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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 등록금 후불제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최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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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등록금 후불제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최고봉

등록금 후불제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최고봉 전교조 강원지부 정책연구국장

 

 

 

 


 

확실히 이주호(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는 인물이다. 이주호는 이명박 정부 최고의 교육정책 브레인으로, 교과부 장관보다 힘이 세다는 실세 중의 실세다. 그가 이번에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제도’ 즉, 등록금 후불제를 들고 나왔다. 지난 7월 30일, 교과부는 몇 해 전 교수노조 등이 제기했던 내용과 상당히 비슷한 ‘ICL'제도의 도입을 발표했다. 물론 정치적 의미와 구체적인 실현방안에서는 교수노조의 구상과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제도’란 학생은 등록금을 일단 유예받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 일정 수준의 소득이 있을 때 원천징수하는 방안이다. 따라서 학생은 졸업 이후에 원리금을 상환하게 되어 등록금에 신경 쓰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세부적인 내용을 다른 나라의 사례를 고려하여 9월 중에 발표할 계획이다.

등록금 후불제 도입이 공개되자 언론에서는 일단 환영하고 나섰다.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만이 도입한 등록금 후불제를 한국이 앞장 서서 도입을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 후불제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리콜’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MB식 등록금 후불제’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현재의 등록금 후불제 도입 비판 근거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높은 등록금 인상률로 인한 가계파산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 비해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매우 높은 수준이고, 인상률마저 높은 편이다. 등록금 대출금리, 혹은 등록금 후불제 도입으로 적용될 이자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은 매한가지이다. 따라서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는 대학의 ‘윤리적 타락’ 앞에 등록금 후불제는 대학의 이윤만을 보장한 채, 대학생에게는 실질적인 이익을 박탈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비판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약화된 것이다. 교과부는 등록금 후불제 도입 이후 일정 소득에만 도달하면 빈곤 여부에 관계 없이 원리금을 모두 상환하게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비 지원, 이자율 인하혜택이 모두 철폐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저소득층은 막대한 교육비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로 인해 송경원 진보신당 연구원은 등록금 상한제 또는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를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등록금 후불제 이전에 대학재정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손쉽게 등록금 인상을 통해 해결하는 관행이 해결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정부는 GDP 대비 0.6%를 고등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 OECD 평균은 1.1이다. 더군다나 사립대학의 비중이 높고, 기부금이 적은 한국 현실로 인해 학생의 교육비 부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개혁 없이, 그저 ‘등록금을 대학 졸업 이후 일정 수준의 소득에 도달했을 때 상환한다’는 개념은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등록금 상환에서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전문직 계층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이다. 즉, 월급쟁이는 소득이 그대로 드러나 대학등록금이 원천징수 되고 전문직 계층은 소득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몇 해 전에는 의사가 월수입을 100만 원 미만으로 신고한 적도 있었다. 만약 집단적으로 수입을 축소신고, 허위신고 한다면 상환을 피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일정 소득에 미달하는 저소득층이 증가할 경우 등록금 상환률이 급격하게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등록금 대출금 회수율이 90% 내외이고, 한국 역시 90% 가량의 회수율이 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등록금후불제가 도입되면 상환률이 70% 내외로 하락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즉, 대졸자 취업률과 소득을 감안하면 회수율 70%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현 정부에서는 당장 회수율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회수율 저하가 막대한 채무를 불러올 것이다.

사실 등록금후불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친서민적이라거나 정치적으로 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노동자 민중에게 교육비를 전가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고, 그나마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확대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9월에 발표될 등록금 후불제 보완책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지만, 보완된다고 해서 등록금 후불제가 장밋빛 미래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육사를 읽으며 배운 교훈 한 가지 : 교육비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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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쌍용자동차, 그 후/ 상철

쌍용자동차, 그 후

상철


 

