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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3
    훗카이도(1)
    HYDE
  2. 2008/06/22
    change
    HYDE
  3. 2008/06/22
    일요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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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6/20
    우리는 간다 私たちは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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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6/20
    아나키즘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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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6/20
    피해자의 과대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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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6/12
    오늘은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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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6/12
    Diggers의 노래
    HYDE
  9. 2008/06/10
    은폐와 위장
    HYDE

훗카이도

지금은 훗카이도...

아직 새벽 4시밖에 안됐는데 벌써 밖은 환하다...

해가 빨리 뜬다...떠도 너무 빨리 뜬다...

지기도 엄청 일찍 지더니...

요즘은 매일 4, 5키로는 걷는 듯 하다...

희한하게도 발바닥에 물집은 잡히지 않는다...

단지 무릎과 발목이 아플 뿐...

 

창밖의 샛파란 하늘 사이로 까마귀가 날아오른다...

 

평화도...그리고 자유도...평등도, 생명도...저렇게 동이 트고...저렇게 힘차게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에게 우리의 활동과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찌라시를 만들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이렇게 잠시 한숨을 돌린다...

 

일본의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를 살갑게 맞이한다...

불과 한시간 반을 날아온 우리에게 수억만리 날아온 사람을 끌어안듯이...

자신의 모든 생활과 모든 마음을 털어 우리에게 내어준다...

사무실에서 일하면서...흔히 형식처럼, 그리고 생색내기 위해 걸었던 연대...

그저 돈이나 몇푼 보태고 말았던 그 연대라는 말보다...

페페상의 랩에 곱게 싸여진 거뭇한 현미오니기리가 더욱 뭉클하고 사무친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우고 어떻게 하면 더욱더 교묘하고 확실하게 사람들의 살과 피를 도려내고 생태를 죽일지만을 연구하는 그들을 곳곳에서 달려온 활동가들과 함께막기 위해서 열아홉시간을 배를 타고...아마도 그는 이곳까지 올 것이다...

아침 열시부터 저녁 일곱시까지 일하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집을 통째로 내어주고...우리를 위해 밤 늦게까지 요리를 하고...일본어 수업까지 해주는 모테키상은...모처럼의 휴가를 모두 이곳에서의 직접행동을 위해 불사르고 있다...

시부야에서 만난 우리를 씻기고 먹이기 위해 자신의 집까지 데려가고 또 삼겹살과 야끼소바를 직접 만들고 고급맥주를 기꺼이 헐었던 작은 아까짱의 아버지 오오미치상도...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

수많은 활동가들이...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모여들고 있다...

예쁜 워킹을 하는 고이즈미상은 도쿄에서 액션을 계속하고...성화군은 일본에서 높아지고 있는 군대와 징병제의 부활을 막으려는 일본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의 징병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행동하고 있다...

활동가들의 활동을 저지하려는 일본 당국의 말도 안되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또 지금의 우리를 북돋우기 위해서 고민하고 힘을 주는 카라님...

다음날 출근의 압박 속에서도 기꺼이 기타를 메고 자전거를 끌고 길바닥을 누볐던 쏭님...

길바닥을 지키며 돌아오지 않는 목을 부여잡고 외치다 드디어 목청이 터져버린 꼬미님...

언제나 짐들을 책임지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음율을 뽑아내고야마는 양군님...

늘 재미있는 유머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짱돌님...

이 판에 하나밖에 없는 퍼커션이라 늘 피곤하지만, 과중한 노동시간에 시달리지만 열심히 손에 불이 나게 젬베를 두드리는 멍구님...

우리를 일본에 보내놓고 더욱 열심히 살고 있을 길바닥의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눈코뜰 새 없이 바쁘고 제대로 먹을 것이 없어서 점점 더 말라가면서도 대책도 없고 도움도 안되는 나를 채찍질하고 바로세워주는 고마운 돕...(제발 돌아갈 때까지 건강해줘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하다...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는 참 고맙다...

