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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1호] ‘4교시 추리영역’으로 학교 읽기/ 스프링
    와글와글

[1호] ‘4교시 추리영역’으로 학교 읽기/ 스프링

‘4교시 추리영역’으로 학교 읽기


스프링


얼마 전 충무로에서 엄친아 유승호가 주연인 ‘4교시 추리영역’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상용 감독은 롯데칠성 2% 등과 같은 유명한 CF를 연출한 CF 감독출신으로, 극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연출력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4교시 추리영역’은 엉성하기 그지없는, 그리고 엄친아 유승호를 전면에 내건 ‘실패한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로 글을 써보고자 생각했던 것은 영화 속에서 학교라는 공간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4교시 추리영역’의 배경은 남녀공학 고등학교이다. 학교는 질서와 희망, 성장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오늘날 학교는 무한경쟁과 인권침해, 서열화로 상징되고 있다. 바로 그 학교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살인용의자가 내부인물로 요약되면서 인물들간의 얽히고 설킨 사연이 하나 둘씩 밝혀진다.

‘4교시 추리영역’이라는 제목만 보면 모의수능시험을 보다가 4교시에 사건이 발생해 주인공 일행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 같다. 정작 영화를 보니 시간적 배경은 모의수능시험이 아니라 체육시간이었지만 말이다. 사소한 것은 그냥 넘어가자. 문제는 이 영화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 핵심 설정들이다. 교사들간의 불륜, 사서교사의 과거, 사서교사를 사랑해 살인을 마다하지 않은 노총각 교사, 교감을 나눈 학생을 죽음의 위기에 방치한 사서교사, 거기다 학교폭력을 체화한 ‘미친개’ 선생까지. 어쩌다 학교가 이런 인물들의 집합장이 되었을까 씁쓸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 학교의 자랑은 오로지 전국 1등이 한정훈 학생(유승호)이다. 교장 선생님은 교육청 장학사에게 이것이 교사와 학생, 학교의 완벽한 호흡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자랑한다. 물론 장학사가 학교를 순시하는 순간 몇 명의 교사와 학생이 학교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야단법석이 벌어진다. 감독은 이것을 웃음코드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 하나도 안 웃긴다. 장학사가 기사 딸린 관용차로 학교를 방문하는 것도 현실과는 다르다. 그런데 ‘장학사’는 교육행정의 권력자로, 일선 학교는 약자로 그려지는 것은 현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학교는 행정관료의 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전북지역 모 중학교 교장이 일제고사를 치는 날 체험학습을 허용했다가 징계를 당한 사건이 기억난다. 체험학습 허용 여부는 교장의 권한인데, 교장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겠다는 학생에게 체험학습을 허용했다고 교육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당했다. 사실 일선 교사에게 교장은 얼마나 큰 권력인가! 그런 교장조차 별 수 없이 징계를 당했으니 교육당국, 행정관료의 힘은 참 대단하다.

유승호와의 키스신 하나로 여성의 비난을 받았다는 공동주연 강소라는 이질적인 존재다. 그녀는 왕따 혹은 ‘은둔형 왕따’로 보인다. 그녀는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며, 아무도 그녀와 친구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 그녀의 별명은 ‘커튼마녀’다. 수업 중에 추리소설을 읽고, 온갖 하드코어 추리물을 탐독하지만 그녀는 왕따다. 그녀가 머리를 정리하며 미녀로 재탄생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적 설정일 뿐이다. 현실에서라면 그녀는 아마도 깊고 긴 수렁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기의 방황, 고민, 반항을 허용할 정도로 관용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특히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진학’이라는 목표로 천하가 통일되어 있으니, 왕따에다 수업시간에 추리소설이나 읽는 그녀가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다.

참, 어떤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영화는 10대만 보라. 성인이 보면 화가 날 수도 있다.’ 맞다. 이 영화는 딱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는 학교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도 들어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불편하다. 교사인 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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