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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 다녀왔다.

친구들과 설악산에 다녀왔다. 

아래 지도를 보면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 코스를 선택했는데

산을 타는데는 1박 2일이 꼬박 걸리기 때문에 실제로는 2박 3일로 일정을 잡아야 한다.

6시 30분쯤 강변역에서 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 대략 3시간. 여기서 시내버스를 타고 설악산 입구에

도착. 대략 30분. 10시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첫 날은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짧은 코스를 선택.

신흥사 -> 소공원 -> 비선대 -> 양폭 대피소 -> 희운각 -> 중청 대피소를 따라 이동.

중간에 점심 식사 1시간 잡고 저녁 7시쯤 도착했으니 조금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하루코스로 적당하


>> 설악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퍼왔음. 당일, 1박, 2박 등등 여러 가지 코스가 있더이다. 요즘은
국립공원 홈페이지가 잘 돼 있어 편리하다. 홈페이지로 대피소 미리 예약하는 건 필수.



>>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기 직전. 기념으로 셀카를 찍었다.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풍경. 겨울산을 타면 산행 초입에는 조금 풍경이 건조하지만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어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광경을 볼수 있다. 설악산은 다양한 종류의

바위가 많아 웅장하고 담대한 느낌을 준다. 지리산보다는 훨씬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중간 중간 너무 너무

멋진 풍경 때문에 육체 피로를 싹 잊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산의 매력은 고요함에 있다. 봄에는

꽃, 여름에는 계곡, 가을에는 단풍을 찾아 오는 사람들로 산이란 산은 죄다 인파로 북적대지만 겨울산에는

아주 적은 사람들이, 정말로 산을 좋아하는 매니아들만이 산을 찾는다. 그래서 적요로 둘러싸인 산과

하나가 되고 싶다면 겨울산행이 제격이다. 오직 내 발에 의지해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호흡은 거칠어지고

두툼한 등산복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거친 숨소리만이 온 산을 가득 메우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오르막을 치달아 올라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 펼쳐지는 그

놀라운 광경. 나도 모르게 '와아~~~' 탄성이 흘러 나온다.

와이드 샷으로도, 그 어떤 매체로도 기록할 수 없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 정상에서부터 중턱까지

절반쯤 눈에 덮인 산, 그 앞으로 뒤로 옆으로 사방으로 온통 산이 수묵 담채화처럼 조금씩 흐려지고.

그 사이 사이로 웅장한 바위들이 솟아 있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 세상 모든 고민과 욕망이 다 사라진다. 그냥 산이 좋다. 그냥 이 순간이 좋다. 그냥 내가 좋다.

이 순간, 이 느낌, 이 만족감 아주 오래 오래 내 마음 속에 담아두고 새겨두고 그래서 카메라를 누르고 또

눌러도 부족하다. 너무 부족하다.



>> 산행 초입.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 계속 올라가면 이 계곡이 다 얼어 있다. 이렇게 시작된 산행.



>> 비선대에서 찍은 바위. 여기까지가 딱 수학여행 코스여서 오래 전 그 때 기억이 되살아났다.


>> 요즘은 통신 가능지역과 불가능지역까지 표시되어 있더라. 국립공원도 서비스 시대??



>> 와 저 하늘 좀 봐. 정말 날 제대로 잡았다.


>> 산과 산 사이로 또 다른 산이...


>> 슬슬 계곡이 얼어간다. 독특하게 생긴 바위나 암벽이 많다.


>>그러게...정말 신기하다.


>> 오르막에선 체력 소모가 심하다. 그래도 하늘을 오르는 기분이다.


>> 점심 먹고 오후...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 이제 산은 완연하게 겨울의 모습을 드러낸다.


>> 사위가 어두워진다. 해가 저물어간다. 밤이 다가온다. 밤에, 산은 포근하지 않고 무섭다.


>> 정말 재수좋게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 일몰을 목격. 죽음이다. 뒤처진 친구들은 못봤다....이 멋진 걸.





중청대피소에서 1박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대청봉에 올랐다. 일출을 보기 위해.

중청대피소 -> 일출 -> 희운각 -> 공룡능선 -> 마등령->금강굴->비선대를 따라 이동.

첫날보다 이동거리가 길다. 일출에 취하고, 신나게 봅슬레이를 타며 내리막길을 무지 빠른 속도로

내려올 때까지... 이토록 길고 힘든 하루고 될 줄 몰랐다.

코스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미리 준비해 온 지도에 예상 시간이 적혀 있었지만 내리막이니 더 빨리

내려갈 수 있으리라 자신했지만. 공룡능선은 이름에 걸맞게 울퉁불퉁 거칠었다. 마등령은 오르막이

많아서 어찌나 속도가 나질 않는지 마등령이 마귀의 등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계속 생각했다.

시간은 계속 늦어지고 친구들도 지쳐갔다. 기어이 해는 지고, 친구 하나는 다리가 아작났다. 친구

배낭까지 배낭 두 개를 매고 내려오는데 오깨랑 허벅지가 미치게 아팠다. 그런데 너무 무섭고 신경이

곤두 서서 아픈건 느낄 새도 없이 미친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도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는다. 뒤에 처진 친구들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미 다 뿔뿔이 흘어져서 천상 목적지에 도착해서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마에 걸친 전등에 의지해서 가는 길. 내리막이 계속되어도 경사가

줄어들지 않고 가끔은 길이 혼동스러워서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너무 무서워서 다른 곳은

비출 엄두도 못 내고 딱 내 발만 비추며 걷는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고 발을 헛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끝내 10시 30분이 넘어 비선대까지 도착했지만 모두들 너무 지쳐 있었다.
(후유증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다시 와야지...다음엔 준비를 좀 더 해서 말이야...



>> 일출...멋지다.


>> 해가 떠오른다.



>> 여기는 설악산 정상. 대청봉에서 ..


>> 해가 뜬 직후. 여전히 멀리 달리 떠 있다.



>> 내리막길. 봅슬레이. 어린애 마냥 즐겁다.



>> 산행 친구들. 슬슬 지쳐갔어...



>>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아온 나무는, 마치 왁스를 떡칠한 머리처럼 한 쪽으로 심하게 쏠려 있다.


>> 바위 틈새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어. 마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넘어선 기분이야.
왠지 이 길을 따라가면 홍길동이 살던 율도국이나 반지의 제왕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아.



>> 저 하늘 좀 봐.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그리고 그 하늘을 배경삼아 멋지게 서 있는 나무는 어떻고...



>> 그래도 꾸역구역 봄은 온다.


>> 설악산 바위들. 정말 멋지다.




>> 뉘엿뉘엿 해가 진다.



>> 비선대까지 불과 3.7km인데...줄지를 않는다. 이게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이야. 서편으로 지는
해가 낮게 깔리자 그림자가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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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혀]

1.

신인 소설가 주이란이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작품을 베꼈다가 주장하면서 한 동안 화제가 되었던 작품.

표절 논란이 없었다고 해도 이 소설, 즉 조경란의 [혀]를 읽었을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에다, 그 소재를 둘러싸고 벌어질 사태의 전개가 자못 궁금하기도 했고
(난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 즉 분석해야 하고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음식을 소재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분석할지 작가의 관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야 할 책 목록에만 저장해 두었다가 조경란과 주이란의 [혀]를 동시에 사서 읽었다.



2.

미식가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시로 침이 고일 것이며, 때로는 식탐을 참지 못해

음식을 먹으면서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더러는 레시피를 따라 새로운 요리에 도전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난 미식가가 아니다. 식탐은 있지만 불규칙적이다. 정서가 불안할 때마다 포만감을 느끼려고

폭식을 더러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음식의 질을 따지지는 않는다. 그냥 배가 부르면 된다. 그럼 생각이

조금 단순해진다. 먹고, 싸고, 자고, 뒹굴고...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해진다.

그게 조금 아쉽다. 이 책은 레시피에 상당한 공을 들인데다 그 요리의 맛을 묘사하는 과정은

가히 감각의 만찬이라 불릴만해서 요리에 관심이 없는 나로선 작품의 느낌을 100% 흡수할 수가 없었다.


몇 페이지에 걸쳐 요리 과정을 설명하고 그 맛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오감에 정신분석까지 곁들인다.

한 편으로 이 소설은 요리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고찰이라는 재미까지 더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거의 스치듯 훑고 지나갔기 때문에 아쉬움도 남는다. 소설은 엄청 빨리

읽었지만 작품의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기분.



