쇼크를 줘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정부가 낙후지역으로 대구를 지정해 변화시켜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닙니다. 現 정권 들어 대구사람이 청와대에 얼마나 많이 들어갔나요. 그런데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습니다』
  
  ―대구 사회의 노령화를 지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대구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이든 사람들이 지도층을 점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옛날 관행에 사고가 얽매여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과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대구를 떠나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지도층이 막혀 있으니 젊은이들의 도전정신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취직이 안 되면 해외인턴이나 취업연수라는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전국 통계치를 보면 대구가 전국에서 청년 취업률이 가장 낮습니다』
  
  ―대구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합니까.
  
  『내부혁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꿔 보자」, 「살아 보자」고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중앙정부도 빚더미여서 큰 기대를 할 수 없어요. 다만 盧武鉉 정부에선 기대할 것이 없으니 정권교체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權力만 바라보는 無비전의 지도자들
  
  대구의 대표적 지식인 경북大 李鍾玄(이종현) 교수(전자전기컴퓨터학부)와 영남大 尹大植(윤대식) 교수(지역개발학과)를 만났다. 李교수는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이하 지역혁신협의회)」 의장직을 맡고 있으며, 尹교수는 참여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대구사회연구소(이하 대사연)」의 소장이다.
  
  지역혁신협의회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규정에 따라 2003년 6월 결성됐다. 지역혁신협의회는 지역 시민단체·교수·언론·공무원 등이 모여 지역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개방적 집단 학습 모임」이다.
  
  대사연은 보수적 분위기인 대구 사회에서 독특한 존재다. 지방분권운동을 전국적 규모로 키웠고, 盧대통령이 2003년 6월12일 대구 현지에 내려와서 밝힌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대구구상」의 산파 역할을 했다. 윤덕홍 前 교육부총리, 권기홍 前 노동부 장관, 이정우 前 청와대 정책실장, 이종오 前 대통령직 인수委 간사 등이 대사연 출신이다.
  
  기자는 李교수와 尹교수, 대구 출신인 매일경제신문 南東熙(남동희) 출판부장(행정학 박사) 등을 만나 대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세 시간 가까이 토론을 벌였다. 
  
  
  同種교배의 도시
  
  ―대구가 이처럼 낙후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이종현 『과거에 대구 정치권은 비전을 제시하거나 시민들의 컨센서스를 모으는 리더십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천만 하면 당선되는 식이었고, 지역이 아니라 정치 외풍에 표심이 좌우됐으니 사실상 우리가 뽑은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윤대식 『대구사람들은 권력에 순응하는 습성에 익숙해져 있고, 개발독재 시대를 지나오며 그런 권력에 맛을 들였습니다. 또 대구의 지도자들은 「비전 공급자」라기보다 중앙 권력과 연계된 폐쇄적 조직체계에 익숙한 지도자였습니다. 
  
  도시 생태계 자체가 역동적 사회를 지향하고, 官주도보다는 민간주도 중심이 되는 리더십을 중시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대구는 여전히 권력적·권위적 냄새가 지나치게 풍깁니다. 
  
  외지인들이 대구에 사업하러 왔다가 욕을 하고 갑니다. 그만큼 수평적 분업에 익숙하지 않고 폐쇄적이기 때문이지요. 대구 공직자들은 과거 중앙정부의 권력에 줄을 대고 살았던 관성이 아직 남아서 고민하지 않고 「이지 고잉(easy going)」하려고 해요』
  
  ―생명체는 인브리딩(inbreeding·동종교배) 시스템이 반복될수록 열등해지고, 아웃브리딩(outbreeding·이종교배)에서만 강인한 우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좁아지고 동질화되고 사회성과 세계성이 약해질 때 그 삶은 인브리딩 시스템을 반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혹자는 대구를 「同種(동종)교배 도시」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이종현 『거칠게 표현해서 대구에 사는 사람의 85%가 대구·경북 출신들이라고 합니다. 전국에 이런 도시는 없을 겁니다. 인브리딩을 지속하고 자기들끼리 뭉치면 잘못된 관행을 깨기가 어렵습니다. 
  
