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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3190(210412)호] 신자유주의의 파산은 혁명의 전야 : 레닌의 혁명적 실천의 입장 ‘제국주의론’에서 배운다

주간『전진(前進)』 3190호(2021년 4월 12일자)

신자유주의의 파산은 혁명의 전야

레닌의 혁명적 실천의 입장 「제국주의론」에서 배운다

 

코로나 팬데믹 아래서 미중대립이 격화되며 세계전쟁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레닌과 볼셰비키의 투쟁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당(黨) 학교에서 제출된 「제국주의론」 레포트(요지)를 싣습니다.(편집국)

 

제국주의 세계전쟁을 내란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인 1916년에 집필된 「제국주의론」은 ‘자본주의의 최고 발전단계’로서의 제국주의의 결말과 파산을 폭로해 프롤레타리아 계급형성의 과제를 명확히 하며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현실성을 조명했다. 그리고 「제국주의론」과 「국가와 혁명」을 무기 삼아 레닌과 볼셰비키,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현실에서 전시 하의 러시아 제국주의를 타도했다.

 신자유주의로 연명해온 자본주의는 사회도 자연도 파괴, 황폐화시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불러냈다. 이제 기축국‧미 제국주의의 몰락과 전후 세계체제 붕괴 속에서 미 제국주의 스스로가 국제 제국주의를 쟁투전으로 끌고가 미중대립은 한층 더 격화되었고, 전쟁적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레닌의 시대와 같은 노골적 대립‧격돌을 심화시켜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초래했다. 최말기 제국주의의 절망적 연명형태인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전개와 대파산, 그 속에서 시작된 계급적 노동운동의 태동과 국제 계급투쟁의 내란적 격화야말로 그 결정적 지표다. 그렇기에 제1차 세계대전을 내란으로 전화해 러시아 혁명의 승리를 만들어낸 레닌의 투쟁에 육박하는 일이 오늘날 요구되고 있다.

 「제국주의론」을 ‘혁명의 문서’로 학습해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의 결정적 무기로 되살려내자.

 

사회배외주의와의 당파투쟁

 「제국주의론」은 1916년 6월경까지 스위스에서 집필됐다. 1917년 2월혁명 후 귀국한 레닌 스스로가 4월 말에 서문을 써 1917년 중반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1914년 7월의 제1차 세계대전 촉발과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라는 사태와 대결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현실성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개전 전부터 전쟁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1912년의 바젤선언에서는 “그래도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신속한 종결을 위해 힘쓰고, 전쟁이 만들어낸 경제적 및 정치적 위기를 국민을 흔들어 깨우기 위해 이용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계급지배의 배제를 촉진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 결정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각국 사회주의자들이 일제히 조국방위주의=사회배외주의(말로는 사회주의, 행동은 배외주의)로 전락했다. 특히 제2인터내셔널의 주축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독일 제정국가가 러시아에 선전포고한지 이틀 후인 8월 4일 제국의회에서 전시공채안에 찬성투표했다. 레닌은 이 현실과 철저히 싸웠다. 스위스에서의 망명생활이라는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특히 비합법 기관지의 논문을 통해 러시아 국내 볼셰비키의 무장과 조직강화를 추진했다.

 동시에 레닌은 국제 무대에서의 조직화 투쟁에 힘을 쏟았다. 볼셰비키의 재외 지도부를 조직하고 이를 토대삼아 국제 사회주의자의 재결집을 필사적으로 추구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전쟁 익찬(조국방위주의)로 전락한 사회배외주의자들에 맞서는 국제적인 당파투쟁이었다. 이를 위해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나 「사회주의와 전쟁」을 펴냈다. 1915년 9월 열린 짐머발트회의(국제사회주의자의 회의)와 1916년 4월의 제 2차 회의(키엔탈 회의)에서는 사회배외주의와의 비타협적 투쟁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론」이 집필되었다.

