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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7
    아몰래~아몰래몰래몰래~아몰래~(2)
    나그네
  2. 2009/08/21
    에잉, 씨부랄 것~
    나그네
  3. 2009/08/14
    피곤(2)
    나그네
  4. 2009/07/24
    녹초
    나그네
  5. 2009/07/11
    자연으로 돌아갔구나.
    나그네
  6. 2009/07/10
    비정규직에 임하는 자세(8)
    나그네
  7. 2009/07/10
    훈장님(2)
    나그네
  8. 2009/07/02
    여름...(2)
    나그네
  9. 2009/06/28
    게임....
    나그네
  10. 2009/06/19
    구걸을 하시오. 구걸을~(2)
    나그네

아몰래~아몰래몰래몰래~아몰래~

우두커니 앉아 있다. 내가 무슨 '좌선 우둑헌' 선생도 아닌데 말이다. 서원 근무를 하고 있는데 방학이라 적막하기만 하다.

 

방학 동안의 일을 정리해보자.

1. 여름불경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내 자리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거기 절간 소속 스님들은 다 책상에 노트북 한대씩 있었는데 말이다. 초빙 스님이라고 차별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공강 시간에 인터넷도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좌선 우둑헌 선생의 사상을 실천할 뿐이었다.

 

2. 개학한 절간에 가서 또 한곡조(수업) 뽑아주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오자마자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우리집 초인종은 고장 났다. 그러자 이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한창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나는 평소대로 그냥 쌩까버리는 방식을 버리고, 도전적으로 '누구시오~'하고 물었다. 그러니 들여오는 말이 참 황당했다. '애기 엄마 계세요오오? '

나는 참 황당하고 짜증이 나서 문을 열어서 뭔소리냐고 했다. 그러니 젊은 주부 두명이 서 계셨는데 애기엄마 모임을 한다고 했다. 처음보는 분들이었다. 나는 거칠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그런 사람 없어요.'

이렇게 얘기하고 문을 닫았는데 말해 놓고 보니 참 이상했다. 애기엄마 같은 사람 없다고 한 나도 좀 말이 엇나기도 했거니와, 지들은 누구길래 이 동네 애기엄마들을 소환한단 말인가? 민주 애기엄마 모임 혹은 민주주의 민족통일 애기엄마연합이라도 만들려는 것인가? 아니면 어느 교회에서 애기엄마 부흥회라도 따로 개최하는 것인가? 참으로 요상했다.

 

3. 방학 중에 대로를 만났다. 대로께오서 방학 이후 자신의 모든 제생들에게, 지금까지 논문을 위해 연구한 것을 정리해서 제출하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8.3 선언) 그래서 제생들이 비상이 걸려서 허겁지겁 하지도 않은 연구를 했다고 생쑈를 해야 했는데 나 역시도 이제 막 첫 학기를 지났을 뿐이거니와 제대로 공부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에라이 모르겠다하고 예전에 읽은 헤겔에 대한 책 한권을 요약해서 제출해버렸다. 아니나다를까 어느 한적한 여름날 다음 tv팟이나 보며 놀고 있는 나에게 연구조교 서생에게 전화가 와서 대로의 호출이 있다고 빨랑 서원으로 오라고 하였다.

서원으로 달려가서 대로를 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앞으로 무슨 논문을 쓸 것인지 상담을 한바탕 하고 왔다. 그래서 어물쭈물 설랑말랑 꿍얼쭝얼 얘기했는데 대로깨오서는 곧바로 더 공부해서 보고서를 연말까지 제출하라고 통보하셨다. 오 마이 가앗!!!

 

4. 나로호 발사를 할 당시에 TV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발사는 순식간이었고,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발사 실황 중계를 하는 아가씨의 러시아어 발음이었다.

10. 9. 8. 7. 6. 5. 4. 3. 2. 1. 발사~!! 하는 목소리와 함께 고도 몇, 속도 몇, 1단 분리, 2단 분리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과 함께 곧바로 러시아어로 그말을 반복했는데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고도 545도, 속도 1만 6천 킬로미터, 꼬또뿌릅트까 모라부르끄르말다."

난 그때 러시아어에 반했다고 좌선 우둑헌 선생을 두고 맹세할 수 있다. 아가씨도 만나보고 싶다. 정말이다.

 

 

이렇게 방학이 끝나간다. 요즘 손담비의 '아몰레드'를 가끔 듣는다. 난 첨에 이게 CF노래인 건 알았으나 아모레 화장품 광고노래인 줄 알았다. 나도 많이 늙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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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잉, 씨부랄 것~

요즘들어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간다. 용산 참사에서 사람이 죽고, 화물노조 노조간부가 자살하기도 하고, 상왕이 자살하기도 하고, 태상왕은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죽고 죽고 죽어 나간다.

 

그러한 죽음을 통해서 우리 인민들은 '사람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 한다. 노무현이 죽었을 때, 김대중이 죽었을 때 보여준 여타 정치세력들의 모습은 나에게 이러한 인상을 강하게 남겨주고 있다.

 

노무현이 살아있을 당시, 그렇게 죽을 똥을 싸면서 신랄하게 비판하던 사람들도 그가 죽자, 그가 했던 일들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게 되었고, 그의 존재 자체가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평소 생각이기도 했지만 나는 지난 자유주의 정권 아래에서 20대를 보낸 것을 참으로 다행으로, 더 나아가서 행복했던 것이었다 느끼고 있다.

 

작금의 김대중의 별세도 그러하다. 김대중이 대통령이었을 시절, 한나라당에서는 그의  IMF 극복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성급하게 IMF를 극복하려 한다고 비난만 했 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를 민주 독재라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또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에는 보수세력들이 이를 두고 얼마나 비난들을 했던가. 사실상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욕도 해댔고,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나왔었다.

 

진보세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때 좌파들은 뭘 했는 줄 아시는가? 내가 생생히 기억하는데, '김대중 정권 퇴진 운동'을 했더란다. 물론 그 근거는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었다. 김대중 정권 때에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대우 자동차 매각과 관련한 파업이 있었고, 아셈(ASEM)회의에서의 세계화 반대 투쟁 등이 있었다. 하여 김대중의 노벨 평화상 수상도 좌파들의 빈축을 사기 일쑤였다. 6.15 남북공동선언도 남한 자본의 북한 진출을 위한 것이라며 나름대로 치밀한 분석을 하기도 하였다.

