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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광장이라는 편견을 버려!

인터넷이 광장이라는 편견을 버려!

액트 13호


지금까지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LG 칼텍스 노동조합이 파업을 전개할 당시 인터넷 이용자들은 난데없이 이상한 광고를 봐야했다.



[네이버 광고 사진]


신문의 1면 헤드라인, TV 뉴스라면 그 날의 첫 뉴스에 해당할만한 자리에 자리잡은 저 광고판에는 ‘복귀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는 회사의 협박이 담겨 있다. 그 광고는 인터넷에서 잘 나간다는 네이버와 다음, 엠파스의 명당 자리를 차지했으며, 자칭 진보적인 언론이라는 오마이뉴스에서도 한자리를 꿰어찼다. 돈으로 구입한 ‘자유로운 인터넷’과 돈으로 구입한 ‘언론 지면’은 노동자들을 완전히 포위하고, 항복하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회사 이익의 지역사회 환원’이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노동자들의 주장은 그렇게 귀족노조라는 악선동과 협박 문구에 가려 정유공장의 시꺼먼 연기 속으로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정유회사는 광고만 하고 있던 게 아니다. 해피 칼텍스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기사와 글들을 모아놓고, 지금까지도 노동조합의 파업 이탈자들을 공공연하게 모집하고 있다.

포위 당한 것은 해당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대다수가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시민들은 실제로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의 승리가 직간접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이해관계에 놓여있음에도 노조를 비난했고, 심지어 노조가 이길 경우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여수 지역의 시민들까지 노조를 욕했다. 그 모든 비난의 근거는 회사의 비싼 광고들과 언론이었다. 이번과 같이 미디어가 노동자의 투쟁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벌써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미디어의 자본 종속성과 편향, 커뮤니케이션의 일방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하겠다. 최근에는 그 대열에 인터넷이 동참했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 역시 다른 미디어와 같이 자본과 권력에 종속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점점 더 일방향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점을 보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1. 인터넷은 만인의 평등한 광장인가

흔히 인터넷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개념이 ‘광장’이다. 이때 광장이란 고대 그리스 직접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고라 광장’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용자들이 아고라 광장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을 열어놓고 함께 떠들어대며 소통하고 결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TV, 라디오 등 매스 미디어의 [1: 다수] 일방향적인 소통 방식과 달리 인터넷이 [다수 : 다수] 소통 방식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성’과 ‘현실’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인터넷이라는 독특한 기술방식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지라도 현실 속에 그것이 발현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했을 때 그 기술의 ‘민주적 커뮤니케이션 가능성’을 이야기 한 것은 인터넷이 처음은 아니다. 19세기 말 영화가 발명되었을 때 잭 런던은 언어의 세계를 뛰어넘는 보편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함으로써 계급간, 집단간, 국가간에 존재해온 기존의 불평등 구조가 해소될 것이라고 예찬했다. 그리고 루이 멈포드는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 (마치 요즘 인터넷을 표현하듯) 그리스 시대 아고라의 참여적 정치 문화의 복원이 도래할 것이라고 찬양했었고, 텔레비전이 출현했을 때 마샬 맥루한은 형제애 넘치는 지구촌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미디어의 그러한 가능성은 실현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미국 등 제1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의 문화를 세계화하는 이데올로기의 무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대중을 일방적으로 세뇌하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주자로 취급되고 있다.1)

모든 미디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과 민주적 토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는 것은 기술을 둘러싼 정치적인 권력 관계, 경제 구조 및 사회 제도, 그리고 이에 대한 민중들의 투쟁에 달려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가지고 있는 민주적 가능성이 사회적인 투쟁 없이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순진한 기술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이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도입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노동자․민중의 투쟁없이 그 민주적 가능성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 점은 인터넷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민주적 가능성이 저절로 실현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오해일 뿐이며, 지금 저절로 실현되고 있다는 선전은 악의적인 사기이다.

‘광장’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인터넷 ‘광장’이라는 의미에는 누구든지 참여하여 타인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이 담겨있다. 물론 우리는 광장에서 무차별 타인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광장에 모인 자들 중에 유달리 특별한 소수만 연단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을 수 있도록 구조화 되어가고 있다면?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은 아래에서 연단을 보고 투덜대거나, 주변 몇몇 사람들과만 소통할 수 있다면?

