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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보르부두르에 들어가기까지...

단일 조형물로는 최대 규모의 불교 유적. 캄보디아 앙코르왓과 미얀마의 바간과 더불어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종교 유적이라고들 한다. 기원후 800년 경에 지어졌다고 주정되지만, 누가, 왜, 얼마나 오랫 동안 이 거대한 탑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 자바 섬의 다양한 정치적, 지리적 소용돌이 속에서 천 년이 넘도록 잊혀져 있던 이 유적은 19세기 초에서야 폐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 정부를 필두로 오랫 세월에 걸쳐 복원이 이루어졌다. 얼마나 많은 고고학자들과 미술사학자들, 건축가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매달렸을까. 지금의 보루두부르는 상당 부분 복원되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자바 섬의 중심부, 거대한 화산 두 개를  병풍처럼 둘러두고, 넓은 평지 중심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돌연 산이 하나 솟은 꼴이다.

 

언젠간 꼭 봐야지 생각했었다.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휴가를 내서 갈 수 있는 짧은 여행들을 꿈꾸다 보면 언제나 후보지 리스트에 들어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인도네시아 땅덩이는 너무 넓고 다른 매력이 별로 없어 보였으며 항공료는 너무 비쌌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인도네시아에 있지 않은가. 당연히 며칠 간의 시간을 할애한다. 족자의 여행자 거리에서 상인들이 파는 일일투어상품에 솔깃할 이유도 없다. 좀 비싸더라도 유적 공원 내부에 있다는 호텔에 묵으며 보르부두르를 낟낟히 보고 오리라.

 

뭐, 이렇게 생각했지만, 가는 날 부터 별로 상황이 좋진 않았다.

 

 



일단 떠나기 전 날 밤에 생리가 시작되었다. 나의 생리통과 생리혈의 양, 그리고 기분이 정말 다운되는 생리 증후군을 어찌한단 말인가... 결국 떠나는 날 오전 시간은 생리통과 함께 허비했다. 어차피 지난 이틀 다른 유적들을 본다고 고생을 좀 한데다 보르두부르로 가는 길은 멀지도 않고 간단하니 숙소 체크아웃 시간 까진 여유있게 보내자고 생각했던 차였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좋지도 않은 숙소 침대에서 배 깔고 조금 누워있다가 화장실도 들락거리길 한참. 하긴, 생리한다고 이렇게 빈둥거린다는 것도 매일 할 일이 있어 학교에 가야 하거나 출근을 해야 했던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사치다. 그러다 여길 떠나면 언제 또 인터넷을 할 수 있을까 싶어 피씨방에 들러서 겨우 써놓은 여행기 하나를 업데이트 하고 (결국 사진 업로드는 실패) 부모님과 채팅을 잠깐 하고는 라운더리도 찾아왔다. 후딱 짐을 싸서 숙소에 맞기고, 물가가 비쌀 보르두부르에서 이틀을 버틸 수 있는 먹거리를 좀 사고 돈을 뽑고 밥을 먹고는 출발. 어랏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보르부두르 가는 길에 탄 버스. 대충 4시간 이내의 시외버스들은 다 이렇게 생겼다.


