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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기본권을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 [인권운동사랑방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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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법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불붙고 있다. 뉴코아-이랜드일반노조 공동투쟁본부는 해고와 외주화를 반대하며 지난달 30일부터 홈에버 월드컵점과 뉴코아 강남점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8일에는 전국 홈에버, 뉴코아 매장 16곳의 영업을 중단시켰다. 정부와 이랜드그룹은 이번 매장 점거가 영업을 방해하는 불법 쟁의행위라며 즉각 중단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사측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노조 집행부 6명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매장 주위에 배치된 경찰은 명령만 떨어지면 침탈을 자행할 태세다.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의 투쟁을 불법으로 매도하고 고사시키는 오래된 전략을 또다시 구사하고 있다.

사진설명매장을 점거중인 홈에버 노동자들에게 보낸 사측의 협박문자. 정당한 파업권 행사는 업무방해라는 죄목에 걸려있다.


이번 투쟁에 대한 정부와 사측의 대응은 한국사회 노동기본권의 남루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랜드 일반노조가 쟁의행위를 통보한 것은 지난달 9일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인 채 해고와 외주화를 착착 진행시켰다. 경영을 위한 ‘합리적 선택’으로 포장된 외주화는 노동조건에 대한 사용 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동안 거듭 계약을 갱신해왔던 이들은 비정규법 시행을 앞두고 ‘계약기간 만료’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매장 계산대에서 밀려났다. 노동조합은 파업을 선언했지만 대체인력 투입으로 매장은 정상 운영됐다. 이런 상황을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마지막 방법으로 매장 점거를 선택한 것은 사측을 교섭 자리로 끌어내기 위한 정당한 파업권의 행사로 봐야 한다.

우리는 묻는다. 파업 중인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 현장을 점거하는 것이 어찌 범죄가 될 수 있나? 사람을 해치지 않는 평화적인 점거 행위에 대해 왜 국가가 체포와 구속 등 형벌권을 행사하는가? 헌법은 작업 중단에 따른 사측의 손실이 예정되어 있는 파업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데, 왜 작업장을 점거한 노동자가 매출 감소에 대한 민사책임을 져야 하는가? 어떻게 자본의 ‘영업의 자유’가 노동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 위에 설 수 있는가? 21세기 한국사회는 19세기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로운 거래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단결을 범죄로 규정하고, 노무제공 거부 등 단순한 계약 위반 행위를 형사범죄로 처벌했던 역사를 되풀이하는 꼴이다. 생사여탈권을 쥔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의 유일한 대항권인 파업에 국가가 나서 범죄라는 낙인을 찍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중립을 가장한 자본 편들기다.

노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국가와 자본이 설계한 현행 법제도에 갇힐 수 없다. 파업권은 노동조합이나 조합원만이 아닌 노동자 개인의 권리여야 한다. 파업의 대상에는 개별 사업장의 노동조건 개선뿐 아니라 정부의 노동정책도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파업 열기를 식히려는 목적으로 노동조합법 상에 설계된 단체교섭이나 찬반투표, 조정절차는, 이를 거치지 않았다고 불법으로 간주될 수 없다. 파업권의 행사가 폭력과 파괴를 수반하더라도 개별 행위에 대한 책임과는 별개로 그 행위가 파업 자체의 적법성을 따지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측은 이번 점거 투쟁을 기업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농성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이 이처럼 뻔뻔스럽게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경찰력이라는 합법적인 폭력으로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정부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법원은 법 테두리를 벗어난 파업이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감옥 밖 노동자들을 위협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단결과 파업이 범죄일 수 없다. 정부는 체포영장을 취소하고 점거 농성장 주변에 배치된 경찰을 당장 철수시켜야 한다. 노동자의 단결을 범죄로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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