3.

그럼에도 엄청 재밌게 읽었다.

남자 친구가 바람난다. 요리사인 여자는 그 남자를 잊지 못한다.

더  이상 함께 요리를 즐길 수 없다. 모든 꿈이 사라졌다. 폐인 모드로 돌입한다. 여기까지만 줄거리를

들었다면 그냥 보통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 수준에서도 재밌다. 절망모드와 생존모드를 오고가는 여자의 심리상태 묘사가 뛰어나다.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감정의 극과 극을 수시로 오가는 상태를 키친과 주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오밀조밀하게 묘사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리고 그 감정이 누적되면 상태에 따라 다양한

요리가 결과물로 나오고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 즐기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을 둘러싼 갖가지 에피소드가 오물조물 잘 버무려져

있다. 따라서 제목이 [혀]인 첫번째 이유. 혀로 맛을 보기 때문이다. 음식을 둘러싼 이야기인 만큼 혀에

대한 묘사는 모자람이 없다. 어떤 때는 몸뚱이 전체가 거대한 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헤어진 남차친구는 물론이고 주인공인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는 음식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문주는 폭식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았고,

요리사로서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주방장은 경쟁자인 동시에 종종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알콜중독자인 삼촌은 유일한 가족으로 나오는데, 삼촌의 아내는 거식증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4.

혀는 먹는 행위를 넘어서 자는 행위의 중심. 즉 성기로 묘사된다.

(여성이기에 더 그럴 것이라 생각한건데) 생김새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먹는 행위와 성관계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하나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비교가 가능하다.

작가는 이 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상처받은 주인공의 방어심리와 공격성은 두 개의 입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어쩌면 사랑이란, 크게 이 두가지

태도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두 개의 입을 함께 포갤수 있을 만큼 친밀한

관계가 되기 까지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두 개의 입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절정의 관계를 나누고 있을 때 두 개의

입은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당연히 사랑이 깨진 후 두 개의 입을 매개로 공유했던 숱한 경험들은

지극한 고통을 수반한다. 모든 추억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감각기관은 절망과 희망을 한데

모아놓은 모순의 집결지다. 따라서 그 두 개의 입이 때로는 지독한 방어 도구로, 때로는 극단적인

공격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제목이 [혀]인 두번째 이유.



5.

제목이 [혀]인 마지막 이유.

가장 자학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파멸시키고 또 그럼으로써 재생을 꿈꾸고,

재생을 위한 의식을 치루는 과정에서 [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간절해지고

심장은 빨라지고 끝내는 허탈한 기운을 남기고 끝난다. 아주 섬세하게 묘사된 그와의 마지막

식사 장면은 음식의 맛을 모르는 나로서도 숨막히게 흥분됐다.

폭풍소요 고요. 정적 속의 살의. 가장 조용하고 폭력적인 복수.


그 극단적인 결말에 이르러 제목의 상징적 의미가 도처에서 폭주한다.

마치 이 결말 하나만으로 보려고 달려왔던 듯. 전혀 새로운 종류의 추리소설을 읽고 난 기분이다.
 



p.s 1 주이란의 [혀]는 단편이라 아주 금새 읽었다. 혀를 매개로 모순적인 인간 행위와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불편하고 그 불편함 이상으로 매혹적이란 점에서

두 소설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많이 다르다. 표절이라 보기는

어려울 거 같고, 모티브 자체를 따왔다면 그도 표절이라 해야할지..쩝...아무튼 조경란의 [혀]가 훨씬

섬세하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이란의 [혀]는 단편이라 압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묘사방식이 조금은 거칠고 덜 다듬어진 느낌이다.



p.s 2 '음식은 작품이고 미식가나 요리사는 예술가다. 입술은 최초의 에로스 기관이다. '

조경란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엔...쩝...내공이 조금 딸리는 듯. 혹은 된장이 되어야 하는 건가?

소설 배경마자도 죄다 청담동, 압구정동이 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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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욤 뮈소 <구해줘>

- 기욤 뮈소 <구해줘>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 사연을 보낸 게 당첨되었고 5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과 이 책을 선물받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올린 사연은 기억나질 않는다. 심지어 올렸는지 조차도...

아무튼 공짜인데 이 정도면 쏠쏠하다 싶어 다른 프로그램에도 사연을 올렸으나, 몇 번 소개는 됐는데

선물은 없었다.



기욤 뮈소의 <구해줘>

내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 동안 책장에서도 손이 닿지 않는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선물받은거 같아서 버리기는 뭐하고...책을 읽으면 남을 주는 스타일상  책장이 엄청 비좁은 관계로

슬슬 새책에 자리를 내줘야할텐데...

그렇게 밀려둔 숙제처럼 읽었다. 처음 1/3은 평범한 연애소설 같아서 읽히지 않다가 중반 이후로

스토리가 급반전.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한 순간에 어긋난 인연이 어디에 가 닿을지

독자에게 상상을 강요하는 듯한 소설 같기도 하고, 가끔은 <식스 센스>처름 죽은자가 나타나고

또 그 죽은자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서 미해결의 난제를 해결하는 소설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총격신과 자동차 격추신으로 뒤범벅된 헐리웃 영화같은 느낌도 든다.



후반부는 지루하지 않게 후다닥 읽었다. (성격상 추리를 많이 요구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언제나)

역시나 장정일이 [독서일기]에서 말한대로 후다닥 읽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2/3만큼 괜찮은 소설이라 해두자.

영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역자후기를 보고 검색해봤으나 영화화되지는 않았다.

'긴장감과 속도감 넘치는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라는 평이 대부분인 것에 비추어 대충 누가읽어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그런 소설.

재밌고, 잘 쓰고, 그런 만큼 딱 그 만큼인.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보다 색깔있는 목소리를 가진 말랑말랑한 가수들이 뜨는 것처럼.

소설도 그렇다. 그렇다고 그런 소설이 싫다는 건 아니고 분명 그 가운데도 본좌는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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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봄을 기다려.

10일

늦게 일어나서 늦은 점심을 먹고 현관문 앞에 놓여 있는 한겨레 신문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30분간의 자학과 냉소. 요즘 신문을 읽는 시간은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

그 만큼 신문이 보기 싫고, 신문이 보기 싫은 만큼 세상이 싫다.

그래서 신문을 봐야 한다. 그 답답한 세상을 향한 마지막 문 만큼은 닫지 않고 열어두기 위해.

열고 닫는 게 언제까지나 내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마지막 희망 만큼은 남겨두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는 대형 광고니까 볼 필요가 없고, 바로 그 앞 두 페이지.

그러니까 칼럼과 사설로 가득찬 그 두 페이지가 자학과 냉소의 알곡이다.

어떤 날은 너무 자세히 읽고 어떤 날은 아예 건너뛰는 그 두 페이지 상단에는 [여론]이라고 쓰여 있다.



10일자 신문,

왼편에는 김선주 칼럼 [말은 없고, 헛소리만....]

오른편에는 아침햇발 [진보가 답답하다]

제목만 읽어도 전해오는 그 가슴 답답함. 꽉 막힌 진흙 속에 쳐박힌 물고기처럼 코나 입이 아니라

아가미로 호흡해야만 하는데...숨을 쉬면 쉴수록 아가미로 진흙이 들어와 숨통이 막혀간다.

그래서 읽는다. 그 느낌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물론 이것은 현실에 등을 돌리지도 완전히 발을 담그지도 못하는 자기 연민이다.



김선주 칼럼에는 온통 자학과 절망으로 가득찬 글쟁이의 무기력감으로 가득하다.

'더 이상 말이 말이 아니고 글이 더 이상 글이 아닌 세상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글을 써야 한다면, 글로 돈도 벌고 의견도 말하고 신문사도 굴려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글밖엔 나올 수 없는 세상이다.

매일 엄청난 양의 뉴스를 본다. 용산 철거민 참사 관련 기사는 빠짐없이 본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을 유심히 본다. 종종 아는 사람들 얼굴도 보인다. 내가 지금 저기 같이 있어야 하는걸까?

그런데 그 곳이 무겁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말고 마음이 무겁다. 내 언어로, 내 말로, 내 열정으로

저기에 가 있어야 하는데...무언가를 아직 놓치고 있다. 아니 못 찾고 있다.