 

좌우 어느 정치세력을 보아도 김대중은 때려 죽일 놈이었다. 전라디언이었고, 빨갱이였으며 민주 독재자였고, 신자유주의자였고, 자본가의 편이었으며 친미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죽었을 때, 그 누구 하나 그를 욕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좌파 사이트인 '민중의 소리'나 '레디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이 죽었을 때 가끔씩 터져나왔던 좌파적 냉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그럴까? 사실 노무현보다 김대중이 더 오른쪽에 가까웠을 텐데 말이다.

 

이를 통해 한 인간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의 기준에 따라 어느 한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비난하고 비판하다가도 그의 죽음을 눈앞에 목도한 이는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숙명을 느끼면서 고인의 삶을 다각도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새롭게 그 사람의 가치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김대중이 '남북화해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간 측면에서는 여러가지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그가 이룩한 일을 계승하고 그가 못다한 일을 이어받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생각을 갖는다면 비록 정치적인 다툼이야 끊이지 않는 것이지만 최소한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난장판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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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

                (음? )     '자네, 나를 찍은 건가...'                  

       

             <담배를 빠시는 데리다 선생...>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를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단...여름불경학교가 이렇게 빡셀 줄은 몰랐다. 나중에 돈이 들어오면 좋아라 하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힘이 든다.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게 너무나 힘이 든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런, 씨발~'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제발 잠 좀 자게 해주시오!!!!!!라고 하늘에다 대고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이다. 내가 올빼미형이라 밤에 일찍 자려고 해도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모자란 잠 문제가 가장 크다.

 

하여 이 여름불경학교 때문에 그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한동안 정신이 나가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생각할 틈도 없었고, 내가 할 공부에 대해서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서원에서 스터디가 있을 때에도 간신히 진도를 따라가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이걸 내가 괜히 맡았나 싶다. 물론 나중에 돈이 들어올 때에는 좋아라 할 것도 같다..;;

 

이제 방학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이번 방학의 테마는 '돈'이었던 것 같다. '공부'나 '놀기'보다는 돈을 버는 데에 방학이라는 시간을 거의 다 써버렸다. 허 참..약간 허무하기도 하다.

 

앞으로의 생활은 예고한 대로 삼중체제로 발전할 것 같다. 절간과 서원을 오가는 동시에 서원에서 훈장조교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서원의 선비들이 향교에서 가르칠 때 여러가지를 도와주는 일이다. 뭐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어나 버렸다. 물론 세 가지 일의 시간이 겹쳐지지 않도록 한동안 이리뛰고 저리뛰고 했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일이 잘 안풀리면 절간의 일을 그만두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떠나고만 싶다. 차를 한대 타고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행을 가보고도 싶다. 우리나라가 통일되어 있다면 걍 차를 타고 북쪽으로 쭈욱 올라가서 초원 고속도로를 지나 시베리아 횡단고속도로를 거쳐 북유럽쪽을 돌고 싶다. 아니면 북쪽으로 올라가서 중국으로 방향을 틀어서 황해연안을 쭈욱 훓어 지나가다가 티베트로 꺽어들어가서 고원지대를 지나 인도를 거쳐 중동을 돌아보고 싶다. 우와 기름값 졸라게 많이 쳐 들겠다.ㅋㅋㅋ

 

이 작고 작은 남반도에서 뭘하고 있는 것인지...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내가 보편적이지 않고 특수한 하나의 존재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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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초

요즘 친구가 다니고 있는 절간에 보충수업 여름불경학교 시간강사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에 출퇴근할 때마다 두 시간씩 잡아 먹는다. 그래서 문제는 역시나 출근이다. 5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가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지하철을 타고 또 한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라 지하철에서 졸기 일쑤이다. 하지만 지하철이 어디 잠을 자기에 편한 곳인가.... 졸다 깨다 졸다 깨다하는 이상한 영혼의 상태로 벌써부터 반 녹초가 되어서 학교에 도착한다.

 

그나마 용돈을 버니까 이런 짓을 하지...지금이라도 그냥 확 그만두어 버리고 싶다. 수업은 그냥 그럭저럭 진행 중이다. 그다지 집중하는 중생들도 없고, 그들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라 나는 그들을 깨우거나 닥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요즘 꽤나 피곤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출근하는 게 제일 힘들다. 방학인데 쉬지 못하고 되려 힘들게 일이나 하고 2학기를 맞이하지는 않는건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다음 학기부터는 나도 여러가지 일로 바빠질 것 같다. 서원에서 할 일이 생겨서 삼중 체제로 인생이 돌아갈 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미디어법 통과 소식이 들리면서 매우 시끄럽다. 헌정 사상 초유의 집단 의원직 사퇴라는 사건도 생기고 말이다. 어지럽다. 모든 것이 어지럽다. 이런 상황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씨발 빨리 총선이나 와라..라고 생각하기밖에 더할 것인가. 서생들끼리 모이면 마치 할아버지들끼리 세상 돌아가는 얘기하듯이 씨부렁 거릴 뿐이다.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참으로 착찹하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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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갔구나.

아, 어제가 상왕의 49재였구나. 잘 모르고 있었다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쩐지 상왕 관련 기사가 좀 보이더라....벌써 49재라니 시간 참 빠르다.

 

현 정부를 향한 상왕의 마지막 필살기는 어쨌든 눈에 보이는 확연한 변화를 추동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실패가 아닌 것이,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과 반발감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이것이 또 어떠한 방향으로 터져 나올 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생각을 해보면 이번 일은 상왕의 정치적 실패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적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잡힌 것 자체가 그 진위여부가 어떤 지간에 상왕의 치명적 오류였다. 일평생 도덕성을 외친 사람이, 그 도덕성 때문에 자신이 쌓아놓은 모든 것들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고,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마저 위태로워졌다. 이것은 그의 실수이고 그가 자초한 일이다.

 

민주세력은 상왕을 미화하는 일은 과도하게 추진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실패를 봐야 하고, 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제가 이른바 친노파로 분류되었던 이들에게 남아있다. 신당을 창당하든, 민주당에 참여하든지 간에 말이다.

 

현재의 정치 상황을 보자면, 거대 한나라당이 있고, 군소 야당만이 난립해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재력이 있는 사람들, 영향력이 있는 학자들, 전문가들 모두 한나라당의 인재 풀을 형성하고 있고, 그만큼 우리나라의 엘리트 계층의 상당수는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한나라당의 이름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실력 면에서만 보자면 모두들 뛰어난 사람들이다.

