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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솔로에서 숙소를 찾아

보르부두르에서 족자로, 족자에서 솔로로 버스를 타고 온 것 까진 좋았는데, 솔로 터미널에서 그만... 솔로 터미널이 중심가에서 멀다는 건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를 보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각오만 했을 뿐 사실 별다른 대책은 없는 터였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행자들이 몰릴 만큼 특별한 것은 없는 어중간한 도시, 여행관련 시장도 별로 활성화되어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삐끼도 영어로 된 안내도 없는 터미널, 시간은 이미 한참 흘러, 곧 저녁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외국인이 내리니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이 몰린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 뿐. 숙소가 있는 거리 이름을 계속 이야기하니, 누군가 이 버스를 타라며 버스를 잡아주고, 친절하게 차장 아저씨에게 행선지도 말해준다. 꽤 큰 버스, 동네 사람들이 수도 없이 내리고 타는 동안 도무지 내리라는 기색이 없다. 이렇게 많이 가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차장 아저씨와 옆 사람들에게 거리 이름을 다시 대니, 맞다고 쭉 타고 가라고 한다. 이윽고 내린 곳은, 꽤 큰 도로변. 지도랑 아무리 비교해봐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또 몰린다. 지도도 보여주고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이야기해도 자기들끼리 설왕설래.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렇다할 대답이 나오지 않아, 일단 감 잡히는 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몇 번이나 탈것의 유혹이 다가왔는데, 문제는 기사아저씨들도 내가 가려는 곳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겨우 알 것 같은 베챠 아저씨가 나타나, 조금 손해보는 듯 한 가격으로 협상을 하고 타긴 했는데, 아저씨, 한참을 달리더니만 길거리 식당에서 길을 붇는 것이다. 또 설왕설래... 이 때 쯤 부터 나는 의심이라면 의심, 포기라면 포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아주 조금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내가 찾는 것이 숙소라는 것을 이해하긴 했는데, 역시 가이드북에 나온 곳이 어딘지는 모르는 모양. 이미 해는 져서 깜깜하고, 그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기로 하고 아무 숙소로나 데려다달라고 했다. 처음 간 곳은, 큰 호텔 같은 곳으로, 가격도 예산 보다 비쌌지만 방이 없었다. 다음에 간 곳은 꽤 깔끔한 호텔이었는데, 엄청 비싼 방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아무리 주말이라도 그렇지... 여기 묵을 순 없고, 다행히 영어를 꽤 잘 하는 친절한 직원들이 있길래, 여기가 어디며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어떻게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다 알게 된 놀라운 사실!! 나는 꽤 멀리 있는, 전혀 다른 곳에 와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 이름이 그 거리 이름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이미 대중교통은 다 끊겼고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는데, 예상 택시비 금액이 상당하지만, 비싸고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며 정보도 거의 없는 이곳에 묵기 보다는 택시를 타는 게 낫다는 계산을 하고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친절한 이곳 직원들은 나를 무척 불쌍히 여기며 택시를 불러주는 수고까지 해주었다. 여하간에 고생해서 여기까지 데려다주신 베챠 아저씨에게 우선 협상했던 돈을 치르고 (더 달라는 말도 안하신다.), 얌전히 로비에서 택시를 기다렸다가 탔다. 아아...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탄 택시였다. 다행히 요금이 호텔에서 이야기해준 만큼 많이 나오진 않았고, 아저씨가 친절하게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겨우겨우, 지친 몸과 마음으로 들어간 게스트하우스는, 일단 엄청 멋지게 생겼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여행 사상 최악의 숙소였달까. 겉치레가 번지르르하면 뭐하나, 공용 욕실을 쓰는 트윈룸 하나에 950루피아. 게다가, 아침도 안준단다. 어쩜 이리 비쌀 수 있냐는 말에, 수영장도 있다는 대답이. 아, 수영장 필요 없단 말이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인데가 숙소를 찾기 위해 계속 맘을 졸이다 겨우 도착한 마당에, 다른 곳을 찾아갈 수는 없어서 일단 묵기로 했다. 샤워를 하러 갔다가 발견하게 된 가장 지독한 사실은, 공동 욕실에 세면대는 커녕, 샤워기도 없다는 것이었다. 수세식 변소 따윈 기대도 안한다. 샤워기가 없더라도면, 물 받는 통과 바가지가 깨끗하면 또 어떻게 해보겠다. (보르부두르에서 마노하라 호텔에 방이 없어 묵었던 숙소 역시 샤워기가 없었지만, 참으로 깔끔하지 않았었나.) 아아... 최악의 숙소에서, 어떻게 어떻게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날 아침, 커피라도 주니 다행. 전날 아침, 보르부두르 마노하라 호텔에서 챙겨온 빵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당장 다른 숙소를 찾아나섰다. 근처 사원 하나를 보고 다음날 발리로 떠날 계획이었는데, 많이 멀진 않은데다, 일단은 숙소가 급하니. 이 집 청년도 이야기한 싼 숙소가 건너편 골목 안쪽에 있었다. 굳게 닫힌 문에 붙은 초인종을 누르니 한참 있다 문이 끽 하고 열린다. 들어가보니 완전 낡고 허름하고 약간은 귀신의 집 느낌이 나는 곳. 그래도 한때는 멋있었겠다 싶은 정원과 건물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 동네는 다 이런 식인가보네, 하지만 다른 집이 이러니 그 집이 돈을 그렇게 많이 받지 하고 생각하고는 그나마 덜 귀신나올 것 같은 방을 찾아서 한 시간 뒤 쯤 오겠다고 체크인 종이까지 다 쓰고 나왔다.
하지만, 가방을 챙겨서 다시 갔을 때, 그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그 대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정말 귀신의 집이었던 걸까?

 

할 수 없이 가이드북에 나온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수 밖에. 다행히 숙소들이 한 거리 안의 작은 골목들에 흩어져있어 찾기가 힘들지는 않았다. 가이드북에 조금 낡았다고 써있던 '마마스 홈스테이'. 하지만, 이 곳은 거의 베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숙소였다. 더블 룸을 혼자 쓰는 데 350 루피아. 당연히 아침은 포함되어 있고 (아침이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달라고 하니까 수건과 담요도 주고, 공용샤워실엔 샤워기도 있었다. 분위기는 말 그대로 홈스테이. 할이버지 할머니, 삼촌들, 젊은 여자애가 사는 집에 손님용 방이 몇 개 있는 수준이다. 그만큼 적절한 친절과 관심을 보여준 덕에, 이제까지 숙소를 찾아 헤맸던 피로를 어느 정도 잊고 편히 지낼 수 있었다.

나중에 출국 루트를 고민하다가 발리에서 솔로로 돌아와 국제선을 타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솔로에는 싸고 편한 잘 곳이 있으니 걱정 없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다시 갔을 때 얼마나 반가워들 해주시던지. 혹시나 솔로에 갈 사람들에겐 강추!!

 

마마스 홈스테이의 아침상. 나 하나만을 위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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