아침햇발은 최근 민주노총 사태를 중심으로 대중으로부터 괴리되어 가고 있는 대중조직의 문제점을

꼬집는 글이다. 이쯤이면 좌청룡우백호 급이 아닌가? 글 두 편이 주는 무게감은 10년의 무게를

얹어놓은 듯 버겁기만하다. 그런데 아침햇발 글은 일면 공감이 가면서도 한 편으로 불편하다.

나처럼 대중조직도 대중도 신뢰하지 않는 입장이란...대체 어디쯤 있어야 할까?



그 대중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군중처럼만 보인다.

광우병 사태 때 그렇게 많이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백번 양보해서 철거민들의 저항이 너무 극단적이었다고 해도, 자기 먹는 소고기엔 그토록

흥분하면서 살 곳이 없다고 저항하다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선 어찌도 그리 이성적이고 냉철하신지....

혹여 가슴 속에 꿈틀대는 재개발과 뉴타운의 꿈이,

저 사람들도 결국 돈 때문에 저런 것이니 결국 나와 다를 게 없다는 자기 위안이,

심각한 소크라테스보다는 차라리 적당히 배부른 돼지가 되고 말리라는 타협 정신과

자신만은 고된 된장으로 살아갈 수는 있을거라는 부푼 환상이,

어느 쪽도 공정하지는 못하다는 자기 기만이.......

그런 나도 나가지 않는 이유는?? 아...짜증나고 머리 아프다. 화난다.

그런데 그 대중을 사로잡겠다는 발광하는 대중조직은 대중 못지않게 대중적으로 썩었고....






결국 문제는 대중도, 대중조직도 아니고 나 자신이다.

내 글과, 내 생각과, 내 행동과, 내 삶이 설 자리를 찾아야 한다.

올해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루저의 인생을 끝마쳐야 한다. 아니 적어도 끝마치는 출발점은 되어야 한다.

이게 유일한 올해 소원이다.






2일

어른 혐오증이 있다. 더더욱 아저씨 혐오증이.

오늘도, 예의 말많은 지하철에서 진상 아저씨를 만나고 글을 쓰려 했으나...지친다.

쓰기도 전에 심리적으로 지치는 이 기분. 천천히 쓰자.

....

하루가 지났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를 읽다가 문득 아톰의 스토리가 궁금해진 나머지

웹하드를 뒤졌는데 다행히 1982년판 TV판 astro boy를 찾았다. 다운 받아서 5편까지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게 11시. 아 오늘은 정말 행복한 잠에 푹 빠질 수 있겠구나 싶어 컴퓨터를 끄고

잠을 청했는데 마침 룸메이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다시 잠이 깼다.

그 순간 직감한다. 오늘도 일찍 잠들기는 글렀구나.

꼭 11시나 4시다.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잠들어야만 하는 운명처럼. 때론 이런 것도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일반 직장인들이 잠드는 11시를 넘어서면 그 때부터는 심리적으로

쪼들린다. 다른 세계다. 너무 많은 기대와 후회가 버무려진 잡념, 또 그와는 대조적으로

너무 조용한 세계. 나는 공상의 바다를 표류한다. 인터넷이나 케이블 TV 속도 표류한다.

.....


다시 아저씨 혐오증으로 돌아가자.

그 시작은 아빠다. 특별히 아빠가 나쁜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그냥 보통, 평범한 아빠였다.

가난하고, 힘없고, 그래서 조금은 비굴하고, 그래도 남자라고, 아니 그래서 더욱, 집안에서만

용감한 평범한 아빠였다.

무엇보다 아빠의 패배주의가 싫었다. 부모들은 왜 그렇게 늘 부정적으로 말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한국 청소년들처럼 스트레스 많이 받으며 열심히 사는 애들이 어디 있다고....

늘 부족하다. 모자르다. 게으르다. 배불렀다. 안 된다. 하지 마라. 그래서 늘 결론은 '되겠냐?'는

그 말. 뭘하든 안 될 것이라는 그 말. 그러면서도 자기가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지는 꼭

알아달라는 그 짜증스런 자기연민.

그러면서 동시에 사기를 꺽는데는 세계 최강이다. 공부밖에 모르던 고등학교 때나, 운동밖에

모르던 대학교 때나, 먹고 사는 것밖에 모르는 지금이나 '니가 별 수 있는 줄 아냐?'는 그 말은

늘 나를 화나게 했다. 패배하고 사는 건 당신으로 충분하다고!!  그래서 내가 당신처럼 살라는

말이야?

여기에 덧붙여, 사소하지만 내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이유. 담배연기가 너무 싫었다.

아빠를 욕하면서도 아들은 아빠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외모 빼고는 아빠를 닮은 구석이 없다.

아빠가 하는 정반대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빠가 소심하다는 사실이다. 아빠가 골수 마초들처럼 용감하기까지 했으면

지금쯤은 이미 파국이다.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아저씨 혐오증의 씨앗은 비겁함에 있다. 조직과 권력(강자)에 약하고

가족과 여자(약자)에게 강한 아저씨. 여기에 병역거부 이후로는 한국 남성들이 대개 군인이거나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치명적으로 아저씨 혐오증을 강화시켰다. 그게 어느 정도는 이미지라해도

이미 덩치가 너무 커져버렸다.


한 번 가속이 붙자 혐오증은 급속도로 확산. 별 게 다 꼴보기 싫다. 가장 예민한 장소는 지하철.

어제도 진상이 하나 있었다. 은색 플라스틱 소재로 된 지하철 의자. 끝 쪽에 아저씨가 다리를 꼰 채

신문을 좌~악 펼치고  앉아 있다. 습관적으로 조중동이 아닌가 확인한다. 한국경제다. 아쉬비~~

극도의 증오를 맛볼 수 있었는데. 당연히 옆자리 하나는 비어 있다. 그런데 그 진상이 입으로 계속

뭔소리를 중얼거린다. "의자를 왜 이 따위로 만들었어 미끌어지게~"라고 연신 투덜투덜대며

동의를 바라는 듯 곁눈질로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빙신 쉐끼. 저 다리를 그냥 올미다의 예지원처럼

도끼로 날려버렸음 시원하겠는데...(휴~어렵게 수양해서 그나마 내면화된 10퍼센트의 평화주의적

심성마저 날아가는 순간.)

한 번은 밤 11시 넘어 신도림 역에서 까치산으로 향하는 곁다리 2호선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한

할머니가 강남콩을 팔고 있었다. 엄마를 보는 거 같기도 하고(이거 살짝 진심이다.) 너무 밤 늦은

시각에 힘들어보여서 남은 콩을 죄다 사고 말았다.(아 충동구매...그래도 그 순간 강남콩으로 지은

밥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그걸 지켜 본 할아버지가 까치산 도착할 때까지 같이 타고

가는거다. 아 완죤 짜증나는 상황이다. 타고 가면서 내내 칭찬을 하는데 어디로 사라질 수도 없고.

차악의 칭찬은 '요즘 젊은이들 중에도 아직 이렇게 착한 사람이 있구먼(있구만보다는 있구먼이

상황설정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고).' 이고 최악의 칭찬은 '그래도 아직은 한국의 미래가 밝어.'

할아버지의 므훗한 미소에 한 방 날려드리고 싶다. 난 하나도 안 착하고 할아버지같은 사람

별로 안 좋아하고 무엇보다 한국의 희망찬 미래 따윈 개코딱지만큼도 관심 없거든요.

(흠. 주제와 달리 할아버지 혐오증으로 흐르는건가?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군.)



이렇게 저렇게 자가 증식한 혐오증은 이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새로운 소재를 찾아 커나가고 있다.

등산복 입고 술마신 상태에서 얼굴 벌개가지고 술냄새, 발냄새, 땀냄새 풍풍 풍기며 지하철을 점령한

아저씨들, 그러고도 서넛만 모이면 시끌시끌 안하무인인 아저씨들, 대놓고 두 칸 걸쳐 앉아 가는

아저씨들, 남자는 원래 다리구조가 그렇다고 생각하는건지 옆에 이빠이 오므린 아줌마의 존재를

뻔히 알고 있는 쫙벌남들,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나이부터 따지는 아저씨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하는 아저씨들....들들들....




어차피 터진 입으로 쏟아낸 말들을 주워담기도 힘든 지경까지 왔으니 평소 생각을 다 쏟아보자.