그 어떤 사람들을 만난 것보다...

지금의 시간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의 피 속에...눈물 속에 가지런히 챙겨서...

또다른 내가 될 이들과 함께하고 같이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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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e

초등학교 교사출신, 35세 초선의원으로 최연소총리대신 아사쿠라 케이타.

 

키무라 타쿠야의 새배역.

 

헤에...초반 얼빵하던 이미지는 어느새 역시나...이미지변신인가 싶더니 원래의 또릿또릿하던 이미지로 다시 돌아왔다...뭐 별로 상관없지만...

 

일본은 그 정치나 사회가 가진 보수성에 비해 꽤나 드라마들이 교조적이다.

원론적인 얘기들만 한달까나...

 

그래도 이건 좀 의외다...

 

정우당 총재 선거에서의 연설은...연기를 넘어서 뭐랄까 처음 접하는 키무라 타쿠야의...본심을 내비쳤달까...

이 사람도 이럴 때가 있군 싶은...

 

누구나 꿈꾸던 정치가가 극 안에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놀라웠던 것은...

 

댐 건설로 인한 물해파리 발생의 인과관계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피해와 복구에 대해 적극적인 배상 의지를 실현했다는 것.

 

드라마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고...

 

새만금이 떠올라서...또 월곶 앞바다가 떠올라서 울컥 치밀어 올랐다.

 

이전 사무실에서 일할 때,

원폭2세환우들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우린 어려서부터 알고 있고 환경문제가 나오면 늘 듣는 것이 원자력,

특히 방사능 오염의 치명적 위험이다.

그러니 북핵이니 뭐니 지겹도록 물고 늘어지는 것이고.

 

그런데 젠장할 국가는 웃기지도 않는다.

 

원폭2세환우들의 유병율이 일반인의 유병율의 몇십배, 혹은 몇백배에 달해도,

의미있는 수치라는 의학적 판정에도 불구하고

발병원인이 방사능에, 피폭의 유전에 의한 것인지 명확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전까지는 전혀 인정해줄 수도, 지원해줄 수도, 보상해줄 수도 없단다.

 

원폭피해환우들과 2세, 3세, 4세에 이어지는 높은 유병율과 사망율,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첨예한 갈등과 갖가지 입장들에 대해 정부는 궁금해하지도, 이해하지도,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럴 의지도 없다.

 

대의민주정치에도, 또 정부나 국가의 존재에 동의하지 않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국가가 존재하고 또 그 국가의 권위에 맞서 개개인의 생존권과 존엄을 지키려면 이러한 것들을 깨뜨려야 하는데...신선했다.

 

법정 드라마에서 승소했다거나 하는 스토리였다면 뭐...놀라지도 않았겠지만...

행정부의 수장이 국가의 잘잘못을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공부하고 드러난 사실과 잘못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1심 재판부의 국가배상판결에 공소를 포기하는 그 과정이 인상깊었다.

 

국가라는 체제 자체를 불신하고 또 궁극적으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투표권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원이 된 것은...그런 사람이 한사람쯤 있지 않을까, 국가가 사라지는 그 과정에 국가의 권위보다 생명의 권리를 우선하는 그런 사람이 한사람쯤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뭘 아직까지 기대하고 있는지...이런 기대를 가지느니 내가 직접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말이다.

 

어쨌거나 총리이기 이전에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문제에 충실히 직면하고 직접 움직이는 그 캐릭터 자체가 꽤나 인상깊다...

근데 이거 왜 시청률이 안나오는거냐...

너무 키무라 타쿠야 스러워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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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마다...

점점 종교가 아편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학부시절에는...그 말을 뒤집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곤 했었는데...

이건 뭐...

확실히 아편이다.

특히 기독교는 강력한 환각증상과 뇌신경마비를 동반하는 향정신성 약물이다...

