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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른타이 1922년: 날개 달린 에로스의 길을 열자: 젊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회심리학적인 요소로서의 사랑




젊은 동지인 당신은 나에게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가 사랑에 어떠한 공간을 주었는지 물었는가? 당신은 현시기에 젊은 노동자들이 노동자공화국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사랑이나 그와 관련된 문제들에 전념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갈 것이다. 내가 거리를 두고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시도해보자. 그러면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안에서 사랑이 어떠한 공간을 차지하는지에 관한 첫 번째 질문에 답하기가 다소 수월해질 것이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시민전쟁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투쟁의 주요 전역(戰域)은 지금 두 개의 이데올로기와 두개의 문화-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전방이다. 이 두 개의 이데올로기의 양립불가능성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으며, 이 두 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모순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정치학과 경제학의 영역에서 공산주의자의 원칙과 이상이 승리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감정과 내면세계에서의 혁명도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있다. 삶, 사회, 노동, 예술, 삶의 규범(도덕)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성적인 관계에 있어서의 합의는 이러한 삶의 규범들의 한 양상이다. 우리의 노동공화국이 5년 넘게 실현되는 동안, 이러한 비군사적인 최전방에서의 혁명은 남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켜왔다. 두 이데올로기 사이의 전쟁이 더 강해질수록 격렬할수록, 오로지 노동자 계급의 이데올로기만이 만족스러운 답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수수께끼”와 새로운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대두되고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


여기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사랑의 수수께끼"가 바로 그런 문제이다. 성별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인간사회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미스테리이다. 역사상 발전의 각각 다른 단계에서 인류는 다른 방법으로 이런 문제의 해결에 다가갔다. 문제는 이전과 같이 남아있다; 해결의 열쇠도 변한다. 해결의 열쇠는 다른 획기적 사건들과 권력 있는 계급, 특정한 시대(다른 말로 문화에 의해)의 "정신"에 의해 주어진다.


러시아에서 최근 몇 년 동안의 격렬한 내전과 막연한 혼란 속에서 그 수수께끼의 근원에 관한 흥미는 거의 없었다. 노동계급의 남성과 여성은 다른 감정과 열정과 표현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해 동안은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그늘을 걸어다니고, 승리가 혁명과 진보로 귀결될지 반혁명과 반동으로 끝날지가 결정될 시기였다. 혁명의 위협에 직면하여, 미묘한 날개달린 에로스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시간도 없었고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향한 내적 힘의 여분도 없었다. 이것이 인류의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에너지의 보존의 법칙이다. 전체적으로 힘은 항상 역사적 순간의 가장 긴급한 목표를 향하게 된다. 이 때, 러시아에서는 재생산의 생물학적인 본능과 본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 우세했다. 남성과 여성은 결합했고, 남성과 여성은 이전보다 더 쉽고 더 간단히 헤어졌다. 그들에게 엄청난 계약 같은 건 없었고, 눈물이나 후회도 없이 헤어졌다.


성매매는 사라졌고, 파트너들이 서로에게 복종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꾸미지 않은 채 재생산의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수많은 성적인 관계들이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당시에 이러한 발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관계들이 지속되고, 동지애와 지속적인 우정을 통해 남성과 여성은 결합하고 그것들이 순간의 진지함으로 관계를 좀 더 귀중하게 되기도 했지만, 순수한 생물학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되거나, 두 파트너들이 업무를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등한시해서 혁명을 위한 그들의 일이 방해되기도 했다.


이 꾸밈없는 성적인 충동들은 쉽게 자극되었지만 곧 소모되었다; 그래서 "날개없는 에로스"는 "날개달린 에로스"보다 조금 덜 내부적인 힘을 소모했다. 날개달린 에로스의 사랑은 모든 종류의 감정들의 미묘한 요소들로 짜여져 있다. “날개없는 에로스”는 잠 못드는 밤으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의지를 약화시키지도 않고, 마음의 이성적인 작동을 뒤얽히게 하지도 않는다. 혁명의 클라리온이 울려 퍼졌을 때 투쟁하는 계급은 "날개달린 에로스"의 힘 아래로 떨어질 수 없었다. 그런 시기에 혁명에 직접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험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내적인 힘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사랑은 그들의 마음을 결혼에 두게 하는 데, 이는 크나큰 내적인 에너지의 지출을 요구한다. 노동계급은 경제적으로 물질적인 부유함뿐만 아니라 각자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힘을 보존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혁명적인 투쟁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별다른 요구는 지니지 않는 재생산 본능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날개달린 에로스”를 대체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변했다. 소비에트 공화국과 전진하는 인류 전체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침묵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껏 이루어졌던 성과와 목표물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복잡한 업무가 시작되고 있다. 삶의 새로운 형식의 창조자인 프롤레타리아는 반드시 사회적 심리적인 현상들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만하고, 이러한 현상들의 중요성을 움켜잡아야 하며 계급적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물질적인 부의 창조를 가져오는 법뿐만 아니라 내적인 심리적인 세계의 법을 이해할 때, 부패한 부르주아 세계를 깨트려버리게 무장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전진을 위해 노력하는 인류는 군대와 노동의 최전선에서뿐만 아니라 심리적-문화적인 최전선에의 승리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혁명은 승리가 입증되었고, 더욱 강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혁명적 돌진의 기운은 남성과 여성에게 조금의 여유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날개달린 에로스가 어둠 속에서 출현하여 정당한 자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날개없는 에로스”는 심리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감정적 에너지가 축적되기 시작하였으나, 남성과 여성은 심지어 노동자계급까지도 아직 이러한 에너지를 집단의 내적 삶을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이러한 여분의 에너지는 사랑의 경험에 있어 출구를 필요로 한다. 사랑의 신의 현이 많은 수금은 단조로운 “날개없는 에로스”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남성과 여성들은 이제 성적 본능을 순간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 결합할 뿐만 아니라 “러브 어페어”를 다시금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의 고통과 사랑이라는 행복한 기쁨에 대해서도 모두 알게 되었다.


소비에트 공화국에서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욕구, 지식에 대한 욕망, 과학적인 문제와 예술 및 문학에서의 흥미가 의심할 여지없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혁을 향한 이러한 움직임은 불가피하게 사랑을 경험하는 것 또한 포괄하고 있다. 사랑의 신비인 성에 대한 심리학적인 질문들이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사생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는 오직 Pravda 사설이나 보고서들만 읽는데 시간을 할애했던 당원들이 날개달린 에로스를 찬미하는 소설들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반동적인 단계인가? 혁명적 창조성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징후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르주아들의 위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사랑은 강력한 자연적인 본성, 생물학적인 힘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요소라는 것을 솔직히 인식해야할 때이다. 본질적으로 사랑은 뿌리깊은 사회적인 감정이다. 인류 발전의 각 단계들에서 사랑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화의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사랑을 “사적인 문제”라고 보는 부르주아들조차도 계급적인 관심사로 사랑을 연결시켜왔다. 노동계급 이데올로기는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큰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데, 사랑은 다른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인 현상들처럼 집단적인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절대 사랑하는 두 당사자들만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한 집단에 가치 있는 요소들을 결합하게 해준다. 역사적인 발전의 각각 단계들에서 사회는 어떠한 조건 하에서 사랑이 “적합한지”(주어진 사회의 집단적 이익에 부합하는) 죄악시되거나 범죄화되는지를(주어진 사회의 업무에 반하는) 정의하는 규범들을 마련했었다는 사실로부터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역사상의 기록




인류는 역사가 시작되고서부터 성적 관계 뿐 아니라 사랑 자체를 통제하기를 추구했다.