1) 인터넷 광장의 구체적인 모습

우선 몇가지 통계 자료를 통해 현재 인터넷 미디어의 특성을 살펴보자.

현재 랭키닷컴(www.rankey.com)이라는 순위 정보 사이트는 2002년 8월 22일 현재 국내 인터넷 이용률 1위부터 100위까지 모든 사이트를 ‘상업적인 영리 사이트’가 차지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영리 사이트는 104위에 서울시청이 처음 등장한다.

전체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는 종합검색엔진 분야에서 분야 점유율 57.37%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순위 2위의 ‘다음’은 커뮤니티 포탈 분야에서 63.76%, 전체 순위 3위 네이트는 유무선 포탈 분야에서 무려 96.92%를 차지하고 있다. 이 통계들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인터넷 이용 대다수가 약 10여개의 영리 사이트로 집중되어 있다.

이는 국내만의 현상은 아니다. 2억 3백만개의 웹페이지에 대한 샘플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전체 중에서 90%에 해당하는 대다수의 문서는 10개 이하의 링크를 받고 있는 반면, 3개의 극소수 페이지는 100만 이상의 링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한 웹상의 링크 중 80%는 웹페이지 중 15%로 향한다.2) 그리고 Alexa Web Search(www.alexa.com)라는 통계 사이트에 따르면 전세계 영문 사이트 중 10위권 안의 사이트는 모두 영리사이트로 이루어져 있다.3)

한편, 2003년 하반기 정보통신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목적은 [다수 : 다수]의 소통이 아니고 주로 ‘자료정보 검색’이나 ‘게임’, ‘이메일’이다. 또한 같은 자료에서 인터넷 사용자들의 정보습득 매체는 TV 77.1%, 인터넷 64.3%, 신문 42.9%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이 기존의 대표적인 매스미디어인 신문을 앞지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4) 즉, 대부분의 네티즌은 ‘극소수의 영리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포탈 사이트가 취하고 있는 정보 정책은 다수의 이용자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2) 인터넷 광장의 주인들

현재 이용률 순위에서 10위권 내에 들어있는 사이트들, 즉 국내 인터넷 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이트의 초기화면을 보면 다른 어떤 정보보다 기업들의 광고에 주요하고 가장 넓은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엠파스 초기화면>


이는 초기화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정보를 검색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각 포탈 사이트들은 광고료 지불 순위에 따라서 정보 검색의 앞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용자들은 자신이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는 생각으로 검색사이트를 이용할 때, 인터넷 자본이 선택한, 가장 많은 광고비를 낸 기업의 자료를 최우선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네이버 검색 광고 사진- 검색 순위에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현재 ‘광고 수입’은 인터넷 자본의 수익구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 자본은 다른 미디어로는 상상할 수 없는 주요한 자리를 광고에 내어주고 있다. 인터넷 미디어의 모든 자료 배치는 이 ‘광고’를 위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찾는 ‘정보’들은 광고가 차지한 자리 옆에서 부록처럼 붙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자리 배치는 마치 50분동안 광고를 하고 10여분 뉴스나 드라마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어느 것이 정보이고, 어느 것이 광고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이제 광고는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의식을 조작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광고료를 많이 낸 기업일수록 사회적 영향력을 가장 많이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글 머리에 언급한 LG 칼텍스 광고의 경우는 이러한 대중 의식조작 과정이 노골적으로 노출된 사례일 뿐이다.5)

이러한 상황을 두고 스마이드(1997)는 미디어 회사들의 주요한 임무는 수용자들을 모아서 광고회사에 넘겨주는 것이며, 그들의 주 생산물은 이용자들의 노동 또는 이용자들의 노동력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6) 이 관점에 따르면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는 수용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미끼일 뿐이다.