난 어른들이 '예의없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게 정말 듣기 싫다.
(어른에 대한 반감은 꼭 아저씨를 향해 있다기 보다는 어른 전체를 향해 있지만 똑같이 재수없는
짓을 해도 아저씨가 조금 더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볼 때 그들은 그들이 체화한 생존방식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 뿐이다.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짜증나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먼저 앉을라고 떠밀면서 올라타고, 조금 사람이 많다 싶으면 밀어대고, 몸에

손대고, 줄 잘 안 서고, 새치기 하고, 그래도 싸우다 불리하면 나이로 다 해처먹으려고 한다.



또 으시대는건 좋아해서 뭐든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서 상대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들의 대화는 대체로 대화가 아니다. 들어주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줄줄줄.

구치소에 있을 때도 그래서 대화를 기피했다. 너 어디 나이트 가봤냐? 너 거기 몇 번 국도 따라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다. '왕년에 내가~'로 시작해서 '~침 좀 뱉어봤다.'로 끝나는 그 대화를

듣고 있자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 것도 자랑거리냐? 좀 멋있게 보이고 싶으면

노력이나 하던가...




1일


며칠째 계속 심난한 꿈을 꾼다.

어지럽고 복잡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되섞인 꿈을 꾼다.

그리고 당연히, 깬다. 꿈의 의미를 생각할 시간도 없이 집을 나선다. 내내 잊고 지내지만

마음 속에 계속 찝찝한 마음이 남아 있다. 대체 그 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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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1월

1월 26일

연휴 때 다운받아 본 영화 목록


- 우리는 액션배우다.

흔히 스턴트맨이라 불리는 액션배우를 지망하는 젊은 남녀의 (주로 남자의) 이야기.

다큐멘터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영화. 나래이션이 맛깔 난다.

학원 샘중에 한예종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꽤나 깊이 관여해서 만든

영화. 놀랍다.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노래나 영화를 볼 때마다 살짝 감탄이

작품의 오라에 따라 그걸 만든 사람도 달라 보인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액션배우를 지망하게 되었고 그 결과도 제각각인, 그래서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진부하면서도 하나도 진부하지 않은, 짠하고 놀랍고 서글프고 그리고

평범한 이야기. 보통 사람들의 특별했던 삶의 한 순간. 을 담은 이야기.


- 공각기동대 2

오시이 마모루가 실사 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살짝 들었던 기억이. 작년 전주 국제 영화제

다녀온 친구들이 했던 말인데...그냥 신작 애니가 나왔다는 말을 잘못 들은 것인지??

공각기동대 2를 봤다. <블레이드 러너>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에 대한 회의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인간이 '정보의 집합체' 그 이상이 아니라면 과연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끝없는 질문.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섬세함의 덧칠을 가할수록 질문은 점점 복잡해진다.

이제는 아예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넘어서 인간과 네트워크화된 프로그램의 차이를 묻는다.

자가 증식하면서 진화하는 단계로 들어선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자립을 원하고,

그 순간 인간은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되어 버린다.

조금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지만

전쟁과 과학의 발전에 관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대할 때마다, 이 쯤에서 발전 따위는 아예

집어던져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더 필요하긴 한가?

그냥 mp3플레이어니 인터넷이니 pmp따위 정도의 소소한 욕망에서 멈췄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 가지려 할수록 마음은 비어간다. 그러나 일단 한 번 생겨난 욕망은 사라질 수 있을까?

예전에 읽었던 만화 [총몽] 생각난다.

'기억이나 관념을 빼고 나면 넌 뭐가 남지?? 기억마저도 조작할 수 있다면 인간이란 무엇이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기억과 몽상과 사색을 빼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는 요즘이라 그런지

유난히 저런 대사들만 기억에 남는다. '넌 무엇으로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할거야?'라고 재촉하는 듯

들려.



인간보다 더 인간이기를 원하는, 인간보다 무엇이 인간인지를 더 많이 고민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인간같은 그들이 차라리 작가의 아바타 같다.



- 다세포 소녀

한국 사회에 대한 조롱인가? 현실비판적인 작품이 점점 환타지에 많이 기대는 이유는 ....

촌스럽다, 부담스럽다 따위의 비판을 빗겨가기 위한 궁여지책 혹은

상상력의 작동 혹은 아이러니나 우화 따위??

뭘로 생각해도 이 작품은 실패다. 감동적이지도, 재밌지도, 기발하지도 않다. 물론 중간 중간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것도 한 서너번 그 뿐이다.

피라미드에 빠진 엄마의 돈을 갚지 못해 모텔로 끌려간 김옥빈. 교복을 입히고는 ....

같이 여고생 복장을 하고 사진찍고 수다 떨고 노는 걸 즐기는 크로서 드레서 조폭.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어하는(M to F)동생에게 포르노를 보여주고 발기하자 이게 현실이라고

외치는 상황 설정.

왕따가 된 외눈박이가 축구부 주장에게 동성애 상대로 묘사되는 장면 등등....

이건 뭐 참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묘한 서글픔이나 날카로움 따위도 없고.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고..

블랙 코메디는 더더욱 아니고. 그냥 조잡한 코드와 조합과 난기류의 연속이다.

구성도 엉망이고 서로 다른 이야기 서 너개가 중구난방으로 배치된 느낌이고...

등짝에 가난이 붙어 다니는 익숙한 코드 말고는 친밀감을 표시할 무언가가 없다.

[좋지 아니한가]를 볼 때도 그랬지만, 구질구질한 일상에 똥침을 날리고 싶어했던 영화들은

막연한 마지막 한방을 기다리게 만들다가 이도저도 아닌 허탈한 결말로 끝나버린다.

감동도, 웃음도, 날카로움도, 그 무엇도 아닌. 드라마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환타지도 아니고 뭐야??


환타지는 <지구를 지켜라>, 드라마로는 <천하장사 마돈다>





1월 23일

확률/통계 수업을 한다.

'남학생 4명과 여학생 3명이 원형 테이블에 앉는데...' '남학생 4쌍과  여학생 3쌍이

자원봉사를 하는데...' '남학생 5명과 여학생 3명이 토너먼트로 경기를 진행하는데....'  등등등.

모든 문제가 남학생이 먼저고 여학생은 나중에 나온다. 확률/통계 문제는 무엇을 기준으로 경우를

나누는가가 매우 중요한데 언제나 기준이 되는 것은 남학생이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문제가 불편해서, 내 반응은,

'여학생들도 수학과에 많이 가서 문제를 바꿔라.' '왜 늘 남학생이 더 많은지 이상하지 않느냐?'

'수학 교사들이 대부분 남자들이라 늘 문제가 이런 식이다.' 따위의 반응을 한다.

더러는 웃고 대부분 아무 생각 없고, 오히려 불편해하는 남학생도 없는 상황에서, 지금껏

적극적인 동의를 표하는 학생은 딱 한 명 있었다. 그 학생은 영원히 까칠하단 소리를 들으며 클 것이고

그걸 즐겁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맘이다.





메일을 확인했다. 가자 지구에 보내는 2차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는 메일이었다. 1차는 대체 언제

했었지? 부끄럽고 미안하고...2차 후원금을 보내야겠다.

돈만 보태는 건 아닌데...미안하지만...마음도 보낸다.





한겨레 목요일 섹션은 고민상담 코너가 있어 즐겁다. 격주로 카운셀로가 바뀌는데 오늘 고민은

대략 이랬다. 자기는 32 여자랜다. 능력도 있고 외모도 괜찮고 20대에는 연애도 자주했고....

그런데 지금은 조금 불안하고 결혼을 할 건 아니고 그렇다고 매달리지도 않고 ...

이거 말투가 점점 .... 난 외로울 뿐이고...근데 까칠하단 소리 듣고... 타협할 마음도 없고....

뭐 이런 식이다. 카운셀러의 결로은...황당하지만...귀여운 여자가 되라는건데...

(지난 주에는 김어준이 비겁하지 않고 섬세하면서도 용감한 신세대 마초가 되라하더니...)

지금 검색해보니 꼭지 제목이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이고 이번 주 제목은

<누가 귀여운 여자를 퇴짜 놓으랴> 였군.


뭐 다 공감하긴 어렵지만

"드세면서도, 머리에 든 게 많으면서도, 자립한 어른이면서도, 의식 있는 페미니스트이면서도 여자는 동시에 얼마든지 귀여울 수 있습니다."란 말을 들으며

이걸 남자 버전으로 바꾸면 뭘까 고민해봤다.

암튼 정말 잘나야겠군. 잘났다 잘났어. 카운셀러 잘났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일테고....

