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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1호] ‘일제고사와 징계 이야기’/ 윤아름
    와글와글

[1호] ‘일제고사와 징계 이야기’/ 윤아름

‘일제고사와 징계 이야기’


 

윤아름 ∥ 서울 선곡초등학교 교사

 


 

올 해 초까지만 해도 ‘교육공무원 징계’라는 말을 들으면 크게 세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첫째, 5년 전 임용고사 공부하던 대학교 4학년 시절 수험 교재에서 보았던 ‘징계’. 징계의 종류에는 파면, 해임, 정직, 감봉 등등이 있다는 것과 각각의 뜻을 외우던 생각이 난다. 이 때의 ‘징계’는 그저 외워야할 암기 내용 중 하나였을 뿐이다. 두 번째는 뉴스에서 보았던 솜방망이 ‘징계’. 어느 어느 학교에 성추행, 뇌물 수수 교사가 있었는데 가벼운 징계로 그냥 넘어 갔다는 소식과 함께 교육청의 제 식구 감싸기식, 생색 내기 징계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때는 징계라는 것이 제 역할을 잘 하지 못하고 있는 불신의 대상이었다.

세 번째는 책 읽기 모임에서 만난 선배가 받은 ‘징계’. 지난 해 10월 교육청의 일방적인 일제고사 시행에 반대해 시험 응시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한 학부모와 아이들의 담임 교사 7명이 파면, 해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 때의 징계는 서울시교육청의 협박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교육의 한 주체인 교사들에게 교육 당국의 입장과 반대되는 얘기하려면 “입 다물어! 아니면 잘린다!”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올해 7월, 그 징계가 바로 나의 일이 되었다. 왜? 입 다물라는 교육청의 협박을 듣지 않고 입을 열었기 때문에.


 

올 해 3월 교과부는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교과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시험 문제는 모두 선다형이며, 시험 결과는 전혀 비교나 공개하지 않고, 오로지 교사들이 교과 부진 학생을 가르치는 데 활용하겠다고 했다. 또 당초 3월 10일로 예정되었던 시험이지만 작년 일제고사의 성적 조작, 비리 사건 마무리 작업 때문에 시험일이 3월 30일로 늦춰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시험의 형태, 목적, 일자와 같은 간단한 시행 계획만 눈여겨 봐도 이 시험이 얼마나 교육적으로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시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7차 교육과정에는 ‘초등학교 교과의 평가는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 검사를 지양하고, 서술형 주관식 평가와 표현 및 태도의 관찰 평가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진단평가라는 것은 학습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교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학기의 한 달이나 지난 3월 말에 ‘진단평가’를 시행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쓸 데 없는 짓이었다.(더군다나 결과는 5월에 통지되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일제고사를 통해 성적 조작 사건, 성적 위주의 경쟁 가열 등의 문제가 이미 사회적으로 드러난 상태였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교사들은 전교조 서울지부가 추진한 ‘일제고사 불복종 선언’을 통해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의견을 서울시 교육청에 전달했다. 그 선언의 주된 내용은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의견 개진과 학부모, 학생에게 시험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선언지에 서명한 교사 중 122명의 교사는 스스로 언론에 명단을 공개하였다. 그리고 그 122명 중 (작년에 3명의 해직 교사를 배출한 강동교육청만 제외한) 각 지역교육청 별로 1명씩 모두 10명의 교사가 징계 의결 요구를 받았다. 교육청은 서명, 명단공개라는 동일한 행위를 한 교사 122명 중 10명을 골라내어 표적 감사를 하고, 또 명분 없는 감사에 응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감사 거부라는 징계 사유까지 덧붙여 일관성, 원칙이라고는 전혀 없는 징계 절차를 진행해나갔다. 그들이 나에게 말하는 징계 사유는 불복종 선언 참여, 교장 허가받지 않은 가정통신문 발송, 일제고사 관련 감사 불응이다.

교사로서 스스로 소신을 갖고 판단하여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선언지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우리 반 학부모들에게 담임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통해 3월 우리반 소식과 더불어 일제고사에 대한 담임으로서의 의견을 알리고 시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학부모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회신란도 만들었다. 일제고사에 대한 찬성, 반대 의견, 시험 응시 여부를 물었다. 여기까지가 교육청이 말하는 일제고사와 관련된 모든 법률 위반 행위의 전부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서명을 통해 최소한의 의견 표명하고, 담임으로서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감사와 징계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고,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 당국의 아무런 교육학적, 법률적 근거 없는 일제고사 시행과 무분별한 징계 남발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했다. 바로 학부모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월에 일제고사 편지 회신을 통해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있었고, 그 중 11명의 학부모는 자녀가 시험 응시 대신 체험학습 참여를 원했다. (교장, 교감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국 모두가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지만.) 그리고 7월 여름방학을 앞두고 담임인 내가 징계 대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지난해 학부모들이 스스로 나서서 탄원서를 써 주시고, 지역 주민들에게 서명지를 돌려주셨다. 탄원서 내용에는 나 자신이 민망할 정도의 학부모님들의 나에 대한 무한 신뢰와 당국에 대한 따끔한 질책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휴가철인데도 불과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린 8월 14일에는 몇 분의 학부모님들과 10여명의 제자들이 교육청 앞 집회에 함께 와서 응원해주시기도 했다. 교실에서 어리게만 보였던 아이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 보도블록 위에 앉아 의젓하게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제자들이 있어 한결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집회를 할 수 있었고, 징계위원회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정부, 교육당국은 나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고 내가 그들의 교사인 줄 착각하지만 나는 그들의 교사가 아닌 나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교사일 뿐이다.

우리 옆 반 선생님이 이번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육청, 정말 별 거 아닌 거 갖고 교사 징계하고,,,쓸 데 없는 짓거리 많이 하고 있네!”

교육 당국, 제발 일제고사 폐지하고, 쓸 데 없는 짓거리 그만 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뭔지 생각 좀 하시길 바란다.


 

※이 글을 쓴 직후, 윤아름 선생님은 감봉 1개월의 징계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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