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노이드

분류없음 2015/11/20 09:20

 

어제 새로 일하게 될 직장에 들러 퇴근하는 길. 미팅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 정신없이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소변이 마려웠다. 길이 낯설고 맥도날드 따위도 그 동네에 없어서 어쩌지... 도시에서 가장 붐비는 지하철 역까지만 가면 공중화장실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참아보자, 는 결심을 가는 도중에 바꿨다. 소라넷에 업로드된 (여성) 화장실몰카가 한두 건이 아니라는 점, 한국 말고도 젊은 한국인 남성들이 유학을 하는 세계 곳곳 도시의 화장실몰카도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아니 그보다는 얼마전 목격한 어떤 일 때문이었다.

 

 

할로윈데이에 이브닝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길. 지하철 보수 공사로 평소에 다니던 루트를 바꿔 서쪽에 더 치우친 한 지하철 역으로 갔다. 열차를 기다리는데 파티에 가려는 온갖 복장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옆에 서 있던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거쳐 할로윈 복장을 한 무리를 거쳐 다시 내 옆으로 왔다가 멈췄다가 부스럭부스럭 뭘 한다. 뭘 하나 힐끔 봤더니 그 할로윈 코스튬을 한 무리들을 아주 몰래, 마치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매우 자연스럽게 찍는 거다. 사실 할로윈 데이에는 "야 너네들 진짜 짱이다. 사진 찍어도 돼?"라면서 접근하면 대부분 백프로 신나하며 오브코올스, 포즈도 잡아준다. 물어보고 대놓고 찍고 서로 웃으며 얘기해도 되는데 그렇게는 안하는 거다. 못하는 건가. 그게 뭐 대수라고. 

 

 

그 젊은 남성은 지하철이 올 때까지 그 짓을 계속했지만 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끝끝내 의식하지 못했다. 아마도 할로윈데이가 아니었다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그 젊은 남성의 행동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젊은 남성의 행동과 표정, 그 잔상이 며칠간 강하게 머물렀다.

 

 

그리고 어제 이 도시에서 가장 번잡한 지하철 역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그 젊은 남성이 떠오른 거다. 그리곤 곧 집까지 더 참자, 는 불편하지만 그게 낫겠다는 생각을.

 

 

 

 

________

* 이 도시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어르신 세대로 가면 구별이 쉽지 않다. 거의 다 중국인 같다. 특히 남자 어르신들은 백프로 중국인 같지만 간혹 아내를 동반하고 다니는 분 가운데 아, 한국인이시구나 알 것 같은 분들이 있다. 여성들의 경우 나이드신 세대는 절반가량 한국인임이 분명합니다! 절반가량은 중국인인 것 같기도하고... 삼사십대 여성 가운데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초중고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거의 식별이 가능하다. 이십대 여성은 정말 일본인-중국인과 헷갈린다. 화장, 의복, 가방, 지갑처럼 생긴 스마트폰 커버부터 폰 사용 습관, 시선처리 모두 모두 비슷하다. 삼국연합이라도 맺은 건가. 비한국인-유러피안 백그라운드의 친구들이 너는 한국인-중국인-일본인 여자들을 어떻게 구별해? 라고 물으면 나도 구별못해, 라고 답한다. 요즘엔 타이완, 타일란드 여자들까지 합세해서 더더욱 구별하기 힘들다. 하지만 일상에서 딱히 구별해야 할 일도 구별할 이유도 없으니 큰 불편없이 산다.

 

남성은,

한국인 이십대는 정말 딱 그 전형이 있다. 롤업바지, 메신저백 혹은 특유의 백팩, MLB 모자, 후드티, 알이 큰 시계, 성시경 안경 따위의 아이템들을 한 개씩이라도 하고 있거나 다 갖춘 사람도 있다. 공동구매라도 하는 건가. 특히 이 세대 친구들은 유학생인지, 이 도시에서 장기간 머문 사람인지 그런 것까지 외모와 태도에서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주뼛주뼛, 시선처리가 불안하고 셋 이상 함께 다니면 움직이는 지하철 안에서도 둥그런 원대형으로 모여 서서 수다를 떤다. 욕을 많이 한다. 이 도시의 지하철에서는 모바일 리셉션-신호가 잡히지 않으므로 더더욱 할 일이 없어 더 티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친구들은 혼자 있을 때 더더욱 티가 난다. 쳐진 눈, 위축된 어깨,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시선이 마주쳐서 살짝 웃어줘도 반응이 없다. 아, 유학온 지 얼마 안되셨구나. 편안하게 앉아 까닥따닥 다리를 떨며 다운로드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는데 복장이나 옆에 누가 앉을 때 반응을 보면 또 역시 이 도시에 머문 연식이 바로 나온다.

이들 역시 일상에서 딱히 구별해야 할 일도 구별할 이유도 없었지만 -- 지금까지는 없었지만, 몰카를 일삼는 주세대가 이들인만큼 앞으로는 주의를 해야겠다. 다행히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분들이라 고맙다면 고맙다.

 

일반화의 오류를 담고 있으나 나만의 나름대로 패러노이드를 극복하려는 보호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2015/11/20 09:20 2015/11/20 09:20
Trackback 0 : Comment 0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ys1917/trackback/1132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