그러면서도 살짝 공감이 가는 것은... 그러면서도 참 피곤한 삶이군. 삶은 언제나....

이기적이야.




1월 19일

줄거리 전체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흐름은 기억나고 몇몇 장면이나 대사는 분명히 기억나서

꼭 본 것 같은, 근데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는 그런 영화가 있다. 유명한 대사는 어디 영화정보

프로그램 같은 데서 봤을 거고. 이런 영화는 미뤄둔 숙제처럼 언젠간 봐야지, 언젠간 봐야지 문득

문득 떠오르지만 막상 볼 생각을 하면 지겨워진다. 대충 알고 있어, 영화는 보기도 전에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이 들고. 그런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 집중하다보면 이건 감상이 아니라 투자라는

기분이 든다. 숙제를 하자, 숙제를 하자. 이 영화를 봤다는 지적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뜩이나 산만한 터에. 이젠 동영상으로 다운 받아 보는 시대가 되니. 집중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창을 조그맣게 줄여놓고 인터넷을 하기 쉽상이고 익숙하다 싶은 장면은 건너 뛰는가 하면

(곰티비 같은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은 정말 동영상 세대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느낌.
케이블 TV도 그렇고 정서안정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산만함만 더할 뿐. 너무 많고 넘쳐서
오히려 가볍고 헤프다.)

졸다가 되돌려보기 일쑤니 어지간해서 감정 몰입이 안 된다.



그런 영화 리스트 제일 꼭대기에 자리한 [봄날은 간다]를 봤다.
(홍상수나 김기덕 류의 작품이 이 리스트에 많다. 왠지 봐야할 거 같고 또 보면 그러저럭 괜찮은데
마음 단단히 먹고 봐야할 거 같은 이유는...)


2001년에 만들어진 영화치고는 제법이다. 사랑 영화를 보고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 것은 [8월의

크리스마스]이후 처음인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둘 다 허진호가 만든 것이더라. 그 뒤로 찍은 영화들이

그다지 댕기지 않는 이유는 초반 영화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어눌한 말투와 너무 큰 키에서 나오는 싱거운 이미지에 유지태 특유의 처진 눈.

이 작품이 <주유소 습격사건>과 더불어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찌질이 역을 이보다 더 잘 소화할 순 없을 것 같은 느낌. 배우 제대로 골랐다. 완전 100%다.

이영애 역시 마찬가지다. 영원히 늙을 것 같지 않은, 젊을 때도 어려보이지 않았을 것 같은

이영애.(요새 뭐하나?) 피부가 작살이다. 남자를 요리하는 능력 또한. 쥐었다 폈다. 거두어 들이시고

다시 내팽개치시고 끝내 다시 찾아가도 하나도 찌질해보이지 않는 그 세련됨.

이와 비교되는 혼자 울고 불고...술마시고 매달리고...전화하고 버림받고...끝내 열쇠로 차를 긁다가

들켜버리는 유지태의 막장 포스. 그런데 막판에 이영애가 유지태를 다시 찾아가 찝적대는 모습은

좌절한 남성들을 향한 화해의 메세지인지 아님 감독의 환타지인지. 쩝....

'떠나간 여자랑 버스는 붙잡지 말라고 했다.'는 할머니의 유언이 무색하게스리 되돌아오는 이영애라니..

그래도 남자들은 그걸 바랄테니. 일부러 위안을 주려한 듯. 그러고보면 영화들이 죄다 순정파 남성을

앞세운 감독의 특성상, 한우물만 파는 남자에 대한 애착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러나 아무리 허대가 좋아도 유지태처럼 말 안 통하고 답답한 사람 별루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건 하도 많이 들어서 그냥 그랬고, 오히려 유지태가 오바하고 난 다음날

헤어지면서 '내가 어제 실수한 거 없지?'라고 말한 장면에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끝까지 후까시

접지 않는 남자의 오기라니. 처절하고도 처절하다. 그러면서 집에 가서는 쳐 운다. 빙신~~

이영애가 다시 찾아온 장면에서도 끝내 거절하더니 보내놓고 또 질질. 나 같음 낼름 붙잡을 거 같은데.

암튼 자기가 차놓고는 남자가 궁해지니 다시 연락해서 만나자 마자 '오늘 같이 있을까?'라고 직접

질러대는 이영애의 용기. 오 부러워~~

(이영애가 산다면 강릉 가서 살 거 같다.)



노망난 할머니의 처절한 남편 기다림도 상당히 의도적으로 배치된 것 같은데. 유지태가 차인 시점과

할머니가 이뿌게 차려 입고 나가서 끝내 세상을 뜨는 시점이 일치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냥 어떤 한 국면을 넘어섰다는 뜻인지. 남편을 기다린다고 수색역 대합실에 죽치고 있던 할머니가

유지태에게 사탕을 건내고 마루에서 혼자 울고 있는 유지태를 다독이는 등. 유지태의 상처를 가장

잘 알고 보듬어주는 사람이 할머니라는 것도 조금 애틋했다.




이 외에도 술쳐먹고 찾아가서 재워달라고 땡깡부리는 장면, 열쇠로 차를 긁는 장면 등등 유지태의

찌질이 포스가 너무 강력해서 마지막에 유지태가 갈대숲을 찾아 미소짓는 장면이나 시냇물 소리와

같이 녹음된 이영애의 허밍 따위는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빗소리는 참 이뿌게 들리더라. 누군가를 애타게 그립게 만드는 그런 소리. 듣고 싶다.

반지하를 탈출하자. 엉뚱한 마지막 교훈.





1월 14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자 지구 접경 지역에서 폭격 장면을 구경한다는 뉴스를 봤다.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무기력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요즘 계속 그 생각이 날 때마다 멍해진다.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가 수치고 모욕이다. 같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짐스럽고 역겹다.

전쟁을 멈출 힘이 없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죄스럽다.

'재미있지만 한 편으로는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는 구경꾼의 인터뷰에

토가 나오려고 한다. 욕 보이고 싶다. '너도 당해보라.'고 '너도 사람이냐.'고 ...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바닥을 보이는 인간의 추악한 심성에 절망감만 커질 뿐이다.

사/람/이/싫/다.






1월 13일

요즘 뜨고 있는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와 '달이 차오른다'를 들었다. 장기하 스스로 <산울림>이

모델이라 했다. 기타 사운드는 <산울림>인데 목소리는 오히려 송창식을 닮았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달이 차오른다. 가자.' 노래를 자꾸 듣고 있으면 정말 어디론가 가야할 거 같다.

그런데 왠지 저 노래는 어디론가 갈 수 없는 사람의 푸념으로 들린다. 10년 전 패닉의 UFO가

버림받은 자들의 노골적인 복수를 노래한 환타지라면 '달이 차오른다'는 88만원 세대가 잠 못 드는

불면의 새벽에 읊조리는 넋두리 같다.

애초부터 되돌려 줄 생각 따위는 포기한 무기력하고 지친 자들의 긴긴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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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시상식 소감

올해는 아무래도 학원과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이 계속될 거 같다.

노는 것도 해본 사람이 잘 놀듯. 취미를 가져본 적 없는지라. 시간이 나도 할 일을 못찾고.

그래서 올해는 블로거가 돼 보기로 마음 먹었다. 글쓰는 건 돈도 안 들고 몸도 안 쓰고.

몸도 쓰긴 써야 하는데...쩝.



어제 케이블 TV에서 신해철이 비를 인터뷰하더라.

마지막에 신해철이 대놓고 "국제적인 스타가 돼서 한국을 빛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거 때문에 힘들어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라.'고 당부를 하더라. 좀 웃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해철 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느낌이랄까?
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시원스레 할 수 있는 사람이 신해철 말고 몇이나 되겠나?

예전에는 신해철 좀 짜증났는데 애가 일관되게 저러니까 괜찮다. 난 일관된 캐릭터에 후한 편이다.




연말에도 약속이 거의 없었던 관계로 이런 저런 시상식을 많이 보게 됐다.

시상식을 볼 때마다 볼까 말까 고민하는 이유. 시상식에서 제일 불편한 것은

"무엇보다 이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는 판에 박힌 듯한 그 인사말이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 탓도 있지만 시상식에서 경쟁하듯 꼭 저런 말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개인이 종교를 갖는거야 자유다. 하지만 기독교가 국교도 아닌데다 한국처럼 다종교 사회에

종교가 없는 사람도 많은데 왜 꼭 저런 이야기를 해야 하느냔 말이다.

