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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대중교통의 즐거움과 괴로움 - 디엥 플라토 유적군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것의 힘든 점은 그것의 불편함도 위험함도 아니다. 바로 기다림과 불안. 그것이 문제다.

 

디엥 플라토에 대중교통수단을 타고 가는 건 하나의 모험이었다. 족자 여행자 거리에 널린 상품을 이용하기엔 최소 인원인 2명을 채우지도 못하는 형편이었지만, 그럴 생각도 없었던 게 이곳 여행사들이 정말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태국이나 베트남 처럼 합리적인, 아니 그 편이 더 저렴한 경우도 많은 1일 관광이란 여기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 여하간에 나는 비상식적인 요금을 내는 것을 거부하고 버스를 네 번 갈아타야 한다는 모험길에 나섰다.

숙소 앞에서 족자 북부 터미널로, 거기서 망글란이란 도시로, 또 거기서 우노소보란 도시로 가는 데 까진 별 문제가 없었다. 요금인 인포센터에서 알려준 것 보다 조금씩 더 싸기까지 했고, 중간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만 예상시간 보다 조금씩 빠르게 도착했다. 오히려 버스가 너무 빨리 이어져 밥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 굶어야 할거라고 예상은 하고 먹을 것을 좀 준비해서 가긴 했지만,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과 내릴 지점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좀 피곤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오랫만에 보는 산들, 정겨운 농촌 풍경들, 사심 없는 어린애들의 미소 덕에 즐거운 길이기도 했다. 버스는 끊임없이 위쪽으로 위쪽으로 올라가서, 거대한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을 넘나 했더니, 근처의 다른 산 기슭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차장 밖으로 보이던 거대한 산.

사실 인도네시아는 활화산을 비롯한 멋진 산들로도 유명하지만, 산에 별 관심 없는 나는 그냥 배경으로 구경하는 정도...

 

가는 길 만난 산골 동네의 아낙들. 이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뭔가를 이렇게 널어 말리고 있었다.

 

로컬버스 일등석,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디엥으로 가는 길.

 

문제는 움노소보라는 마을에서 부터 발생했다. 목적지의 고유명사 밖에 소통할 길이 없어도 여기까진 잘 왔건만, 움노소보 터미널에 내려 최종 목적지인 '디엥'을 외치자 작은 앙콕으로 갈아타란다. 역시나 좁아 터진 앙콕을 타고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좀 달리다 어떤 미니버스로 다시 갈아타라고들 한다. 역시 요금이 1,000밖에 안할 때,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미니버스. 출발할 생각을 안한다. 더운 버스 안에서 한참 기다리지만 떠날 기미는 없고 차에 이미 타고 있던 수상한 남자들이 자꾸 말만 걸 뿐이다. 내려서 노점상 아저씨에게 다시 물어보지만 이 버스 타란 말만. 이미 시간이 꽤 가고 있다. 해 지기 전에 족자로 돌아가야 할텐데... 조금 더 기다리니 차장이 와서 앞문을 열어주며 타란다. 뭔가,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하나의 서비스 같은 것. 버스가 출발했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 이 버스는 정말정말 느리다. 온 동네 사람들을 다 태우고 내리는 건 시골 버스 특성 상 어쩔 수 없으니. 하지만, 차장과 운전사가 합심해서, 말도 안통하는데, 이걸 타고 사원 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걸 15,000에 하자고 계속 꼬드긴다. 사실 편도가 7,000이니 절대 물한 가격은 아닌데, 공공 교통수단을 가지고 자기들 장사를 해먹으려는 심산이 용납이 안된다. 그럼 이 동네 사람들은 어쩌라는 건데? 나는 그냥 터미널에서 내리겠다고, 그 요금은 얼마냐고 아무리 물어도 알려주지도 않고 무조건 가자는데, 정말 질렸다. 움노소보에서 디엥까지 가는 길, 넓은 산기슭에 펼쳐진 논밭과 마을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지만 기분은 점점 바닥을 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해 질 때 까지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초조하고 배도 고프단 말이다. 결국 "터미널"을 외쳐서 겨우 내렸다. 그런데, 내려 보니 정말 썰렁한 곳이었다. 아, 가이드북에 지도도 안나온 곳을 어떻게 찾아간다... 밥도 먹고 정보도 얻을 겸 바로 앞에 보이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는데, 밥값은 터무니 없이 비싸 길만 묻고 나왔다. 일견 친철하게 설명해주던 아저씨도 300미터랬다가 600미터랬다가 계속 말을 돌리더니, 걸어가긴 힘드니 오토바이 타고 자기랑 가면 싸게 해주겠다더니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붙이길래 나는 그냥 걸을거라고 쌩하니 나와버렸다. 아, 나는 왜 나에게 뭔가를 팔려 드는 사람들이 다 싫을까.

 

길가에 파는 구운 옥수수를 하나 사서 산 아래 마을의 땡볓을 뚫고 걷는다. 외국 사람 자체가 드문지, 몇 몇 안되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한다. 도저히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대충 물어 가며 걸으니 금방 도착하는 걸. 썰렁한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출발한 지 거의 여섯시간이 지나 드디어! 디엥 플라토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아아... 이걸 보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눈 앞엔 정말 폐허가 있을 뿐이다.

