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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식'이 아니라고 책 읽히는 거예요?

사건의 전말은 그렇다. 나와 함께 세미나를 하고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아침밥을 먹이는 것으로 길들이고 있는 것은 전에도 말한 바 있다. 닭죽, 새우버섯죽, 김밥, 카레.. 에 이어... 오늘의 메뉴는 쇠고기 덮밥 나는 인터넷에 뜬 레시피대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불고기 덮밥과 착각한 것 같았다. 불고기 덮밥과 쇠고기 덮밥은 다르다. 그다지 자극적으로 맛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싼 재료가 들어간 만큼 평범한 맛 정도는 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첫번째로 밥을 받은 K군. 국물이 좀 많아서 K군 자신의 표현의 빌면 '덮국' 꼴의 밥을 먹게 되었다. 그런 수분 많은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였나... 하여간 세미나하면서 그다지 즐겁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늘 공부한 것은 [정치경제학]의 잉여가치와 자본주의 발전사. 노동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된 배경에는 다들 알고 있듯이 새로운 동력원의 발명이 있다. '증기기관의 발명'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라면서 사회책에서뿐만 아니라....각종 위인전에서 이들 발명가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면서 성장한 것은... 증기기관을 발명한 '와트',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스티븐슨' 따위, 에디슨, 우장춘 박사 등등... 생각해보면 결국은 자본의 확장과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기여한 인물들이 아닌가... 순간 나의 과거가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한숨을 푸욱 쉬며... "에잇! 이 따위를 읽으며 컸으니... 에이 씨... 자식 생기면 책 안 읽힐 거야!" 그 순간, (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로 유명한) K군의 일갈! " 그러면 우리가 자식 아니라고 책 읽히는 거에요?" 물론 ... '그렇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순간 아득하면서 맘이 복잡해졌다. 제대로 '그렇다!' 소리도 못하고... '당황'하고 말았다. 자아... 정리를 해보자. 이 문답에서 중요한 가치 전제는 '책 읽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책을 읽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책을 읽는 것은 아주 해로운 행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지금 정치경제학을 읽히고 세미나를 해야한다고 계속 동기부여를 하고 밥으로 길들이고... 그건 잘하는 일인가? 아주 해로운 행위는 아닌가? 사실 맑스주의를 공부한다는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갖게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번 고향을 떠난 자,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 아직은 고향에 한 발 담그고 떠날까 말까 고민하는 이들을 꼬셔내는 유랑극단의 피리쟁이! 하지만 유랑극단의 피리쟁이에 맘을 빼앗긴 자의 핏속에는 이미 바람이 흐르고 있는 것을... 해롭다고 해도 감수할 용기가 생겼으니... 넘어가자. 그런데... '우리가 자식 아니라고'... 에는 두번째 가치 전제가 있다. '나에게 너희들은 자식처럼 귀한 존재이다.' 혹은 ' 나에게 너희들은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존재이다.' 번역하면... '"당신은 우리들을 자식처럼(비할 데 없이) 귀한 존재인 양 대접하더니 그건 다 거짓이었고 자식 아니라고 이렇게 해로운 일을 시키는 거에요?" 이 부분에서... 나는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에게 정말로 비할 데 없이 소중한 존재... 그것은 가족이 귀한 것과는 다르다. 들뢰즈에 의하면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 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생식'과 '감염'이다. '생식'이란 말 그대로 '자식 낳기' 전통적인 수형도(나뭇가지 치기 모양)식의 수직적인 확장이다. '감염'이란 리좀, 덩이줄기처럼 수평적인 확장이다. 본체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순간에 하나의 독립적 개체로서 똑같은 중심이 되는 존재 확장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드라큐라 백작처럼... 드라큐라 백작에게 물린 존재는 똑같은 드라큐라가 된다. 드라큐라에 매달린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모기는 다른 동물로부터 피를 취하고 자신의 피를 남긴다. 발갛게 화농한 가려운 피부는 모기가 된 피부이다. 우리는 컴퓨터 자판에 우리 손가락을 길들여 의식하지 않아도 자판을 두드린다. 인체의 자판되기... '되기'는 바로 신체의 감염, 수직적이고 위계적이며 종속적인 확장이 아니라...수평적이고 다성적이며 다원적인 확장방식이다. 나에게 그들은 그러한 감염의 관계. 그들은 나에게 그 어떤 말로도 정의할 수 없는.... 동료이며 동지이며 가족이며 형제이며 애인이며 선후배이며 사제간이며... 동시에...그 어떤 것도 아닌 관계... 서로 감염되고 길들어 가며 나 자신으로 확장해 가는 관계, 그러나 서로 독립적이고 이름 붙이지 않는 관계, 아무 것도 아닌 관계... 고정되지 않는 관계... 흐르는 관계.... 변화하면서 함께 가는 관계.... 소중한 관계... 나는 이미 드라큐라... 나는 그들과 오늘도 함께 책을 읽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주욱~ 책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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