인터넷 미디어들은 정보를 검색하는 이용자들의 노동을 광고회사에 넘겨주는 것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이 생산한 자료를, 이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 혹은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교묘히 판매하기도 한다. 이들은 이용자들이 생산한 자료를 이용해 다른 이용자를 모집하기도 하고, 다른 이용자에게 판매하기도 한다.7) 이 때가 바로 ‘이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으로 전화하는 과정’이다. 어떤 내용이 소통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기준은 사회적, 정치적 중요도 등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터넷 자본의 영리이다. 즉, 광고회사가 싫어하거나, 다른 이용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흥행에 성공하기 힘든 자료는 이 소통에서 쉽게 제외된다. 그리하여 소통은 인터넷 자본에 의해 중계되고, [발언자 : 인터넷 자본 : 수용자]의 형태를 갖는다. 이때 자본은 인터넷이라는 광장의 의장 역할을 자임하며, 소통의 필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로지 자본의 이익이라는 회칙에 맞는 자격을 갖춘 발언자만이 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인터넷 자본에 의해 발생한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은 기존 매스미디어가 가지고 있던 일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교묘할 뿐이다. 이것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의 기본 모순, 즉 한쪽에 독점 자본, 독점적 관료가 있고 다른 한쪽에 종속적 대중이 있는 모순에 근거하고 있다.8)

2003년 하반기 통계에 따르면 월소득 400만원 이상 가구의 79.9%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반면, 100만원 이하 가구에서는 31.7%만이 인터넷을 사용했다. 빈민은 애초에 인터넷이라는 광장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그리스 아고라 광장에서 제외된 여성과 노예 노동자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다. 이미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격차는 사용 과정에서 더욱 확대된다. 인터넷 자본은 광고업주와 이용자들 사이에만 커뮤니케이션의 불균등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간에도 차별과 커뮤니케이션의 불균등을 만든다. 인터넷 자본이 팔아먹는 아바타와 도토리, 비용으로 결정된 사용 용량, 정보의 가격 등은 이용자 사이에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차별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아바타의 옷과 신발, 블로그와 개인 홈피를 꾸미는 다양한 배경들의 판매는 이용자들을 지속적으로 묶어두는 하나의 고삐가 된다.

그 경제적 불평등, 정보 빈부의 격차 자체가 인터넷 자본에 있어서 잉여를 발생시키는 기본 토대이다. 지불하는 비용을 기준으로 차별되지 않고 누구든지 타인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광고주는 더 비싼 광고료를 내지 않을 것이며 이용자들은 아바타의 비싼 밍크코트를 사지 않을 것이다. 이용자의 소비 과정,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그 차별은 확대 재생산된다. 즉, 인터넷 자본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은 새로운 제안과 의견이 충돌하고, 논쟁․토론해서 새로운 단계의 사회적인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내 차별을 바탕으로 이익을 남기고 그것을 통해 다시 차별을 확대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마이클 부라보이가 <생산의 정치>9)에서 언급한 자본주의 노동 과정의 특징은 현재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라보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고유한 특징은 경제적 영역이 사회 구조의 각 부분들을 규정하고, 또한 그 부분들의 존재 형태와 그 부분들 사이의 관계들을 규정한다는 점이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그것은 지금 인터넷 자본에 의해 커뮤니케이션의 생산과정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놓여있는 인터넷, 인터넷 자본이 취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정보의 생산․유통․분배 방식은 철저히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의 모든 형태들’인 ‘잉여 가치의 은폐와 확보’ 과정이 인터넷 자본의 생산과정에 녹아 있다. 인터넷 미디어를 통한 ‘이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그 자체로 인터넷 자본의 잉여 확보를 위한 과정’이지만, 인터넷 자본은 이를 ‘이용자의 이익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은폐한다.

물론, 인터넷에는 자본에 편입되지 않은 정보의 소통과 의견의 흐름도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 자료 등을 통해 살펴봤듯이 그것이 현재 인터넷 내부에 존재하는 주된 커뮤니케이션 관계가 아니다. 가끔 연단 아래의 청중들이 연단에 올라 탁자를 뒤집어 놓는 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연설이란 게 본래 청중이 탁자를 뒤집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가끔 대중의 자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결과가 인터넷 자본과 권력을 거스르는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현재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주된 생산 방식은 인터넷 자본의 잉여 생산에 있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보의 빈부 격차를 바탕으로 인터넷 자본이 만들어가는 커뮤니케이션의 생산구조는 다시 왜곡된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왜곡된 이데올로기는 이 사회의 의식을 조작한다. 우리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을 끊어야 한다.

