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백석과 박수근을 만나다

category 관주와 비점 | Posted by 오씨 부부 | 2019/06/16 11:28


 

금(거문고)과 기(바둑)에는 능하지 못하나 대신 글씨와 그림이라면 먼길이라도 반드시 달려가서 눈을 틔우고야 마는데, 올해는 그간 연이 닿지 못해 아쉬워했던 두 거장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창 공부하던 시절, 중국회화사에 특히나 관심을 가졌지만 중국과 외교 관계도 없던 시절이고 지금처럼 출판 수준이 뛰어나지도 않았기에 유명한 대가들의 이름만 되뇌이며 조악한 흑백 도판에 만족해야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데 지난 겨울, 기억 속 중국회화사의 맨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현대 중국화의 최고 거장인 치바이스(齊白石, 1863~1957)의 전시회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는 두 번째 전시회라는데 첫 전시회보다도 규모가 커졌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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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스에게 큰 영향을 준 팔대산인 주탑부터 치바이스 이후 세대의 화풍까지 알 수 있도록 꾸며진 점, 산수화부터 초충도에 자화상까지 다양한 화풍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던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다시 보고 싶은 그림이 있었어서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봐야지 하고 있다가 그만 이름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큰 산봉우리와 작은 산봉우리가 겹쳐 있고 그 중 작은 봉우리로 오르는 외길 계단 끝의 초가를 그린 그림인데, 작가가 스스로를 옛 고인(高人)들만은 못하지만 범속한 세상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일가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듯하여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을 실견하니, 이제 내겐 호남(후난성) 상담(샹탄현)이라면 모(毛) 씨보다 먼저 떠오를 인물이 되었습니다.

 

<청명상하도>나 <천리강산도>는 인터넷으로 고화질의 스캔본이 공개되어 며칠에 한번씩 보고 또 보고 있으니 아쉬울 게 없으니, 남은 소원은 영국으로 날아가 고개지의 인물화 <여사잠도>(권)를 두 눈에 담아올 날만 기다립니다. 이번 달 말일까지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열리는 <壽而康>전도 보러 가고 싶지만, 여름엔 역시 예르미타시죠.

 

4월 중순에는 양구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미술관이 아기자기한 게 기억에 남지만 작품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국내외 콜렉션들이 주로 소장하고 있다보니 막상 고향에는 그림이 적을 수밖에요. 그래도 작가의 흔적을 찾는 이들에겐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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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화단의 화풍과는 달리 독자적인 그림 세계를 펼쳐보인 박수근의 연보 속 행간을 보면 역시 외국 평론가들로부터 먼저 인정을 받았더군요. 기득권을 가진 화단 권력이 새로운 화풍과 작법을 인정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딱히 누구의 제자도 아니고 밀어주는 사람도 없는 데다 뭔가 튀면 일단 밟기부터 하는 못난 버릇들을 봅니다. 기어이 외국 사람들이 알아주면 그제서야 갑자기 떠받들기 시작하는 이 땅의 못된 습속에 강한 의구심이 들더군요. 상복이 많지 않았던 삶이 그래서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재주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몸부림치지 말고 넓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서 활개치고 사는 게 좋습니다.

 

어찌됐든 30년 전에 호암미술관에서 처음 마주했던 이중섭의 작품들만큼이나 오랜 시간 작품 앞을 서성이게 만드는 박수근의 그림과 그의 흔적을 더듬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근처의 작가 레지던스로 이어지는 동산에 그의 묘가 있어 잠깐 묵념을 하며 어릴 적 아련한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백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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