친족 공동체에서는, 혈연관계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친족 공동체는 여성이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형제 자매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최고의 감정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안티고네는 당대에 영웅이었다.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누이동생이 이런 행동을 한다면 매우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아직 국가가 발달되지 않은 단계인 부족 사회에서 가장 존중받는 사랑의 형태는 같은 부족의 두 구성원간의 사랑이었다. 사회집단이 막 친족 공동체에서 진화했지만 아직 새로운 형태로 출현되지 않았을 시점에는, 구성원간에 정신적,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우애’가 유대의 가장 적합한 형태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결혼한 쌍 사이에서가 아니라 부족 구성원 사이에서, 국가의 조직자와 방어자 사이의 접촉의 확대와 축적이 집단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부족 남성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여성들은 당시 사회적 생활에 있어서 맡은 역할이 없었고, 여성간의 우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의 사랑보다도 남성간의 “우정”이 훨씬 칭송되고 중요했다. Castor와 Pollux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수행했던 공로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충성심과 흔들리지 않는 우정으로 명성이 깊었다. 우정 혹은 그와 유사한 것을 위해 남성은 자신의 아내라도 지인 혹은 손님들에게 바쳤다.


고대 세계는 우정과 “무덤까지 가는 충성심”을 시민적인 덕목으로 여겼다. 근대적 개념에서의 ‘사랑’이 차지할 공간은 없었고, 시인 혹은 작가들도 사랑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협소한 분야, 혹은 사회와는 관련 없는 개인적 경험으로 격하시켰다; 결혼은 편의에 근거한 것이었지 사랑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은 단지 여러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그것은 국가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시민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한 것이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르주아 도덕이 허용하는 선에서 한계 지우지만, 고대 사회는 이러한 감정을 미덕 혹은 긍정적인 인간 자질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위업을 달성하고 친구를 위해 그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은 영웅으로 여겨졌고, 그의 행동은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된 반면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희생하는 남성은 멸시와 비난을 면치 못했다.


고대의 도덕은, 따라서, 남성으로 하여금 선행을 고무시켰던 사랑-봉건제 하에서는 칭송되었던-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고대에는 남성 구성원을 서로 가깝게 만들고 사회 구조를 더욱 안정하게 하는 감정만을 인식했다. 그러나 문명 발전의 다음단계에서는 우정이 더 이상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부르주아 사회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우정이 미덕으로 여겨질 여지가 없었다. 우정은 어떤 점에서도 도움이 안되고,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해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불필요한 “감성”과 약함의 징후로 여겨진다. 우정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뉴욕과 런던이라는 공간에서의 Castor와 Pollux는 비웃음만을 자아낼 뿐이다. 우정이 자질로서 교육되고 고무되었던 봉건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봉건제는 귀족의 이해를 방어했다. 사회의 구성원 사이의 관계보다 가족과 전통에 대한 개인의 의무에 근거하여 미덕을 정의하였다. 결혼은 가족의 이해에 따른 계약이었다. 어느 소년이라도 (소녀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이러한 이해에 반하여 아내를 선택할 시에는 매우 비난받았다. 봉건시대에 가족의 이해보다 우위를 점하는 개인적 감정과 기질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죄인’이라는 딱지를 면치 못했다. 도덕은 사랑과 결혼의 조화 따위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간의 성적 관계는 무시되지는 않았다. 사실, 인류 역사 초기에도 이러한 인식은 있었다. 이 엄격한 금욕의 시대에, 조잡하고 잔인한 도덕의 시대에, 폭력과 폭력에 의한 지배의 시대에 사랑이 최초로 수용되었다는 것이 다소 이상해 보일런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속내를 좀 더 살핀다면 그렇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특정한 상황과 환경에서 사랑은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렛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사도는 전장에서 구성원들에게 순수함과 용맹, 인내와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힘을 요구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군대의 조직력보다는 개인적인 참여자들의 자질에 의해 좌우되었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마음속의 숙녀’와 사랑에 빠진 기사는 더욱 쉽게 기적적인 용기를 보여주었고, 승리를 얻을 수도,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도 있었다. 사랑에 빠진 기사는 빛을 발하여 자신의 사랑에게 주목을 끌고 싶은 욕망에 고무되었다.


기사도의 이념은 사랑을 봉건 계급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심리적인 상태로 인식하였지만, 그럼에도 엄격한 틀 내에서 이러한 감정을 제한하려 했다. 남성과 그 부인 사이의 사랑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기사의 성 혹은 러시아 특권 귀족의 terem 안에서 사는 가족은 감정적인 유대로 묶여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사도적인 사랑의 사회적 요소는 여성을 사랑하는 감정에 의해 군사적 혹은 다른 영웅적 위업이 고무되는 가족 외부에서 작동되었다. 그 여성이 가까이 하기 어려울수록, 기사는 그녀의 호의를 얻고 그 계급 사회에서 가치 있는 미덕과 자질을 갖추어 위신을 세우는데 노력하였다. 기사들은 보통 가까이 하기 어려운 여성, 예를 들어 영주의 부인 혹은 여왕에게 접근하려 했다. 오직 “플라토닉한” 사랑만이 용감한 기적을 수행하는데 자극제가 될 수 있었고 그런 것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접근 가능성이 낮다하더라도, 사랑의 대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결혼 가능성과 앞서 언급한 지렛대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건제의 도덕은 금욕주의-성적 억제-와 미덕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관념을 결합시킬 수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그의 욕망은 속세적이라고 죄악시되었다. 그러한 욕망을 생물학적인 것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추상적인 감정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기사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여성을 선택하거나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하기도 하였다. 그 이상을 그는 나아갈 수 없었다.


봉건제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자극제, 사회적 결집을 지지하는 자질로 보았다; 정신적 사랑과 기사들의 동경은 귀족 계급의 이해에 봉사하였다. 기사의 아내가 다른 기사의 여성으로서 선택되었을 때 아내를 수도원에 보내거나 외도했다는 이유로 살해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그 기사는 비아냥거림을 받게될 것이다. 그는 그녀의 플라토닉한 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정신적인 사랑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봉건적 도덕에서는 사랑을 법적인 결혼 관계와 동일하게 보지는 않았다. 사랑과 결혼은 봉건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분리된 채 존재한다. 14, 15세기에 출현한 부르주아 계급에서만 사랑과 결혼은 결합되었다. 따라서 봉건제 사랑에 대한 고상한 궤변만이 형언할 수 없는 조잡한 규범들과 함께 남아있었다. 결혼 안에서든 밖에서든 성적 관계는 사랑을 부드럽게 하고 고무시키는 요소를 결핍한 채, 봉건제적 사랑은 순전히 심리적인 행위로서만 남아있었다.


교회는 영성적인 사랑을 북돋우면서 “타락”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척 했다. 그러나 이는 양성간의 조잡한 동물적인 관계를 북돋았다. 마음 속에서 여성이라는 상징을 떼버리지 않은 기사는 그녀의 영예를 위해 시를 짓고 그녀의 미소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시에 사는 여성을 강간하거나 그의 집사로 하여금 그를 기쁘게 해줄 아름다운 소작농을 데려오게 시켰다. 기사의 부인들도 한편에서 음유시인들이나 봉건 기사 수행원들과 신선한 쾌락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봉건제가 약화되고 부르주아의 이해에 의해 좌우되는 새로운 삶의 조건이 출현하면서, 양성간의 새로운 관계가 발달했다. 플라토닉한 사랑을 거부하면서 부르주아는 육체에 대한 권리를 방어했고, 사랑이라는 개념에 정신적, 육체적인 조화를 주입했다. 부르주아 도덕은 사랑과 결혼을 분리하지 않았다; 결혼은 커플 상호간의 매력의 표현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의 실천 과정에서 편의라는 명목 때문에 이러한 도덕적인 가르침을 배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반자적 결혼이라는 사랑에 대한 인식은 심대한 계급적 기반을 갖고 있다.


