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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3월 12일] 두 개의 눈이 필요한 한국

 

  2007년 11월이었다.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상영관에서 아이리쉬 밴드 바드(BARD)의 아일랜드 음악여행을 다룬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라는 음악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바드는 이 여행에서 성취한 바를 음반으로 제작하였고 얼마 전에는 이 다큐의 감독 임진평이 1시간 남짓한 영상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와 풍경을 실어 동명의 책도 발간하였다. 자신의 예술과 삶이 향하는 방향을 고민하는 이들 젊은이들의 동행은 깊은 감명을 준다. 표제의 ‘두 개의 눈’이란 벨파스트의 유서 깊은 벽면에 씌어있다는 글귀로 과거와 미래를 보는 눈을 말한다.

 

    A Nation that keeps one eye on the past is wise.

    A Nation that keeps two eyes on the past is blind.

   하나의 눈을 과거로 향하는 민족은 지혜롭다.

   두 눈을 모두 과거로 향하는 민족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한쪽 눈을 과거를 보는 데 쓰면 현명하고 두 눈을 모두 과거를 돌아보는 데 쓰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니? 우리가 역사를 되새기는 이유는 더 나은 삶, 오로지 더 부유한 삶만이 아니라, 더 인간답고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즉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꾸리고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개의 눈, 과거를 보는 눈과 미래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일랜드에는 바로 그 두 개의 눈이 있다.

 

  ‘아일랜드’라면 우리는 그저 영국 옆에 있는 먼 나라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아일랜드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 끼친 영향은 상당하였다. 아일랜드는 식민제국이었던 여타의 유럽 여러 나라와는 달리 식민경험을 지닌 나라다.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처럼 영국의 식민지였다. 우리가 독립을 선언하고 3.1운동으로 그 의지를 만방에 떨치고 있을 무렵, 그들 또한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1921년 부분적이나마 독립을 쟁취하기에 이른다. 당시 이들의 독립운동과 그 문화적 표현이었던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은 3.1운동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도 다각적으로 소개되었고 우리는 이들의 독립운동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꼈으며 여러 가지 시사점과 아이디어를 얻었다. 1920년대 한국의 문학, 연극 등 각종 문예 분야에 아일랜드는 깊은 영향을 미쳤었다.

 

  그리고 90년이 지났다. 아일랜드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영국을 능가하고 그보다도 더 중요하게는 국민들 스스로 얼마나 행복한가를 묻는 행복지수가 영국보다도 훨씬 높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의 바탕을 이룬 것이 일상 속에 존재하는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는 두 개의 눈이라는 사실을 몇몇 한국 젊은이의 음악여행에서 다시 확인한다.

 

  우리가 우리의 독립의지와 독립역량을 세계만방에 떨쳤던 3.1절 90주년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이번 3.1절에는 근엄한 관료들의 3.1절 기념식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3.1절 퍼포먼스’가 더 눈에 띄는 것을 보니 3.1정신의 진정한 계승이 이제야 시작된 것이 아닌가하는 부끄러운 기쁨마저 생긴다. 한편에서 3.1운동과 그 결과 탄생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1948년 단독정부의 수립에서 한국의 역사를 기산하려 한다는 소식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쯤 되면 과거만을 보는 두 개의 눈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아예 눈 감고 과거를 보지 않으려는 맹목과 무지가 걱정이다. 게다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이를 교육하려고 일선 학교에 이를 골자로 하는 팸플릿을 배포했다가 거센 비판에 부딪쳐 부랴부랴 회수했다니 편협한 정권의 권력 남용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데 이르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더 부자로 잘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살아오면서 작은 행복이나 즐거움은 늘 미뤄왔지만 형편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삶은 한층 피폐해지고 있다. 우리 힘으로 나라를 세우고 운영할 힘이 있음을 세계만방에 선언했던 1919년 3월 1일을 기억하면서 그때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목적으로 싸우던 아일랜드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는 과거, 현재와 미래를 보는 두 개의 눈이 우리에게도 절실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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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2월 12일] 나는 오늘버틈 도루 나라없는 백성일세

 

  사람 6명이 죽었다. 그리고 검찰의 공식입장이 발표되었다. 사람은 죽었으나 잘못한 사람은 없단다. 공권력은 정권의 권력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이다. 그리고 이 나라는 돈이 있든 없든 전 국민의 나라이다. 따라서 공권력이란 국민의 목숨을 빼앗는 방향이 아니라 그 목숨을 지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0일 용산에서 있었던 철거민 참사는 명백하게 이 방향을 거슬렀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이 없다고 한다.