  지역 학자들이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나쁜 관습을 학습을 통해 없애자는 겁니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10만 이노베이터 양성」입니다. 학습의 물결로 척박한 토양을 적시기 전에는 대구의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40여 개의 학습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역혁신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남동희 『거대한 1차 집단, 혹은 인연과 정에 의해 굴러가는 보수적 사회가 대구입니다. 젊은 사람이 한마디 하려고 하면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자(제) 와카노」 하며 면박을 줍니다. 그러니 바른 소리를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나이가 쉰 살이 넘어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곳이에요. 독립적 의사결정 구조가 없어요』
  
  윤대식 『대구는 혈육·가족에 대한 애착이 굉장해요. 다양한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룰을 만들어 용광로 속에 용해시켜야 하는데, 대구는 소통이 없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독점체제의 폐해
  
  ―대구지역의 정치구도를 생각할 때 무엇이 문제입니까. 「한나라당 一黨 구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미우나 고우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 아닙니까.
  
  이종현 『독점을 하면 서비스가 사라지는 법입니다. 경쟁사가 있어야 쿠폰도 주고 매출에 신경을 씁니다. 정치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과거 정권에서 대구·경북 출신으로 잘 나갔던 인사치고 지역에 뿌리 박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남동희 『공천과정이 문제입니다. 중앙 권력에서 은퇴한 사람을 대구에 데려와 경선 없이 추대형식으로 공천을 줘 왔습니다. 그러니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이 된 뒤 시민들의 정서보다는 당에 매달릴 수밖에요. 이런 구도를 혁파하지 않으면 대구의 미래는 요원합니다』
  
  ―대구 공직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구 공무원을 접촉해 본 외지인들은 한결같이 공무원 개개인이 문제라기보다 「조직 전체가 닫혀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윤대식 『공무원들은 일단 「안 된다」는 말부터 하는 「규제 행정」이 본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방자치의 핵심은 시민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조작 행정」이어야 합니다. 조작 행정을 키울 수 있는 관건은 단체장의 적절한 리더십과 좋은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법전을 뒤져 저촉되느냐 여부를 따지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기업처럼 위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risk-taking) 조직을 대구 공직사회에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관료조직처럼 줄 잘 서는 관료보다는 위험을 경험하며 익힌 역량과 덕목을 가진 人材가 필요합니다』
  
  
  섬유에 목맸다가 시들어 간다
  
  ―그간 섬유가 대구를 먹여살렸습니다. 대구가 여러 경제지표에서 바닥을 면치 못하는 것은 섬유산업의 붕괴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섬유 구조개선 자금을 쏟고, 대구를 동양의 밀라노로 만들겠다는 「밀라노 프로젝트」 사업을 도입했지만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윤대식 『산업이 싹트기 위해서는 사회적 생태계가 형성돼야 합니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가 확립돼야 하는데, 섬유업자들이 사업이 안 된다고 시청에 몰려와 데모를 하는 형편입니다. 지방정부에 손을 벌려서야 됩니까. 길을 잘 못 들인 겁니다』
  
  남동희 『밀라노 프로젝트도 大選과정에서 일종의 「당근」이었습니다. 대구 여론 주도층들도 섬유업자들의 정치적 스폰서이기도 했습니다. 섬유산업은 미국의 경우 1948년에 전성기가 끝났어요. 물론 섬유산업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대구처럼 섬유산업을 대표산업인 양 끌고 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가식이자 꾸밈입니다』
  
  대구 밀라노 프로젝트는 1단계 사업 추진 결과 「기술개발투자보다는 각종 센터 건립 등 인프라 구축에 치중, 사업지연 등으로 예산낭비가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하지만 염색·가공·직물 위주의 섬유산업에서 탈피해 高부가가치 산업으로 섬유를 일대 전환시키려는 노력은 대구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영남 경제권」 구축이 代案이다
  
  ―대구는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합니까.
  