디엥 플라토에 비하면 보르두부르는 식은죽 먹기.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로 갈아탔다. 무거운 가방이 있어 걱정했지만, 차장아저씨들이 친절하게 옮겨주신다. 역시 시외버스는 들고 나는 승객들 덕분에 멀지도 않은 보르두부르 까지 가는 데 한참 걸리지만, 학교 마치고 먼 집으로 돌아가는 여학생들,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절대 입에서 떼지 않는 아저씨들,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힘들게 다니는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버스길이 그리 나쁘진 않다. 와우! 나는 이제 곧 비싸지만 그 만큼 안락할 호텔에 갈테고, 염원하던 보르두부르도 볼 수 있다. 마침내 버스에서 내려 수많은 삐끼들을 거절하고 걷고 있는데, 계속 따라오던 아저씨가 내가 가려는 호텔은 멀다며 2,000만 내라는 통에 탔다. 뭐 별로 멀진 않지만 더운데 걸으며 찾아가는 수고를 덜긴 했다. 가격이 과연 얼마나 올랐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훨신 비싼(이 예상은 불과 6개월 전 여기 왔던 친구로부터 들은 정보였다.), 351,000루피아. 새벽 해뜨는 걸 보기 위해선 투숙객이라도 102,500 루피아를 더 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묵으면 입장료가 없는데다 몇번이고 사원에 들어갈 수 있는데다, 선라이징이 그렇게 멋지다고 하는데, 여기서 묵지 않으면 두 배도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이런이런... 그런데, 문제는 가격 보다, 방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어쩔 수 있나, 타고 왔던 베챠를 타고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아저씨가 다른 숙소에 데려다주긴 했지만, 100,000루피아나 한단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가격이 다 엉터리인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 곳은 두 배가 오른 수준이다. 정말 무서운 곳이었다. 결국 좀 먼 곳에 있는 더 싼 숙소로 찾아가느라 고생한 베챠 아저씨께도 꽤 많은 돈을 드려야 했다. 한 푼이라도 저렴한 곳으로 와서 최대한 깎긴 깎았는데도 750,000루피아. 자카르타에 맘먹고 쉬려고 잡았던 숙소를 제외하곤 가장 비싼 곳이다. 하지만, 아침이 포함되어있지 않고 푸세식 화장실에 세면대는 커녁 샤워기도 안달린 곳이다. 장점이라면 깨끗하다는 것. 사실 있을 건 대충 있는데 잘 관리 안되어서 먼지 펄펄 날리고 하수구 냄새가 나는 곳 보다 이런 곳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침이야 아주머니에게 사정해서 커피를 주는 것으로 해서 마침 족자에서 사간 빵으로 때우기로 하고, 쌀쌀해지기 전에 씻어나 두자는 생각에 오랫만에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물을 끼얹으며 사워를 했다. 이미 사원은 문을 닫았을 시간. 해질녁 하는 기도 소리가 별 볼 것도 없는 마을에 울려퍼지고 있다. 식욕은 없어서 빵을 조금씩 뜯어먹다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어디 인터넷 쓸 수 있는 곳이라도 있나 나가보니 해가 거의 져서 깜깜하고 인터넷은 무슨. 아아... 생리증후군 까지 겹쳐 최대로 우울한 저녁 시간이었다. 콘센트는 있으니 노트북으로 여행기나 정리하면 좋겠지만, 이럴 땐 또 미뤄둔 일들이 하기 싫어지는 법. 동생이 갔다준 '시효경찰'이나 몇 편 보다가 뭔가 조금 끄적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잠이 드는 순간 방에는 씨끄러운 모기 몇 마리와 그 보다 더 씨끄러운 똥파리가 한마리, 그리고 게코가 두 마리 이상 함께 있었다. 아아, 게코도 이미 익숙한데다 벌레 잡아먹는다고 좋아하는 것도 어느 정도지, 벌레들이 이미 많은데다 방 안에까지 여러마리 들와와서 울어대면 참... 이거야 원, 두꺼비가 방안에 난입했던 말레이시아 타만네가라 정글 숙소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달까.

 

첫 숙소가 있던 조용한 골목

 