2. 인터넷을 다시 민중의 광장으로!

그동안 정보통신운동 진영과 미디어운동 진영은 이러한 미디어의 자본주의적 재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줄여나가기 위해 약자, 소수자 지원이나, 시민의 미디어 참여 정책을 내세운 퍼블릭 액세스 권리(Public Access 공공적 접근권)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는 정보통신에 있어서 우체국이나 전화국, 도서관 같은 공공시설에 컴퓨터를 설치하여 누구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든지, 국가정보를 포함한 공공정보에 대한 시민의 알권리 쟁취, 사회적 공공 서비스로서 미디어 교육권 쟁취, 방송의 채널이나 시간을 일반 시민들에게 할당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최근에는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커뮤니케이션 권리’라는 개념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그동안 다양한 성과를 가져왔으며, 커뮤니케이션을 바라보는 진보적인 관점을 사회 내에 던져주었다.

하지만, 인터넷 자본의 잉여 생산을 위한 현재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이 방식으로 결코 극복될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보의 빈부 격차를 바탕으로 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잉여를 취하는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방치한 채, 자본과 권력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독점과 사유화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며 그들의 시혜를 요구하는 운동은 단계적 전술로 의미는 있겠지만, 대안적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이제 커뮤니케이션구조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소유제도 그 자체를 지양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계급문제는 계급적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우리는 자본이 사유화한 커뮤니케이션의 물적 토대를 사회화하고, 그 운영방식을 민주화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두고, 그 안에 다양한 전술적인 활동을 배치하여야 한다.

이 때 중요한 문제는 대중을 전면적인 운동 주체로 조직하는 것이다. 그동안 전문 활동가 중심의 운동 방식을 버리고, 대중운동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운동이 대중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사회화’와 ‘민주화’는 불가능하며, 책임없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인터넷 미디어의 사회화’ 과제를 전 사회운동진영의 공통과제로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국내에서는 정치적 운동과 결합하여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이나 안티조선운동 등 대중운동으로 발전한 미디어 운동의 사례가 있다. 기존 운동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디어의 사회화 운동’의 운동 진영내 공통 과제화와 대중화를 위한 장기적인 전략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10)

인터넷 커뮤니케이션구조를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시스템과 콘텐츠(정보 내용물), 기술의 사회화와 그 운영의 민주화가 필수적이다.

1) 하드웨어 시스템의 사회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물적 토대인 하드웨어 시스템을 사회화하는 것을 인터넷 미디어의 사회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하드웨어 시스템은 우선 단말기와 회선, 서버로 나눠볼 수 있겠다.

단말기는 최소한의 정보통신 사용이 가능한 단말기를 무료로 배포하고, 이 비용을 사회가 책임지는 프랑스의 미니텔의 방식이나, 하이텔의 단말기 배포방식을 다시 현재 상황에 맞도록 되살려볼 수 있겠다. 하이텔의 단말기 배포는 당시 노트북 회사들의 반대로 그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지만, 불가능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회선의 문제는 최근 미국 등에서 진보진영이 추진하고 있는 무선랜 방식의 공공서비스 요구를 국내에 환경에 맞추어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해 볼 수 있겠다. 무선랜 방식은 그 주파수의 한계로 이미 그 공공적 통제를 요구받고 있다. 현재 사유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무선랜의 사용을 중지하고, 국가와 지자체에 무선랜을 통한 회선제공을 기본적인 사회복지로 요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서버의 경우는 이미 많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소유하고 있다. 이의 사회적 활용을 위한 대중적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의 선전, 홍보를 위해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이의 일부를 대중의 요구에 따른 사용을 위해 할애를 강제하는 방식이나, 영리를 위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서버를 구축할 때마다 일부를 사회적 사용을 위해 할애하도록 강제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사회단체들의 서버 운용에 있어서 이러한 원칙을 우선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 물론 현재 사유화 되어있는 인터넷 미디어의 서버를 사회화 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나은 대안이 없을 것이다.