  이종현 『먼저 척박한 토양을 바꾸어야 합니다. 토양이 바뀌면 서비스와 금융은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토양만 만들면 씨앗이 날아와 싹을 틔웁니다. 대구 테크노파크는 산학협력 기반을 구축해 왔습니다. 1998년부터 5년간 산업자원부·지자체·지역 대학 등이 공동 출연해 기술혁신지원, 창업보육사업, 장비지원사업 등을 해왔습니다. 기술의 비가 내려 황무지에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이제는 가꾸고 키워야 할 때입니다. 
  
  사실 테크노파크를 조성하려 했을 때 가장 반발하던 이들이 지역 섬유업자들과 지방 토호들이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자르지 못하면 토양이 복원될 수 없었습니다. 지역 대학을 살려내지 못하면 토양을 살릴 수 없습니다』
  
  현재 대구에는 경북大와 계명大 등 2개 종합대학과 7개 전문대학을 중심으로 지역협력연구센터(RRC), 지역기술혁신센터(TIC) 등이 설치돼 있으나 산학협동 성과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대구 테크노파크, 대구기계부품연구원,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産·學·硏·官(산·학·연·관)이 부분적으로 연계돼 있으나 기술개발 역량, 新기술 산업화 역량 등 혁신역량의 전반적 수준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윤대식 『지방분권과 지역혁신 차원에서 영남 경제권을 형성해야 합니다. 독점적 구조가 아니라 지역별로 복수 경제권을 지향해야 합니다. 대구가 지닌 비즈니스-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R&D 산업 기능을 흡수·부산·울산과 함께 영남 경제권을 구축해야 합니다』
  
  
  『더 내려갈 곳이 없다』
  
  대구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대구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2004년 1인당 지역총생산 994만원. 10여 년째 16개 市·道 중 꼴찌인 성적표를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을까.
  
  대구시청을 찾았다. 「사고도시」라는 오명에다 활력을 잃은 대구를 소생시킬 해법을 들어볼 생각이었다.
  
  呂熙光(여희광) 대구시 경제산업국장은 『바닥을 쳤다』고 말했다. 『사고 날 것 다 나고, 더 이상 떨어질 일이 뭐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대구의 비전도 마련됐다. 「2大 전략」, 「5大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呂국장이 말한 2大 전략은 「문화예술」과 「과학기술」 전략을 뜻한다. 전국에서 가장 대학이 많은 대구의 인재풀을 적극 활용해 문화예술과 과학기술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2大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테크노폴리스 조성과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육성 ▲문화산업 클러스터 조성 ▲한방산업 클러스터 조성 ▲전통 주력산업의 高부가가치화와 新산업 육성 ▲컨벤션과 같은 대도시형 서비스산업 육성 등 5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런 거대 프로젝트는 모두 돈이 있어야 가능한 사업들이다. 중앙정부가 否票(부표)만 던지는 야당도시 대구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할 리 만무하다.
  
  呂국장은 『대구는 위천공단을 조성하려고 10여 년 매달리다가 결국엔 실패했고 그러다 보니 대기업 유치도 불가능하게 됐다』면서 『게다가 국토균형개발이 해안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내륙도시인 대구의 박탈감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비전이 만들어진 이상 대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단언하며, 『아직 시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홍보부족』이라고 항변했다.
  
  『대구에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해 도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많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치르면서 2大 전략, 5大 프로젝트를 세웠어요. 흔히 「대구엔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나 고층빌딩이 왜 없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뉴욕과 같은 메트로폴리탄에도 큰 공장이 없습니다. 
  
  구미·경산·칠곡·포항·영천을 배경으로 대구는 고급인력과 비즈니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定住(정주) 역할을 하고 있어요. 사실 대구의 GRDP가 전국 꼴찌이지만 소비수준은 3위권인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한 해에 구미에서 대구로 유입되는 소득이 2조~3조원에 육박합니다.
  