봉건제 하에서는 가족은 귀족의 전통과 태생에 의해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교회의 권력에 의해 부부의 결혼은 성사되었고, 가장에게 무한한 권위가 부여되고, 가족의 전통과 영주의 입지가 확고해졌다; 이혼은 불가능했다. 부르주아 가족은 변화된 조건에 맞추어 진화되었다; 이 때의 가족의 기반은 ‘부에 대한 공동소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축적’이었다. 가족은 이러한 자본의 수호자였다; 자본의 축적이 가능한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성의 재산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기술적으로 다루어져야 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좋은 가정주부 뿐 아니라 남편의 친구이자 조력자가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관계와 부르주아 사회 체계의 성립에 따라, 가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비용을 경제적으로 고려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에 공통의 이해가 달려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협력이 구축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아이가 강력한 감정적?심리적 유대로 묶였을 때 더욱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14세기 말 15세기 초, 삶의 새로운 경제적 방식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발생시켰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개념은 점차 변했다. 종교개혁가 루터, 다른 사상가들과 르네상스와 사회개혁의 공적 인물들은 사랑의 사회적 힘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가족의 안정성-부르주아 체계에서의 경제적 기본단위를 유지하는-을 인식하게 되자, 경제적인 연계 이상의 무엇으로 가족구성원을 결속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부상하는 부르주아들의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도덕적 이상-육체와 정신의 동시적 결합-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개혁가들은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도전했고, 기사가 지속적인 염원하지만 그의 감각적 욕구 충족은 부정당했던 기사도의 ‘정신적 사랑’을 비웃었다. 부르주아와 개혁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육체적 욕구의 정당성을 인식했다. 그러므로, 봉건제에서는 성적 행위로서의 사랑-결혼 내에서나 내연 관계에서-과 정신적, 플라토닉한 사랑-기사와의 관계와 그의 마음속의 여성- 이 분리되었지만, 부르주아 계급들은 육체적 매력과 감정적 애착을 모두 사랑이라는 개념 안에 포함하였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결혼과 사랑이 분리될 수 없었다. 물론 실제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이상으로부터 언제나 패퇴해왔다; 그러나 파트너들간의 의향에 대한 질문들이 봉건제도 하에서 제기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 도덕은 편의의 결혼에서조차 파트너들은 위선을 실행하고 애정을 가장해야만 함을 요구하였다.


결혼과 사랑에 대한 봉건적 전통의 흔적과 태도가 수세기 동안 살아남아 부르주아 계급의 도덕에 순응한 채 우리에게도 남아있다. 귀족 가족과 상류 계급은 아직도 이 낡은 규범에 따라 살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사랑에 기초하여 결혼하는 것은 “어색하기”보다는 “우스운” 것으로 간주된다. 이 세계의 왕자와 공주들은 아직도 그들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위해 정치와 출산의 요구에 응해야만 한다.


빈농 가족에서는 가족과 경제적 고려가 결혼이라는 합의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촌 가족에서는 결혼이 경제적인 한 노동 단위를 꾸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도시 산업 부르주아의 결혼과 다르다; 구성원들은 경제적인 환경에 의해 단단히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내적인 결속은 부차화된다. 중세 장인들에게 사랑 같은 건 결혼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거나, 길드체계에서 가족이란 한 생산 단위였기 때문에 이러한 경제적인 논리만이 안정성을 보증하였다. 결혼에 있어서 사랑에 대한 이상 (또는 관념)은 부르주아지의 등장과 함께, 가족이 그 생산적인 기능을 잃고 소비 단위로 전락하였을 때 나타나기 시작하여 결국 축적된 자본의 보존을 위한 전달매체로서만 기능하였다.


비록 부르주아적 도덕이 전통에 반항하면서까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할 권리를 옹호하고, 또한 사랑을 결혼의 기초라고 주장하면서 “영적인 사랑”과 금욕주의를 비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도덕은 사랑을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였다. 사랑은 결혼 내에서만 허용되었다. 합법적인 결혼 외의 사랑은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생각들은 대개 경제적 고려 속에서 또 사생아에 대한 재산 분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구술되었다. 부르주아 도덕 전체는 자본 축적을 위한 것이었다. 복지향상을 위해, 각각의 가족 구성원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결혼한 커플이야말로 이상적이었다. 가족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에서 부르주아지 도덕은 가족의 이익을 지지했다. (cf.부르주아 도덕의 인정적인 태도-비록 법에 의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이탈자에게 그리고 그들 가족의 이익을 위해 주주들을 파산케 한 사람들에게 조차) 공리주의적인 경향을 띈 부르주아의 이러한 도덕은 사랑의 장점을 결혼의 주요한 구성인자로 만들어 가족을 강화하였다.


사랑은, 물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론자들에 의해 규정된 테두리에 갇히지 않는다. 감정적인 갈등은 커지고 다층화되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발전된 문학의 새로운 형태-소설-안에서 감정적인 갈등은 존재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법적 혼인 관계라는 좁은 테두리로부터 자유로운 관계와 간통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관계는 비난을 받지만 지속되고 있다. 사랑에 대한 부르주아적 이상은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한 인텔리겐차 노동자의 삶의 양식에도 적합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성과 사랑의 문제에 대하여 그리고 해명되지 않는 미스테리의 열쇠를 찾는데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다. 어떻게 개인적-사회적 행복의 총합을 증가시킬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발전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청년 노동자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연애-결혼의 관계에 관한 간결한 통찰을 진전시켜보면, 사랑이 처음 얼핏 보기에는 사적인 문제라고 보일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젊은 동지들이 깨달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사랑은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요소이며 사회는 항상 본능적으로 이를 사회의 이익으로 조직해왔다. 마르크스주의 과학과 역사의 경험으로 무장한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 질서에서 사랑이 차지할 공간을 발견하고, 그들의 계급적 이해에 부합하는 사랑의 이상을 결정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동지애적 사랑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는 동지애와 연대의 원리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 연대는 공통의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뿐만 아니라 집합 구성원들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관계들에 의해 구성된다. 사회체계가 연대와 협동에 의해 건설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사랑과 따뜻한 감정을 지니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노동자 계급으로 하여금 같은 계급내의 동료들이 가지는 고통과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민감함 그리고 집단에서 개인간의 관계가 가지는 의식을 통찰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독려해야 한다. 이런 모든 “따뜻한 감정”-감성, 연민, 공감 그리고 책임감-은 한 가지 원천에서 파생된다; 이것은 사랑의 좁은 의미에서의 성적인 무엇이 아니라 단어의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의 양상이다. 사랑은 결합되는 감정이고 따라서 조직될 수 있다는 성질을 지닌다. 부르주아는 이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안정한 가족 제도를 창조하기 위하여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결혼하는 사랑”을 도덕적 미덕으로 확립했다; “좋은 가장”이 되는 것은 부르주아의 눈에는 상당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 역시 사랑이, 광의의 의미와 양성간의 관계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가족-결혼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연대를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그럴 수 있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상적인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각 시대에는 그 고유한 이상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각각의 계급은 그들의 이해에 적합한 도덕적 내용으로 사랑을 개념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각각의 시대의 문화적 발전에 따라, 더욱 풍부해진 지적이고 감정적인 경험들에 의한 문화적 발전에 따라, 에로스의 이미지는 재정의 되어 왔다. 경제적 사회적 삶의 발전의 성장기에 사랑의 이상이 변화했다; 감정의 그늘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하고 오히려 소멸되기도 하였다.





