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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산업공동화의 한 모습

미국에서 잠시 대학원을 다녔었다. 중부에 위치한 대학이었다. 전공과는 다르지만, 지역공동체에 관심이 있던 관계로 농촌계획에 관한 수업을 건축조경대학원에서 하나 들었었다. 교수는 진보적인 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국립공원을 지킬까, 몰락을 경험하고 있는 지역공동체를 재활할까,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높일까 등을 자신의 전공을 통해 고민하는 분이었다. 수업은 너무나 재밌었다.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도시계획 관련 학문이 그렇게 진보적인 학문인지 정말로 몰랐다. 그덕에 전공관련 수업보다 더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하루는 현장 학습 형태로 원하는 학생들만 중부에 있는 한 동네(우리나라 읍정도 크기)에 방문과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사실 가기전에 그 동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못사는 시골동네를 상상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농활 다니던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교수가 운전하는 차 안에 찌그러져 한 네시간 넘게 미국 중부의 순전히 옥수수 밭으로 뒤덮인 도로를 달렸다.


도착할 때쯤에 어려풋이 잠이 깼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저 시골 풍경이다 싶었다. 점점 동네에 가까워지니 배 아래쪽이 간질간질해졌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이건 분명 농사짓는 동네는 아니고, 도시의 모습이다. 주택가와 상가들... 그런데, 가게라는 가게는 모두 감옥의 창살만한 크기의 쇠창살로 문이며 창문이 모두 가려져 있다. 그나마 장사를 하는 듯한 것도 그중 몇개 안되보였다. 오늘 주활동이 될 동네 공원 정비를 하기 위해 가는데, 학교로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 학생들도 보이고, 학교 모퉁이에는 성매매여성이 대기 중이다. 이제는 내가 혹시 오늘 멋도 모르고 죽을 꾀를 낸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커졌다. 아마 그때 내 얼굴을 누군가 유심히 봤다면, 제 죽으러 가는가보다 했을 것도 같다. 이 동네는 미국 중부에서 아주 큰 도시에 속하는 세인트 루인스와 강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 곳이다. 과거 70년대 중부에서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잡았던 육류 처리와 포장(meat packing)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 의해서 성장한 동네였다. 마을에서 강변으로 가면 저 멀리 세인트 루이스의 거대한 뿔모양의 조형물도 보이고, 웅장한 건물들도 보이고, 하지만 이 곳에는 폐가와 그 사이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로 유령 마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원에서 지역 주민들과 나무도 심고 망가진 테니스 코트도 고치고, 지역 주민들이 마련해 준 맛난 핫도그도 먹고(핫도그에 쓰는 양념이 독일식이었다는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워낙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두려움은 가시고 왜 이렇게 한 마을이 성쇠를 그렇게 짧은 기간에 겪어야 했는지, 이들에게 다시 좋은 시절은 돌아올지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밝은 표정의 지역주민들이 왠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이동 중에 주민들로부터 과거의 아름답던 자신들의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그랬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역주민들은 대부분 70년대 자신들이 어린 시절 자신들의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서 희망을 찾고 있었다. 전세계적인 산업구조의 변화는 거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석탄산업의 몰락, 섬유의류업의 쇠락과 같은 변화를 겪고 있다. 제조업의 공동화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국가들과 비교해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엄청나다. 환경변화에 따라서는 그 영향은 상상하기 힘들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곳에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고, 공동체를 아끼고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다 떠나지 않는 한, 지역공동체들를 통해서 고난을 헤치고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세계의 변화는 항상 가장 소외된 자들에게 더 큰 시련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역공동체들은 준비된 시련을 견뎌낼 기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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