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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1호] 등록금 후불제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최고봉
    와글와글

[1호] 등록금 후불제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최고봉

등록금 후불제는 장밋빛 미래가 아니다.


최고봉 전교조 강원지부 정책연구국장

 

 

 

 


 

확실히 이주호(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는 인물이다. 이주호는 이명박 정부 최고의 교육정책 브레인으로, 교과부 장관보다 힘이 세다는 실세 중의 실세다. 그가 이번에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제도’ 즉, 등록금 후불제를 들고 나왔다. 지난 7월 30일, 교과부는 몇 해 전 교수노조 등이 제기했던 내용과 상당히 비슷한 ‘ICL'제도의 도입을 발표했다. 물론 정치적 의미와 구체적인 실현방안에서는 교수노조의 구상과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제도’란 학생은 등록금을 일단 유예받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 일정 수준의 소득이 있을 때 원천징수하는 방안이다. 따라서 학생은 졸업 이후에 원리금을 상환하게 되어 등록금에 신경 쓰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세부적인 내용을 다른 나라의 사례를 고려하여 9월 중에 발표할 계획이다.

등록금 후불제 도입이 공개되자 언론에서는 일단 환영하고 나섰다.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만이 도입한 등록금 후불제를 한국이 앞장 서서 도입을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 후불제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리콜’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MB식 등록금 후불제’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현재의 등록금 후불제 도입 비판 근거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높은 등록금 인상률로 인한 가계파산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 비해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매우 높은 수준이고, 인상률마저 높은 편이다. 등록금 대출금리, 혹은 등록금 후불제 도입으로 적용될 이자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은 매한가지이다. 따라서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는 대학의 ‘윤리적 타락’ 앞에 등록금 후불제는 대학의 이윤만을 보장한 채, 대학생에게는 실질적인 이익을 박탈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비판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약화된 것이다. 교과부는 등록금 후불제 도입 이후 일정 소득에만 도달하면 빈곤 여부에 관계 없이 원리금을 모두 상환하게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비 지원, 이자율 인하혜택이 모두 철폐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저소득층은 막대한 교육비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로 인해 송경원 진보신당 연구원은 등록금 상한제 또는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를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등록금 후불제 이전에 대학재정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손쉽게 등록금 인상을 통해 해결하는 관행이 해결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 정부는 GDP 대비 0.6%를 고등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 OECD 평균은 1.1이다. 더군다나 사립대학의 비중이 높고, 기부금이 적은 한국 현실로 인해 학생의 교육비 부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개혁 없이, 그저 ‘등록금을 대학 졸업 이후 일정 수준의 소득에 도달했을 때 상환한다’는 개념은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등록금 상환에서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전문직 계층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이다. 즉, 월급쟁이는 소득이 그대로 드러나 대학등록금이 원천징수 되고 전문직 계층은 소득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몇 해 전에는 의사가 월수입을 100만 원 미만으로 신고한 적도 있었다. 만약 집단적으로 수입을 축소신고, 허위신고 한다면 상환을 피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일정 소득에 미달하는 저소득층이 증가할 경우 등록금 상환률이 급격하게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등록금 대출금 회수율이 90% 내외이고, 한국 역시 90% 가량의 회수율이 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등록금후불제가 도입되면 상환률이 70% 내외로 하락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즉, 대졸자 취업률과 소득을 감안하면 회수율 70%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현 정부에서는 당장 회수율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회수율 저하가 막대한 채무를 불러올 것이다.

사실 등록금후불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친서민적이라거나 정치적으로 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노동자 민중에게 교육비를 전가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고, 그나마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확대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9월에 발표될 등록금 후불제 보완책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지만, 보완된다고 해서 등록금 후불제가 장밋빛 미래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육사를 읽으며 배운 교훈 한 가지 : 교육비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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