수 천년의 인류사회의 역사의 과정에서, 사랑은 단순한 생물적 본능-고등동물부터 하등동물까지 모든 피조물들에게 고유한 재생산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지적이고 감정적인 양상을 획득하여 가장 복잡한 감정으로까지 발전해왔다. 사랑은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요소가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인 힘의 영향 아래에서, 재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은 정반대의 대립된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한 편으로 건강한 성적 본능은 자본주의의 기괴한 사회 및 경제적 관계에 의해 건강치 못한 음욕으로 왜곡되어버렸다. 성적인 행위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폭음이나 폭식 등에 의해 돋구어지는 욕망이라든지 왜곡된 음욕과 같은, 즐거움을 얻은 방식처럼 말이다. 남성은 건강한 성적 본능에 의해서라면 그를 이끌리게 하는 특정한 여성과 굳이 성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남성은 비록 특정한 여성에 대하여 어떤 성적 욕망도 갖지 않더라도 그녀를 통해 그의 성적인 만족과 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떤 여성에게든지 접근한다. 매춘은 이렇게 왜곡된 성욕 충족의 조직화된 표현이다. 만약 여성과의 성교가 기대한 쾌락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남성은 모든 종류의 타락으로 빠져든다.





이러한 건강하지 않은 음욕으로의 탈선은 관계를 생물적 본능이라는 원천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반면, 세기를 넘어 인류 사회적 생활과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감정적이고 지적인 경험들의 조합이 성에 대한 육체적 본능을 둘러싸게 되었다. 사랑의 현존하는 형태는 몸과 마음의 복합적인 상태이다; 이것은 본래의 원천인 재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과 분리되어왔을 뿐 아니라 종종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다. 사랑은 우정, 정열, 모성적 따뜻함, 매혹, 모성적 포근함, 동정, 경애, 친밀함 그리고 다른 많은 감정의 면모들이 조합되어 얽혀있는 것이다. 감정이 관계한 범위가 넓어서 육체적 매력과 감정적 친밀함이 용해되어있는 속에서 본래의 “날개달린 에로스”와 “날개없는 에로스”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해명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육체적 매력의 요소는 결여하고 있는 동지애적 사랑, 한 사람의 일에 대한 애정 혹은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사랑, 그리고 집단에 대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은 ‘영성화된’ 그리고 그 생물적인 기초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정도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감정의 표현들 사이에 첨예한 모순과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 인간의 노동에 있어서 지적, 감정적인 관여는 특정한 남성이나 여성에 대한 사랑과 조화되지 못할 수도 있고, 집단을 위한 사랑은 남편과 아내 또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한 개인에게 있어 동지애적 사랑(love-friendship)은 다른 사람의 열정과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한 경우는 우월하게 지적인 조화에 기초해 있다. 다른 경우는 육체적인 조화에 기초해 있다. “사랑”에는 다양한 측면과 양상이 있다. 시대를 거쳐 발전되어 오고 동시대인들에 의해 경험되고 있는, 감정의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측면들이 그러한 일반적이고 부정확한 용어에 의해 은폐될 수는 없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적 삶의 규칙 아래서 사랑의 복잡다단함은 갈등과 풀기 어려운 일련의 문제들을 낳는다. 19세기 말에는 작가들이 심리 묘사를 통해 사랑의 다양한 면을 흥미로운 주제로 다루곤 했다. 둘 혹은 심지어 세 명이 사랑에 관계하고 있었으며 이는 많은 부르주아 문화의 대표자들을 당혹케 했다. 지난 60년대에 우리 러시아의 사상가이자 작가였던 Alexander Herzen는 그의 소설 ‘누가 유죄인가?' (Who is guilty?)에서 이 내면 세계의 복잡함과 감정의 이중성을 폭로하려고 노력했고 Chernyshevsky는 같은 문제를 그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에서 다루었다. Goethe와 Byron 같은 천재 시인 그리고 성별간의 관계라는 영역에서 대담한 선구자였던 George Sand는 그들의 생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누가 유죄인가’의 저자 역시 다른 위대한 사상가, 시인, 공적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삶의 경험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발견했다. 이 때 많은 “소시민”들은 사랑의 어려움에 힘들어했고 부르주아 사고의 테두리 안에서 헛되이 해결책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아귀에 있다. 새로운 노동자간의 유대라는 삶의 양식과 이데올로기만이 이 감정의 복잡한 문제를 해명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양면성 즉 "날개달린 에로스"의 복잡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한 남자가 많은 여자와 혹은 한 여자가 많은 남자와 갖는 "에로스 없는" 성적 관계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 감정이 관여되지 않은 관계는 불운하고 해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동체를 피폐화하는 문제. 성적인 문제 기타 등등) 그러나 얼마나 그들이 얽혀있더라도 그들은 "감정적으로 극적인 상태“를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극적인 상태“와 갈등들은 다양한 그늘이나 사랑의 징후가 나타날 때 시작된다. 여성은 남자의 사고, 희망과 염원이 그녀의 것과 맞을 때 이끌리며 정신적으로 매혹된다; 그녀는 다른 이에게는 육체적으로 이끌린다. 한 남성이 한 여성에게서 공감과 보호해주고픈 부드러움을 느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여성에게서는 그의 지식 추구의 노력에 대한 지지와 이해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 그는 둘 중 어느 여성에게 그의 사랑을 주어야 하는가? 두 유형의 내적인 결합을 추구하기만 하면 삶의 충만함이 가득할텐데, 왜 그는 그 자신을 갈라놓으며 내적으로 불구가 되어야 하는가?





부르주아 체제 하에서 내적 감정 세계를 그렇게 분할하는 것은 필연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 문화 -소유제도에 바탕을 둔-는 사랑이 소유의 원칙들에 연관되어있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쳐왔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랑, 상호간의 사랑이 연인에 대한 절대적이고 불가분한 소유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해왔다. 남편과 아내간의 “모든 포용하는 사랑”이라는 이상과 한 쌍의 결혼이라는 정형화된 형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는 그렇게 배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이 노동자 계급의 이해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의 감정이 넓고 풍부한 영역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고도 바람직하지 않은가? 인간 내면의 복잡함과 감성적인 경험의 다양한 측면이, 공동체를 더욱 강화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감성적이고 지적인 결합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사람들을 함께 묶어주는 내적 연결지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연대감이 확고해지고 우애와 결속력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이상 실현이 더 수월해진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배타성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을 수용할 수가 없다. “날개달린 에로스”의 다양한 형식과 측면에 위선적인 부르주아지 공포와 도덕적 분개를 느끼는 것과 달리,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 환경들의 복잡한 작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이 감정들을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사랑의 복잡함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발전 중인 동지애의 이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부족사회시기에 사랑은 혈족 관계에서의 애착(형제자매간의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간주되었다. 크리스트 이전 시기의 고대 문화에서는 사랑-우정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상위에 뒀다. 봉건제 사회는 결혼 외부에서의 이성 사이의 플라토닉한 우아한 사랑을 이상화했다. 부르주아지는 일부 일처제의 결혼관계에 있는 사랑을 이상적으로 간주하였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에서의 협동과 남성 여성 모두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묶어주는 내적인 연대에서 그것의 이상을 찾았다; 이러한 이상의 형식과 내용은 다른 시대에 존재하던 사랑의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동지애에 대한 옹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의 시기에 노동자계급이 속박적인 이데올로기를 채택하여 이성간의 교제에서의 부드러운 감정의 흔적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는 “날개달린 에로스”를 파괴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심리학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서의 사랑의 가치에 대해 명료히 인식한다.