난 저런 게 일종의 예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뻔히 알지 않나? 한국인들의 정서가 종교 앞세우는 거

꽤나 싫어한다는 걸. 그런데 굳이 한단 말이다. 그럼 얘들이 그렇게 지조 있는 애들인가 하면

뭐 다른 문제에선 절대 다른 사람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단 말이지. 게다가 시상식에서 수상할 정도면

소속사, 방송사에서부터 시청자 반응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어차피 인기로 먹고 사는 직업이니

이해한다. 그런데 유독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는다.


작년에 씨네 21에 듀나가 쓴 글에서도 봤는데 이렇게 경쟁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풍경은

다른 나라 시상식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라 한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도

이런 풍경은 매우 드문 일.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개인주의 측면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 때문이란다. 개인주의란 측면에서 보자면,

연예인들의 발언은 기댈 곳 없는 한국인들이 무엇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여주기도 한다.

일단 소속사, 방송사 등 돈을 대주고 있는 곳, 그 다음 국가와 가족, 그리고 하나님.

개인적인 이야기는 지극히 적고 모두 남 이야기다.

누구한테 감사하다, 누구한테 감사하다 인사만 하다 끝난다. 개인의 노력으로

얻은 성공인데 왜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지... 물론 한국인 정서상 지나치게 잘난척 하는 건 못봐주지만

계속 남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시상식 짜증난다. 그냥 고맙다는 말은 좀 따로 만나서 하고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그래서 지극히 신변잡기적이고 말 많은 시상식을 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지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발언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단조롭고 짜증나는

반복의 말더미 속에서도 시상식이 재미나는 이유는, 그래서 더욱 더 그런 것이겠지만,

자기만의 언어와 생각을 갖고 있는 연예인들의 발언이 있기 때문이다.



"화장을 못 해서 속상한 여자가 아니라 바보 분장을 못 해서  속상한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말한

개그콘서트 박지선의 수상소감에서는 가슴이 아린 게 눈물이 날려고 하더라. 여자인 동시에

개그맨이(또는 개그우먼??) 될 수는 없는 걸까? 혹은 개그맨이 여성스러우면 안 되는

것일까? 한 편으로 자기 색깔을 찾지 못하고 금새 잊혀지는 예쁜 개그맨들도 안스러웠다. 박지선보단

조금 덜 짠하지만 말이다. 어떤 포지션을 취하든 힘들겠다 싶다. 갑자기 공대에 다니는 여학생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여학생 중에 하나가 공대에 붙어다고 좋아하는데 그녀의 환타지에 대고 그닥

해줄 말이 없는 이유는, 그보다는 가슴이 먼저 답답해지는 이유도....



"모 단체에서 올해 최악의 예능 프로그램 1위로 개그콘서트를 선정했던데 만약 개그맨들이 방송 한

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고생하는지 봤다면 그런 선택은 안 했을 것이다.'

이 말은 개그콘서트에서 [소비자 고발]이란 꼭지에 나오는 황현희의 수상 소감이다. 내 주변에는

황현희 싫어하는 애는 별로 못봤다. 이미지가 꽤나 좋았다. 나름 말이 통하는 캐릭터라는 인상을 줬다.

그런데 저 수상소감은 좀 실망이다. 뭐 열심히 했는데 욕먹으니 조금 기분은 나빴겠지만 우선 저건

개그콘서트를 종합 평가한 것이지 황현희 개인을 평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민언련에서

개그콘서트를 최악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선정한 주된 이유는 '여성비하적 발언과 상황설정'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서는 왠만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쉽게 혐의를 벗어던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개그콘서트는

여성비하적 발언이 많다. [독한놈들]의 곽한구가 절정이고, 노래 부를 때마다 여자들 외모 가지고

장난치는 일출이 역시도. 가학성을 줄이고 남을 웃길 수 있다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처음 음악할 때부터 30년 동안 늘 생각해왔던 거지만 한국 사회가 너무 근엄하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이 말은 제대로 늙은 아저씨의 모범이라고 생각하는 배철수의

발언이다.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말은 전혀 가볍지 않았고, 직격탄을 날리진 않았지만 불필요한

권위가 지배하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말로 충분해 보였다. 배철수의 얼굴에서는 저런 말이 나와줘야

한다. 냉소를 빼면 그 얼굴에 뭐가 남겠나. 그 얼굴과 그 말이 인생을 대변한다.



PS. 1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가 확 나빠진다. 안타깝게 그 불쾌한

연예인 리스트가 한꺼번에 확 불어나서 찝찝했다.

좀체 대중가요를 듣지 않는 나 마저도 혹했던 원더걸스의 Nobody.

그런데 원더걸스 다섯 명이 모두 교회에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느꼈던 묘한 절망감, 혹은 분노. 또는

어떤 위기의식. 배후설 따위의 구린 냄새가 모락모락 나는 느낌.

그 어두운 느낌은 한국 사회를 향해 있다. 정확히 분석은 안돼지만 느낌상으로는 이미 교회가

출세나 성공을 위해 권력에 줄대기 위한 수단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 혹은 그들만의 공동체를

견고하게 구축해 나간다는 느낌.

신봉선 때문에 한 번 좌절했는데 김명민마저 "하느님이 내게 이 정도 탈렌트밖에 주지 않아서 이렇게

정말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는 연기자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는 짜증 정도의

감정이 아니었다. 김명민 너마저. 2008년을 빛낸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전부 하느님의 후광으로

만들어진듯한 이 찝찝한 느낌이란. 강마에의 편집증적인 연기를 빼면 뭐가 남겠나?



PS. 2

mbc 파업에 대해 언급했던 이문세, 문소리 멋지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그렇다. 좀 그런 얘기 해주는

사람도 있으면 안 되냐?? 나경은 아나운서가 파업을 해도 심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유재석이야 국민

엠씨 꼬리표를 달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라디오에서 만나던 문지애도 느낌 좋고....

연예인이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산다는 그 놈의 대의 좀 그만 듣고 막나가는 무식하고

싸가지 없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제대로 된 애가 한 둘 쯤 나오기를 기대하는 심정이 비단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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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통한다는 말

믿는다. 그런데 너무 더디고 힘들다.

진심이 통하는 사람이 너무 드물다.

그냥 콱~정신놓고 막 살고 싶다.



어제 도쿄 3부작을 봤다.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를 보다가 10년 만에 집을 나서려고 결심한

히키코모리가 햇빛을 보며 주저하는 모습에 눈물이 나려 했다. 이런 이런~ 공감하는건가?

왜 이렇게 봄날 햇빛이 그리운건지...

자신도 조금 놀랐다. 그 정도였던가?

영화를 보는 내내 졸다가, 슬프다가, 분석하다가, 아프다가, 잠이 깼다.

그랬던가? 이렇게 가슴 아픈 느낌도 졸음 속에 감지한 듯 만 듯 한낮의 꿈처럼 여길 수 있는....

You said I'm not free라고 반복하던 허클베리핀 노래가 계속 '내사랑 나비'로 들렸던 이유는...

이 새벽의 넋두리가 차마 언어로 형상을 찾지 못하고 그저 희뿌연 구름처럼 뭉개 뭉개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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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6] 일본인의 생활3

일본여행기도 마지막이다. 유럽여행기가 1년도 더 지나 끝난 점에 비추어보면 일본 여행기는 그래도 빨리 끝나는 편이군. 보름도 안되는 여행이라서 할 말도 많지 않고...


1. 일본에 다시간다면

나는 도쿄 시내에 있는 오타쿠 샵에 가고 싶다.  애니메이션과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은 고향같은 곳이 아닐런지...ㅋㅋㅋ
산에 올라보고 싶다. 한국과 식생이 비슷하지만 좀 더 덥기 때문인지 숲이 울창하고 깊은 느낌이 들었다. 깊은 숲 속에 들어가 나무에 둘려싸이고 싶다.
북해도에 가보고 싶다.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북해도는 한없이 고요하고 로맨틱한 분위기, 김전일에 등장하는 북해도는 음산하고 고독한 북해도. 그 어느 것이든.
하라주쿠나 시부야 같은 번화가에 가보고 싶다. 처음 일본에 간다 했을 때 너무 만화 속 이미지를 생각했다.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역시나 평범했다. 그래도 도쿄 복판은 조금 달랐다. 남자들은 키가 조금 작은 편인데 마른 체형이 많아서 스키니가 진짜 잘 어울린다. <나나>같은 스모키 화장에 레이스 주름 가득한 히피 의상에 징박힌 부츠...ㅋㅋㅋㅋ...그런 모습들이 좋다. 게이바 같은 데도 가보면 재밌을 듯.
요요기 공원에 다시 가보고 싶다. 토요일날 갔더니 공원 입구에 코스프레 천국. ㅋㅋㅋ... 유명한 벼룩시장도 있다는데 그건 못 찾았다. 세계 각국의 음악과 춤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 한국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국적을 잃어버린 듯 경계를 초월한 곳.