 

마치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위나라를 보는 것 같다. 삼국지 연의의 한장면에서 제갈공명은 자신의 재야 시절 같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위나라에서 말단직에서나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 저 나라는 얼마나 인재가 많기에 저러는가.'하고 촉나라의 인재 없음을 한탄한 모습이 나온다.

 

민주 세력으로서는 그러한 탄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민주당 정도야 전라도 자본, 전라도 재벌, 전라도 학자, 전라도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에 사정이 조금 나을 뿐이다. 지방으로 따져서 미안하지만 사실이 그러하지 않은가...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서의 야당의 모습은 아직 요원하다. 사실 민주당의 정치적 정체성은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정책에서의 차이만이 있고, 한나라당보다는 약간 서민 지향적, 민주주의 질서 수용, 중소기업 우선 정도로 표방될 뿐이지 신자유주의 추진의 측면에서는 한나라당과 그다지 다른 점은 없다. 다만 신자유주의의 충격은 최소한이 복지정책 확충으로 보완하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적어도 진보진영과 말이라도 통하는 중도우파이긴 하다.

 

창조한국당은 아직 너무나 군소해서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불명확하다. 그저 대통령선거에서의 문국현의 발언들을 보자면, 유럽의 좌파 사민정당과 비슷한 정당을 표방하는 것 같긴 한데, 그의 발언은 제도적인 측면보다는 개인적, 도덕적인 측면에 국한된 점이 많아 자신의 이상을 어떻게 실현시키려 하는지 불명확한 것이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대안이 그다지 세련되지는 못한 것 같다. 과거의 '민족주의 경제관', 내수위주의 경제체제를 내세우고 있기에 그러한 대안이 제대로 기능이나 할지 막막하다. 이러한 경제관이 통용되려면 블록 형성을 통한 다른 나라와의 연대가 필요한데, 중국과 일본이 이러한 방식의 경제운용에 찬성할 지는 미지수이다. 신자유주의를 되려 환영하는 중국과 나름대로 잘 나가는 일본이 이러한 20세기적인 경제관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만을 외칠 뿐, 이렇다 할 대안이 없으며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정규직 노동자들, 도시의 서민들, 농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은 7,80년대에난 가능할 수 있었던 민족주의 경제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통일 문제에 사활을 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민주노동당에는 민족주의, 구좌파의 사상, 내수 위주의 국가경제지향이라는 혼재된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 주로 민족주의에 기반하여 급진적인 통일과 북한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것이 하나이고, 민주노동당 내 다함께로 대표되는 이들은 구좌파적인 사상에 입각하여 민주노동당을 혁명정당으로, 전위당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이다. 이들 간의 교묘한 긴장이 그저 민주노동당을 내수 위주의 국가경제, 보호무역이라는 이상한 타협점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긴장은 또하나의 분열을 예고하는 지도 모른다. 다함께가 언제까지 민주노동당에 안주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전위당을 만드는 것인데 말이다. 민주노동당의 패러다임을 진보신당에서 비판했듯이 자주파가 계속 가지고 있다면, 다함께는 떨어져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 다함께는 자주세력을 중요한 연대세력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멘셰비키라든가 나로드니키 정도로 이들을 보는 다함께는 통일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면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주장하며 민주노동당을 나오거나, 아니면 민주노동당을 자신들이 차지하려 시도할 것이다.

 

자주파는 구좌파의 사상을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기존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닌, 기존의 사회주의에 대한 긍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시각에서 그것을 볼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그들은 북한과의 끊임없는 접촉으로 인해, 제3의 좌파로 잉태될 수도 있다. 이것은 희망사항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자주파는 진보진영에서 무시할 수 없는 다수이며 그만큼의 파급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주파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확연히 할 필요성이 있다. 단순한 민족주의적 세계관은 그들에게 걸림돌은 될 지 언정,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모습은 될 수 없다. 통일이 어떠한 창조적인 변수를 잉태할 수 있는지는 자주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진보신당은 신좌파, 문화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무정부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전진'과 같은 구좌파 세력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식 사민당을 지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진보신당은 앞을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이 할 수 없는 비정규직 문제, 생태문제, 여성문제의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역시나 진보신당의 대안도 제각각이다. 사민당을 지향하는 건지, 가족철폐, 군대철폐, 국가철폐와 같은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 건지 매우 혼란스럽다. 뭔가 진보신당도 정리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진보신당은 현실감각이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 뿐이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빈약한 답안지조차 없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쓰라고 한다면 진보신당은 뭐라고 쓸 수 있을까. 68혁명 같은 혁명을 지향한다고 쓸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해서 민주노동당은 채점이라도 할 수 있는 반면, 진보신당은 답안 작성을 거부하는 바람에 점수 자체를 줄 수 가 없는 형국이다. 누가 좀 알려주기 바란다.

 

우리 사회에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확립이 그 첫번째 일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범 야당이 힘을 모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러한 과정이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안도 없는 신자유주의 반대는 인민들을 진보의 논의에서 소외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뭔소린지도 모르는 말들을 떠들에 대니 당장 살 길이 막막한 인민들에게 어떤 메리트가 있을 수 있을까?

두번째 과정은 복지정책의 확립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없다면 그러한 충격을 어떻게든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데에 진보진영이 노력해야 한다. 물론 개량이니 뭐니 말들이 많겠지만 순서가 있지 않은가? 개량 뭐량 떠드는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세번째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현실적인 문제로 표면화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이다. 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자와 같은 식의 계급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정치적 연대여야 한다. 여기에서 북한문제,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역할,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문제점, 테러와 관련된 국제문제들을 아시아의 시민사회, 아시아의 정치인들이 만나 그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한 아시아 공동체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번째는 모두가 기다리는 혁명일 텐데, 이것은 우리의 힘과 이성을 떠난 문제이다. 1,2,3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야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우리의 힘을 떠난 알 수 없는 상황을 위한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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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에 임하는 자세

1. 비정규직으로서의 올바른 사회생활 자세

 

* 제가 '비정규직이라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비정규직이라고 부끄러워 하지 말자. 오히려 비정규직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정규직과는 다른 자신의 자유도를 만끽하도록 하자. 의무가 없는 만큼 책임도 없다. 혹 정규직과 같은 의무를 적용하려 한다면 적극적으로 자신이 비정규직임을 당당히 밝히자. 어차피 열심히 하나 안하나 계약 기간 지나면 짤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예) 귀찮은 업무를 준다. 그러면 '제가 비정규직이라서...이건 제 일이 아닙니다. ^^'

      출근을 남들보다 늦게 한다. 그리고 웃으며 '제가 비정규직 아닙니까 ^^'

      야근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웃으며 '제가 비정규직이라서 이런 일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각종 행사나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웃으며 '제가 비정규직 아닙니까 ^^'

      고객을 만나면 자신의 소관이 아님을 밝힌다. 그리고 웃으며 '제가 비정규직이라서 말입니다. ^^'

      아쉬우면 직접 담당자를 찾아가시거나 게시판에 항의글을 남겨주세요.'라고 말한다.