부르주아 문화의 위선적인 도덕은 에로스의 자유를 단호하게 제한하며,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에게만 오직 협조적이다. 결혼 외부에서는 돈으로 사거나 (성매매의 경우) 은밀한 (간음의 경우) 일시적이며 기쁨이 없는 성적인 관계인 “날개없는 에로스”의 여지만이 남는다. 노동자계급의 도덕은, 반면에, 이미 공식화되어있는 한에서 성적인 관계들의 외부의 형식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목표는, 사랑이 오랜 공식적인 결합을 취할지, 일시적인 관계를 취할 것인지에 의해 조금도 영향 받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사랑에 있어서의 어떤 형식적 제약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이미 사랑의 내용적 측면과 감성적인 경험의 부분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가 취해지고 있다. 이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의 도덕보다 엄격하고 단호한 방법으로 “날개없는 에로스”를 추방할 것이다. “날개없는 에로스”는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모순된다. 우선 그것은 불가피하게 과잉을 포함하며 그로 인해 육체적 황폐함을 가져온다. 이는 사회에 유용한 노동 에너지 자원을 고갈시킨다. 둘째, 영혼을 피폐하게 해, 내적인 결속과 건강한 감성의 발전과 강화를 억누른다. 셋째, 그것은 항상 성적 관계에서의 권리 불평등,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 남성 자기만족과 무감각을 남겨두고 이는 의심할 바 없이 동지애의 발전을 방해한다. “날개달린 에로스”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분명히 성적인 매력은 역시 “날개달린 에로스”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새로운 문화-민감성, 책임감과 타인을 돕길 바라는 욕구-의 생산자로서 필수적인 내면적 자질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한 사람의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만 그러한 자질을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목표는 남성과 여성이 선택된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 관하여 이러한 자질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날개달린 에로스에서 우월한 감정의 그늘과 뉘앙스에는 관심이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감정이 동지애의 발달과 강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사랑-동지애라는 이상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끊임없이 진척되어오면서 부르주아 문명의 배타적인 전쟁과도 같은 사랑을 대체해왔다. 이것은 타인의 개성에 대한 고결함과 권리, 확고한 상호 지지와 감정적 공감, 타인의 욕구에 대한 책임성에 대한 인식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동지애적 이상은 절대 독재 타도를 위한 투쟁의 중요하고도 어려운 이 시기에 프롤레타리아에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면서 사랑이 변화하고 선재하지 않았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때가 되면 새로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간의 “공감적 유대”는 더욱 성장하고 강화될 것이다. 사랑의 잠재력은 더욱 증가될 것이며, 사랑-연대는 부르주아 체계에서 경쟁과 자기애가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다. 정신적 집단화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사람들을 사랑과 결혼으로 도피시키도록 유도했던 개인주의적 자족과 “내적 외로움이라는 고립”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을 더욱 친밀한 감정적, 지적인 접촉으로 이끌어줄 많은 연결선들이 발달할 것이며,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감정들은 공적인 영역으로 이전될 것이다. 양성간의 불평등과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과거의 희미해져 가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집단적 사회에서는 즐거운 조화와 동지애를 바탕으로 사람들간의 관계가 발달할 것이고, 에로스는 인간의 행복을 다층화하는 감정적 경험들로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자치하게 될 것이다. 이 변화된 에로스의 본성은 무엇이 될까? 제아무리 대담한 환상을 편다할지라도 이 질문에 답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는 명확하다; 새로운 인간들의 지적, 감정적 유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현재의 세계에서의 사랑이라는 여지는 더욱 적어질 것이다. 현대의 사랑은 항상 죄악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의 사고와 느낌을 모조리 흡수해 버리고, 집단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미래사회에서는 이러한 분리는 불필요한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수용되는 성적 관계 규범은 (왜곡과 과장 없는) 자유롭고,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이끌림과 “변화된 에로스”에 기초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두 문화사이에 서있다. 그리고 모든 최전방에서의 이 두 세계들의,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포함하는, 전투에 참가하는 이 전환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는 “공감적인 느낌”을 가능한 빨리 축적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 이 시대에는 관계를 정의하는 도덕적 이상은 꾸밈없는 성적 본능이 아니라 동지애에 대한 다면적인 사랑 경험이다.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도덕에 의해 공식화된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 이러한 경험들이 세 가지의 주요 원리에 합치해야만 한다; 1. 관계에 있어서의 평등 (남성이기주의와 여성 개인에 대한 노예적 억압의 종식) 2. 타인의 권리와 타인의 마음과 영혼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부르주아 문화에 의해 고무되는 소유 관념) 3. 동지적 감성, 사랑하는 이의 내적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능력 (부르주아 문화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이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날개달린 에로스”의 권리를 요구할 때, 동시에 노동 계급의 이상은 이러한 사랑을 집단에서의 사랑-의무라는 더욱 강력한 감정보다 중요시하지 않는다. 아무리 집단의 두 구성원간의 사랑이 위대할지라도, 두 개인을 집단에 결합시켜주는 유대가 항상 선행할 것이고, 더욱 강해지고, 더욱 복잡하고 유기적이게 될 것이다. 부르주아 도덕은 모든 이에게 사랑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프롤레타리아 도덕은 모든 이에게 집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젊은 동지인 당신이 동지애가 노동계급의 이상이 된다 할지라도, 이 새로운 감정의 “도덕적인 척도”가 성적 관계에 있어 새로운 압박이 되지 않겠는가 라며 반대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아직 부르주아 도덕이라는 족쇄로부터 사랑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그것을 다시금 노예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 나의 젊은 동지인 당신은 옳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 “도덕”을 사랑-결혼 관계에서 거부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불가피하게 고유의 계급적 도덕과 행동규범을 발전시키게 된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업무에 더욱 긴밀하게 부합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감정을 교육한다. 이런 방식이라면 감정이 다시금 속박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의심할 바 없이 부르주아 문화의 날개를 꺽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과정을 유감스럽게 하는 짧은 견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계급은 선행하지 않았던 미, 힘, 광채를 지닌 감정의 다양한 측면들을 발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의 문화적, 경제적 기초가 변하면 사랑도 변화할 것이다.


맹목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고 요구하는 열정은 약해질 것이다; 소유 관념, 파트너를 “영원히” 눈멀게 하는 이기적인 욕망, 남성의 자기 만족과 여성의 자기 단념은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가치 있는 면과 요소는 발달할 것이다. 타인의 인격의 권리를 더욱 존경하게 될 것이고, 상호 감성은 교육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키스와 포옹으로서 뿐만 아니라 공동의 창조와 활동에 의해서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임무는 사회적 생활로부터 에로스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형성에 따라 그를 재무장시키는 것, 그리고 동지애적인 연대라는 새롭고 위대한 심리적 힘을 지닌 영혼들의 관계로서 성적 관계를 교육시키는 것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문제에 직면해있는 젊은 노동자들의 관심이 “타락”의 증후는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명확하게 이해하길 바란다. 나는 젊은 노동자들간의 관계에서 사랑이 반드시 점유되어야 하는 공간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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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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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계절.

일년 중에 봄을 좋아하지만 자꾸만 춘래불사춘이라는 문구 그대로 아름다움에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다.

절망을 느끼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계절이란 삶을 더욱 서럽게 만드는 요소이다.

(말그대로 나는 죽겠는데 왜 날씨며 풍경이며 이렇게 찬란한거야-_-)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마음 편히 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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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분야를 좌파적 관점에서 공부하고 싶은 분들을 찾습니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대학원을 왔는데,

이 분야를 급진적 관점에서 공부하려는 동기들을 찾기가 어려워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제가 현재 리딩 리스트를 작성 중이긴 한데 대충 이런 분들의 단행본과 논문들을 읽을 생각입니다.

 

주로 Howard Waitzkin (맑스주의자이시며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많이 하셨고, 질병을 구성하는 사회적 원인이 주목받기 훨씬 전부터 있었던 엥겔스나 비르효같은 문헌들을 연구하기도 하셨습니다. 국제무역, 세계화가 어떻게 제 3세계 민중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셨스니다. 또 환자-의사 커뮤니케이션을 최초로 연구한 분이기도 하시고요. 그냥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SES-사회적 지위, 수입, 교육수준-에 따라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의 양과 질이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연구도 하셔습니다. 보건의료분야에서 제가 아는 한 가장 진보적인 학자이십니다. 활발한 사회운동가이시며 1960년대부터 꾸준히 저술활동과 정치활동을 병행해 오셨습니다.