 가장 큰 당파투쟁은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최대의 권위를 가진 카우츠키 비판이었다. 카우츠키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중간파로서 제국주의 전쟁에 애매한 ‘평화’를 대치해 ‘초제국주의론’으로 제국주의의 안정적 지배를 그려냈고, 제국주의 아래서도 평화적 정책이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을 부추겼으며, 무엇보다 기회주의‧사회배외주의와의 화해를 조직했다. 이에 대해 카우츠키주의의 오류의 이론적=경제적 기초를 선명히 하고 카우츠키주의와의 결별을 조직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그 입장이 「제국주의론」에 관철되어 있다.

 이리하여 레닌은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자국정부의 타도, 조국패배주의, 그리고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의 깃발을 분명히 해 당파투쟁과 조직화를 일체적으로 전개하며 1917년 혁명으로 나아갔다.

 

제국주의는 사회주의의 과도기

 「제국주의론」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것은 19세기 말부터 세계의 자본주의에 발생한 새로운 역사적 현상들을 「자본론」의 논리와 어떻게 관계지어 파악해야할지의 문제였다.

 19세기 말부터 세계의 자본주의는 「자본론」이 이론적으로 상정하고(또한 당시의 마르크스 스스로도 역사 발전으로 인식하고)있던 순수한 자본주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순한 요소를 잔존시켰고 새롭게 발생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소생산자적 농촌의 분해가 진행되지 않고 많은 중간적 사회층을 남기는 등 영국이 3대 계급으로 분화‧발전했고, 그 뒤를 따르는 나라들도 크게 이와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이론적 상정과는 매우 다른 현상들이 나타났다. 또한 「제국주의론」에서 거론되었듯 자유경쟁의 대척점에 있는 카르텔과 같은 독점적 경향이 독일 등에서 등장했다.

 이를 두고 독일 사회민주당은 「자본론」이 현실적 타당성을 잃었다고 주장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도 함께 비판한 베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가 등장했다. 이에 맞서 「자본론」의 타당성을 교조적으로 주장해 「자본론」의 논리 그대로 세계시장 분석을 전개하려 하는 카우츠키를 대표로 하는 ‘정통파’가 대립하는 모양이 되었다. 그것은 모두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로의 세계사적 추전(推転)으로 파악되지 못했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파산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자본론」체계를 계승했지만 교조적 논리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현상들의 구체적 분석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이를 분리하여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로서의 제국주의’라는 자본주의 발전단계로 규정했다.

 레닌은 「당강령 개정자료(1917년 4-5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계속이며, 그 최고 단계이고, 또 다른 점에서 사회주의로의 과도단계다”, “실제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조하는 것이 아니며, 개조할 수도 없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들을 복합하게 만들며, 격렬하게 만들며, 자유경쟁과 독점을 ‘뒤얽히게’하지만 교환, 시장, 경쟁, 공황 등을 배제하는 것은 제국주의가 할 수 없다”, “제국주의는 수명이 다하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사멸하고 있지만 아직 사멸하지 않은 자본주의다. 순수한 독점이 아니라 교환, 시장, 경쟁, 공황과 함께 존재하는 독점―이것이 제국주의 일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입장과 방법으로 레닌은 「제국주의론」을 전개한다.

 

세계의 재분할을 건 전쟁

 이하, 「제국주의론」의 내용전개의 핵심에 대해 요점만 밝힌다.

*본문에서 인용된 내용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아고라, 2017)」에서 재인용하였습니다. 괄호 안의 페이지수는 모두 재인용한 책의 페이지수입니다. -옮긴이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

 “요약하자면 제국주의란 독점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형성되고, 자본수출이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며, 국제 트러스트들에 의한 세계 분할이 시작되고, 가장 큰 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지구의 모든 영토 분할이 완료된 발전 단계에 도달한 자본주의다(145p)”.

 「제국주의론」은 1장(생산의 집중과 독점), 2장(은행과 그것의 새로운 역할), 3장(금융자본과 금융과두제)를 통해 독일의 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의 집중과 독점, 독점에 의한 지배‧강제(착취‧수탈)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과 모순의 첨예화로 밝혀나간다.