  또 굵직한 대기업은 아닐지라도 중소 알짜기업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국내 자동차부품 회사 2위인 한국델파이 본사와 대성글로벌 네트워크 본사의 대구 이전이 확정됐어요. 2000년 11월 삼성상용차 퇴출로 빈 터로 남은 부지에다 매출규모 7000억원대의 LCD BLU 제조업체인 희성전자(주) 등 첨단기업 8개 업체를 유치했습니다. 대구에 대기업이 와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입니다』
  
  
  『망할 기업은 다 망했다』
  
  대구의 전통산업인 섬유산업은 苦戰(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呂국장도 그 점을 인정했다. 『망할 기업은 다 망했다』는 것이다. 그는 『IMF 외환위기 직후 대구섬유가 다 죽는다고 했는데, 환율 때문에 죽진 않았었다』며 『그러나 2000년, 2001년 정말 어려워졌고 적지 않은 수의 섬유업자들이 공장문을 닫고 식당·요식업 등으로 업종을 전환했지만 대부분 재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呂국장은 『방직업체는 사실상 문을 다 닫았고, 남은 업체는 新소재 가공업체 뿐이며 염색업체 역시 인건비와 연료비로 苦戰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대신 중저가 섬유산업 구조를 高부가가치 산업구조로 개선하기 위해 1, 2단계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섬유기술혁신 연구개발사업과 첨단 염색가공 기술 中·長期 사업 등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섬유산업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 人材의 못이었다
  
  대구시청을 나온 기자는 경북大로 향했다. 대구 근교에는 경북大와 계명大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대학이 몰려 있다. 慶山만 해도 영남大·대구大·대구가톨릭大·대구한의大·경일大 등 대학만 10곳이 넘고, 대구·경북을 통틀어 22개 종합대학과 25개의 전문대학이 있다. 수만 명의 人材들이 매년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의 산업기반이 흔들리면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고향을 등지고 있다.
  
  한때 한강 이남 최고의 대학으로 불리던 경북大의 위상도 몰락하고 있다. 취업률이 전국대학 가운데 15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각 기관의 대학평가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학 경쟁률도 갈수록 떨어져 입시생들은 「경북大에 가느니 차라리 수도권 중위권 대학에 가겠다」고 말할 정도다. 경북大의 침체는 지방大가 처한 공통의 현상이다.
  
  경북大 金達雄(김달웅) 총장은 『지역대학의 人材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면서 나타나는 폐해가 크지만 지역 대학은 여전히 지역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金총장은 『대구·경북은 우리나라 人材의「진풀(Genepool·유전자 공급원)」이었고, 人材가 끊어진 적이 없었다』고 했다.
  
  또한 『경북大는 3년 연속 세계 500大 명문대학에 포함된 국내의 8개 대학에 선정됐다』며 『이 정도에 만족해서는 안 되지만 대구·경북지역 대학들이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金총장은 대구·경북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 대학이 再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산업의 중심지가 아니에요. 지역 경제 도약과 혁신을 위해서는 대학이 능동적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한 人材 유출을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민들도 지역 대학이 가진 잠재력을 배가하는 데 동참해야 합니다. 
  
  대구·경북은 교육의 본고장으로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500만 명에 이르는 지역민들이 자율적 경제단위를 형성하고 있어요. 싱가포르나 뉴질랜드보다 많은 인구가 대구·경북 경제의 베이스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구미전자공단과 포항철강공단을 바탕으로 대구를 「테크노폴리스」로 만드는 기본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李在庸 환경부 장관의 생각
  
  기자는 서울로 올라와 대구 출신인 李在庸(이재용) 환경부 장관을 만났다. 치과의사인 그는 1995년 단신으로 무소속 출마해 초대 민선 구청장을 두 번 역임한 뒤 대구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2003년 現 청와대 李康哲(이강철) 前 시민사회수석과 함께 열린당 대구시당 창당멤버로 활동하며 17代 총선에서 대구 중·남구에 출마했지만 落選(낙선), 본업인 치과의사로 돌아가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2005년 6월29일 「영남 낙선자 배려」 차원에서 환경부 장관으로 임용됐다.
  