 

Richard Wilkinson 평등한 사회일수록 건강하다는 주장을 실증적으로 가장 먼저 주장하신 분입니다. 상대적 불평등과 절대적 불평등이 어떻게 건강수준에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하셨습니다. 제가 아직 이분 저작이나 논문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Waitzkin교수님 말로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에 관한 연구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Kate pickett:  윌킨슨 교수와 The spirit level이란 책을 함께 썼는데  경제적 불평등과 건강, 그리고 기타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공동저술이 많으니 윌킨슨 책을 읽으면 참고할 일이 많을 듯 합니다.

 

Anne Emmanulle Birn 토론토 대학의 여성학자인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여성건강, 보건의료정책 비교연구, 보건 정치학, 라틴아메리카의 보건의료 역사 등에 관해 저술하셨고 특히 제 3세계의 여성건강에 대해서 심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Michael Marmot: 역시 사회역학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분 중 한 분이십니다. 윌킨슨과 공저를 많이 했고요. 사회역학에서 윌킨슨과 쌍벽을 이루는데 둘다 영국출신이신데 원래 사회역학쪽이 영국에서 많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함께 책이나 논문을 읽고 한국상황을 해석하거나, 혹은 논의가 놓친부분, 비판지점들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저에게 메일(lucyinthesky0816@gmail.com)주시거나 이 곳에 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안타까운 것이 이쪽 분야가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나 논문들이 거의 없습니다.(ㅠㅠ)

있다고 해도 예전에 써진 것들이 대부분이구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두 영어로 읽을 수 밖에 없네요.

윌킨슨 교수의 책은 평등해야 건강하다...정도가 번역이 되어 있는데 2009년에 나온 The spirit level이 최고의 저서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글로 나와있는 건 한글로 읽고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영어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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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고냥이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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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예쁜 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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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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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역자해설

 여기 번역하여 내놓은 글들은 바로 이 ‘자본의 본성’을 해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다루고 있다.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은 신고전파의 자본 이론도 완전히 거부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자본 이론 또한 그와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아 기각했다. 대신 그가 착목한 지점은 실제의 현실에서 ‘자본’이라는 이름의 제도가 작동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분석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가 찾아낸 사실은 자본이란 경제적 생산 행위 그 자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소유권이라는 법적 제도적 권력을 이용한 재분배의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자본 이론에서 자본의 본질과 그 축적 과정의 성격을 파악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자본은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물질적 자본이며, 그 이윤과 축적의 크기는 그 자본재에 내포되어 있는 생산성의 발현의 결과라고 보는 신고전파 이론이다. 둘째, 생산에 들어가는 원초적 재료, 노동과 토지를 투하하여 생산을 겪는 시간이 자본이며 이윤과 축적의 크기는 그 시간적 과정을 이자율 등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보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이다. 셋째, 자본이란 불변 자본, 즉 그것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를 착취한 ‘죽은 노동’의 집적이며 , 그 크기는 원칙적으로 생산 과정에서의 착취율의 함수라고 보는 마르크스 경제이론이다. 이 세 이론은 비록 서로 큰 차이가 있으나 하나의 전제를 공유하고 있으니, ‘자본이란 생산 과정에서 발현되는 생산성을 체현한 존재’이며, 이렇게 생산 과정에 뿌리박고 있는 자본이 화폐적 표현 형태로 전환된 것이 자본의 가치이자 이윤 및 축적이라는 것이다.


베블런의 자본 이론이 다른 모든 자본 이론과 애초에 갈라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바로 이러한 요소 생산성이라는 개념을 거부했다는 점에서다. 그가 보기에 ‘자본의 생산성’이란 현실의 두 가지 요소를 합쳐서 구성해놓은 신화였다. 그 두 요소 중 하나는 사회 공동체 전체가 생산의 수단과 방법에 대해 공유하는 지식이요, 다른 하나는 그 지식을 자기의 것으로 전유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자본가의 권력이다. 즉, ‘생산성’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여 전체가 이루어내는 산업의 생산 과정 자체라는 것이다. 산업의 생산 과정이 자본, 그리고 자본의 이윤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은 자본을 소유한 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권력에 기초하며, 따라서 자본이란 본질적으로 생산이 아닌 권력에 기초하는 존재이다.


  그는 근대 경제 사상에서 가장 초석이 되는 개념의 하나인 ‘생산성productivity'이란 고대와 중세를 거쳐 현대로 내려온 ’정령 숭배animism', 즉 일종의 물활론적 미신이라고 보았다. 주지하듯이 18세기의 중농주의자들physiocrats은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산출하는 틀이라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연physis 개념을 받아들여 이것을 ‘가치’를 낳는 원천으로서 생산성의 개념과 동일시했다. 이후 애덤 스미스Adam Smith에게서 시작된 가치론 논쟁사는 그러한 ‘가치’를 낳는 원천은 노동에 있는가 자본에 있는가 시간에 있는가 등의 ‘요소 생산성’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베블런은 이러한 ‘생산성’이라는 하나의 정령을 가정하는 태도가 근대 초기의 자연관에 기초한 하나의 미신이며, 더욱이 그러한 정령이 경제적 과정의 구체적인 사물에 있는 양 여기는 것은 원시인들의 애니미즘과 똑같은 선입견preconception이라고 보았다.


  그는 ‘생산성’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이는 자본재이든 인간 노동이든 특정한 요소에서 귀속되는 것이 아니며, 어떤 공동체가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서 어떤 욕망을 충족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과 수단에 대해 공동체 전체가 보유하는 총체적 지식만이 궁극적인 생산성의 담지자임을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공동체 전체의 효율적 생산 활동을 담보해 주는 지식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화폐 가치를 가질 수 없으며, 또 자본도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벌어지는 생산 활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한다. 오로지 특정인이 그 공동체 전체의 지식을 ‘볼모’로 잡아 사회 전체로부터 ‘몸값’을 뜯어낼 때에만 이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지식이 특정인의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인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떻게 이러한 ‘인질극’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가. 생산의 수단과 방법에 관한 공동체 전체의 지식은 경제 단계가 발달함에 따라 특정한 ‘사물’에 체현되기 마련이다.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게 된 19세기 중반 이후의 생산 지식은 모두 공장과 기계라는 사물에 재현된다. 여기에서 폭력을 동원한 지배 계급이 그 사물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설정하게 되는데, 이 근대적 소유권의 실질적 의미는 사실상 ‘자신이 그것을 사용할 권리’가 아니라 ‘남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권리’이다. 한 번 더 비유를 들자면, 지배 계급이 사회적 생산이라는 흐름이 통과할 수밖에 없는 기계나 장비 등의 ‘병목’을 잡아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동체 전체로서는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대가를 그 생산 수단의 소유자에게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되며, 이것이 그 장비로 생산된 재화에 대한 높은 가격과 그로 인한 높은 이윤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 자본 소유자가 이윤을 높이기 위해 하게 되는 일은 산업 생산을 한없이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효율적 활용을 일정한 이윤이 보장될 만큼만 가동되도록 제한하는 ‘깽판 놓기sabotage', 즉 베블런의 표현을 빌리면 “효율성의 주의 깊은 철회”라는 것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와 베블런의 차이를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자본주의의 ‘착취적’ 성격을 이론화했지만, 두 가지 정도의 큰 차이를 보인다. 첫째, 자본이 착취하는 대상을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잉여 노동이라고 본 반면에 베블런은 노동자만이 아닌 사회 공동체 전체의 생산력과 복지라고 보았다. 베블런은 노동 가치론 또한 ‘요소 생산성’의 신화에 기초한 그릇된 이론이라고 보았으며, 자본이 사회 공동체 전체로부터 가져가는 잉여의 성격은 ‘추상 노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액수의 ‘화폐’로 표현되는 생산물에 대한 청구권이라고 보았다. 둘째,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늘 가격 경쟁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이윤을 올리기 위해 항상 생산성을 극대화하려 든다고 보았다. 비록 이것이 최종적으로 과잉 생산과 이윤율 저하라는 ‘비생산적 결과’를 낳기는 하지만, 이는 생산성을 오히려 너무 높이려고 노력한 결과 생산량이 무계획적으로 과도해지고 또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과도하게 기계 중심이 된 데 따른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다. 반면에 베블런은 자본주의란 애초부터 생산성의 극대화가 아닌 그것의 제한, 즉 생산에 대한 ‘깽판 놓기’에 기초하고 있기에, 비효율적 비생산적 성격을 본질적으로 갖는다고 보았다. 결국 베블런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사회적 모순이 생겨나는 대립선은 자본 대 노동이라기보다는 자본 대 사회 공동체 전체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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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스런 진보경제학계의 '사회학과 정치학'