 1870년대에 획기적으로, 그간 섬유공업으로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던 영국에 맞서 독일이 철강‧석탄 등 중공업을 기축(基軸)적 산업으로 해 등장한다. 그것은 거대한 고정자본을 전제로 해 처음부터 주식회사 형태에 따른 사회적 자본의 집중이 이뤄졌고, 중공업에서 카르텔 등 독점이 생겨났다. 이러한 자금의 동원을 장기고정신용의 수여와 주식의 발행업무 인수를 통해 실현하는 은행의 집중도 진행되어 양자의 유착이 촉진되었다. 이렇게 한 나라 내부의 생산기축을 지배함으로서 금융자본의 전형이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독점과 금융자본은 “생산은 사회적인 것이 되고 있지만, 전유(專有)는 개인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사회적 생산수단들은 소수의 사적소유로 남아있다(40p)”, “소수 독점가들의 나머지 주민들에 대한 억압은 백 배나 더 무거워지고, 더 부담스러워지고, 더 견디기 어려워진다(40-41p)”는 무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 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온갖 모순을 첨예하게 했다. “이러한 모순들의 격화는 세계 금융자본의 최종적인 승리와 함께 시작된 역사적 이행기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다(207p)”. 이렇게 레닌은 자본주의의 말기성과 혁명의 조건을 명확하게 해나간다.

 이어서 4장(자본수출), 5장(자본가 연합들 사이의 세계 분할)에서 금융자본의 세계적 전개와 국제 카르텔의 실태를, 6장(열강들 사이의 세계 분할)에서 영토적 분할의 완료를 보여주고, 7장(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로서의 제국주의)에서 그 불균형성에 대해 말한다.

 독점에 따른 자본의 과잉은 자본의 유출을 현저하게 만든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아래에선 과잉된 자본은 결코 노동자에게 부를 가져다주지 않고 해외로의 자본투하, 식민지적 영유(領有)의 욕구가 되어 초과이윤을 탐내게 된다. 그것은 제국주의가 연명하기 위한 사활적 정책이 된다.

 20세기 초, 독일을 전형적 모델로 삼는 금융자본의 국제적 전개와 세계시장의 독점적 분할이 시작되는 한편, 독일이나 미국의 대두에 대항한 영국의 식민지 확장주의가 가속되며 식민지 영유의 세계적 분할이 완료되었다. 독일의 생산력 발전은 영국보다 빨랐음에도 식민지 영유는 영국이 압도적이었다. “묻건대, 자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한쪽의 생산력 발전 및 자본 축적과, 다른 쪽의 금융자본을 위한 식민지 및 ‘세력권’의 분할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없애는 데 있어서 전쟁 외의 다른 어떤 수단이 있을 수 있겠는가?(160-161p)”

 1920년판 서문에서 “검열을 통과한 이 소책자에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될 아주 중요한 내용”(11p)으로서 “1914~8년 전쟁이 양 진영 모두에게 제국주의 전쟁(즉 침략적이고 약탈적이고 강도 같은 전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전쟁은 세계를 나눠먹기 위한 전쟁, 식민지와 금융자본의 ‘세력권’을 분할하고 재분할하기 위한 전쟁이었다(상동)”고 제국주의 전쟁의 계급적 성격을 철저히 폭로‧단죄하고 있다. 이야말로 「제국주의론」 전개의 내용적 핵심 중 하나다. 이는 동시에 “전쟁이 만들어낸 전세계적인 폐허로부터 전세계적인 혁명적 위기가 자라나고 있으며, 그것은 아무리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칠지언정 결국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과 그 승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15p)”이라며 세계혁명을 일으킬 제국주의의 타도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망을 비춰내고 있다.