친절한 아주머니, 새벽 6시에 문을 두드려 깨우시며 커피를 가져다 주신다. 기껏 얻어먹은 커피가 식을까 조금 남은 빵을 함께 해치우곤 또 침대에 붙었다. 어제 저녁엔 그냥 호텔에 들어가지 말고 돈 다 내고 선라이징 보러 입장해서 구경하고는 그냥 이동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다간 그 호텔에 못가본 걸 계속 후회할지도 모르고 (전에 루앙프라방에서 라마8세 호텔인가에 못묵어본 걸 아직도 후회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입장료 등도 아까우니 그냥 하루를 더 머물기로 결심한 차였다. 이렇게 되니 호텔 체크인 시간 까진 어차피 보르두부르에도 못들어가는 게 아닌가. 또 한번 생리기간 아침 침대에 붙은 몸을 그냥 붙여두는 사치를 부려본다. 겨우 체크아웃 시간 쯤 되어 기어나가선 호텔에 들어가기 전 가게에 들러 점심을 사먹는다. 박소 가게 외에는 노점상 식당이 보이지 않는데 박소는 먹기 싫고, 어제 저녁도 오늘 아침도 거의 굶은데다 오늘 저녁도 사발면으로 떼울 예정이니 점심은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보자는 심산이었다. 게다가, 어제 아침에 왼팔 전체에 뭔가 두드러기가 난 것을 발견했다. 지저분한 노점상 음식을 너무 먹었나 약간의 노파심마저 생겨 수도시설이 있는 가게를 찾게 된 것도 있었다. 음... 추천해주는 고추 요리와 나물, 그리고 작은 쭈꾸미 삷은 것 같은 것과 매운 양념이 되어있는 새우 몇 쪼가리를 골라서 밥 위에 엊었다. 얼마냐고 물으니 밥 먹고 있는 손님의 통역을 거쳐 8,000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뭐... 하지만 다 먹고 나서 계산하려고 보니 12,000이란다. 괜히 속은 것 같은 느낌. 노점에서 나시캄루프를 먹으면 4,000이면 먹을 수 있단 말이다. 그렇게 비쌀 줄 알았으면 뻑뻑한 쭈꾸미나 맛없는 나물 안먹었다구! 조금 항변을 해보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다 주고 나온다. 지붕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은 내가 잘못이지 사실 가게 아줌마가 무슨 잘못일까. 괜히 어제 저녁에 쌓인 우울을 그 쪽에 쏟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 하지만 뭔가 서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가는 길, 베챠를 몰고 있는 어떤 아저씨가 마침 꼬마를 그 쪽 까지 태워주는 길이라며 같이 태워주겠단다. 기문도 안좋은데, 대낮의 거리를 걷기 보다 훨 나을 것 같아서 염치불구하고 탔다. 아저씨, 그 이후론 계속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신다. 계속되는 질문에 영어로 대답하다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일어로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여기서 영어보다 일본어를 더 많이 들은 것 같다. 상인들이던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던, 일단 일본어로 말을 걸고 보니 말이다. 아무리 일본인 아니라고 해도 꾿꾿이 아는 일본어를 다 동원해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 아저씨는 금방 미안하다며 다시 영어를 하신다. 정확하진 않지만 영어도 일본어도 수준급이시네. 여하튼, 호텔에 도착했고, 무료였고, 고마웠다.

어제 예약해 둔 덕에 방이 있었다. 체크인 시간이 되려면 한 시간 쯤 남았는데도,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와 보니 우와! 정말 호텔이었던 것이다!! TV, 에어컨, 가방 올리는 장, 옷장, 책상 등이 다 있고 물도 두 병 공짜이다. 화장실엔 뜨거운 물이 나오고, 비누, 샴푸, 칫솔 등도 포장되어있다. 아아, 무엇보다 감동적인건, 개인 테라스에 의자와 탁자, 그리고 전등이 달려있었다는 것. 드디어 마음에 빛이 들어오고있다. 우우...

보드부두르 경내 마노하라 호텔. 인도네시아에서 묵은 숙소 중 가장 좋은 곳이었다.

 

지금 나가면 너무 더울 것 같아서 일단 방놀이를 즐기기로 한다. 오랫만에 제대로 된 침대에서 뒹굴뒹굴 놀다가 커피라도 타먹을까 뜨거운 물을 받아오는 길, 옆 방 테라스에서 놀고 있던 여자분이 일본어로 일본인이냐고 물어본다. 아뇨 한국인입니다라고 대답하곤 바로 영어로 수다를 떨기 시작. 아, 오랫만에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나니 좋네. 내일 선라이징 볼 때는 동료가 있을 것 같아 신난다.

 

아, 이리하여 보르두부르는 아직도 들어가보지 못한 것이다. 태양이 조금 주춤할 대 쯤, 드디어 거대한 탑을 영접할 시간인가.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서보자!

 

호텔 부지에서 보이는 보르부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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