 

 

다행히, 눈을 돌려 보니 그나마 사원이라는 게 보인다. 가장 큰 건물이 아르주나 사원. 나머지 세 개는 뭐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사원들은 비슷한 연대에 지어진 프람바난이나 보르부두르 보다 백여년은 먼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산골에다 사원을 이렇게 여러 개 지었었는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작은 정원 처럼 조성된 사원 주변엔 인도네시아 커플 한 팀이 그나마 있는 그늘을 차지하고 뒹굴거리고 있고, 양 치는 아저씨도 등장하시고 그런다. 나도 사원을 마주보고 적당한 자리를 골라서 남은 옥수수와 사원 앞에서 산 차와 빵 쪼가리 (어제 족자에서 산 빵인데, 맛 없다... 윽...)를 우걱우걱 먹었다. 뭐, 사원이 별로여도 오는 길이 그렇게 아름다웠으니, 그리고 여기서 보이는 이 동네 풍경 또한 괜찮으니, 만족할 만 하다.

 

 

 

아까 게스트하우스 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원래 보려고 했던 이곳 아르주나 컴플렉스와 더 위쪽에 있는 불교 사원 말고도, 온천수가 나오는 곳도 있고, 다른 뭔가도 있는 것 같던데, 너무 멀어서 포기. 사실 불교 사원도 1k 쯤 된다길래 포기할까 하다가, 이것만 보고 가긴 너무 아쉬워서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서두르자.

가는 길에 박물관이 있다던데, 기껏 찾아갔더니 공사판이 한창이고 정말 초라해 보이는 박물관은 운영을 안한다. 그 앞에도 무슨 장방형의 사원 흔적이 있던데, 아무래도 이 곳은 곧 큰 사원공원으로 재탄생하려는 듣 싶다. 할 수 없이 불교 사원 까지 가는 길, 산 중턱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아, 오토바이를 운전할 줄 알았다면, 그리고 대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나가는 중엔 작은 마을이 있어 집들도 보이고 소규모 학교도 있다. 소녀 두 명이 신기한 듯 뒤에서 조르르 뛰어와서 수줍게 "헬로"라고 말을 걸고 또 뛰어 사라진다. 겨우 도착한 불교 사원은, 정말 뻘쭘하게 잔디밭 한가운데 우뚝 서있다. 그래도, 꽤 큰 탑이 이제 한참 기운 햇볓을 받아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게 볼만했다. 저 위의 불상 얼굴들이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사진을 좀 찍고, 대견한 나를 위해 셀카도 좀 찍어주고, 얼른 발걸음을 돌린다.

 

 

 

아아, 이제 정말 맘이 급하다. 더이상 돈을 아낄 생각 보다는 얼른 돌아갈 일이 더 중요하다. 사원 앞에 있던 오토바이들에게 터미널 까지만 데려다달라고, 거리에 비해 꽤 큰 돈을 주고 협상을 해야 했다. 내려가는 버스에는 또 앞좌석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이번엔 가격도 제대로 붙어있고 좀 빠른가. 하지만 움노소보에서 터미널이 아닌 어떤 곳에서 다른 미니버스를 타라고 내려주고는 가버렸다. 이 미니버스, 역시 앞문을 열어 태워주는 건 고마웠으나, 정말정말 거북이다. 젊은 사람이 운전을 하면서, 이리도 속도 욕심이 없을까 싶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왜이리 많은지... 결국 해는 졌다. 그리고 버스는 어느 번화한 마을에선가 시간이 늦어 더는 못간다고 내리란다. 다행히 다른 버스에 나를 태워주고 요금도 내주고 목적지도 말해준다. 그 차도 내가 족자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망글란이란 도시 까지는 가지 못했다. 또 남은 요금과 함께 다른 차로 옮겨지고, 그렇게 해서 망글란에 도착했을 땐 이미 8시. 해는 커녕 주변에 문 연 가게도 하나 없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애가 타고 불안하던지. 버스는 해가 있을 때 까지만 운행한다던데, 족자엔 어떻게 가나, 숙소를 근처에 잡아야 하나 등등, 이번 여행에 있어서 최대 위기라고 느껴지는 몇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마치 기적 처럼 망글란 터미널에 족자 가는 마지막 버스가 있었다. 휴우... 버스는 사람이 꽉꽉 찰 때 까지 기다리고, 힘겹게 막차에 오른 이곳 사람들과 마지막 수입을 노리는 장사치들과 노래 부르며 구걸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지만 그럼 어떠랴, 족자까지 데려다 준다는 데. 족자 터미널에선 당연히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없었다. 또 협상 끝에 예상을 훨신 웃도는 돈을 주고야 오토바이에 실려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가는옇 길 역시 좋은 풍경과 함께였다.

디엥에서 내려가는 길. 산등성이를 타고 펼쳐져있는 수많은 논밭들.

 

험난했던 하루의 마무리는 숙소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의 수레에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쌀국수로. 아아, 대중교통에 제대로 시달린 하루였다. 어쩌면, 벌써 더 이상 어딜 찾아가 무슨 유적을 본다는 것에 힘이 좀 딸리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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