77일간의 공장 점거를 마지막으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8월 6일 파업을 철회했다. 음식과 물, 의료품까지 반입이 금지된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진행한 파업이었다. 조합원들은 공장 안에서 굶주림과 고립감, 두려움을 마주해야 했고, 밖에서는 사측이 고용한 용역 깡패들과 구사대, 중무장 한 공권력의 침탈에 맞서야 했다. 주요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있었던 극한의 대치상황은 어느 전쟁 영화에서 봤던 시가전을 떠올리게 할 만큼 두려웠다. 조합원들이 있는 도장 공장 안에 페인트, 신나 등 인화물질이 가득하다는 걸 모를리 없는 경찰이 옥상으로 진입을 시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용산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결국 협상이 이뤄지면서 진압과정에서의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협상 내용을 비롯해 쌍용차 문제가 사회적으로 미친 파장은 최악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77일 간의 고된 점거 농성을 끝으로 파업을 철회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보수 언론과 사측은 노조의 파업이 진행되는 내내 ‘노조가 회사를 죽이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며 정부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정부는 경찰을 언제 투입할 것인지 만을 저울질할 뿐, 노동자들의 대량해고에 있어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면서 개입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외국자본이자 최대 주주인 상하이 자동차가 기술 개발을 위한 약속된 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게 쌍용차 문제의 핵심인데, 보수 언론과 사측, 정부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 차로의 쌍용차 지분 매각 당시 기술 유출이 충분히 예상되었지만 ‘외자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던 정부는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상하이 차는 기술 이전을 완료했고, 정부는 개별 노사관계라며 개입을 거부했다. 가장 무책임하고 이득을 본건 먹튀자본 상하이 차고, 가장 많은 책임을 지고 피해를 본 건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이 회사를 죽였다며 욕을 먹어야 하는가. 오히려 투기 자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싸운 노조를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 쌍용자동차 노조의 투쟁은 정리해고에 맞섰다는 의미에서 우리 모두와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안정된 직장을 원한다. 파업을 한 쌍용차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얻고 싶어 하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그들은 사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일하는 것 외에는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싸웠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곧 생존권 박탈을 의미한다. 해고는 보통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빠져나올 수 없는 빈곤을 안겨주기 때문에 사회 양극화를 지양하고 서민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노동권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 경제 위기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봤을 때, 앞으로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만약 그때도 우리 사회가 쌍용차 노조에게 보였던 반응처럼 해고를 문제 삼지 않고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면, 실업과 빈곤은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위기의 극복 자체를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릴지 모른다.

쌍용차 투쟁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문구는 ‘함께 살자’와 ‘해고는 살인이다’였다. 파산 위기에 몰린 쌍용차가 법정 관리를 신청하고 노조의 파업이 종결된 기간 동안 쌍용차 노동자들은 모두 6명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스트레스로 돌아가신 분도 있었고, 노조 간부 부인이 비참한 심정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해고는 정말 살인이다.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야만의 시대를 저지할 수 있는 열쇠는 쌍용차에 있지 않을까.


 

추신 : 이 글을 쓰기 위해 쌍용자동차에 관련한 기사들을 검색해보던 중, 8월 24일에 자살을 기도한 쌍용차 조합원의 소식을 접했다. 파업 철회 후에도 경찰의 보복 수사로 인해 거짓 진술을 강요받다가 동료를 배신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고 한다.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하던데, 쾌유가 있으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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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일제고사와 징계 이야기’/ 윤아름

‘일제고사와 징계 이야기’


 

윤아름 ∥ 서울 선곡초등학교 교사

 


 

올 해 초까지만 해도 ‘교육공무원 징계’라는 말을 들으면 크게 세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첫째, 5년 전 임용고사 공부하던 대학교 4학년 시절 수험 교재에서 보았던 ‘징계’. 징계의 종류에는 파면, 해임, 정직, 감봉 등등이 있다는 것과 각각의 뜻을 외우던 생각이 난다. 이 때의 ‘징계’는 그저 외워야할 암기 내용 중 하나였을 뿐이다. 두 번째는 뉴스에서 보았던 솜방망이 ‘징계’. 어느 어느 학교에 성추행, 뇌물 수수 교사가 있었는데 가벼운 징계로 그냥 넘어 갔다는 소식과 함께 교육청의 제 식구 감싸기식, 생색 내기 징계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때는 징계라는 것이 제 역할을 잘 하지 못하고 있는 불신의 대상이었다.