2) 콘텐츠(정보 내용물)와 기술의 사회화

이 분야는 그 생산력의 발전이 왜곡된 생산관계에 묶여있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갈등이 진행되고 있으며, 리눅스 등 다양한 운동 모델이 제출되어 있는데, 국내에서는 몇몇 전문가 단체 정도만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대중적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데도, 전문가 운동을 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인 분석과 대중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고민을 진행할 때이다. 정보와 기술의 사회화가 대중운동으로 발전해 나갈 때 그 영향력은 엄청나리라 기대해본다. 대중이 참여가능한 다양한 대안운동과 주장, 구호를 만들어내고 집단적인 창조 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3) 운영의 민주화

현재 자본의 잉여 생산을 위한 운영 방식을 지양하고 민중적인 운영 방식을 확보하는 투쟁은 사회화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하드웨어 시스템과, 내용물, 기술이 사회화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운영방식이 민주화되지 못하다면, 권력기관과 몇몇 관료, 엘리트 전문가들에 의한 독점적 운영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운영이 기존의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 양적 민주주의 방식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소통의 보수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현재까지는 인터넷 미디어의 운영에 대한 사회 공공적인 요구가 거의 없었는데, 우선 현재까지 언론 운동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TV, 신문 등 매스미디어에 대한 공공성 확보 투쟁으로부터 다양한 전술과 요구를 배워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운영의 공공성 확보가 민주적인 내용과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논의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을 위해 인터넷 미디어의 운영에 다양한 사회적 계층과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화가 꼭 필요하다.

4) 대안 미디어 구축

앞서 제시한 인터넷 미디어의 사회화 투쟁과 더불어 인터넷 자본에 맞서는 대안 미디어의 구성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대안 미디어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몇몇 전문가들의 결의와 활동을 넘어, 대중적 요구를 담고 대중 운동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때서야 대안 미디어는 전문활동가의 자기 만족적 활동을 넘어, 실현 가능한 민중적 인터넷 미디어의 모델을 제시하고, 인터넷 자본의 미디어를 사회화하기 위한 투쟁의 기지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대안 미디어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한 위의 세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안 미디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을 다중이 함께 공동 소유․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시스템의 사회적 활용을 열어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대안적인 시스템 구축을 위한 기술적 대안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기술의 민중적 활용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는 활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몇몇 상근자나 전문가들에 의해 시스템의 운영이 독점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과 노동자․민중이 참여하는 운영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때 상근자나 전문활동가들은 이러한 운영을 보좌하거나 조언하고,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종합하고 이어주는 조직가의 역할을 주로 하게 되리라 생각된다. 또한 기술의 사회적 개발 과정의 모델을 만들어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을 구성하고, 그 결과물을 사회화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정보 내용물의 사회화를 위한 내부적인 결의를 넘어 그 제도화를 위한 다양한 대중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구체적인 전술적 고민까지 진행하지 못한 관계로 운동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간단한 몇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구체적인 전술과 현실 가능한 대안을 구성하기 위한 논의를 기대해본다.

최세진(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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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 통신 혁명과 한국 사회> 강상현, 한나래

2) A.L.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김기훈 옮김, <링크>, 동아시아

3) 2004년 8월 22일 현재 Alexa.com에서 이용률 순위 통계 10위 사이트 목록
1.Yahoo! 2.Microsoft Network (MSN) 3.Google 4.Microsoft Corporation 5.Passport.net 6.EBay Inc. 7.Amazon.com 8.Offeroptimizer.com 9.Fastclick 10.Double Click

4) 한국인터넷정보센터, <2003년 하반기 정보실태조사>, 정보통신부

5) 기업 홍보선전의 목표는 처음부터 공공연하게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대로 ‘공중의 마음을 통제’하는데 있었다. …… 힘의 행사가 있기는 했지만 …… (반노동세력의) 홍보 선전을 더 많이 동원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 홍보선전 적극론자가 고안 설계한 ‘모호크?밸리 공식’이었다. …… 이 아이디어의 저변에는 이른바 과학적인 파업파괴방법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즉, 우리는 몽둥이를 들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총질해서 머리를 까부수는 게 아니다. 낡은 (폭력)방식은 이제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과학적인 파업파괴방법이란 …… 파업근로자와 노조 활동자에 맞서 지역사회 반감을 일깨우고, 이제는 너무나도 상투화해서 TV만 보면 반드시 보게 되는 그런 상을 조성하는 데 있었다. 이 같은 (반노동자)상은 그 이후로 마구 쏟아져 나왔다.
- 노엄 촘스키, <커뮤니케이션 기술혁명과 정치경제학> 커뮤니케이션 북스. ( )는 책에 서술된 대로 가져옴.