 

■사회배외주의를 단죄

 이어 레닌은 8장(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패), 9장(제국주의 비판)에서 카우츠키 비판과 기생성론에 따른 사회배외주의의 규탄을 통해 계급주체‧변혁주체의 문제에 닿는다.

 “제국주의란 세계 분할과 단지 중국에 대해서만은 아닌 착취를 의미하고, 한 줌밖에 안되는 가장 부유한 나라들을 위한 높은 독점이윤을 의미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층부를 매수할 수 있는 경제적 가능성을 창출하여, 그로부터 기회주의자를 키우고 형성시키고 강화시킨다.(170-171p)”

 1920년판 서문은 더욱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엄청난 초과이윤으로 노동계급 지도자들과 노동귀족 상층을 매수할 수 있음(21p)”, “‘선진’국가 자본가들은 실제로 그들을 매수하고 있음(상동)”, “부르주아화된 노동자 계층, 다시 말해 ‘노동귀족’은 (...) 제2인터내셔널의 주요한 기둥으고 요즘은 부르주아지의 주요한 사회적 기둥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실질적으로 노동계급 운동 내에서 암약하는 부르주아지의 첩자이자, 자본가계급의 노동 관리인들이며 실제로 개량주의와 배외주의를 전파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상동)”. 이 사회배외주의와의 비타협적 투쟁은 사활적이다.

 그 위에서 “단지 제국주의 일반에, 특히 기회주의에 대항하고 있는 세력들을 잊어서는 안(171p)”된다. “이제 기회주의는 19세기 후반기 동안 영국에서 승리한 것과 같이 수십 년 동안이나 한 나라의 노동운동에서 완전한 승자로 나타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나라들에서 완전히 성숙하고, 무르익고, 썩어버린 나머지, 사회배외주의라는 부르주아 정치와 완벽하게 융합했다(177-178p)”.

 

■사멸하고 있는 자본주의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전개의 총화로서 10장(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에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이며, ‘사멸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레닌은 모든 장(章)을 통해 제국주의가 다음 사회로의 과도기이며, 그 조건을 만들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생산과 분배가 사회적으로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한편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억압‧압박을 극한적으로 시행하며 전쟁마저 불가피하게 만드는 이러한 모순의 심화야말로 몰락기에 접어든 사멸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주체적 조건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동운동에서의 분열과 분기의 심화 속에서 진정으로 계급적인 노동운동의 조류가 반드시 등장해 승리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당강령 개정자료(1917년 4-5월)」)’―1916년엔 이솝우화로밖에 표현되지 못한 이 한 문장이야말로 「제국주의론」의 결론이다.

 

‘코로나×대공황’을 혁명으로

 신자유주의는 최말기 제국주의의 절망적 연명형태이며, 결코 제국주의 단계를 대체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단계가 도래했음이 아니며, 또한 단순히 자본주의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발전한 것도 아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래의 역사, 계급투쟁의 전개와 모순의 격화, 구체적으로는 미 제국주의의 1975년 베트남전 패전과 74~75년 공황으로 표출된 전후 발전의 막다름에 직면한 가운데 ‘국가폭력에 의한 노동조합 탄압’을 핵심으로 한 제국주의의 연명에의 절망적 발버둥이자 파산형태다. 그리고 오늘날, 노동자계급인민에게 가증스러운 타도 대상이 된 것이다.

 이제 기축 제국주의‧미제가 역사적으로 몰락해 전후 세계체제의 파괴자로 등장함으로써 미중대립을 격화시켜 세계전쟁의 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주의론」의 세계는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현실적인 모양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멸하고 있는 자본주의’이자 ‘사회혁명의 전야’로서의 제국주의의 모습이 일체의 껍데기를 벗고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제국주의론」을 말하며 ‘평화롭고 진보적인 21세기’라는 어처구니 없는 세계관으로 카우츠키를 훨씬 넘어 제국주의와의 화해를 조직하는 일본공산당과 철저히 대결해야만 한다.

 ‘코로나×대공황’과 대결해 제국주의를 타도하는 세계혁명을 이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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