세 번째는 책 읽기 모임에서 만난 선배가 받은 ‘징계’. 지난 해 10월 교육청의 일방적인 일제고사 시행에 반대해 시험 응시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한 학부모와 아이들의 담임 교사 7명이 파면, 해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 때의 징계는 서울시교육청의 협박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교육의 한 주체인 교사들에게 교육 당국의 입장과 반대되는 얘기하려면 “입 다물어! 아니면 잘린다!”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올해 7월, 그 징계가 바로 나의 일이 되었다. 왜? 입 다물라는 교육청의 협박을 듣지 않고 입을 열었기 때문에.


 

올 해 3월 교과부는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교과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시험 문제는 모두 선다형이며, 시험 결과는 전혀 비교나 공개하지 않고, 오로지 교사들이 교과 부진 학생을 가르치는 데 활용하겠다고 했다. 또 당초 3월 10일로 예정되었던 시험이지만 작년 일제고사의 성적 조작, 비리 사건 마무리 작업 때문에 시험일이 3월 30일로 늦춰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시험의 형태, 목적, 일자와 같은 간단한 시행 계획만 눈여겨 봐도 이 시험이 얼마나 교육적으로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시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7차 교육과정에는 ‘초등학교 교과의 평가는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를 지양하고, 서술형 주관식 평가와 표현 및 태도의 관찰 평가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진단평가라는 것은 학습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교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학기의 한 달이나 지난 3월 말에 ‘진단평가’를 시행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쓸 데 없는 짓이었다.(더군다나 결과는 5월에 통지되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일제고사를 통해 성적 조작 사건, 성적 위주의 경쟁 가열 등의 문제가 이미 사회적으로 드러난 상태였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교사들은 전교조 서울지부가 추진한 ‘일제고사 불복종 선언’을 통해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의견을 서울시 교육청에 전달했다. 그 선언의 주된 내용은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의견 개진과 학부모, 학생에게 시험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선언지에 서명한 교사 중 122명의 교사는 스스로 언론에 명단을 공개하였다. 그리고 그 122명 중 (작년에 3명의 해직 교사를 배출한 강동교육청만 제외한) 각 지역교육청 별로 1명씩 모두 10명의 교사가 징계 의결 요구를 받았다. 교육청은 서명, 명단공개라는 동일한 행위를 한 교사 122명 중 10명을 골라내어 표적 감사를 하고, 또 명분 없는 감사에 응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감사 거부라는 징계 사유까지 덧붙여 일관성, 원칙이라고는 전혀 없는 징계 절차를 진행해나갔다. 그들이 나에게 말하는 징계 사유는 불복종 선언 참여, 교장 허가받지 않은 가정통신문 발송, 일제고사 관련 감사 불응이다.

교사로서 스스로 소신을 갖고 판단하여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선언지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우리 반 학부모들에게 담임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통해 3월 우리반 소식과 더불어 일제고사에 대한 담임으로서의 의견을 알리고 시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학부모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회신란도 만들었다. 일제고사에 대한 찬성, 반대 의견, 시험 응시 여부를 물었다. 여기까지가 교육청이 말하는 일제고사와 관련된 모든 법률 위반 행위의 전부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서명을 통해 최소한의 의견 표명하고, 담임으로서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감사와 징계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고,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 당국의 아무런 교육학적, 법률적 근거 없는 일제고사 시행과 무분별한 징계 남발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했다. 바로 학부모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월에 일제고사 편지 회신을 통해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있었고, 그 중 11명의 학부모는 자녀가 시험 응시 대신 체험학습 참여를 원했다. (교장, 교감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국 모두가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지만.) 그리고 7월 여름방학을 앞두고 담임인 내가 징계 대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지난해 학부모들이 스스로 나서서 탄원서를 써 주시고, 지역 주민들에게 서명지를 돌려주셨다. 탄원서 내용에는 나 자신이 민망할 정도의 학부모님들의 나에 대한 무한 신뢰와 당국에 대한 따끔한 질책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휴가철인데도 불과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린 8월 14일에는 몇 분의 학부모님들과 10여명의 제자들이 교육청 앞 집회에 함께 와서 응원해주시기도 했다. 교실에서 어리게만 보였던 아이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 보도블록 위에 앉아 의젓하게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제자들이 있어 한결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집회를 할 수 있었고, 징계위원회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정부, 교육당국은 나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고 내가 그들의 교사인 줄 착각하지만 나는 그들의 교사가 아닌 나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교사일 뿐이다.

