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지랄

분류없음 2015/06/09 13:58

 

며칠 전 페이스북의 한 친구가 링크한 것을 읽고 기함을 토했다. 일명 "동성애 반대운동 참사랑운동 '리얼러브 메세지' (링크를 링크하려고 보니 없어졌다. 다만 이 기사 하나가 증거로 남아 있다. ) 이성애 커플/부부 둘이 얼굴을 공개하고 남녀간의 사랑이 참사랑이고 참사랑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메세지를 전하는데 형식은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취해 다음 커플/부부를 지목한다. 그 링크를 보고 처음에는 지랄도 풍년이구나 싶었다. 그래, 그럼 너희들에게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못하고 절대로 이혼하지 못하는 축복을 내려주마. 개쿨씩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잔상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다. 바야흐로 무식의 시대 (the age of ignorance), 무식과 증오의 시대로 접어들었구나... 짝에게 이 이야길 해드렸더니 단호하게 한 말씀: "할 일이 정말 없나봐요. 그 시간에 차라리 종이배를 접지." 쿄쿄쿄, 종이학도 아니고 종이배. 머리에 쓰잘데기 없이 윙윙거리는 잔상을 없애기 위해 에티카의 한 부분을 다시 읽었다. 

 

 

[…] we shall easily see what the difference is between a man who is led only by an affect, or by opinion, and one who is led by reason. For the former, whether he will or not, does those things he is most ignorant of, whereas the latter complies with no one’s wishes but his own, and does only those thinks he knows to be the most important in life, and therefore desires very greatly. Hence, I call the former a slave, but the latter, a free man. […] A free man thinks of nothing less than of death, and his wisdom is a meditation on life, not on death.

 

(…) 감정이나 풍문에 의해서만 인도되는 사람과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과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는 쉽게 알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자신이 대부분 모르는 것들을 행하는 반면, 후자는 다른사람의 소망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따르고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것들을 행하며, 따라서 매우 위대하게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전자를 노예라 부르고, 후자를 자유인이라 일컫는다. (…) 자유인이 죽음만큼 적게 생각하는 것은 없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생각이다. 

 

* 영문은 1996년에 나온 펭귄 클래식 번역본 151쪽이고 한글은 이수영 님이 2013년에 내신 "에티가, 자유와 긍정의 철학" 269-273쪽에서 따왔다. 

 

 

사실, 저 이성애자들/기독교도들의 쓰레기같은 증오발언에 상처를 받긴 받았다. 상처라기보다는 뭐랄까, '망연자실'이었다면 제대로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어쩌다 저런 지경이 되었을까 싶은 애잔함도 한켠에 있었고 저렇게 살다가 죽어서 지옥불에 떨어지면 "이를 갈면서 울고불고 (마태복음 8:12)" 난리를 치겠구나 싶어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구원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랬다. 

 

 

하지만 저들이 저렇게 된 데에는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저렇게 된 것이지 목사새끼들이 밀어넣어서 저리 된 것도 아니요,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이성애자들에게 자극받아 저리 된 것도 아니요, 동성애자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질투해 저리 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저들은 저들이 행위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치를 것이다. 회개해도 소용없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다자연애를 하든 일대일연애를 하든 자신들이 빚은 관계 속에서 자신들만의 진테제를 만들어내면 되는 거다. 동성애가 이성애에 반대로 쓰이는 말이 아니듯 각자 알아서 - 이성애자는 이성애자 나름대로 가치를 갖고 당사자들이 알아서 곱디곱게 자신들의 "참사랑"을 빚으면 되는 거다. 동성애를 반대해야 성립되는 게 참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을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갈 데는 지옥 밖에 없다. 그 좋은 참사랑지랄 링크는 왜 지웠대. 거봐라. 그게 바로 지옥이라는 거다. 

참고로 증오를 반대하고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성애자/동성애자/양성애자 구별없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알아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두 곳을 왔다갔다 할 수도 있다. 그들의 의지대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스피노자 + 이수영 님의 고결하신 글귀로 쓸데없는 걱정과 상념을 떨쳐버리자규. 끝 

 


“... 노예는 수동적 정념에 지배되는 인간이다. 우발적이고 무차별적인 만남 속에서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지도 못하고 오직 외부 대상의 본성에 의해 지배되어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증오도 결코 지속적이고 확고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삶. 언제 실존이 위협당할지 몰라 늘 공포와 희망의 교차 속에서 마음 졸이는 삶. 이들은 결코 “나쁜 마주침”을 피하지 못할 것이며, 죽음보다 못한 삶을 전전하다 결코 죽음에 이를 것이다. 기쁨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슬픔과 증오와 복수심만이 지배적일 것이다. (…) 분노와 증오와 공포와 헛된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노예이다.”

 

 

전혀 상관없는 덧: 영화 차이나타운 보다. 한 단어 영화평. "친절" 

2015/06/09 13:58 2015/06/0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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