  李장관은 조선일보 2006년 「신년호 차기 대구시장 선호도 조사」에서 17.8%로 李康哲 前 청와대 수석(10.9%)과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는 金範鎰(김범일) 前 대구 정무부시장(6.9%)을 앞질러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념적 다양성의 부재」와 「위기관리 시스템의 결여」를 대구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특히 대구의 대형 재난사고가 시민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극단적 관료주의와 비판·견제의 부재로 인해 좌초했다고 지적했다.
  
  『대구는 구심점이 없고, 위기관리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사회적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성이 없었어요. 다원성은 고사하고라도, 다양성이 없다 보니 시민들이 뭉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때그때 끼리끼리 합심하면 됐죠. 경쟁 시점이 되면 깃발 아래 모여 줄만 서면 되니 구심점이 있을 필요가 없었어요』
  
  
  위기를 기회로 삼지 못했다
  
  ―대형재난 참사의 반복은 사회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교훈을 얻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두 번의 지하철 참사나 서문시장 화재도 그래요. 참사가 일어났을 때 얼마나 아파했습니까. 全국민이 마음을 졸였어요. 사고는 당했지만 잘 관리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꿔 놓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참사는 그저 단절된 사건이 아니고 지역사회 발전의 動因이 될 수도 있어요. 광주 5·18 항쟁을 보세요. 그런 참사가 어디 있었습니까. 하지만 5·18은 광주·전남을 포괄하는 발전의 원동력으로 지금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대구의 대형 참사들이 지역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계기가 됐지만 슬기롭게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한마디로 위기관리 능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방화사건 당시 대구시나 정치권이 참사 수습의 주체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지방정부 대신 중앙정부가 수습에 나서야 했어요. 
  
  『위기가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기회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특히 선출직 공직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머슴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도자나 리더로 생각할 뿐 시민의 입장에 서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이해관계나 黨心(당심)에만 골몰하다 보니 위기를 증폭시켰습니다. 사회적 위기를 관리하기는커녕 자기 자리 위기만 관리했어요. 사회적 위기는 더욱 구조화·심화됐습니다』
  
  李장관은 대구시가 내놓은 대형 프로젝트 사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비전을 담보할 실현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대구 여성과 청년에 미래가 있다」
  
  ―대구시가 2大 전략, 5大 프로젝트를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비전을 마련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시민들에게 허리띠 졸라매면 3, 4년 뒤 희망이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되는데 GRDP가 13년째 꼴찌입니다. 그럼에도 신뢰할 만한 비전을 던지지 못했고, 이야기해 봐야 시민들에게 통하지 않았어요. 대구시의 거대 프로젝트가 그렇지 않나요? 프로젝트를 세울 때 중앙정부와 치밀하게 논의해서 발표하기보다는 성과주의에 매몰된 채 자기 마음대로 발표한 이후 뒷수습도 못 합니다. 우선 보면 그럴듯하지만, 대구시민들이 믿고 따라가다가 허탈해지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TK가 권력을 놓친 뒤 자기 각성의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까요.
  
  『대구가 열린 지향성을 갖고 뭉친 게 아니라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뭉쳤습니다. 우리끼리만 한다는 식이었죠. 「밀라노 프로젝트」를 봐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지역민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도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한나라당의 무엇을 보고 지지했나요? 지지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대구 사람에게 「왜 한나라당을 지지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한나라당의 정책을 지지하기보다 「盧武鉉이 밉고 싫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李장관은 『대구가 바뀌고 있고, 청년과 여성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다양성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저는 대구가 완만하지만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선택하리라 믿어요. 특히 여성과 청년들에게 희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구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도시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욕구가 끊임없이 분출돼 왔어요. 또한 「학원의 도시」 대구에서 청년 실업률이 전국 최고인 데다 우수한 人材마저 유출되고 있습니다. 여성과 청년이 주체적으로 대구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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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1 16:57 2013/09/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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