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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 다시 한번, 소련과 소련에 대한 방어에 관하여

  • 분류
    트로츠키
  • 등록일
    2008/12/17 05:19
  • 수정일
    2008/12/17 05:19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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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의 1937년 저작을 옮겨 보았습니다. 레온 트로츠키 1937년 11월 다시 한번 소련과 소련에 대한 방어에 관하여 크레이포는 맑스주의의 원칙적인 가르침을 잊고 있다. 크레이포 동지는 다시 한번 소비에트 관료가 그 자체로 하나의 계급이라고 우리를 설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것이 순수 "사회학적"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 우리가 보게 될 것처럼,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은 오로지 그 나름의 국제주의,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자신이 없는 국제주의로 향하는 뻥 뚫려있는 곧은길을 찍는 것이다. 만약 관료가 계급이 아니라면, 만약 소련이 여전히 노동자 국가로서 인식될 수 있다면, 전쟁 중에 소련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자기자신의 정부가 소련과 동맹을 맺고 있다면, 어떻게 자기 자신의 정부에 대하여 단호한 반대의 입장에 있을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당신들은 사회 애국주의로 떨어질 수 있는 무서운 유혹을 받고 있다! 아니다, 전장을 급진적으로 일소하는 편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는 착취 계급이며, 전쟁의 경우에 우리는 소비에트와 일본을 구분할 필요가 거의 없다. 불행하게도, 이 용어상 급진주의는 사물을 그렇게 많이 진전시키지 못한다.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의 관점에서 관료가 정말 하나의 계급이라는 것을 잠시 인정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봉건사회와도 자본주의 사회와도 동일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결코 예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를 갖게 된다. 이러한 발견은 약간 더 주의 깊은 분석의 가치가 있다. 왜 자본주의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가? 선진국들에서나 후진국들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더 이상 생산력을 발전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 제국주의의 사슬은 자신의 가장 약한 고리, 러시아에서 깨졌다. 이제 우리는 부르주아지 사회의 자리에 새로운 계급사회가 수립된 것을 알게된다. 크레이포는 아직까지 이것에 대하여 이름을 붙이거나 혹은 이것의 내적 법칙들에 관하여 분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소유" 계급이 국유화된 소유의 기초에서 세계 역사에서 비견될 수 없는 생산력 발전을 담보했던 새로운 사회가 자본주의와 비교하여 진보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맑스주의는 우리에게 생산력이 역사 진보의 근본적인 요소임을 가르쳐준다. 경제력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사회는 여전히 분배의 양식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노동 대중들의 복지를 담보할 수 없다.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적대와 자본주의의 쇠퇴는 자본주의가 생산력 정체의 새롭고 거대한 가능성들을 열었다는 사실에 의해 구체적으로 결정되었다. 소련에도 똑같은 것이 적용된다. 소련의 착취의 양식이 무엇이건, 이 새로운 사회는 바로 그 자신의 성격으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이다. 여기서 당신은 맑스주의 분석으로부터의 이탈의 진정한 지점을 가지고 있다 ! 이 근본적인 요소, 즉 생산력은 또한 이론적 영역에서 자신의 반영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생활이 정체와 쇠퇴의 다른 형태들 외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게 된 반면, 소련의 국유화된 계획경제는 인류 전체에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는 가장 위대한 학습장이다. 이러한 차이에 눈감을 수는 없다! 일본과 독일을 한편으로 하고, 소련을 다른 한 편으로 하는 전쟁에서는 분배에서의 평등의 문제나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의 문제, 혹은 비신스키의 정의의 문제 등이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국유화된 소유와 계획경제의 운명이 관련될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의 승리는 소련에서의 새로운 착취"계급"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독재의 붕괴 역시 의미할 것이며, 새로운 형태의 독재의 붕괴는 소비에트 경제 전체를 후진적이고 제국주의의 반식민지적 상태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제 나는 크레이포에게 묻겠다. 우리가 모두가 계급 국가[이것을 인정해보자]지만, 한쪽은 제국주의적 정체를 대변하고 다른 하나는 거대한 경제적 진보를 대변하는 두 국가 사이의 투쟁에 직면한다면, 우리는 반동적 국가에 반대하여 진보적인 국가를 지지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게 해야하는 가, 아닌가? 그의 전체 테제에서, 크레이포는 최대한 다양한 것들에 관하여 그리고 주제로부터 최대한 멀리 있는 것들에 관하여 말하지만, 맑스주의 사회학의 결정적인 요소, 즉 생산력의 발전에 관하여는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확하게 그의 전체 구조가 허공에 매달려 있게되는 이유이다. 