어찌나 강한지 정신까지 마비가 아니라 아예 개조시켜버리는 듯...

무섭다...

혹세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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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다 私たちは行

우리는 간다

私たちは行く

わたしたちはいく

 

우리는    간다 인민의 의지    우리는  도전한다  법과 질서 억압의 굴레

(わたしたちはいくじんみんのいしわたしたちはちょうせんするほうとちつじよくあくのくびき)

 

取り戻すために行く.

(わたしたちはいくうばられたひとびとわたしたちのものとりもどすためにいく)

 

우리는 평화    모두의 땅 씨앗을 뿌려 황무지를 갈고 일할 뿐이다

(わたしたちはへいわみんなのちたねをまきおれちをたがやしてはた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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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역사 1

프루동 바쿠닌 절대자유주의 저항 혁명 조직화 자유 죄의식 유물론 관념론 앙시앵레짐 국민국가 국민 선험적으로 자유로운 존재 플로베르 앙드레 지드 절대자유주의 초현실주의 브르통 아라공 엘뤼아르 페레 생디칼리슴 슈티르너 아나키즘과 여성주의 마흐노 인터내셔널

...

 

아직 초반부를 읽고 있지만...

 

민중이 권력을 획득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다.

민주주의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인민의 권력을 박탈당한다.

 

근데 나 이렇게 말하려면...민주주의부터 공부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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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과대망상

"개인은 이기적이어서 질서를 해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자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공선이 있다는 사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질서는 하나의 공공선이다. 개인이 이기적인 한, 자신은 기여하지 않으면서 타인 혹은 타집단이 제공하는 선의 총량으로부터 이득을 얻으려는 무임승차자가 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으 기여에 상관없이 공공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 폭력의 집중과 정치적인 전문화의 부재, 폭력에 대한 통제권이 평등한 사회. ..."

- 구승회 '저주받은 아나키즘' 역자 서문에서

 

성선설에 동의하지도 않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원래 자기중심적이고 나약하기 때문에 모든 권력과 권위가 해체된 상태, 참 자유의 세상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의심하고 두려워 했었다. 과연 가능한가? 라는 질문 앞에서 항상 '지구상에 인간이 사라진다면'이라고 대답했었는데...

막상 저렇게 활자화 되어서 결국 '질서'를 공공선으로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사람은 악할 수 있지만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깊이 동의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으로 인한 윤리적인 강박관념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늘 잠재적 피해자라는 과대망상이 나를 좀먹고 있고 그래서 더욱 불행하다.

 

과거 남성이길 바랬던 것이, 남성이 되고자 소망했던 것이 권력과 힘, 그리고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고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이 지긋지긋한 피해자의 과대망상의 덫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이다. 이 망령을 떨쳐내지 못하고, 극복해내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돌며 발버둥칠 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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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목요일...

이제 곧 출발해야지...

라고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언제부터인가 목요일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목요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

 

오늘은 또 어떤 노래...어떤 음악...어떤 생각...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이 요즘처럼...기분 좋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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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ers의 노래

“디거스(Diggers)의 노래; 뒤엎어진 세상”

 

17세기 영국 '땅 파는 사람들'의 수난과 이상을 노래하다

 