우리 옆 반 선생님이 이번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육청, 정말 별 거 아닌 거 갖고 교사 징계하고,,,쓸 데 없는 짓거리 많이 하고 있네!”

교육 당국, 제발 일제고사 폐지하고, 쓸 데 없는 짓거리 그만 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뭔지 생각 좀 하시길 바란다.


 

※이 글을 쓴 직후, 윤아름 선생님은 감봉 1개월의 징계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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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DJ시대 대학생의 고백/ 스프링

DJ시대 대학생의 고백

 

스프링

 

※ 이 글은 DJ의 공과를 따지는 글은 아니다. DJ의 서거 후 DJ에 관한 기억을 더듬고 싶었다. 따라서 엄밀한 평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나는 대학시절을 DJ와 함께 시작했다. 투표권이 없었던 나는 경상도의 지역적인 특색 때문이었을까,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이회창 후보가 국무총리 시절 대통령인 YS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그런 행위가 ‘2인자의 홀로서기’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시의 내가 그것을 분석하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내게 대학생 시절은 ‘IMF 구제금융 시대’와 동의어로 기억된다. DJ가 ‘대중경제학’의 주창자에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수용하는 변신이 이뤄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DJ는 최소한 케인즈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DJ가 집권 이후 케인즈주의에도 미달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지극히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 시절 부모님 고향이 전라도라는 한 친구는 ‘IMF 재협상’을 이야기하는 대학생(한총련 학생)에게 “선생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었다. 사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정치인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다 못해 거부감이 일 정도였다. 그런 내가 DJ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시절, 5월 광주에서였다. 나는 광주로 향하는 순례단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때 경상도 출신인 내 눈에 DJ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과의 대화와 같은 프로그램이 많았다. 당시 대학생의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도 있었는데, 여러 대학생의 의견을 듣기 어려우니 사전에 카메라로 녹화를 하기도 했다. 우리 대학에도 카메라가 와서 녹화를 했는데, 당시 내가 패널로 나서게 되었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 어찌나 긴장되었던지 이야기를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이라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했던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DJ가 빨갱이라고 하신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YS를 지지했고, YS 이후에는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그래서일까, DJ를 매우 못마땅해 한다. 물론 여기에는 ‘전라도 사람은~’이라는 낙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고를 강원도에서도 많이 접한다. 얼마 전 20대의 젊은 교사로부터 ‘전라도 사람이었으면 나하고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원도가 보수적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그런 걸까.

DJ는 지역감정의 희생자이자 수혜자라고 한다. 지역감정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고, 1997년에는 ‘호남지역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DJ는 호남맹주, YS는 영남맹주, JP(김종필)는 충남 혹은 충청맹주라는 지적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두 맹주와는 확연히 다른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독재정권에 맞서 고난의 행군을 해야만 했다. 죽음의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래서인지 그는 집권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드는 등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DJ의 행보 중 쟁점이 되는 것은 이른 바 ‘햇볕정책’이라 불린 남북한 간의 교류이다. 그는 남한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아 북한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금강산이 열렸고, 개성에 공단이 설치되었다. DJ의 정책은 남북한의 평화적인 관계 정립인지, 혹은 자본주의적인 틀 내에서 상호공존을 위한 것인지 논란을 일으켰다. 남한 내 진보진영에서도 ‘지지이행’에서부터 ‘반김일성 반조선노동당’(사회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드러났다.

DJ는 퇴임 이후에도 정치에 훈수를 두었다. 노무현 정권 최대정파가 친노파였던 것은 맞지만, 동교동계니 민주화 세력이니 하는 사람들이 기반이 되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혹자는 DJ를 ‘가슴은 이상주의자, 머리는 현실주의자’라는 평가를 했다. 굉장한 칭찬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가 왜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었는지 보여주는 힌트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계의 큰 별이 졌다. DJ와 대학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으로서 그의 서거는 느낌이 다르다. 연이어 두 명의 대통령이 세상과 작별했다. 이제야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다는 생각이 든다. DJ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역사에 맡겨졌다. 험난한 삶을 살다간 인간 DJ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그러나 대통령 DJ에게는 할 말이 많다. 이제 그가 뿌린 비운의 씨앗도 냉정하게 평가가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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