6)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 빈센트 모스코, 김지운 역, 나남출판

7) 네이버 블로그 이용약관 제9조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 등)

④ 회원은 자신이 창작, 등록한 게시물에 대하여 회사가 블로그 서비스를 운영, 전시, 전송배포 또는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음의 각호에 행위를 할 수 있는, 세계적이고 사용료 없는 비독점적 사용권을 회사에게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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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디어 이론의 제 요소> 한스 M 엔첼스베르거, <뉴미디어 영상미학> 권중운 편역, 민음사

9) <생산의 정치> 마이클 부라보이, 정병진 옮김, 박종철 출판사

10) 미디어 운동가와 활동가들은 그들의 활동 영역에서 관련이 있다고 믿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나 인식이 매우 부족한 것에 대해 종종 놀라고 다소 실망하기도 한다. 특히 환경, 인권, 반전, 노동권 등의 운동에서 왜 ?미디어가 기업의 손에 있는 한, 전면적인 사회 변화의 임무는 더욱 어려울 것?(McChesney 1997:71)이라는 Robert McChensney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지, 그리고 미디어를 적어도 제2의 관심 영역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는지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프레임 찾기 : 커뮤니케이션 민주화를 위한 국제적 정책 개입 활동 캠페인을 향해> 션 오셔크루, 미디액트 개관2주년 기념 : 미디어운동 국제세미나 자료집>



2004년09월05일 21: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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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1:04 2008/08/16 01:04

故정은임 아나운서 영전에 부치는 글

[매일노동뉴스펌]

故정은임 아나운서 영전에 부치는 글
“당신이 들려주던 말과 노래가 있었기에 우리들의 지친 가슴이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오성 기자


011-9199-****

‘바보처럼’ 그의 번호를 누르다,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는 이제 없다···.

결국 그가 갔다.

지난달 22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입원한 지 13일만인 8월 4일 오후 6시 반, MBC 아나운서 정은임씨는 끝내 유명을 달리 했다. 사인은 중증뇌부종연수마비. 서른일곱 해도 다 채우지 못한 삶이었다.

그는 일개 방송인에 불과했으나 그의 삶은 ‘방송국’의 스튜디오 안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여성부장으로서, 그리고 그와 함께 ‘진보적 영화읽기’의 대열에 동참했던 애청자들의 누이로서 그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 당원의 글처럼 때로 볼셰비키의 ‘인터내셔널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심야의 전파를 타고 울려퍼지기도 하고, ‘철의 노동자’가 ‘영화음악’이라는 사실을 청취자들에게 일깨우기도 했다. ‘좌절의 90년대’에 그의 방송은 몇 안되는 안식처였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씨의 죽음을 오프닝 멘트로 전하며 ‘이것이 대한민국 노동귀족의 모습’이라며 애도하던 ‘유일무이한’ 방송이었다. 신입사원 시절엔 사측의 노조탈퇴서를 거부하고, 방송파업의 대열에 동참하기도 했던 강성노조원이기도 했다. 뭇남성들을 설레게 한 나지막한 목소리는 그의 표피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 그의 죽음에 ‘정은임의 영화음악 애청자 모임’ 카페는 물론,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등에도 추모의 글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환한세상’이라는 아이디의 민주노동당원은 “파병소식이 전해지던 순간, 문득 2주 동안 사경을 헤매고 있던 정은임 아나운서가 생각났다”며 “온세상이 외면하던 김주익 열사를 나지막히 찾아주던 정은임 아나운서가 (지금도) 먹먹한 새벽을 여전히 채우고 있었다면 오늘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생각했다”며 추모의 글을 올렸다. 애청자들 사이에선 그의 방송을 영구보존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8년만에 다시 영화음악으로 돌아왔던 정은임씨의 프로그램이 불과 6개월만에 사라졌을 때 많은 청취자들이 분노하며 MBC측에 항의의 뜻을 전달했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그의 프로그램이 ‘알량한 청취율’ 따위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깊이와 애정을 지니고 있음을 거대 방송사는 몰랐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고 청취자들을 위로했지만, 마지막 방송을 하며 그는 소리없이 울었다. 결국 그 방송의 끝부분에선 코까지 훌쩍이며 우는 바람에 들키고 말았지만.