 
류은숙
 
 
2006년 5월 4일, 판교 ‘로또’가 발표돼 들썩거리던 날, 평택 대추리에서는 평생 살아온 자기 땅에서 늙은 농민들을 내쫓으려는 군경 합동 작전이 벌어졌다. 법률도 정치가도 군인도 경찰도 이 늙은 농민들에게 땅을 파서 먹고 산 것이 죄라고 윽박지르며 폭력으로 짓밟았다. 현장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국가인권위의 직원들이나 기자들은 ‘인권은 없다’라는 탄식을 주워 담기라도 했을까? 땅 파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피눈물을 우려내며 경찰과 군대, 용역깡패들로 중무장한 국가권력이 인권을 패대기친 5월,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딜 갔니”라던 광주의 노래가 소스라치게 기억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노래 가사이다. “디거스의 노래”를 통해 17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과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 노래의 원작자는 17세기의 디거스가 아니지만 사실상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17세기에 있었던 디거스의 주장을 녹여내어 20세기의 영국 민요가수 레옹 로젤슨이 만든 노래가사이다. 로젤슨은 디거스의 지도자였던 윈스턴리가 팜플렛에 남긴 말들을 녹이고 전해 내려오는 구절들을 모아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 디거스의 주장이 담긴 팜플렛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이 노래 가사에 함축된 그들의 주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그림 출처 http://www.online-web-comics-galumph.com>



여성과 아이들까지 내몬 지주들

디거스(Diggers)는 직역하면 ‘땅 파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1649년에서 1650년, 잉글랜드의 성조지라 불리는 작은 언덕에 농사를 지으러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의 수는 수십 명에 불과했고 분명 행색은 초라했겠지만 그들이 품은 이상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땅을 갈고 씨 뿌릴 준비를 하며 디거스는 대토지소유에 반대하고 재산공유제를 요구했다. 1649년은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처형된 해였다. 이때 디거스는 영국의 시민전쟁이란 왕과 대토지소유자들에 맞서 싸웠던 것이니 왕이 처형된 마당인 지금, 토지는 마땅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디거스의 활동은 공화정 정부를 놀라게 했고 지역 지주들의 반감을 북돋았다. 법적인 탄압은 물론이고 고용된 패거리(요즘말로 용역이라 할 것이다)와 군대까지 나서 아이나 어른에게나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불사르고 경작물을 파괴했다. 모욕당하고, 체포되고, 감금당하는 속에서 디거스는 결국 1650년 3월 말경 폭력으로 해산됐다. 디거스가 황무지를 일구어 만든 땅에 자기 가축을 몰아넣고 폭도들을 동원해 집을 부수고 여성과 아이들까지 내몬 사람은 지주이자 성직자였다. 1650년 4월 1일, 윈스턴리와 14명의 디거스는 불법 집회, 침입, 공안방해를 이유로 기소됐다. 기소의 결과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디거스의 작은 실험의 끝이었다. 그러나 과연 끝이었을까?


땅을 갖는 사람들, 땅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공산주의적 농경사회를 꿈꾸었던 디거스의 이상은 그 지도자였던 제라드 윈스턴리가 썼던 팜플렛에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잉글랜드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선언’(1649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땅의 모든 소산은 적과 동지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공통 생계를 위해 창조되었다.”
“애초 토지 소유는 전쟁으로 얻어진 것이고 토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인류의 한편이 다른 한편에 대해 살인과 절도를 하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인하고 훔치는 무력의 힘이 정부를 세웠고 그 정부를 지탱하고 있다.”

디거스와 윈스턴리의 주장을 계속 들어보자.

“함께 일하라, 함께 빵을 먹어라.”
“내 것이고 네 것이라 하는 이 특별한 재산은 인민에게 모든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첫째 재산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훔치게 만들었고, 둘째 훔친 사람들을 처형하는 법을 만들었다. 재산은 사람들에게 악마의 행동을 하도록 유혹하고 나서는 그런 일을 했다고 사람들을 죽인다.” - [새로운 정의의 법, 1648년]

“진정한 종교와 순수함은 이것이다. 정복자들의 힘으로 보통 사람들에게서 빼앗아간 땅을 되돌려놓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억압받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왕권이 법을 세우고 정부의 통치가 이를 지킨다. 정의인 척 하고 있지만 법이란 억압하는 무력을 온 힘으로 지탱하는 것이고 그 자식인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는 울타리를 쳐서 토지를 갖게 하고 누구는 토지 밖으로 내몬다. 일부 사람에게는 토지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지를 부인한다. 이는 정의의 법에 반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대개의 법률은 빈민을 부자의 노예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억압을 유지하는 것이고 재산의 엄중한 수호자인 것이다.” - [의회와 군대를 위한 새해선물, 1650년]