      직장 내 분위기 파악을 하지 않는다. 회의 시간에 늦게 가서나 꾸벅꾸벅 조는 것도 좋은 태도

 

주의) 혼자 하면 좆망한다. 비정규직이 단결하여 이와 같은 공통적인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비정규직이 넘쳐나면 얼마나 귀찮고 어려운지, 사회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되는지 회사가 얼마나 충성심 없이 유지되는지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언어습관 :  1. 모르겠습니다. 2 제 소관이 아니라서요. 3.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4.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5. 그럼 수고하세요. 6. 제가 비정규직이라서 말입니다. 7. 다른 직장 알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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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님

최근, 아주아주 우연하게 고3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지하철 역에서 걷고 있었는데 저기에 익숙한 사람이 서 계셨다. 자세히 보니 고3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인사를 하고 얘기를 했는데 다행히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래서 같이 열차를 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창들 이야기, 요즘 사는 이야기 등등 말이다. 나는 선생님께 내가 서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선생님은 놀라셨고, 나는 어떻게든 이러한 충격을 줄여주고자 역사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이런 짓을 하였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저 선생님의 기억 속에는 고고학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 나부랭이로 기억하실 테니 말이다.

 

선생님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계셨다. 가족들이 캐나다에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얼굴도 많이 늙으신 듯 보였다. 예전의 날카로운 핸섬함은 없어지고, 중년의 푸근함이 더 느껴졌다. 그만큼 나도 늙어 보였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님은, 절간에 다니면서 왜 나를 찾아오지 않았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교생실습도 왜 오지 않았냐고 하셨다. 거기에 뭐라 대답할 것인가.

 

그때는 대충 이야기하고 넘어갔지만, 왜 그랬겠는가? 나는 고등학교가 매우 싫었다. 씨발이었다. 그나마 고3 담임선생님은 인간적으로 다가왔기에 이렇게 아는 척을 했지, 다른 선생이었다면 쌩 깠을 것이다. 예전 수학 선생이 지금 교장이라는 말도 했었지만 사실 나는 그것부터가 맘에 들지 않는다. 선생님 앞에서는 '예전 수학선생님이 교장 되었다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라고 했지만 솔직한 말로는 '예전 수학 선생같은 개자식이 교장이 되었다니 나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가관이군요.'라고 하고 싶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강압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개중에는 훌륭하신 선생님이 계셨지만 내 모교는 그런 선생님의 학교는 아니었다. 씨발 선생들의 학교였고, 그래서 부당한 일도 많이 당하였다. 여러가지 일들이 생각난다. 교련 씨발 이었는데, 그 자식이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열받아서 누가 그랬냐고 각 반 돌아가면서 단체 기합을 주었었다. 나는 열받아서 기합 받으면서 일부러 '끙 끙 '소리를 냈었는데 공교롭게도 내 옆 친구가 그런 걸로 씨발이 잘못 보고, 그 친구를 마구 팼었다. ;;;; 나중에 그 친구는 '내가 그랬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했었는데 사실 그건 내가 한 것이다. (미안하다 친구야)

 

 언제는 추운 겨울날 외투를 입고 학교를 등교했었는데 원빵이라는 개씹탱자지새끼가 호통을 치면서 외투를 벗고 다시 교문에서 들어오라고 야단을 쳤었다. 그때 씨발 존나게 열받았었다.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죽이고 싶다. 그 씨발은 음악이었는데 음악시간엔 노래를 부른게 아니라, 주문을 외웠다고 해야 정답일 것이다. 음악을 음악으로 배우지 않고, 주문으로 배웠다.

 

그 외 많다. 얻어 맞았던 수많은 일은 뭐 그렇다 치고, 특별활동 미술부를 탈퇴하는 것이 힘들었던 기억, 쳐 맞을 때의 기억, 너무나 가혹한 요구를 들어야 했던 주번시절, 야자시간의 공포의 시간 등등이 말이다.  뭐 당시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년의 쾌활함과 친구간의 우정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탈락했을 것이다. 나 뿐이랴, 다들 그렇다. 하니 이런 넋두리를 해봤자 나만 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엄살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딩시절 나는 그저 선생들의 밥이었고, 선생들이 무서웠고, 그냥 아무 특징 없이 선생들 눈에 띄이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다가 고3시절에 교무실에 찾아갔을 때, 의외로 다른 선생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기도 했었다. 처음에 좀 무서웠다. 아니 왜이래? 난 그냥 특징없이 묻혀 가려 했는데...;;;;

 

물론 그렇다고 고딩 시절이 암흑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재밌는 선생도 있었고, 즐거운 친구와의 놀이도 있었고, 추억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비정상적인 생활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담임 선생님은 언제 한번 찾아오라고, 술이나 한번 먹자고 이야기하셨다. 꼭 연락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내가 과연 연락을 할까? 그 곳에 찾아가기나 할까? 나 자신도 궁금하다. 지금은 아예 그때 아는 척을 하지 말껄이라는 생각도 한다. 다시 그 피의 장소로 찾아간다면 예전의 기억이 다시 나타날 것 같다. 그 시절의 씨발들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곳 말이다.

 

아마도 내가 대학에 와서 집회를 나가게 된 것도 이런 생활에 대한 반항심이 아니었을까, 전에 없었던 반골기질이 생겨난 것도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딩 시절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실컷 봐왔고, 뭘 닮아야 하고 뭘 배척해야 하는지 확연히 체화시키면서 당하지 말고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에 맞는 책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 시기였다.