펌: http://blog.naver.com/leng70/110016149471

 

끔찍스러운 진보경제학계의 ‘사회학과 정치학’ (댓글:14, 추천:8)
에로이카() 2006-03-22 16:11

내 책상 위에는 지금 세 권의 책이 있다. 윤소영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2006, 공감),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한국경제] (2005, 책갈피), 그리고 김수행, 김공회의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 (2005, 서울대학교 출판부). 이 페이퍼는 위 책의 내용들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그냥 방금 윤소영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을 다 읽고 서평을 쓸까 하다가, 서평에 쓰기도 뭐한 문제고  하지만, 아무래도 짚고 넘어가야 서평에서 말이 꼬이지 않을 것 같아 따로 몇 자 적어두기로 한다.

 

10명의 경제학자들을 선정해서 다루는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의 저자들은 논란거리를 피하기 위해 애초부터 이 10명의 선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고 한 수 접고 시작한다(iv). 그러나 이 열 명에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통해 종속심화-독점강화 테제를 들고나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윤소영이 들어 있지 않은 것에 의구심을 품은 이가 비단 나 뿐이었을까? 윤소영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은 이 의구심을 심증으로, 그리고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한국경제]는 이 심증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윤소영-김수행

 

윤소영은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과천연구실의 어떤 대학원생이 김수행 교수에게 박사논문을 제출했는데, 논문 주제의 유일한 전공자였던 정운영 교수를 김수행 교수가 기피했다는 일화를 들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전통이 단절된 것이 반드시 부르주아 경제학 탓인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안병직 교수에 이어 김수행 교수도 만만찮은 기여를 했거든요. 진보경제학계의 사회학과 정치학은 정말 끔찍스럽습니다” (윤소영 2006: 105). 이 때까지만 해도 이게 앞서도 몇번 나온 김수행 교수에 대한 지은이의 유감 표명(65, 81)의 연장이려니 했다. 그러다 책의 맨 뒤에 실린 정운영 선생 추도문을 보면서 이 끔찍한 사회학과 정치학이 더욱 궁금해졌다. 403쪽에서 지은이가 언급한 [민중언론 참세상]에 실린 김수행 교수의 글("이 못난 사람아! 왜 먼저 죽어!")은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중앙일보로 옮긴 뒤 정운영 교수의 논조를 못 마땅해 하는 나였지만, 정운영 교수들 두고 당신은 경제학자보다는 신문기자에 더 적성과 소질이 맞다고 계속 생각해왔다는 그 이상한 추도사는 나를 아연실색케 하였다. 정운영 교수와의 옛 정이나, 글솜씨나 감수성에 대한 칭찬, 변절에 대한 책망, 그리고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원망 등이 뒤엉켜 있는 이 글의 형편없는 글솜씨는 충격이 컸거나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좋게 생각한다 해도 글에는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뭔지 모르겠으나, 김수행 교수가 정운영 교수에 대해 어떤 미안함이나 컴플렉스 같은 것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여간 김수행 교수의 이 글에 충격을 받은 윤소영 교수는 [밥자유평등평화] (http://bob.jinbo.net)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김수행 교수처럼 정 선생을 추모한답시고 변절 운운하는 것은 김 교수의 생각(저는 김 교수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이나 두 분의 관계(자신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이고 정 선생은 저널리스트일 따름이라는 단정은 명예훼손급의 망언입니다)를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짓입니다.

 

게시판의 또 다른 글에서 윤소영 교수는 김수행 교수가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었는 지모르겠다는 말을 남기면서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은 김수행 교수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으며, 그가 언제 입장 같은 게 있었냐는 윤소영 교수의 댓글은 김수행 교수의 추도사 만큼이나 뒤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 숨겨져 있는 무언가의 일단은 윤소영의 이 책에서도 나온다. 지은이에 따르면, 서사연 해산 이후, 이전의 한신경제과학연구소와 비슷한 성격의 연구소를 만들려는 흐름이 있었으나, 연구소 창립이 구체화되는 단계에서 김수행 교수가 참여를 거부하고, 다른 교수들(정운영, 김기원, 정성진, 김성구)도 시큰둥해 하자, 자신 혼자 과천연구실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65). 물론 이것말고 다른 일들도 많을 것이다.

 

어쨌든 정리하면, 김수행은 윤소영을 무시하고, 윤소영은 김수행을 물어뜯는다.

 

 

윤소영-정성진

 

김수행, 김공회의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은 맨 마지막에 정성진을 다룬다 (122-137). 그 정성진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윤소영 교수에 대한 유감을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성진 2005: 221-222).

 

짜골로프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 교과서]를 선전하는 데 앞장섰던 윤소영도 얼마전부터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으로 개종했다. 비록 문제점투성이의 일국적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이기는 하지만, 이는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윤소영 (2004)은 이 같은 자신의 이론적 입장의 수정 혹은 변화와 관련된 자기비판이나 해명 대신, 엉뚱하게도 지난 10여년 이상 소련을 일관되게 국가자본주의라고 비판해온 나와 트로츠키주의를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과거의 오류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윤소영은 이미 14년 전부터 소련 국가자본주의 논쟁을 소개해온 나의 글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정성진 교수는 마치 클리프 그룹이 국가자본주의론을 대표하는 것처럼 호도하지만 이는 무지의 소치일 따름이라는 등으로 비난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사실 호도이고 역사의 날조다. 게다가 윤소영 (2002)의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은 뒤죽박죽의 이론적 기회주의를 반영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잡식재단하면서 자신의 무지콤플렉스, ‘트로츠키주의 알레르기를 달래는 것은 자유이지만, 스탈린주의와 반공주의의 폭압과 개량주의의 포섭에 맞서 노동자계급 자기 해방에 헌신해 온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멋대로 왜곡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사실 정성진의 이러한 분노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에서도 윤소영은 정성진 교수가 활동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 그룹 다함께에 대해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인다. 윤소영에 따르면, 트로츠키주의의 부활은 남한이나 그리스에서만 볼 수 있는 다소 특이한 현상이며, 이들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식의 알리바이정말 기가 막히는 태도란다 (39).  더 나아가 윤소영은 정성진을 다음과 같이 약올린다. 아래에는 다함께라고 나오지만, 이는 사실 정성진이다.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발표한 후에 제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그러나 다함께 같은 데서는 적대감이 더욱 심해졌는지 논쟁을 해보자고 덤벼들곤 하지요. 그런데 미안하지만 저는 그런 논쟁은 사절입니다. 완전히 시간 낭비일 따름이기 때문이에요. 모든 논쟁에는 동지적인 신뢰나 적어도 정직성과 분별력이 있어야 하는데, 다함께에게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 다함께는 아주 특이한 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다함께를 보면 한 손에는 코란 또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지하드에 나서는 이슬람 시아파 전사가 생각날 정도이지요. 게다가 제가 듣기로 다함께는 노동자의 힘과 만나도 늘 그렇게 으르렁댄다고 합니다. 무슨 시아파가 수니파와 싸우는 것 같아요. 제 말이 정 의심스러우시다면, [이론] 4호에 소개된 캘리니코스의 만델 비판을 한번 읽어보세요. 어떻게 같은 트로츠키주의자에게도 그렇게 적대적일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윤소영 2006: 344).

