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2005/11/27 15:47

강령에 대한 정의(1)

1.머릿말

 

현시기 대중들의 투쟁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첨예화되면서 고양되고 있으나 70~80년대의 자생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강력하게 전개되었던 노동계급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찾아 볼수 없으나,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아직도 희망의 무지개를 보고 잇다. 비록 지배계급의 의식적인 언론 통제로 인하여 지역적이며, 자연발생적인 생존권의 문제에 극한 되어있지만,이들의 한걸음은 자본주의를 위태롭게 있으며,지배계급의 심장을 움추려들게 하기에 충분하게 강화되어가고 있다. 대중의 힘이 하나가 될땐 이미 국가권력을 쥐고 잇을 것이고 사회주의로 나가는 첫무대가 될수도 잇다.

사회주의 권의 붕괴는 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역활을 한편으로 했으며 ,다른 한편으론 자본주의의 모순을 전세계적으로 극대화시켜 새로운 혁명의 씨앗을 잉태시켜 서서히 발전 시키고 잇으며, 하나하나 자본주의의 체제로 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국가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의자본주의는 빈익빈 부익부의 모순이 첨예화 되면서 상대적인 빈곤감에서 오는 박탈감으로 인한 투쟁의 고조는 한반도에 혁명으로 가는 전주곡으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혁명의 시기를 제외한 시기에는 개량투쟁을 해야한다라고 외치던 이진철동지의 말처럼(1) 개량을 위해서 자생적으로 이미 시작한 그들에게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은 무엇을 가지고 대중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모습을 보여 줄것인가? 개량을 획득하는것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겐 투쟁의 결과물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자신의 패배를 체제위기가 아닌 체제내에서 체제를 지키기 위한 방식중의 하나이며,무력사용의 전주곡임을 알고있다. 어떻게 개량에 대한 투쟁을 전개 해야만 하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강령에 있는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은 부르조아의 정치적조직과는 확연히 다르다.선거에 나가기 위해서, 또는 당선되기 위해서 자신들의 장미빛 미래를 보여주고 그것을 위해서는 피지배계급을 표찍는 기계로전락시키는 그런 공약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과 현실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노동자정부가 들어서면 무엇을 하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강령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부 즉 노동자정부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확인시키는것이다. 그런 강령을 가진 조직을 건설하는것이 우리의 당면 목적이다.

강령이란 조직을 이루는 뿌리이며, 행동통일을 이를수 있는 토대인것이다. 강령을 제시못하는 노동자의힘(2), 사회주의노동자(일명 사노신), 다함께등 현재 활동을 하고 잇는 반합법단체등은 강령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관계로 자신들의 활동에 제대로된 의미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강령에서 전술적 슬로건이 나오며, 현재의 혁명을 위한 진행 과정에서 목적과 의의를 제대로 파악해주며, 대중을 혁명에 대한 구체적 의식을 공유하게 할것이기 때문에 , 그런 강령을 가지지 못한 조직은 구체적인 행동에서 대중을 목적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무정부적인 형태로 대중을 이글어 나가는 쁘띠 부르조아조직의 형식을 띌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글에선 일단 강령을 가진 한 단체 노동해방실천연대준비위원회(줄여서 해방연대)를 비판의 주목적으로 삼는다.

강령은 사회주의를 위한 생산력의 결핍이나,과잉에 따른 프롤레타리아트독재의 형태나 방식이 각기 다르게 나타날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국가권력의 형태를 미리 규정하지는 않는다. 소비에트 방식이나, 꼼뮌방식. 노동자위원회방식등 정부의 권력 형태를 강령에서 규정 할수 잇는것이 아니며, 우리는 그런 정부가 해야만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을 가진는 것이 강령인것이다. 이런 강령은 자본주의 미발달로 인한 고통을 치유하고자해서 나타나게 된 최대, 최소강령의 이단계 혁명론의 의미와 더불어서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고통을 치유하고하는 이행강령을 나눌수 잇는것이다. 이는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진전되어잇는 가에 의해서도 나타날수 도 잇으나, 모든 투쟁들의 필연적인 형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일수 뿐이 없다. 첨가를 하자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독재냐,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 도시빈민과의 독재이냐의 차이일뿐이것이다.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이 해야할 중요한 의무가 이를 만들기 위한 대중들에게 의식적이 활동을 하는 것이며, 그 토대를 인식시켜 자본주의의 부정을 극복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만들어 나가고자 의식적인 활동을 하게 할수 잇게 하는것이다.

강령의 이름이 어떻게 불리던지 관계없이 혁명적인 사회주의자들에겐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선전,선동의 도구를 과도강령이라고 하면서 트로츠키의 내용중의 가장핵심적인 혁명적인 사상을뺀 개량주의도구만을 가져간 해방연대의 사상을 분석해보자. 에전엔 자세하게 다루지 않앗지만,이젠 신문에 자신들의 강령의 정당성을 알리는 내용속에서 그 해악이 뿌리가 내리기전에 그씨앗을 제거하여 혁명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이글을쓴다.

추신: 본인이 시간이 별로 없는 관계로 계속해서 올리지 못하고 시간이 날때마다 글을 조금식 올릴수잇을 것이다.

1) 이진철동지와의 필담을 보려면 해방연대의 게시판을 보면 참조가 될것이다. 아니면 본인의 블러그를 봐도 된다. 각각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본인의블러그 주소 http://blog.jinbo.net/choyul/
해방연대 계시판 주소http://www.hbyd.org/zboard/zboard.php?id=hbyd_freeboard&page=5&select_arrange=headnum&desc=asc&category=&sn=off&ss=on&sc=on&keyword=&sn1=&divpage=1

2) 노힘의 강령에 대한 정의는이글을 쓰고 난후에 발견했다 그에대한 논박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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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7 15:47 2005/11/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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