2. 신사, 종교

마을 곳곳에 신사가 있다. 절이 산으로 들어간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마을 곳곳에 신사가 있어 사람들 일상 속 깊이 영향을 미친다. 다들 아시다시피 신사는 국가권력의 시녀가 되어 군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했었다. 전후 일본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는데 그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기복신앙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우리 신사에서 공들이면 연애에 좋다.' 또는 '돈을 많이 번다.' 이런 식으로 특화시켜 사람들을 끌어들인 게 주효했다고 한다. 여전히 신토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일상 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데 불교마저도 섞여 들어 어느게 절이고 어느게 신사인지 구분도 잘 안간다. 궁에 가도 분위기는 비슷한데 국가 권력 강화를 위해 수 많은 학생들이 궁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찝찝했다.
국가야말로 오늘날 가장 강력한 종교이자 미신이 아닌가?
신사나 절은 딱 한 번 가보면 될 듯. 처음엔 신기하지만 역시 몇 번 보면 그게 그거라 질린다. 그 세세한 차이를 간파하기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 교토성.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렸다.



>> 궁에 새겨진 조각문양. 이런 모습은 익숙하다. 의미는 모르겠고...



3. 일본여행을 정리하자면

깊이 느끼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많이 돌아다니지도 못했고. 유럽보단 흥분도 덜하고 재미도 덜했지만 노숙도 해봤으니 나날이 늘어가는 경험에 그냥 므훗할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2박 3일씩 짧게 여기 저기 가보고 싶다. 돈은 최대한 아껴가면서....다음 자전거 여행은 아무래도 국내가 될 거 같다.



>> 궁이나 절,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구분 못하겠다. 지붕은 사무라이 모자 모양을 연상시킨다.


>> 기모노 차림. 많지는 않지만 흔히 볼 수 있다.


>> 신사입구. 술을 담아 둔건가??


>> 신사  한 켠에는 소원을 적어놓은 목각이 가득 걸려 있다. 소액의 돈을 받고 소원을 적는데 한국에서도 절에서 돈 받고 기왓장을 기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사는 대부분 이처럼 민간기복신앙에 기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떤 신사는 돈을 받고 기부한 주춧돌에 가게나 회사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기도 하다. 우리는 신사에 들러 유료 소원쪽지를 몰래 뽀려오기도 했다.



>>이것도 소원을 적은 쪽지 나무. 그냥 소박한 바램으로 바라보면 좋겠는데 이것을 악용해 전쟁의 도구로 삼았던 과거가 있어서인지....



>> 요요기 공원 입구. 비슷한 복장과 머리를 한 남자 일행이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며 춤을 춘다.
ㅋㅋ....코스프레로 스트레스가 풀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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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5] 일본인의 생활2

>> 배려와 미루기

일본에 대해선 늘 많은 말을 듣는다. 어릴 적에는 대부분 책에서 접한 내용을, 이제는 미디어에서 접한다. 텔레비젼이든 포털이든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늘 차고 넘친다. 역사나 정치 문제로 반일감정이 심한 탓에 욕도 많고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 등 일상 깊숙이 들어온 일본문화에 대한 호감 때문에 칭찬도 많다. 일본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 온다. 한국어 강사인 누나는 수강생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 사람들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래 저래 일본은 이제 정말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언제나 일반화의 오류는 조심해야 겠지만  마음대로 느낀 것을 적어본다.

일본인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행사에 들러 만난 아나키스트들과, 빌려 쓴 숙소에서 만난 일본인들 몇몇을 제외하면 10여일 남짓한 여행에서 많은 일본인을 만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워들은 얘기를 억지로 짜 맞추는 것일지도.

일단 대화나 행동에서 늘 상대를 의식하고 배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인들은 화(和)를 중요하게 여긴단다. 어느 책에선가 섬나라에서는 화합과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이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사회갈등을 무마시키기 위해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마련인데 섬나라는 지형이 고립되어 있어 그게 쉽지 않다며. 그래서 내적으로 조화를 강조하게 된다며. 섬나라인 영국과 일본에서 상징적으로 왕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국민통합의 상징성 때문이라며.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튀는 존재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개인보다는 집단을 강조하고. 그러다보니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존재는 이지매(집단 따돌림) 당하고. 사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니 늘 안으로만 침잠해서 오타쿠가 히끼코모리가 사회적 현상이 된 것도. 옴진리교 사건이 발생한 것도. 비디오 게임을즐기는 것도. 이런 식으로 분석하니 대충 설득력은 있다.

뭐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인들이 상대를 많이 의식하는 것은 맞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을 만나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인들은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다보니 말이나 행동이 늘 조심스럽고 돌려 돌려 말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자기 속내를 쉽게 비치지 않기 때문에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의 사람은 조금 답답하고 짜증나게 느낄 수도 있다. 나를 포함한 친구 몇몇은 답답해서 절대 일본에 살지 못할 거 같다고 했다.

예를 들면 사랑을 고백할 때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제 사랑을 받아줄건가요?'가 더 잘 어울리고 이미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물건을 빌릴 때조차 '내가 그걸 좀 빌려도 될까?'라고 물을 정도로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답례를 하지 않으면 그것도 폐를 끼친 것이라 생각한다니.

지나친 배려는 피곤하다고 이미 앞서 말했지만. 이와 같은 소통 방식은 내게는 쥐약이다. 돌려 말하고 있는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정신력을 집중해야 하니 엄청 짜증이 날 것이다. 게다가 표현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실수로 거친말이 나온다면 또 미안하단 말을 몇 번이고 해야할테니. 생각해보면 일본어에 욕이 거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인 듯.  인사는 또 어찌나 자주 하는지 아리가또랑 스미마셍은 확실히 배운 거 같다. 상대가 실수를 하면 미안하단 말을 하도 자주해서 괜히 내가 더 미안해질 거 같고. 상대가 고맙다는 말을 너무 자주하면 또 짜증이 날 거 같다.
그리고 지나친 배려는 어찌보면 선택을 늘 상대에게 미루는 것과도 같다. 이와 같은 태도는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고 그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연애를 하는데 매번 이런 식이라고 쳐보자.

'뭐 먹고 싶어?'
'넌 뭐 먹고 싶은데?'
'난 아무거나...너가 먹고 싶은 거 먹자.'
'아니 난 너가 하고 싶은대로 할께.'
......


물론 어떤 성격이든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 예의바르고 친절하단 느낌을 받는다. 꼼꼼하고 세심하다. 철저하다는 말도 잘 어울린다. 나중에 일본에서는 못 살 거 같긴 하지만 일본 친구들도 사귀어 보니까 재밌더라.



>> 예쁜 가로수, 거리는 정말 깨끗하다.


>> 교토대학 미술 동아리 모집 광고. 귀엽다.


>> 이건 검도부겠지?? 크...많이 보던 만화다.



>> 번화가. 쇼핑을 위해 들렀다 .명동같은 느낌. 익숙한 ABC마트가 보인다.


>> 인도에 주차된 자전거들. 겁내 많다.



>> 우리가 7일간 머무른 일본인 친구 집. 넷이서 같이 살고 있었다. 모짱이라 불리는 재일교포 2세와 일본인 친구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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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4] 일본인의 생활1

1. 축소지향의 일본인?? 실용적인 일본인??

축소지향적이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인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본 표현이기도 하다. 책으로만 미지의 세계를 만나던 시절, 게다가 민족주의적 열정이 후끈 후끈 달아오른던 시절이었다. 말 속에 편견이 있음은 물론. 한국인들은 일본인을 무시하는 의미에서 저 말을 자주 쓴다. 상대를 비꼬려는 의도가 좀 우스워 보인다.
조그만 자가용이 아주 많다. 주차 공간을 최대한 아끼려고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뒷부분이 티코처럼 납작한 차들이 아주 많다. 프라모델이나 피규어, 분재만 봐도 그렇고 음식도 아주 조금씩만 나온다. 소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김도 조그맣고 반찬 그릇도 조그맣다.

