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복의 난

from 잡기장 2010/03/26 22:49

  사실 장혁의 복근 때문에 추노를 보기 시작했지만 추노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건 개인적으론 업복이란 캐릭터이다. (2번째는 복근.) 노비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뼛속까지 양반인 전직 군인 노비, 노비 시절부터 메이크업을 하던 신분세탁 노비, 노비 사냥꾼 등에 밀려서 소재꺼리로 전락할 뻔한 계급 문제를 이야기의 양대축으로 끌어올린 것이 사실 업복 패거리니까. 뽈따구에 아로 새겨진 노와 비의 문신이 입술을 타고 겹쳐지는 24회의 마지막 장면은 21세기 한국 드라마 키스씬 중 최고로 꼽을만 하지 않나 생각한다. 뭐 21세기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사실 정치적인 것들을 떠나서 더 눈길이 갔던건 화승총 액션. 칼부림이나 주먹다짐, 혹은 장전식 총기로 소위 간지나는 영상을 찍는 것은 흔하며 어렵지 않다. 칼잡고 춤을 추면서 빙글빙글 돌며 때론 광선검처럼 때론 솜방망이처럼 휘두르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정우성처럼 라이플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간지나게 뛰어다니면서 총을 쏘면 비쥬얼은 확실히 나오지 않겠나. 반면 화승총은 ...

  화승총 한방을 쏘기 위해서는 일단 총을 세우고, 총구 안쪽에 찌꺼기를 솎아주고, 화약을 넣고, 쇠막대기로 화약을 다지고, 총알을 넣고, 쇠막대기로 총알을 밀어넣고, 종이를 넣고, 쇠막대기로 종이를 쑤셔넣고, 점화용 화약을 넣고, 조준하고, 발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20-30초가 소요되는 동안 총잡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가만히 서서 총을 주물럭 거리고 있는 것. 액션이 성립하기 힘들 거 같지 않은가?

 

  연발 발사는 꿈에도 못꾸고, 그렇다고 저격을 하자니 사거리는 둘째치고 강선이 없는 총이라 20-30m밖이면 탄이 어디로 새버릴 지도 모르고. 결국 대중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사기를 치는 건데 주윤발 헌 베레타 쓰듯이 연발로 쏴 제끼듯이 화려하게 터뜨려버리는 것. 이런 와중에 추노는 과감하게도 화승총의 약점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새로운 액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물론 발사 과정 중에 간지 안날만한건 과감하게 생략하고 명중률을 보정했지만 화승총의 가장 주목할만한 특징, 재장전에 긴 시간이 걸리며 활동이 제약된다는 특징을 놓지 않은 것.

  재장전으로 인한 공간의 제약을 보충하기 위해 연출은 시간적인 긴박감을 쫓는다. 상대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재장전밖에 없고 달라 붙는 순간 죽는다는 것을 시청자가 쉽게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다급함에서 총잡이는 직업적이고 무신경하게 혹은 여유롭게 (손은 바쁘겠지만) 다음 탄을 준비한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볼트 액션 소총의 장전마저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자동 소총 세대에게 화승총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맛이 있지 않겠나.

 

http://blog.naver.com/gaao?Redirect=Log&logNo=10079615259 

 

 

  7화의 삼보방포가 리얼리티와 재미의 적절한 타협을 찾은 명장면이고, 선혜청 습격에서 동료 노비들의 도움(장전)을 받은 화승총 연발 사격은 밀리타쿠적인 로망의 구현이었다면, 마지막화에서 지도부에 배신당해 조직도 날아가버린 상황에서 그려지는 자멸적인 업복의 마지막 광화문 총격씬은 상황상황 잘라보면 말이 되는 상황이 거의 없지만 리얼해 '보이고' 비장하며 통쾌한 뭐랄까 공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액션이랄까.

  주인공도 아닌 주제에 악당이건 변절자이건 첩자이건 사람을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에게 이상적인 결말을 선사해주는 것 역시 공상적이었지만 좋았다:) 당장 어디건 가서 쏴주고 싶은 사람이 생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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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22:49 2010/03/2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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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라지 2010/04/15 11:43

    민초의난! 지금 살아가는 세상도 그때와 다를게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