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경험

분류없음 2015/08/03 04:36

 

스케쥴이 바뀐 건 출산휴가를 떠난 행정담당 직원의 빈자리 탓이 크다. 지난 주에 행정담당 일 년짜리 계약직 직원을 뽑는 인터뷰가 있었다. 일 년 계약직이지만 근무 내용에 따라 향후 다른 프로그램의 영구 정규직, 혹은 다른 도시에 있는 같은 회사 프로그램에 어플라이할 수 있는 길이 열리므로 괜찮은 포지션이다. 

 

 

동료 둘이 (이들은 영구 정규직이다) 꽃개에게 매니저와 함께 잡인터뷰에 들어가라고 했다. 꽃개는 오래 걸린다한들 한 시간인데 그 정도야 뭐, 싶어서 알겠다고 했다. 매니저에게 "자, 오늘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how can i help you, today?" 농담을 했다. 레쥬메를 주면서 간략하게 백그라운드 체크를 하란다. 그리고 질문지를 줬다. 너랑나랑 번갈아가며 질문할 거고 맨 뒤장에 있는 평가지에 점수를 매기면 돼. 어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네.

 

첫째 후보자, 질문을 하고 태도와 표정을 살폈다. 관대한 꽃개는 후한 점수를 줬다. 중간에 팀워크에 대한 부분은 글쎄... 노트도 남겼다. -- 그녀의 팀웍스킬을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 끝났다. 40분 걸렸다. 아싸.

 

사무실로 돌아가려는데 리셉션에 낯선 얼굴이 있다. 넌 누구? 인터뷰보러 왔단다. 엥? 또 있어? 매니저한테 오늘 대체 몇 명이나 인터뷰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무려 4명이란다. 어익후. 둘째 후보자, 첫째보다 괜찮았다. 30분 소요.

 

 

두 명의 인터뷰를 끝내고 사무실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나는 한 명인 줄 알았더니 네 명이래. 하고 울상을 지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안한다고 한 거야. 웃는다. 젠장. 셋째 후보 인터뷰부터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너무 바빴다. 매니저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그 친구는 적당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그래서 일찍 끝났다고 했다. 

 

 

비록 일하는 부서와 내용은 다르지만 채용된다면 동료가 될 사람인 꽃개와 잡인터뷰를 한 셈이다. 꽃개는 이런 자유분방한 시스템에 별 다른 이의가 없다. 어차피 최종결정권자는 매니저이므로 나는 주어진 한도 내에서 내 할 일을 하고 의견을 말하면 그 뿐이다. 그러나 몇 몇 동료들은 이런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찌 동료 (collegues) 가 될 사람과 인터뷰를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들의 가치관과 꽃개의 가치관이 다른 거다.

 

 

매니저가 작성한 질문 중에 can you describe your ideal supervisor? (이상적인 매니저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라는 게 있었다. 질문 순서상 꽃개가 물었다. 두 명 다 괜찮은 답을 했다. 맨 마지막에 질문이 있으면 하라는 질문이 있다. 둘째 후보가 매니저에게 네가 선호하는 직원상은 뭐냐고 물었다. 매니저는 i love her honesty and personality 라며 출산휴가를 떠난 직원에 대해 설명했다. 매니저가 그 직원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꽃개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그녀는 정말로 모든 직원들이 사랑하는 모두의 워너비였다. 매니저는 실력이 출중하고 경험이 많고 그런 것도 따지지만 무엇보다 정직하고 신실하며 이지고잉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실력이나 경험이나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인데다 경험치라는 게 배우면서 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직하지 못하고 치팅하고 성격이 개차반이면 각각 백그라운드가 다른 서른 명 넘는 사람들이 어우러지고 정신질환을 앓는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프로그램의 성격 상 팀 분위기를 해치기 십상이다. "정직"과 "무난한 성격". 한국어로 하면 이 정도 될 터. 쉬운 것 같지만 정말 어렵다.

 

 

퇴근길에 꽃개의 이상적인 수퍼바이저는 뭘까, 생각해봤다. 꽃개가 인생에서 만난 수퍼바이저들은 대부분 괜찮았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출판사의 사장님은 대충 하다가 하나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그런 분이 아니라 늘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의 의의와 배경, 앞으로 전망 등을 설명해주셨다. 꽃개가 처음에 그 일터를 택했던 건 대표의 그 장점 때문이었다. 일종의 모티베이션, 동기를 작동시키는 수퍼바이저랄까? 한국에서 짧게 일했던 몇 군데 회사 수퍼바이저들 가운데 궁합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왜?"라는 꽃개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뭐 이렇게 말이 많아. 하다보면 알게 되는 거지" "그걸 알면 내가 하지" "글쎄다"...

 

캐나다에서 만난 수퍼바이저들도 대부분 훌륭했다. 꽃개에게 큰 그림 (big pictures) 을 보여주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설득해 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겉으로는 모두들 꽃개에게 설명해주고 잘 이끌어줬다. 모두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프로그램의 매니저도 마찬가지. 꽃개가 필요한 것이 이것저것이라고 얘기하면 방법을 찾도록 도와준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안된다거나, 부정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너는 우리 회사의 자산 (asset)" 이라며 황송한 칭찬도 해주신다. 일할 기운이 절로 난다.

 

그 가운데 딱 한 명은 꽃개가 "왜"라고 물으니 그냥 조용히 시키는 일을 하라던 사람도 있기는 있었다. 우리 둘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것은 그 사람 탓도 꽃개 탓도 아니다. 상황이 그저 그랬을 뿐이다.

 

 

동료를 뽑는 인터뷰에 인터뷰어로 참여하는 일. 색다른 경험이었다. 잡인터뷰를 이러저러하게 준비해야 겠구나. 새로운 각오도 다졌다.

 

 

 

 

 

 

 

 

2015/08/03 04:36 2015/08/03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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