 

대학에 와서야 나는 냉소하고 웃는 법,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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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여름이다. 그래도 비가 와서 오늘은 참으로 선선했다. 요즘 비도 자주 안오고 가뭄걱정이라는데 비가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푹푹 찌는 8월에는 태풍도 적절한 규모로 가끔 조선반도에 들러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독일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난이도는 어느새 중급으로 올라와 있다. 뭐 일단은 그렇다. 실제 실력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강의 시간이 아침 7시라서 생체시간으로는 그야말로 꼭두새벽인 5시에 일어나서 학원에 갔다.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나는 퇴근인데 다른 인민들은 모두 출근 중이었다.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모두 출근하는 사람들...그 속에 나 우두커니 퇴근하는게...내가 정말 백수인가봐아아아~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꼭두새벽에 일어난 나의 신체가 놀라서 피곤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또 잤다...;;;; 일어나니 11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잔 것 같다. 개운하긴 했는데 이런 짓을 8월까지 해야 한다니 좀 암울하다. ㅋ

 

서원 생활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는 절간 생활이 문제이다. 이제 절간이 방학을 하면 나는 친구 스님이 일하는 다른 절간에 가서 '여름불경학교' 방학보충강의를 맡을 것 같다... 가르치는 것은 힘들고 나의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어찌하랴....돈은 벌어야지....그래서 절간이 방학하는 7월 중순이 되면 나는 되려 또 바빠질 것 같다.

 

공부는...그럭저럭 마치 관광열차 타듯이 느릿느릿 진행중이다. 책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만 간다. 이게 다 외국어 때문이다. 그래도 세미나라고 몇 개 하는 게 강제적으로라도 공부를 하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독일어 학원도 다니니, 이것도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생각이 든다. 모두들 뭔가를 하고 있는데 나만 왠지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죽을 곳은 여기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 좀더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 화상아, 생각만 하고 앉아 있냐.....ㅜㅜ

 

이공계가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우리 주변에 나오는 얘기는 이공계가 죽어간다지만, 인문학은 이미 죽어서 관에 못을 박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 선배를 보더라도 그것은 빤히 보인다.

 

인문학을 하는 것은 누구나 말하듯이 당장 효용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돈이 되는 학문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인문학자들이 가난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마땅히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풍토는 조금 다르다. 주변 동양2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먼저 대학의 교수가 되면 마치 가난한 고학생이 고시에 합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수혜와 혜택과 명예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그 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른바 학도들과 교수 사이에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게 조금만 좁혀지면 비록 엄청난 혜택은 사라지더라도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텐데 말이다.

 

누군가 니가 교수가 되고 싶으냐? 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아직까지는'그렇다. 아직은 대학에 다니면서 가오잡고 강의하는 말그대로의 교수는 되기가 싫다. 차라리 니 꿈이 뭐냐? 라고 묻는 다면 자랑스럽게(?) 시간강사요~라고 말하고 싶다. 허허

 

유럽의 예를 들어서 나 자신에게도 미안한데,,,특히나 진보세력들이 툭하면 우리나라 욕하면서 잘사는 유럽의 예를 들어주시는데 이게 좀 현실상 맞지 않는게 많기 때문이다. 역사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고 지역사회도 다르고 국제관계도 다르니 말이다. 아무개가 북한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이상한 좌파들이 '그럼 북한으로 가!'라고 하듯이, 나도 이들에게 '그럼 유럽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배울 건 배운다는 측면에서 그들에게 최소한의 동의를 표하면서 나도 유럽의 예를 들겠다. 유럽의 교수직은 당연히도 우리나라 교수의 수보다 월등히 많다. 그리고 봉급도 많지 않아, 유럽의 노동자 수준이라고 한다. 이건 좀 괜찮은 것 같다.

 

유럽의 인문학자들이 진보적인 이유가 이러한 경제적인 토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물론 그렇다고 유럽이 교수 되는 것이 쉬우냐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교수가 되려면 '교수자격논문'이라는 것도 제출하고 시험도 본댄다. 그래서 유명한 데리다도 그 시험 많이 떨어졌단다....(이거 맞나...어쨌든^^)또한 비정규 시간강사들도 어느정도 생계를 보장해주고 말이다.. (송두율 선생도 아마 정교수는 아니라지...)

 

우리나라도 교수 수를 더 확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수를 늘리고 중고등학교 교사 수준의 봉급만 받는 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만족합니다!!) 나는 교수들이 너무나 특권화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여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망할 놈의 반골기질...

 

뭐 딱히 공부를 하고 나면 교수가 되고자 하는 생각은 없기에, 일단 목표는 학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거 끝나면 뭘하나.....그제서야 교사를 하겠다고 설레발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래, 뭔가 자신만의 일을 하면서 공부한 것을 가지고 논문도 쓰고 저술도 한다면 좋지 아니한가...뭐, 이상이겠지. 그런 짓 하는 것도 좀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에 정말로 자유로운 학문 연구는 가능할까. 이걸 생각하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우리나라에는 어느 학문이든지 아직 유명한 '사상가'는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뛰어난 사람들은 모두들 외국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말이다. 정말 자유로운 학문 연구는 자연과학 쪽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마저도 요즘 이공계가 어렵다니 암울하긴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을까. 혹은 적어도 학계의 성과가 일반 시민 사회라든가 문화계로 전파되거나 토론되거나 공생하지 못하는가. 우리나라에 과연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긴 한 것인가... 학계는 학계 따로, 사회는 사회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학문 연구라고 보기는 힘들다. 말그대로 상아탑(이말 좀 맘에 안든다. 차라리 장막 정도가 우리 현실에 맞는 말일듯..상아탑? 웃기지 않냐? 상아탑은 개뿔..학자가 뭐 잘났다고..ㅋㅋ)에서 쳐박혀 공부나 해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현실이 아직 자유로운 학문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뭔가 피드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까 강정구 같은 학자가 6.25 내전설 같은 걸 주장하면 사회는 발칵 뒤집히는 것이다. 아니 왜? 그 사람 전부터 그거 주장했었는데? ㅋㅋ....

 

이러한 현실 때문에 학자는 학자대로 우리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그저 외국학자 성과 빌려서 이러쿵 저러쿵 지들끼리 노가리만 까다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사회는 외면하고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분단과 직결된 문제는 아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그만큼 폭넓지가 않다는 것이다. 뭔가 말을 하려해도 이게 안되고 저게 안되고 하니 말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같은 동양 2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중국 같은 경우는 요즘 동양철학분야에서 엄청나게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 정체성을 초월한 자유로운 논의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인문학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일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본은 엄청난 학문적 역량으로 아시아의 학자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서양의 학문성과들도 빠르게 번역이 되고, 서양에서도 유명한 성과들이 배출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일본도 전후문제와 천황제라는 금기가 존재한다는 측면이 일본의 학문역량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는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학적 성과가 일본 사회에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일본에서도 유명한 사상가는 아직 존재하지 않지 않나? (틀리면 제보바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된 사상가가 배출되기까지는 아직 지대한 관문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사회가 변해야 학문이 발전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는 정말로 훌륭한 지성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도 만들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성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아니 우리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할일도 없는데 한번 생각해 본다.

