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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1호] 눈을 부릅뜨고 다닙시다/ 희랑
    와글와글

[1호] 눈을 부릅뜨고 다닙시다/ 희랑

눈을 부릅뜨고 다닙시다

―우체국에서 현실까지―

희랑


우리들 다수는 문득 어떠한 경험과 생각을 하기 전에는 체제 내지는 사회 구조와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인식하며 살아간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국가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사회 구조상의 문제로 개인이 어떤 피해를 입고 있고 개선해야하는지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체제·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관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순응과 무관심을 전제로 얻는 평화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 ‘평화’를 깨게 된 것은 얼마 전 지나간 여름 때였다.

우체국은 당연히 집배원아저씨와 빨간 우체통을 떠올리게 하며 왠지 모를 친숙함을 주는 공공기관이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체국이 공공기관이라는 것이다. 우체국의 서비스 중 하나인 택배를 이용하고자 예약을 문의하러 전화를 했었는데, 택배 수거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예약 할 수 없었다. 이유인 즉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의 서비스 제공 기간 중 오후 3시에서 6시는 매일 같이 몇몇 기업체의 택배를 수거하러 가기 때문에 늘 오후는 일반 개인에게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며, 개인은 오전 9시~오후 2시 안에― 택배 담당자도 점심은 먹을 테니 그 시간도 빠질 것이란 예상도 할 수 있겠다.―만 서비스를 이용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특별한 경우도 아닌 늘 오후는 특정 업체를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라니. 대개 사람들이 아주 이른 시간 대 아니면 점심 먹고 나서 오후에 서비스를 이용하지 어정쩡한 낮~점심시간에 서비스를 이용할리는 없지 않은가. 나는 분통이 터졌지만 내 문의전화를 받은 사람에게 우체국이 분명 공공기관인데 어째서 서비스 제공 시간 중 대다수가 특정에게만 제공되는 지, 실질적으로는 개인고객의 경우 오전9시~오후2시정도까지 밖에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 왜 당연한지에 대해 물었고, 개선조치를 취할 여지가 있는지 물었지만 내게 돌아오는 답변은 ‘원래 그렇다.’와 ‘인력수급도 안되고 예산도 안돼서 추가로 택배수집기사를 둘 수 없다.’ 였다.

너무나 당연하게 공공의 권리가 누군가에게 집중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상황과 그걸 납득해야 한다고 말하는 ‘공공기관’이었다. 마땅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의무 대비 권리를 찾을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축소시켜 느끼게 한 일상의 경험은 일종의 허탈감과 동시에 분노를 느끼게 했다. 어째서 의무를 다한 시민이며, 타인에게 해가 가지 않는 권리를 요구함에 있어서 오히려 제약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 마저 유별난 행동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한 엉뚱한 곳에 낭비할 예산은 있으면서1) 예산을 확보해 필요한 인력을 수급할 능력도 없고, 도청소재지인 시를 단 2명이 우편 업무를 담당한다는 빠듯한 상황을 생각하니 분명 노동 환경도 좋지 않을 것이란 예감을 하면서 공공기관의 무능력함을 느꼈다. 

내가 특별히 정치적인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작년부터 뉴스나 신문 등 언론매체 어디선가 접했던 공기업 민영화라든지, 승자독식 구조로의 개편 등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말은 블루오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레드오션으로 치 닫아 가는 작금의 상황은 과연 일부 몇몇이 경험하며, 일부가 만들어가는 현상일까. 개인이 아닌 사회라는 틀 안에서 정부적 차원에서의 공기업 민영화 추진이라든지, 행정주의, 복지감소와 불균형 분배, 다수의 시민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대기업 위주의 경제 살리기라는 구시대적 정책이 계속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한다면, 결코 개인만이 선하게 성실히 산다하여 극복될 문제도, 유별난 누군가만 겪을 흔치않은 사건도 아닌 것을 금세 알게 될 것이다. 우체국 서비스 이용에서 느낀 점 하나가지고 왜 이렇게 확대했느냐고 혹자는 말하겠지만, 사회와 개인은 사소하게라도 마주하게 되어 있고 그 정책 하나하나 뜬구름 같이 느끼다가는 언젠가는 분명히 힘없는 다수의 ‘시민’-동등하되 동등하지 못하는 시장 논리에서의-이 그 불이익을 감내해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됐다. 그리하여 끝맺음은 ‘시민이 정부를 감시하지 못하면, 시민은 자연스럽게 축소된 공공성에서 스스로 시민일 수 없게 될 것이니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겠다.’가 되겠다. 나와는 또 다른 시민인 당신도 눈을 부릅뜨고, 우리 모두 눈을 부릅떠야겠습니다. 부릅~+ㅁ+


1) 해외로 연수를 빙자한 여행을 간다든지, 쓸모없는 구조물을 새웠다가 다시 철거하는데 예산을 두배로 낭비하는 둥의 이야기는 인터넷 신문만 검색해도 충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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