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지말라

분류없음 2017/03/22 02:20

이것은 굉장히 슬픈 소식이다. 첫째는 힘없는 노동자 (고용인) 가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현실" 때문에 슬프고 둘째는 평생을 권위주의와 반노동자적 체제에 맞서 싸워온 투사들이 그들이 그동안 싸워왔던 적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쌩얼을 드러냈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황현아 님으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도록 만든 그 과정 때문이다.

 

나는 힘없는 노동자이자 피해자인 윤태우 기자를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그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이와 인연이 있었든지 없었든지 그것은 하등 상관이 없다. 윤태우 씨가 겪어낸 그 과정에 나를 이입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군가 내게 머물 집과 직장을 줄테니 와서 일하라고 했다. 이른바 "가족같이 지내실 분" "숙박제공". 전봇대에 붙어있는 스티커 구인광고도 아니고 더구나 그 제안을 한 사람(들)이 믿을만한, 상대적으로 존경할만한 집단이라면, 그리고 그 일이 하고 싶은, 매력적인 일이라면. 거절하기보다 일이 되는 쪽으로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을 믿고 일을 시작했다. 그게 사단이 될 줄이야.

 

나는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실명거론한 사람들을 예전에 알았던 적이 있거나 만난 적이 있다.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잘은 몰라도 대충은 안다. 나는 그들이 자본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나는 이건희도, 이재용도, 신격호도 심지어 트럼프도 자본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자본가적 속성이라든지, 반자본가적 속성이라든지, 이런 특질 (traits) 은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인격 자체에 내재한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에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이건희나 이재용이나 신격호나 트럼프 따위의 사람들도 공히 공유하는 경향 가운데 하나일 것 같다. 아니, 평범한 사람들 모두에게 숨어있다. 권력 관계의 대립이 부상하는 어느 순간 숨겨왔던 이 태도가 드러날 수 있고 이것이 그들의 본질 (substances) 로 될 수 있다. 이건희나 이재용 따위의 사람들은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을 "물건 (things)" 으로 보는 것 같다. 커피가게에서 돈을 주고 사는, 컨비니언스에서 돈을 주고 사는 커피나 담배 같은 것으로 사람을 본다. 마시면 그만이고 맛없어도 버리면 그만이거나 라이터에 불을 붙여 태우다가 꽁초에 이르면 비벼 끄면 된다. 친한 사람이 달라고 하면 아무 대가없이 그냥 줘도 된다. "돛대는 아버지도 안 준다" 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 쯤이야 담배주인의 재량에 달렸다. 하지만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감정이 있고, 상황에 반응하며 인격을 존중받을 권리, 싫고 좋음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물건이 아니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물건이 아니다.

 

나는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실명거론한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했던 과정에 크나큰 실망을 했다. 그들이 좀 더 세련되고 단련됐다면 이런 식으로 추잡스럽게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공연한 장소에서 씹새끼 개새끼 따위를 부르짖고 자신에게 대드는 사람들은 못돼먹은 *새끼가 되는 이런 현실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 곳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싸가지 없이 어린 것이. 니들이 노동운동을 알아. 아울러 이황현아 님이 당신의 글에서 거론한 몇몇 진보언론 매체에도 실망했지만 그 실망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다. 그들도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 2의 윤태우 같은 기자가 자기 회사에서 나오지 말란 보장도 없다. 중립을 가장한 쌩얼이 더더욱 잔인한 이유다. 그들 매체는 앞으로도 그냥 그렇게 지지부진할 것이다. 젊고 래디컬하며 대안적인 상상력을 지닌 세대들에게 이런 매체는 더 이상의 매력이 없다. 그들 매체를 후원하고 구독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미 그런 매체들은 널리고 널렸다. 다만 우리 선배들이, 예전에 활동하던 선배들이 만든 곳이야, 역전의 용사들이 활동하는 곳이지, 따위의 동기는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매력은 장기적이고 강력한 유인동기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패거리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식회사는 주식회사의 룰에 근거해 정확하게 운영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려거든 노동관계법과 -노조가 있다면- 단체협약에 근거해 사람을 고용한 뒤 취업규정을 올바르게 적용해서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했으면 싶다. 구매한 노동력을 최적화하여 사용하려면 사용자들이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존중받을 때 일 잘한다. 그건 진리다. 회사의 경영진에 있는 사람은 말을 아껴야 한다. 그들이 한 말은 개인의 말이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말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고용할 때 아파트를 주겠다고 했으면 (거주지 제공) 당연히 아파트를 주는 게 맞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노동조건을 변경해야 할 때에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노동조건이 하향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게 맞다. 거주지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노동조건이 맞다. 왜냐면 노동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가 씻고 먹고 자야 한다. 그래야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다. 노동자는 사람이다. 노동자에게 욕하지 말아라. 노동자에게 개새끼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이건희보다 못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다.

 

2017/03/22 02:20 2017/03/22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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