 

1. 이성과 진리의 문제

과연 우리 사회에는 이성이 존재하고 지성이 존재하는 가? 혹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진리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사회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불가능하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이성에 대한 회의라는 측면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서양은 이미 이성의 단계를 이미 거친 이후에 이성의 문제점을 반성하는 단계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해방 이후에 치열한 좌우대립과 현재에도 지속되는 분단의 이념갈등으로 인해서 자유로운 정신이라는 것이 많이 희생된 측면이 있다. 즉, 아직 모두가 동의할 이성과 진리가 정립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서 보자면, 우리는 이성적 협의, 동의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다. 쇠고기 파동은 엄연히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냉철한 이성적 입장으로 보자면 광우병은 발생할지 말지 정말로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도 부정도 유보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광범위한 불안 심리가 작동하여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이른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작년에 활개를 치고 다녔었다.

 

광우병 파동은 과장이고 거짓이고, 그야말로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불순한 이들이 조장한 것인가? 이러한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광우병이 그저 '의혹'에 불과하다고 과학적 수치를 들이대며 '안심해'라고 말하고 그냥 지나가도 되는 문제였을까? 정말로 사회적으로 차분한 이성, 적어도 그러한 이성적 태도를 유지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지도층, 지식인층을 형성하고 있었다면 그 사태는 양 극단의 중간쯤이 되었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는 정부와 시민으로 대표되는 양 극단의 강한 충돌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결과는 흐지부지....

 

분단과 관련되어 있었던 예전의 송두율 사건, 강정구 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강정구가 말한 '만수대 정신', 혹은 6,25 내전설 등은 강정구가 간첩이라서가 아니라,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자신의 입장을 표방한 것인데 그것이 여타저타 말도 없이 빨갱이 마녀사냥이 진행되었다. 송두율도 마찬가지 나는 송두율 선생이 북한의 간첩이 아니라 그저 북한과 친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 사람의 학문적 입장과 저서들을 통해서 추구하는 바를 보지 못하고 그저 사회적으로 매도하기에 바빴다.

 

내가 알고 있는 송두율은 제3세계와 제1세계를 화해시키는데에 자신의 학문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른바 안티근대를 표방하는 미국적 시각의 '적국'들에게 따뜻한 시각을 가지고 우리가 근대 혹은 현대를 극복하자는 데에 있어서 그들 제3세계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불만도 마땅히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시각을 가진 학자를 사회에서는 그저 빨갱이로 몰았다. 조선의 큰 불행이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만 보는 일이 우리 조선에서는 허다하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일들을 보면 그것이 그저 사건의 연속이었지 그게 우리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 황우석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과연 우리사회에서 이성적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는가? 혹은 진리 자체가 가능한가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와 입장, 방법론을 만들어내야 앞으로의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고 그저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저 외국학자들의 책이나 파고 그거 가지고 장막 속에서 학자들끼리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봤자 아무런 성과를 낼 수가 없다. (뭐, 그게 중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뭘 얘기하고 했는지 수천번 말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있는가? 스포츠 처럼 그저 지적 유희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2. 삶의 문제

우리는 왜 살아 씨발?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살아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 그럼 학원, 학교에 가래. 그래서 학교에 가. 그럼 대학에 가야 한대. 그래서 씨발 대학에 가. 그러면 취직을 하래. 씹탱 그래서 취직을 좆나게 열심히 노력해서 해. 그럼 씨발 또 결혼하래. 결혼을 해. 그래서 애를 낳아. 그래서 늙어. 그래서 뒤져. 씨부랄 개씹탱 아가리 좆나 씨댕 우라질 염병 탱탱부랄~!!!!

 

다른 나라 인민들? 학교에 가.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어. 우리나라처럼 대학 못가면 죽어!! 처럼 그런 비인간적이고 살벌한 합의가 아냐. 그럼 거기에서 인민들은 대학에 갈지, 직업을 구해서 직장을 구할지 결정을 해. 중간에 사랑하면 결혼이나 동거도 가능해. 자신의 인생 가치관에 따라 갈라지겠지.

 

자신이 어떻게 살지 다른나라 인민들은 그렇게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전 방한한 히딩크? 그 나이에 여자친구있대? 우리나라 허정무 감독이 여자친구 데리고 다니면 '미친새끼' 하겠지.

 

삶의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도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자유로운 인간을 양성할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삶의 목적이라든가 쉬운 말로 삶의 질에 대한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기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경제적 규모에 비해 복지 제도는 형편없다. 이러한 합의의 부재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파업이 일어나면 그들이 왜 파업을 일으켰는지 이해하는 태도 없이 그저 국가 경제 운운하며 나는 일하는데 너는 왜 노냐? 하면서 매도하기에 바쁘다.

 

이제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복하게 살지 결정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것은 경제적 제도와도 관련이 된다. 이미 유럽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제도들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에 있어서 사회주의의 '사'자도 꺼내기가 힘든 측면이 많다. 이런 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 혹은 삶 그 자체를 반성하는 사상가가 나올 수가 없다. 자본주의도 하나의 가능태로서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우리 학자들 사이에서는 부재하지 않은가? 그저 극단적인 찬성과 반대만이 있을 뿐이다. 삶의 문제도 극단적인 국가주의적 삶, 경쟁적 삶과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적 삶이 우리나라에서 충돌하고 있다.

 

3. 이념의 문제

이미 다른나라에서는 정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념갈등을 겪고 있다. 극단적인 맑스레닌주의적 정파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정파의 활동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정파들만 활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좌우대립만이 잠재해 있다.

이것은 좌우 이념이 무엇이 잘못되고 어떤 점에서 이것은 옳은지 합의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사회주의가 상존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툭까놓고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있긴 한가? 그저 말도 못하게 막고 있지 않은가? 국가보안법도 그렇다. 이것이 문제의 해결을 늦추고 있다. 사회주의에 반대하면 왜 반대하는지, 즉 스탈린 식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의 본질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의 사회주의가 가능한지 공평하게 마찬가지로 지금의 자본주의가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본질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의 대안적 자본주의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인지 합의가 부족하다.