그날 정은임은 나희덕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고 못하고, 그저 연기만 피운 것 아닌가···.”

그것이 그의 진심이라면 이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들려주던 말과 노래가 있었기에 우리들의 지친 가슴이 위로받을 수 있었노라고.

그리하여 척박했던 우리들의 지난 시간이 영화로웠노라고. 당신은 연기가 아니라 뜨거운 불길이었노라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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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1:03 2008/08/16 01:03

앗,내방도~

앗,내방도~  
2005.03.28 16:44스크랩:1
 


내방도 그렇거든
실은 우리집이 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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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1:02 2008/08/16 01:02

새대가리

새대가리  
2005.02.15 00:55스크랩:0
 

한참전에,
그러니깐 벌써 작년에...
누구를 기다리느라 한 십여분 정도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저 비둘기가 그 십여분 내내 쪼그만 돌쪼가리(돌멩이도 아니고 얇삭한 쪼가리)를 먹어보겠다고 계속 부리로 쪼아대더군.집요하게,계속.

참 그 집념이 대단도 하고,
혹시 정말 먹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생기게 하더라만,
결국 비둘기도 조류인지라,
새대가리의 한계를 극복못한 것일지도...


먼소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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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1:01 2008/08/16 01:01

티파니 시네마, 철거되다

티파니 시네마, 철거되다  
  2004.10.05 02:10스크랩:0
 


내 기억으론
봉천동에 생긴 개봉관 첫 주자였는데,
어느날 가보니 철거되어 있더군.

무진장 사람 없던 걸로 보아 아마 재단장같은 건 아닐 듯 하고.

사실 처음에 2관으로 할 때는 나름 볼만 했는데
뭔 생각인지 그걸 4관으로 만들고 나서는...
영 .....
코아아트홀 규모의 영화관에서 누가 투모로 같은 걸 보냔 말이지.

어쨌거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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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0:57 2008/08/16 00:57

지하철에 꼬마들

지하철에 꼬마들  
2004.10.05 02:08스크랩:0
 


아마 초등학교 학생들이 소풍쯤을 가는 모양이던데
신기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전부다 바닥에 앉아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떠드는데
무척 놀라워서 하나 찍었음.

요즘 애들은 옆으로 메는 가방도 엄청 많이 하고 다니더군.

그애들이 내리고 나자
어색할 정도로 전철안이 조용해졌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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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0:57 2008/08/16 00:57

바나나 우유

바나나 우유  
2004.10.05 02:04스크랩:0
 


바나나 우유 갖고 술집에서 놀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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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0:56 2008/08/16 00:56

스크림 가면쓴 꼬마

스크림 가면쓴 꼬마  
2004.10.05 02:03스크랩:0
 


지하철에서 맞은 편 꼬마가 스크림 가면을 쓰고 놀길래
재밌어서 찍어놨음.

핸폰으로 초점 맞추기 너무 힘들어.
잔뜩이나 수전증이란 말이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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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0:56 2008/08/16 00:56

우리집 냉장고

우리집 냉장고  
2004.10.05 02:01스크랩:0
 


다닥다닥 자석을 붙여놓은 저 냉장고는
바로 골드스타적 만들어진 골동품.

그래도 아즉까지 별 문제 없이 잘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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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0:55 2008/08/16 00:55

미수금 받아드립니다.

미수금 받아드립니다.  
2004.08.10 01:24스크랩:0
 


처음 이런 플랑을 봤을 때는 "뜨아~" 했는데
하도 자주 보다보니,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졌음.
사실, 자꾸봐도 언젠가는 "미수금 받아주는 아저씨"들을 나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공포는 있음.--;

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플랑과 만만치 않은 느낌이랄까.

암튼 봐도봐도 찝찝한 건 어쩔 수 없고,
저걸 보고 전화하는 사람도 있을 걸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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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0:54 2008/08/16 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