 

  지난 30여년 간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어 왔다. 개발이익을 둘러싸고 조합의 부정과 다툼도 끝없이 있어왔고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의 저항과 이를 강제로 진압하는 폭력, 그리고 이에 따른 희생도 어제오늘에 생겨난 일이 아니다. 농성을 하는 자도 엄동설한에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듯, 그들에 몽둥이, 물대포 세례를 퍼부은 자들도 좋아서 한 짓은 아니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오랜 재개발의 역사에서 이번 용산참사처럼 농성 수 시간 만에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고 유래 없는 강경진압을 저질러 이 같은 참혹한 참사가 난 것은 처음이었다. 아닐 말로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정권이 휘두를 힘이 없어서 그 같은 속전속결 강경진압을 피했을까.

 

  경제 한파가 뼛속까지 사무치는 요즘에 피땀흘린 삶의 터전을 일조에 빼앗기고 생계가 막연해진 사람들이 그대로는 못나간다고 목청을 높였기로 그것이 그렇게도 큰 죄였던가? 백보 양보하여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라가고 시너를 뿌린 자들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하고 그들의 유죄를 인정한다고 한들 그들이 죽을 죄를 지어, 죽어 마땅한 자들이던가? 죽기를 각오한다는 말도 썩 좋은 말은 되지 못하지만 살겠다는 반어적 표현이지 말 그대로 죽겠다는 뜻은 아니다.

 

  농성에 투입되는 공권력이란 기본적으로 해산과 무력화를 목표로 삼아야 것이다. 도망갈 길 막아놓고 먹이를 쫓아 포획하는 사냥과는 다른 것이다. 무엇이 그리 급하여 뒷길도 열어놓지 않고 토끼 쫓듯 휘몰아 이토록 큰 희생을 냈단 말인가? 그리고도 아무도 잘못한 이가 없으니 애초부터 이들의 목표는 해산이나 무력화가 아니고 일벌백계였던가? 국민의 살아야겠다는 생존권 주장을 법질서 확립이니, 국가기강 정립이란 말로 서슬 퍼렇게 틀어막더니 앞으로 수없이 잇따를 재개발 분쟁을 이 참에 본때를 보여 막아보자는 것이었을까?

 

  채만식의 단편 <논이야기>는 구한말 동학당의 잔당을 소탕한다는 미명 하에 무고하게 토지를 수탈당하고 소작농으로 떨어진 뒤 일제강점기를 보낸 가난한 소작농의 토지관을 다루고 있다. 해방을 맞은 한덕문, 한첨지는 일인에게 팔았던 토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하지만 일본이 패망한 뒤, 적산(敵産, 패망한 일인이 남겨두고 물러간 재산)처리 과정은 그다지 공정하지 못하였다. 이를 둘러싼 일부 약빠른 자들의 협잡도 협잡이었지만 농토란 근본적으로 농사짓는 자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간과되고 있었던 것이다. 채만식은 이 같은 당시 토지정책의 반민중성을 일찌감치 간파하여 수준 높은 풍자와 해학으로 형상화하였다. 자신의 토지를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덕문은 분노한다.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제길, 삼십육년두 나라 없이 살아왔을려드냐. 아니 글쎄,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다 마음을 붙이구 살지. 독립이 됐다면서 고작 그래, 백성이 차지할 땅 뺏어서 팔아먹는 게 나라 명색야?”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라는 한덕문의 선언이 너무나 무지스럽고 무작스러운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지만 나라가 있으면 백성에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주어야 백성도 나라를 믿고 나라에다 마음을 붙인다는 그 심정 또한 이해가 된다. 먹고 사는 일에는 시비가 없다. 굶기고 못먹게 하는 쪽이 무조건 잘못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소리가 나온다. 국민의 밥상을 빼앗고 죽음으로 모는 공권력이란 애초부터 형용모순이다.

