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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동조합을 하는 이유..

 

그런 일이 있었다.

IMF때의 일이다.

갑자기 거리로 나앉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무엇보다 평생 직장일 줄 알았던 은행에서

몇천명씩 무더기 정리해고가 발생하던 그 시점이었다.


재산은 있으나(고생해서 마련한 집한칸) 수입이 없어서

보육료를 낼 수 없어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그만두던 그 시절.

어느 날 원장이 오더니 정원 감소로 인해 교사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구립(정부지원)어린이집이라 아동 수에 따라 인건비 지원이 나오는데

아이들이 줄어서 지원금도 교사 수보다 적게 나온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집에서도 구조조정의 바람이 분 것이었다.


어느 누구 하나도 용돈 받으며 직장생활하는

그런 속 편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어린이집에서 해고를 당하면

당장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아무도 나갈 수는 없는 상황에서

나가라고 등을 떠밀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모두가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근기법이고 뭐고 노조고 뭐고 그런 것을 몰랐던 사람들이지만

오로지 오래도록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마다 대책회의를 하면서 머리를 짰다.



 

[ 첫째, 지원 못받는 선생님들의 월급은

나머지 지원받는 교사의 월급에서 일정정도 떼서 지급하고

이 분들이 보조교사로 근무하도록 하며

아이들이 다시 들어와서 담임이 필요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배치한다. ]


[ 둘째, 그게 안될 경우 한달씩 돌아가면서 무급휴가를 사용하고

아이들이 들어오면 우선 배치한다. ]


무엇보다 실직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가장 컸다.

또 많은 아이들을 한명의 교사가 담당하는 상황에서

(그래서 엄청난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되는 상황에서)

월급을 다소 적게 받더라도 남는 교사를 추가인력으로 활용한다면

어린이집의 평판도 좋아지고 보육의 질도 좋아질테니

더 많은 아이들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설입장에서도 동일한 지출만 있을 뿐,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 들여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답은 "노!" 였다.

그때 원장이 했던 이야기는 계속 근무가 되면

나중에 퇴직금 부담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절망스러웠다.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는 보육교사들도 함께 살아보겠다고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나서는데 그걸 한칼에 짜르고

시설입장에서는 단 한푼도 손해 볼 수 없다는 태도를 보면서

무력감도 느꼈다.

그때 그만두었던 교사들은 보육쪽은 고개도 돌리기 싫다고 했고

남은 교사들은 미안함으로 근 몇년을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요즘도 이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대개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아이들 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물론 3월이 되면 다시 아이들은 늘어난다.)

그 한두달 인건비를 아끼자고 교사를 해고하기도 하고..


아이들 한두명 줄었다고 정원초과해서 합반 시키고 남은 교사는 해고하고..


국공립조차 고용안정이나 신분보장이 안되는데 민간은 오죽 하겠나?

병설유치원은 대기발령이라도 내지..


이렇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해고,

아이들 수에 따라 파리목숨인 보육교사들.

 

이 경험을 결코 잊을 수 없었기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거기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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