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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속도

Tori~님의 [걸어다니면..] 에 나오는 '씽씽거리며 달리는 자전거'에 자극받아 쓰는 글. ^^

속도는 시간을 줄인다. 줄어든 시간만큼 세상이 압축된다. 먼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좀처럼 스스로 표현하지 않/없는 작은 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도,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고도 함께 사라진다. 며칠 전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가게 될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창밖으로 보는 풍경은 '그림' 같았다. 아름답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볼륨감있는 풍경이라기보다는 2차원의 유리창에 투영된 '그림'에 지나지 않았다. 시속 100km가 넘는 자동차의 속도 속에 자연의 모든 꿈틀거림이 정지해 버린 것이다. KTX를 처음 탔을 때를 기억한다. 도무지 현실감이라고는 느낄 수가 없었다. 자전거의 10배가 넘는 속도에 무력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KTX의 속도 속에서 자연은 정말로 속도를 위해서는 사라져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상하이에서 시속 460km의 자기부상열차를 탄 적이 있다. 기억나는 풍경이라고는 땅이 완전히 평평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없다. 속도를 줄여 시속 200km가 됐을 때, 나는 그것을 '아주 느리다'고 느꼈다. (비행기는 속도도 속도지만, 시선의 변화가 워낙 극단적이어서 따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시속 10km 미만일 때 자전거 타기는 '이동'보다는 '유희'에 가깝다. 하지만 시속 15km 정도가 되면 놓치는 풍경들이 많아지고, 시속 20km를 넘어가면 주위를 둘러볼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속 30km를 넘어가면 잠시라도 앞쪽을 주시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자전거를 좀 타게 되면 얼마 안 있어서 속도에 대한 열망이 생기곤 한다. 어제의 자기보다 좀 더 빠르게, 다른 자전거들 보다 빠르게... 그리고 도심에서는 불가피하게도 버스나 지하철만큼 빠르게, 자동차만큼 빠르게... 나중에는 걷기가 귀찮아질 정도로 중독에 빠져 아주 가까운 곳도 자전거 없이는 움직이지 않/못하는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자전거의 진정한 장점은 언제든지 내려 설 수 있고, 또 걸을 수 있다는 거다. 속도에 대한 열망이 생길 무렵, 효율적인 패달링과 부품의 업그레이드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언제든지 내려서 자전거를 밀고 갈 줄 아는 여유를 배우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볼 때, 작고 꿈틀거리는 것들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걷고 있을 때, 우리는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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