 

그런 합의의 부재는 학문적 역량에서도 나타난다. 아직까지도 맑스, 레닌, 스탈린 사회주의 3부자의 저작이 완역되지 못하고 있다. 유명한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나 케인즈의 저작도 완역되지 못하고 주요 서적이 있다해도 절판되거나 있어봤자 매우 오래된 번역서만 있을 뿐이다. 뭔가 서로 토론하고 싸울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니 논의를 해봤자 허공만 가를 수 밖에 더 있겠는가?

 

학자간의 토론도 부재하고, 그만큼 시민들 사이에서도 웃기게도 21세기에 아직 사회주의는 금기시되어 있다. 이제 툭 까놓고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학자들의 할 일은 정해지지 않았는가? 이런 저서들을 빡세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번역해서 시민 사회의 품으로 돌려야 한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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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지 않고 노가리만 깠다. 그냥 내 생각이다. 해야 할 일은 많다. 그래서 학자들은 고상하게 예술이나 영화나 평론하고 어려운 형이상학을 이야기하고, 생소한 학자들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더 더 한걸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거 뻘소리 아냐......쓰고나니까 제대로 뻘소리 깐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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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아마도 8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은 산업화된 조선의 성과를 어린시절부터 만끽하며 자라온 세대가 아닌지 생각한다. 그런만큼 우리세대부터 물질적 풍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세월이 바뀜을 알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태어날때에는 컴퓨터는 없었다는 것, 휴대폰은 말할 것도 없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세상에 잘 적응하고 살고 있으니 아마도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나보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쯤 곳곳에서 컴퓨터 학원이 생겨나며 컴퓨터 붐이 일어났던 것 같다. 이른바 8비트 컴퓨터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곳이어 등장한 16비트 컴퓨터...나의 가족은 형을 컴퓨터 학원에 보내기로 결정하였고, 물론 나도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부모님은 눈이 나빠진다며 만류하였고(돈이 없기도 했었겠지..ㅋㅋ)그 결과 지금 형은 최첨단의 인생을 살고 있고, 나는 책냄새 풀풀 나는 고리타분한 길을 걷고 있다.

 

당시 컴퓨터를 모르는 나조차도 컴퓨터에 매력을 느낀 것은 당연하게도 게임이었다. 당시 8비트, 16비트 컴퓨터에 무슨 재미난 게임이 있었겠냐만은 당시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일반적인 슈팅게임부터 특히나 당시 국민학생들을 사로잡은 것은 삼국지1, 더블드래곤 등이었다. 당시 잡기놀이, 딱지치기나 하고 있던 우리로서는 정말로 큰 문화충격이었다. 하지만 어린나이였기에 변화에 무심하였고, 그냥 게임이 있구나 하고 재미나게 즐길 뿐이었다.

 

중학교 때 386컴이 나오고, 그 이후 쏟아진 게임은 정말 현란했다. 3D게임을 처음으로 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집에 있는 개인용 컴퓨터에 게임을 저장시켜 노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다.

고등학교 때에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나오고, pc방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게임개발의 역량도 차츰 증가하여 온라인 게임의 영역에서 한국 게임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고2때 최초의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에 빠져든 친구들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중독성이 장난이 아니었고, 그 당시에 난 왜이리 보수적이었는지 공부한다고 그런 것은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뭔가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는 게임의 장르가 어드벤처, 롤플레잉, 슈팅 게임 으로 확연히 구분되던 시절이었다. 어드벤처 게임으로 생각나는 것은 유명한 '원숭의 섬의 비밀 1,2,3, 이다. 원숭이 섬의 비밀 1,2,3는 모두 다 해보았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다만 단점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는 게임에서의 자유도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 메뉴얼을 모르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하여 스토리를 전개할 지 막막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어드벤처 게임은 한국판으로 번역도 안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영어에 짧은 나로서는 서울역에서 김서방 찾는 것과 진배없었다.

 

어드벤처 게임으로 또 생각나는 것이, 당시 추리소설에 빠져있던 나는 셜록홈즈 게임을 찾아서 해본 적이 있었는데, 영어가 짧으니 사건 해결이 불가능했던 것은 자명한 일었다. 셜록 홈즈가 영어도 모르고 낯선 영국 땅에 와서 탐정 일을 하고 있는 동양인이었으니 당최 말이나 되는 일인가..

 

게임이 시작되면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빨리 사건현장으로 오라는 말을 듣게 되지만 영어를 잘 모르는 나는 사건 현장에 가지 않고, 경찰서를 먼저 가버렸고 그곳에서 노가리를 까다가 사건현장에 가게되니 이미 현장은 말끔히 치워져 있는 상태였다...;;; 스토리 상 먼저 현장에 가서 중요한 단서들을 찾아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곳저곳 방황하다가 게임을 그냥 접고 말았다..

 

롤플레잉 게임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삼국지 영걸전, 로봇대전 등이 기억이 난다. 모두 한창 빠질 때에는 새벽까지 했었던 게임이었다. 그나마 대학 때 그랬으니 다행이지....^^;;

소문으로만 듣던 온라인 게임을 했던 것은 '와우'가 처음이었고, 가장 빠졌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온라인 게임의 매력은 대단하다.

 

앞으로 또 어떤 게임들이 쏟아질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게임산업의 발전으로 우리말로 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크나큰 축복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제 좀 제대로 된 어드벤처 게임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게임 산업이 발전했음에도 완벽한 자유도를 구가하는 어드벤처 게임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이미 온라인 게임으로 헤게모니가 넘어가기도 했고 말이다. 원숭이 섬의 비밀 같은 인간적인 그래픽을 구사하면서 편하게 생각하며 즐길 수 있는 어드벤처 게임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GTA 같은 게임이 있기도 하다. 전에 해봤었는데 너무 비사회적인 임무만을 요구하는 바람에 흥미가 떨어졌고, 나는 치트키를 써서 모든 무기로 무장을 하고 곳곳에서 민간인을 아무 이유없이 죽이고, 저격하고 하면서 시간을 때우게 되었다. 경찰들과 한바탕 격전을 치르기도 하고 말이다. 계속 그러다보니 내 머리도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

 

지금 다시 셜록홈즈 같은 게임을 하게 되면 영어를 해석하면서 소소하게 즐길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니 뭐 한글로 된 게임을 하면 더 좋고 말이다.