 

  왜 벌써부터 머리 싸매고 더 좋은 대책, 더 원만한 합의를 만들지 못했던가? 앞으로 또 제2, 제3의 참사를 자초하고 말 건가? 자책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리고 이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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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1월 15일] 빨간머리 앤과 다수곳로

 

인천시 수봉산 기슭 다수곳로, 한 소년이 한창 공사중인 다세대 건축현장 앞에 서 있다. 이 다세대 주택은 얼마 전 수봉산 일대의 고도제한이 완화되면서 소소하나마 이 일대의 붐을 이루고 있는 재건축현장 중 하나이다. 빙 둘러 포장이 처져 볼 것 없는 공사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은 얼마 전까지 그곳에 있던 집에 살았었다. 집이 팔리면서 소년은 이사를 갔지만 여전히 전에 살던 집을 궁금해하며 때때로 찾아와 새로 짓는 집을 바라보곤 한다. 소년의 시선에는 새로 짓는 건물에 대한 소년다운 호기심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 짙은 건 그리움이다. 이제 그 소년의 가족만이 요령 있게 닫을 줄 알던 삐걱거리던 창문도, 소중한 물건을 감춰두던 소년만의 비밀장소도 더 이상 없다.

 

우리에게 <빨간머리 앤>으로 잘 알려져 있는 L.M.몽고메리 소설의 원제는 이다. 직역하면 ‘초록박공집의 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제 ‘빨간머리 앤’이 앤의 신체적 특징을 환기하면서 자라나는 청소년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주목하게 만드는 점은 꽤 효과적이지만 원제가 지닌 공간적 배경이 함의하는 바를 간과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점이다. 여기에서 초록박공집은 단순한 공간적 배경이 아니다. ‘초록박공집’은 명랑하고 영리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고아소녀 앤이 선량하고 성실하지만 내성적이고 고지식한 커스버트 남매와 어울려 진정한 가족,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가는 곳이다. 그리고 그 같은 앤의 성장에서 정점을 이루는 것은 매슈가 죽고 마릴라의 시력이 나빠져 초록지붕집이 매각 위기에 처하자 대학 장학금을 포기하고 초록박공집을 지키기로 한 결정이다. 마릴라는 앤을 그렇게 희생시키고 싶어하지 않지만 앤은 “초록박공집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이 결정은 커스버트 남매와 에이번리 마을의 시혜 대상에 불과했던 작고 이질적 존재였던 앤 셜리를 초록박공집의 어엿한 주인으로 변화시켰으며 에이번리 마을 구성원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확고한 자기 위치를 갖게 되면서 앤 또한 변화하여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어 오랜 경쟁상대였던 길버트와 진정한 우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어린 고아소녀 앤 셜리의 유쾌하고 재미있는 인정투쟁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 ‘초록박공집의 앤’은 의미심장하다. 작자 몽고메리는 앤의 ‘빨간머리’라는 신체 특징보다 공간적 배경 ‘초록박공집’에 주목하여 ‘초록박공집’을 앤의 장소로, 앤과 함께 제목으로 선택했던 것이니 주인공 앤의 이름과 나란히 쓰인 ‘초록박공집’은 앤과 함께 이 작품의 주인공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장소’란 오랜 기간 이용되고 인지되면서 이용자 자신의 환경으로 기억된 공간을 의미한다. 단순한 물리적 용도로 정의되는 한 ‘공간’이 다른 공간과 구별되는 인간적 의미를 지닐 때 이를 ‘장소성(Sence of place)’이라고 한다. 즉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집’은 그냥 ‘집’인 것이지만 사람이 이곳에 살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을 쌓으며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될 때 이곳은 ‘우리집’, ‘철수네 집’, ‘앤의 초록박공집’이 되는 것이다. 즉 <빨간머리 앤>이 한 세기를 넘어, 다양한 연령대의 관심과 애정을 받게 된 것은 후미지고 작고 낡은 초록박공집을 단순한 공간을 넘어 자신의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가는 고아소녀 앤의 역할에 의식하건 그렇지 못하건 감동하고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빨간머리 앤’의 공간적 배경이 된 마을이 있고 ‘초록지붕집’이 관광명소가 되어 있으며 <빨간머리 앤>의 작가 몽고메리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고 부러워하면서 크고 번듯한 건물을 짓고 큰소리로 광고하는 데는 열을 올리고 있지만 지금 다수곳로에 서서 없어진 자신의 집을 그리워하는 소년의 시선에는 무감하다. 그러나 지금 제각기 발디딘 자리에 부여하는 자신만의 의미가 아니라면 먼훗날의 소중한 장소 또한 생겨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을 그려낸 <빨간머리 앤> 같은 멋진 작품도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끝없이 허물고 부수고 이사가고 이사오는 방법 외에 나날이 새로워지며 새로이 소중해지는 방법이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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