 

정성진이 보는 윤소영은 은폐된 스탈린주의자이며, 사실을 호도하고, 역사를 날조하며, 이론적 기회주의자이며, “무지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넘이다. 반면, 윤소영에게 정성진은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오리발이나 내밀면서, 동지적 신뢰는 커녕 정직성과 분별력도 없고, 지들끼리도 껀수 잡아 싸우는 데 바쁜 한심하면서 질까지 안 좋은 넘이다. 정성진은 윤소영 한 번 걸리기만 해보라며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고, 윤소영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하는 식으로 실실 쪼개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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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있다. 윤소영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정성진은 바로 김수행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윤소영의 모습이다. “본래 남성이란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윤소영의 말(363)은 우리나라에서 난다긴다 하는 이 좌파경제학자들 김수행, 윤소영, 정성진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라고 한다면 이들은 왜 자기가 거기 들어가야 하느냐고 하며 억울해 할까? 그 밴댕이 소갈딱지들 갖고 사회성격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기는 상당 기간 동안은 힘들 것 같다. 우울한 현실이다.

 

사실 이 세 경제학자들은 남한의 좌파 경제학자들이 21세기에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각기 다른 전형들이다. 김수행 교수의 경우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담당하고 있으며, [자본]의 국역자이다. 일단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비판에 관심을 갖게 되면, 제일 처음 접하게 되는 이름이고, 행여 그 부분을 전공으로 삼을라치면 거쳐야할 큰 스승의 위치에 있다.

 

물론 윤소영 교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의 학생은 일류이지만, 교수는 이류일 뿐이고, 비봉판 [자본]은 대학원생들 도움을 받아 개역을 했다고는 하지만, 북한판을 남한말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윤소영 교수는 80년 광주항쟁을 전후하여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한 이래, 자신의 입장을 갖고 PD론을 정초했으며, 절친했던 선배인 이병천이 중진국론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 또 발전국가론으로 널뛰기를 하고 있을 때, 알튀세르-발리바르 계열의 마르크스주의의 한 길을 걸어왔다. 한신대라는 좌파 대학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현실 운동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 과천연구실을 꾸리고 있다. 그는 87년 이후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실에 나오는 후학들이 행여 선거에 참여하여 민주노동당이라도 찍을까봐) 과천연구실 MT 출발을 선거당일 아침 6시에 했다는 얘기를 저서에서 자랑스럽게 한다.

 

이런 윤소영은 정성진 교수에게는 파렴치한 스탈린주의자일 뿐이다. 정성진 교수 또한 경상대라는 좌파 대학 경제학과에 자리잡고 있고, 교수라는 점잖은 직책에도 불구하고 다함께라는 정치조직에 투신하고 있다. 트로츠키주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동시에, 남한 마르크스주의 르네상스를 위해 학진의 후원을 받는 [마르크스주의 연구]라는 반년간 학술지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이들 말고도 다른 전형들을 들 수 있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 연구소의 장상환, 참여연대나 대안연대에서 활동하는 교수들, 그리고 재야의 채만수 등등...

 

밖에서 보기엔 그 물이 그 물이고, 우리 힘 한 번 합해서 뭐 한 번 해봐야 하는데... 꼰대들이라 완전 콩가루다. 뭐 거창하게 단결투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고 제대로 된 토론문화 한 번 만들어 보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모두들 상대방만을 탓하고, 자기가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아니면 이제 연세들이 드셔서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선생들 밑에 있는 대학원생들은 어떨까? 그 사회도 줄을 서야 할텐데... "나는 바담풍 하더라도 너는 바람풍 해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 또 이 양반들이 쓴 책을 사볼 어린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은 또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역시 우리 윤소영... 역시 우리 정성진... 이럴까? 또 그런다고 한들 공부하는 양반들인데, 그게 또 자기한테는 무슨 득이 되겠는가?

 

안 그래요?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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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7

2002년 초등학교 5학년 짜리 아이가 자살하면서 남겼던 말은 "우리 부모님은 하루에 8시간을 일하시는데, 12살이 나는 왜 13시간을 공부해야하나,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였다.

지난 해에 자살한 초등학생이 남긴 유서는 “나의 가장 큰 결점은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이번에 친 시험점수다. 언제가 나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OO를 이기고 싶다.”

“저는요, 학원에서 시험보면 영어는 항상 100점 맞아요. 근데 수학은 꼭 한 개나 두 개 틀려서 속상해요.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영상에서 초등학교 2학년 예영(가명)이가 한 말이다. 이 동영상은 요즘 초등학생들의 성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웅변하고 있다.

서울지역 4~6학년 초등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얼마 전 교육커뮤니티 ‘즐거운 학교’가 스트레스 지수를 조사한 결과 ‘과외’가 초등학생의 스트레스 원인 1위로 꼽혔다. 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과외를 하고 과외 과목은 평균 3.13개, 과외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37분이라는 것이다.

조사 결과에는 27%의 초등 학생들이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고, 그 이유가 바로 ‘성적’ 때문이라는 결론도 나와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인천에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방학숙제를 하다가 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했다. “학원을 조금만 다녔으면 좋겠다.” 자살한 아이가 자주 하던 말이다. (ebs 지식채널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0. 들어가며.

 

 낯설게 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당신은 한국의 입시제도와 "미친교육"에 얼마나 분노하며 사는가? 모순적인 사회를 뒤집겠다고 나서는 좌파들조차, 분신하신 노동자 한분의 죽음에는 그토록 슬퍼하면서도, 한해에 200명의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한국의 교육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 어떤 노동착취보다 광범위하고 대규모로 벌어지는 현상임에도, 좌파들의 교육제도, 특히 대학의 서열에 대한 문제의식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실천으로 보여주는 행동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않을까?

 나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대학서열 철폐운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휴머니즘적인, 혹은 인권의 관점에서 교육문제만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과 능력'에 관한 이데올로기 저항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능력없는 인간은 한달에 100만원을 채 못받는 비정규직이 되어도 싸다는 것은 중학교때 실업계와 인문계를 나누어 실업계 학생들을 '똥통' 취급하는 중학교의 분위기로부터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타인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시험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을 먼저 배운다. 한국의 중등 교육기관은 그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문서에 적혀져 있는 전인교육은 간데 없고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도구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외고생들이 불리한 내신을 포기하려고 학교를 자퇴한다, 세상에. 

 이번 10월 고려대 수시 2학기 고교등급제 논란은 나로 하여금 한국의 모든 교육제도의 문제는 '학벌'에서부터 유래하였으며, 서열을 혁파할 수 없다면 이와 같은 류의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임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정권의 3불정책과 수능등급제가 사교육비 절감과 대체 무슨 관계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대학 서열이 남아있는 한, 그것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 1등부터 꼴등까지 '네임벨류'로 서울의 대학들이 줄세워질 수 있는 시스템에서는, 가장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은 서울대에 진학하려 들기 마련이고, 입시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아이와 학부모는 온갖 돈을 들여 그 기준에 맞추려 들것이다. 사교육과 공교육 정상화를 그토록 외치던 이해찬의 교육정책 이후로 사교육비가 더욱 증가했던 것은 예정된 결과였다.

 

1. 학벌의 정의.

 김상봉씨의 논의를 가져오겠다.

2. 한국사회에서의 학벌.

 

3. 왜 대학서열철폐만이 문제의 답인가?

4. 대학 평준화의 조건.

5. 대학 평준화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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