“그 누구도 부자일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노동에 의해서나 또는 그를 돕는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인해서 부유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이웃에게서 어떤 도움도 얻지 못한다면 결코 일 년에 수백 수천의 재산을 모을 수 없다. 타인이 그가 일하도록 도왔다면 그 재산은 그 사람의 것일 뿐 아니라 그 이웃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노동뿐만이 아닌 타인들의 노동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부자들은 편하게 살고, 타인의 노동으로 먹고 입는다. 이는 그들의 수치이지 고결함이 아니다.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이 더 축복받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노동한 사람들의 수고로부터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받기만 하는 것이고, 부자들이 주는 것이란 자기의 노동이 아닌 타인의 노동을 양보하는 것이다.” - [자유의 법, 1652년]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일단 지주인 자는 출세하여 판사, 지배자, 장관이 된다.” - [진정한 수평파의 진보된 기준, 1649년]

이렇듯 디거스는 사유재산, 특히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 소유를 “모든 전쟁, 유혈, 도둑질과 인민을 비참하게 만들고 노예화시키는 법률의 원인”으로 보았다. ‘재산권의 신성불가침’을 초석으로 만들어진 승리자(부자)들의 인권선언들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민중의 인권선언들에서는 한결같이 발견되는 점이다. 부자들의 인권선언이 입으로만 만인의 평등을 외치며 재산권에 따른 권리의 불평등을 법의 이름으로 합리화한 것과는 다르다.


‘땅의 사유’ 부정, 평화주의로 연결돼

사유재산의 부정은 평화주의로 직결된다. 윈스턴리는 “전쟁이 부자를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며 권력의 동맹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꿰뚫어 보았다.

디거스의 사유재산 없애기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들이 받는 숱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디거스 자신들은 폭력 사용을 거부했다. 디거스는 공유지와 황무지를 경작하는 것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영국의 모든 빈민들이 자신들의 실험을 따를 것이라 믿었다. 자신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면 전 영국 사회에 스며들 것이고 전 유럽도 그러할 것이고, 결국에는 부자들과 권력자들도 자신들에게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폭력이 아닌 자신들의 ‘실험’과 ‘보기’로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너무 순진하다고, 경제사회적 조건이 그런 요구에 귀 기울일 단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거스의 이상과 실험은 오랜 세월 겉만 번지르르한 인권선언에 도전해온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면면히 이어져온 생각이며 팔과 다리로 옮겨졌던 실천이지 않았던가.

17세기의 디거스가 받았던 수난을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이 여전히 당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자유 무역으로 수탈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세계 최고의 전쟁광 미국의 전초기지를 마련해주려고 땅 파는 사람들을 땅에서 내모는 폭력이 오늘 평택에서 계속되고 있다. 17세기의 디거스가 품었던 믿음대로 우리가 ‘합류’해주는 일이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을 살릴 길일 것이다.

 

 

 


THE WORLD TURNED UPSIDE DOWN


In 1649 to St. George's Hill
A ragged band they called the Diggers came to show the people's will
They defied the landlords, they defied the law
They were the dispossessed reclaiming what was theirs.

"We come in peace," they said, "To dig and sow.
We come to work the land in common and to make the wastelands grow.
This earth divided, we will make whole.
So it can be a common treasury for all."

"The sin of property we do disdain.
No man has the right to buy and sell the earth for private gain.
By theft and murder, they steal the land;
Now everywhere the walls rise up at their command."

"They make the laws that chain us well;
The clergy dazzle us with heaven or they damn us into hell.
We will not worship the gods they serve:
The god of greed that feeds the rich while poor men starve."