 

몇 년 전에는 코삭이라는 게임을 한적이 있는데, 나폴레옹 시대의 군인들을 거느리고 전투를 펼치는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이었다. 고증도 꽤 잘되어 있어서 당시의 전쟁을 실감나게 바라보고 조종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재미였다. 그렇게 고증이 잘 된 전투 게임도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나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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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걸을 하시오. 구걸을~

맘을 크게 한 번 먹고, 이번에는 연애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그렇다. 연애다. 연애...

 

물론 별 중요한 내용은 없다. 본인도 여러 경험을 통해서 연애를 시도하였으나 전패를 자랑하는지라,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을 듯 하지만, 그래도 나 같은 영혼은 나오지 말 것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연애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들어가기 전에, 내 주위의 친구들은 유독 연애를 잘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상한 형태로 사람을 사귀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전에도 일상대군에게 이야기하였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충격적인 폭력, 금욕 생활이 감정을 황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것은 정말로 학교를 상대로 정신적인 손해배상이라도 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이른바 초식성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는데, 요지는 뭣이냐 예전처럼 들이대는 남자들이 많이 사라지고 소극적인 남성들이 주를 차지한다고 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견해는 응당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소위 남성적 덕목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이러한 초식성 남성들을 양성하는데에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조선에서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나 역시 초식성 남성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의외로 정말로 내가 소극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년 간의 실패의 경험이 더더욱 나를 초식성으로 만드는 것 같다. 반성해야 할 점이다.

 

작업을 거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일단 이른바, 소위, 대략 '여성'이라고 하는 존재양태는 우리 남성들과는 다른 인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을 그들은 보지 못하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본다. 마치 우리는 가시광선으로 세상을 보는데, 그들은 이른바 '게타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이다. 행동패턴, 인생의 가치관, 감정의 표출방식 등의 모든 것이 우리와는 다른 계통을 형성하고 있다. 연애를 하는 자는 대단한 사람들이다.(아버지 존경합니다..!!)

 

초식성 남성들이 퍼지고 있는 만큼 그럼 여성들은 반대로 육식성이냐.....그렇지도 않다. 세상은 변하여서 이제 여성들도 자기 표현을 적극적으로 할 줄 안다고 예전에는 생각했지만 이것은 다년 간의 실패로 인하여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일단 결론이 났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남성들이 초식성이 될 만큼 우리네 조선의 인종들은 더더욱 초식성으로 되어 가고 있다. 모두가 개인주의적이고, 소극적이고 소통에 있어서 예전보다 서툰 측면이 많아진 것 같다. 그러니 안심하라. 우리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을 거는 데 있어서 명심해야 할 것은, 아무리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고, 호감이 있어서 연애에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결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완전한 착각을 남성들은 할 수 있다. 특히나 솔로 생활이 오래된 사람일 수록 그런 착각들을 많이 한다. 나는 예전 이문동거사와의 대화에서 아, 나는 착각의 대마왕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맞다. 나도 착각을 졸라게 많이 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이다.

 

그래서 대쉬를 했는데 그것이 100%나의 착각임이 드러났을지라도 하지만 실망하지는 말길 바란다. 여성들은 누군가가 대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여성이 한번 거절했다고 모든 것을 단념하고 떠나지 말라. 이것이 중요하다.

 

거절했을 지라도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관계를 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거절했다고 떠나면 안된다. 물론 이것이 남성들에게 힘든 것이 사실이다. 여성은 한동안은 나를 피한다든가, 어색하게 대한다든가 할 것이고 이것은 당연히 나에게도 전달되어 '아, 어색하다, 만나지 말자.'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 힘든 시기를 철판으로 이겨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대하면서 고난의 강행군을 해야만 한다. 물론 이런 시기를 기꺼이 견딜만큼 상대방을 좋아하는 경우여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속적으로 친절, 봉사, 배려, 관심을 통해서 관계를 발전시킨다면 여성은 당신의 마음을 받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제군들이여, 쉽지 않다. 쉽지 않아. 나도 차라리 이런 과정을 겪을 바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줄줄 외울 정도로 공부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답은 '나도 모른다.'이다. 아니, 다년 간의 실패'만' 겸험한 사람에게 그것은 정말로 알 수 없는 칸트의 물자체이며 헤겔의 절대정신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이며 기독교의 신의 존재여부이다. 나도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부딪치면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쉬하고, 거절을 좆나게 당하다보면 내 주머니의 공구통에 '펜찌'가 쌓이는 만큼 어느정도 눈이 깨일 것이다. 물론 나는 꽤나 많은 펜찌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 자신의 연애전선은 이미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어 있다. 수공으로 군대가 전멸당하기도 했고, 화공으로 황급히 퇴각하기도 했다. 일거에 본진 기습을 단행했다가 포위되어서 전멸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치만 하다가 식량 부족으로 전군이 탈영하기도 했다. 아아, 뼈아프다. 혹은 이런 경우도 있다. 군대를 몰고 가서 들이치면 되는 것을, 나는 전황을 불리하다고 인식하고 후퇴한 경우이다. 두고두고 후회된다. 이런 경우가 두번이나 있었다.

 

특히나 나의 문제점이기도 한 착각의 경우는, 총공격을 단행했다가 적의 포수의 삼단 사격에 기마병이 전멸한 경우에 비할 수 있다. 그러나 말했듯이 그만큼의 매력이 있다면 섣불리 퇴각해서는 안된다. 기회를 계속 보면서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라. 그러면 또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어렵지만 해야만 한다. 나도 그래야만 한다. 그러다가 안되더라도 또 누가 아는가?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 소개팅 시켜줄지...ㅜㅜ

 

그리고 이순신형이 말했듯이, 싸울 곳은 자신이 정하는 게 낫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지 말고,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하고 그렇게 전쟁을 시작하라. 전자는 착각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차라리 내가 먼저 시작해서 멋지게 전멸(?)당하는 게 낫다.

 

그렇다. 계속 노력하자 제군들이여. 부지런히 징병하고, 군대를 훈련시키자. 총알도 모으자. 친절한 태도와 배려는 나의 척후병이며, 지속적인 관심은 궁병이며 사랑은 나의 중무장 보병이다. 그리고 대쉬는 기마병이다. 그리고 경제력은 나의 포병이다. 발사하라. 발사하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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