어떤 의미에서는 축소지향적인 게 실용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오밀조밀하니 공간을 잘 활용한다는 느낌도 든다.  쓸 때없이 큰 차만 선호하는 거보다는 백 배 낫다. 주차공간도 부족한데 개나 소나 중형차 사서 비좁은 골목길 꽉 채우는 거 아주 짜증이다. 우리집은 빌라가 빽빽하게 들어선 좁은 골목길에 접해 있다. 가끔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데 큰 차가 길 하나를 다 차지하고 지나갈 때는 차를 피하려면 거의 벽에 붙다시피 해야하는데 그 때 기분이 되게 더럽다. 좀 막 화가나려고 한다.
빌라 입구에 큰 차가 주차되어 있을 때는 옆으로 게걸음을 걸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자전거를 들고 들어가야 하는 날은 완전 난감하다. 지난 번에는 주차된 차랑 부딪치지 않으려고 자전거를 어깨에 짊어졌는데 어찌나 다리가 후달리던지...게다가 그 좁은 틈에는 벽을 따라 쓰레기가 내버려져 있다. 비틀비틀 까치발로 걸어가는데 쓰레기 봉투가 발에 차인다. 완전 짜증 이빠이 폭발 직전. 이런 개XX...쏟아져 나오는 욕을 억누른다. 저 차를 발로 한 대 후려차야 시원한데...휴...Relax!!

여행 수기가 갑자기 차에 관한 이야기로 샜는데 이왕 샌 김에 이야기 좀 더 해야겠다. 쌓인 게 좀 있다. 남자들 차를 무지 좋아한다. 감빵에 있을 때는 자동차 잡지 사보는 사람들 꽤 많더라. 거의 차랑 연애할 테세인데... 주말이면 마당에서 세차하느라 여념없을 배나온 아저씨들이 떠오른다. 설거지는 한 번도 안 하면서 말이지. 그런데도 참 부지런도 하셔. 차 좋아하는거야 뭐 개인 취향이라 치자. 그런데 차 가지고 사람 평가하고 차 가지고 으시대고 싶은 진상 졸부들 참나...
며칠 전에 택시 타고 가는데 술 취한 아저씨가 택시에 탔다. 택시 기사 듣기 좋은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더니 아저씨가 호응해주니까 그 때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차 뭐냐는 둥 내 차는 벤츠인데 몇 씨씨고 더 좋은 걸 사려고 했는데 참았다는 둥... 그러면서 아저씨가 보기에는 어느 기종이 좋아 보이냐는 둥.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벤츠 몇 씨씨가 더 좋냐고 물어보는 그 시방새 완전 골빈머리.

차도 큰 거 좋아하고 음식은 남아서 버릴 지언정 가득 가득 담아서 대접해야 하고 기분 내키면 집문서라도 팔아버릴듯 허세부리고 명품 브랜드 아니면 쪽 팔리고 집은 넉넉하니 큰 게 좋고.....가끔은 나도 그러니까 뭐 통크고 화끈한 거 좋다 이거야. 말도 안되는 꼬리표 달아서 상대를 격하시키지는 말자 이거지.



>> 교토대학이었던가?? 대학식당에서 먹은 밥. 그릇별로 돈을 받는다. 한국보다는 조금 비싼 편.



>> 왼쪽에 보이는 차를 보여주려고 고른 사진인데...쩝 주인공 등장이오...semi방수 잠바를 입고 달리고 있다. 비를 완전히 막아주진 못하지만 비가 조금올 때는 쓸 만하다. 비가 그치면 좀 덥다.


2. 안전제일주의?? 통제사회??

일본 어디에서나 제복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무직 노동자도, 생산직 노동자도, 학생도 모두 모두 제복을 입는다. 건물 관리인도, 은행원도, 경비원도, 학교 수위도, 배관공이나 전기공도...상대적으로 군인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공장 앞을 지나는데 공장 앞마당에 열을 맞춰 아침체조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거리는 늘 깨끗하고 대체로 뭐든 잘 정돈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그랬다. 이 두 나라가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뭐 좀 비약같긴 하다. 근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더이다. 그냥 막 연결시킨다. 이런다. 편협하군...

근데 그걸 한국에서도 어지간히 배우지 않았을까? 열맞춰 체조를 보는데 애국조회가 생각났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런게 많은 부분 일제의 잔재라는 말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일본식 한자어가 많이 쓰인다. 공공영역으로 갈수록 더한데 대체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한 곳, 특히 군대나 감옥 같은 곳에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고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일본 역시 캠핑 문화가 별로 없는 듯, 가는 캠핑장마다 문을 닫아서 고생했다. 유럽과 달리 캠핑장이 많지도 않은데 그 나마도 성수기 여름 한철 장사다. 그 중 한 캠핑장에는 관리인도 있고 운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약을 했냐고 묻는다. 캠핑장엔 아무도 없고 텅 비어 있는데 미리 예약을 안 하면 절대 들여보내줄 수 없단다. 절대 자신이 책임지려 하지 않는 태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똥이 떨어지는걸 싫어하는 태도. 사람보다 규정이 먼저라는 태도. 그렇지. 한국에서도 늘 볼 수 있는 공무원과 관료들의 태도. 딱 그거다. 아~~구렸다.

광우병 사태 때 일본에서는 어떻게 이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가가 PD수첩에 나왔다. 전수조사는 물론이고 일본 국내산 사육소에는 유통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전자태그가 달려 있다. 30개월 미만 미국소는 절대 수입할 수 없다는 정부당국자의 인터뷰는 또 어떤가? 사람들은 안전제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의 관리 시스템을 칭찬했다. 일본인은 안전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다. 지진이 잦다보니 그럴 수 있다.  꼼꼼하고 완벽한 장인 정신으로 전세계 시장을 누비는 일본 제품을 보면 이해도 간다.

그런데 그게 안전과 통제는 늘 한 끝 차이라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캠핑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러브모텔에 들어갔다.  산 한 가운데였고 여름에만 문을 연다는 캠핑장을 목표로 달려온터라 딱히 갈 만한 곳도 없었다. 날은 너무 어두웠고 날까지 추워지는데다 비까지 내려 일행의 사기는 급저하. 도저히 어디를 갈 상황이 아니었다. 재정에 무리가 가더라도 그냥 모텔에 들어가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는데 키를 안 주는거다. 그래서 키는 없냐고 물어봤더니 '오토 라끄 시스템'이란다. 쉽게 말해 저절로 잠긴다는 이야긴데... 그럼 안에서도 못 여는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럼 나갈 때는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데스크에 전화하면 열어준다는 거다. 퓨~~~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데 왠지 갇힌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까지 외진 시골을 찾아 싸구려 러브모텔에 들어간 커플은 자신들도 열 수 없는 방에 갇혀 러브 러브를 하는거다. 이런 줸~~장. 어디 CCTV는 없는 것인지 원. 안전하긴 할 거 같은데 기분이 찝찝했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는 내일 여행 경로를 짜기 위해 함께 모여 토론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이 방 저 방을 들락거렸다. 그랬더니 아예 문을 열어두더라. ㅋㅋㅋㅋ...게다가 우린 그 안에서 규정을 어겨가며 밥까지 해먹었다. 모텔에서 취사라니~~ 이런 식으로 지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암튼 그 주인 우리가 되게 싫었을 거 같다.

꼼꼼하고 세심한 배려라고 보기에는 왠지 통제받는 기분이 들 거 같아서 일본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한 편으로 이렇게까지 공간을 폐쇄적으로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란. 그닥 지향점이 아니다. 난 지나치게 세심한 배려는 불편하다. 간섭으로 느껴진다.



>> 우리가 떼거지로 잔차질을 하면 대략 이 모양이다. 개성이 강하다고 해야할 지...뭔가 코믹하다. 모냥이 좀 빠지고...그래도 자전거는 잘 굴러간다.



헉...더 쓸려고 했는데 원더걸스 nobody 다운 받아 듣다가...어느새 졸립다.


 
>> 모처럼 맘에 드는 멋진 캠핑장 도착. 아 힘들고 덥다...


>> 바다가 나왔으니 각자 멋진 포즈로 취하라고 했건만...이거 원...


>> 비옷 사입었다. 일제다.


>> 여기에서도 자전거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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