"We work, we eat together, we need no swords.
We will not bow to the masters or pay rent to the ords.
We are free men, though we are poor.
You Diggers all stand up for glory; stand up now."

From the men of property the order came:
They sen thired men and troopers to wipe out the Digger's claim.
"Tear down their cottages. Destroy their corn!"
They were dispersed but still the vision carries on.

You poor, take courage. You rich, take care.
Thsi eart was made a common treasury for everyone to share.
All things in common. All people one.
"We come in peace," the order came to cut them down.
 
 

 

디거스의 노래; 뒤엎어진 세상

  
 1649년
성 조지 언덕에
디거스(the Diggers)라 하는 남루한 집단이
인민의 의지를 보이려 등장했다
디거스는 지주에게 도전했다
디거스는 법에 도전했다
디거스는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
자신들의 것이었던 땅의 반환을 요구하는
 
우리는 평화로 왔다, 말하기를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려고
우리는 공동의 땅에 일하러 왔다
또 황무지를 경작하려 왔다
이 나뉘어진 땅을
우리는 완전한 전체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땅이 모든 사람을 위한 공통의 보물 창고가 될 수 있도록
 
재산이라는 죄악을
우리는 경멸한다
사적으로 갖기 위해 땅을 
사고 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도둑질과 살인으로
그들은 땅을 취했다
그들의 명령에 이제 사방에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그들은 법을 만든다
우리를 꽁꽁 묶어두려고
성직자들은 천국으로 우리를 현혹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한다
우리는 경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는
부자들을 배불리는 탐욕의 신에게는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굶주리고 있다
 
우리는 일한다, 우리는 함께 먹는다
우리에겐 어떤 무기도 필요없다
우리는 주인들에게 절하지 않겠다
지주들에게 지대를 지불하지도 않겠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디거스는 영광을 위해 모두 일어섰다
 
이제 일어서라
재산가들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이 용역과 군대를 보냈다
디거스의 요구를 묵살하기 위하여
디거스의 오두막을 무너뜨리려고
디거스의 곡식을 파괴하려고
그들은 흩어졌고 오직 비전만이 남아있다
 
너희 가난한 이들은 용기를 가져라
너희 부자들은 조심해라
땅은 공통의 보고로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만물은 공유이며
모든 사람은 하나이다
우리는 평화로 왔다
그들을 해치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출처: http://cafe.daum.net/cchereandnow/9ZoL/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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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와 위장

나는 참 단순한 사람이다...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든 금방 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특히나 웹 상에서 그런 강박은 나라는 존재를 은폐와 위장으로 점철시키고 수없이 많은 가면과 허울을 준비해두고 어두운 방 한켠에서 회심의 미소를 날리고 있다...

기실 알고 보면 그닥 볼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는 구차한 삶에 불과한데도 그 삶의 테두리를 지켜보겠다고 아둥바둥대고 그렇게 덕지덕지 가려놓은 내 꼴을 봐달라고 허우적대는 모양새가 우습고 우스워서...

어느새 웃다가 또 어느새 울고 있다...

더럽고 추한 내 속내를 행여나 들킬세라...

꽁꽁 틀어쥐고...

쓰잘데 없는 생채기를 내고 곪아터져가면서도...

악을 쓴다...

 

좀 지겹다...

이런 나 자신이...

 

언제나 손에 잡힐 듯한...

 

그렇지만 언제나 멀리 가버리는 그런 꿈들을 뒤쫓으면서...

꿈만 꾸어대는...환상 속에서 헤매는 그런 보잘 것 없는 내 삶이

더없이 애처롭지만...

 

그래도 요즘은 사는 것이 다시 즐거워졌다...

 

사는 게 지겹고...

의미가 없어서...

구차해서...

구질구질하던 내 삶이 다시 조금씩 조금씩 온기를 찾고 있다...

멈춰버린 심장이 다시 조금씩 조금씩 뛰고 있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희망이 어디선가 움트고 있다...

 

다시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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