그는 현실에 착목하지 않고 용어학적 환영들("계급", "무계급")을 가지고 요술을 부린다. 인류의 역사적 진보에서 새로운 사회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분석할 필요성을 회피하기 위하여 관료에 "계급"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는 믿는다. 생산력을 속박하고 심지어 파괴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완전히 반동적인 사회와 경제에서의 거대한 발전을 담보해왔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사회 사이의 차이에 관하여 우리가 구분하지 못하게 강제하려는 희망을 가진 크레이포는 우리에게 반동적인 "중립"의 정책을 강요한다. 그렇다. 크레이포 동지, 반동적인! 하지만 관료가 하나의 계급인가? 독자들은 전술한 내용들로부터 우리가 이 이론적 문제, 즉 크레이포를 열중케하고 있는 문제이자 그 자체로 전쟁의 시기에 우리의 정책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과는 거리가 먼 문제를 다시 분석하는 수고를 아주 잘 덜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나 관료의 사회적 성격은 무엇보다도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이 수준에서 우리는 크레이포에게 조금의 양보도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우리의 비판은 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그의 주장들을 변경시킨다. 이번에는 그가 "모든 생산수단은 국가에 속하며 국가는 일정정도 관료에 속한다"는 취지의 '배반당한 혁명'에 있는 구절로부터 자신의 강력한 주장을 도출해낸다(강조한 부분은 트로츠키의 강조). 크레이포는 환호한다. 만약 생산수단이 국가에 속하고 국가가 관료에 속한다면, 관료가 생산수단에 대한 집단적 소유자가 되는 것이며, 이 하나로 인하여 관료는 소유계급이면서 착취계급이 된다. 나머지 크레이포의 주장은 성격상 거의 순전히 문필적이다. 그는 다시 한번 나를 논박하는 어조로 우리에게 테르미도르 관료는 악이며, 탐욕스럽고 반동적이라는 등등을 말한다. 진정한 폭로! 그러나, 우리는 스탈린주의 관료가 고결하다고 결코 말하자 않았다! 우리는 단지 맑스주의적 관점에서의 계급의 성격, 즉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련하여 그것을 부정했을 뿐이다. 크레이포는 그러나 내가 관료가 국가를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다룬다는 것을 인정했으니, 나 자신과 절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이다." 이런 과도하게 단순화된 주장으로 인하여 크레이포는 자신의 변증법적 인식의 절망적인 부족을 드러낸다. 나는 스탈린주의 관료가 절대군주제나 혹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관료와 동일하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국유화된 경제는 관료에게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창출했고 새로운 가능성, 진보적인 가능성뿐만 아니라 퇴행의 가능성까지 열어주었다. 우리는 심지어 혁명 이전에 이것에 관하여 다소간 알고 있었다. 소비에트 관료와 파시시트 국가의 관료를 비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리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관점상 훨씬 더 좋다. 파시스트 관료는 마찬가지로 국가를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다룬다. 이들은 사적 자본에 대한 엄한 제한을 강요하며, 사적 자본 내부에서의 격변을 종종 유발한다. 우리는 논리적인 주장의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만약 파시스트 관료가 자본가들의 효과적인 저항을 받지 않고 점점 더 자신의 규율과 자본가들에 대한 제제를 강제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면, 이 관료는 소비에트 관료와 절대적으로 흡사하게 점차적으로 스스로를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변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시스트 국가는 "일정정도"(위의 인용을 보라)만 관료에 속한다. 이 일정정도가 크레이포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단어이다. 그것들은 심지어 결정적이기까지 하다. 그것들은 양질전화라는 변증법적 법칙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만약 히틀러가 국가를 전유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일정정도"만이 아니라 사적 소유를 완전하게 전유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는 자본가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며, 이것은 노동자에게 거대한 혁명적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크레이포가 소비에트 관료에 적용하는 논거를 파시스트 관료에 적용하고 파시시트와 스탈린주의 정권들을 동일시하는 초좌익들(일부 독일 스파르타시시트들, 휴고 우르반스, 특정 무정부주의자들 등)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크레이포에게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그들에게도 해왔다. 그들의 오류는 사회의 기초가 혁명이나 반혁명이 없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에 있다. 그들은 개랑주의의 필름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환호하고 있는 크레이프는 소비에트 관료와 관련하여 '배반당한 혁명' 으로부터 "만약 이들 관계들이 어떠한 저항 없이, 혹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반하여 안정화되고, 합법화되고, 규범이 된다면, 그것들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성취들의 완전한 청산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라는 또 하나의 구절을 인용한다. 그리고 크레이포는 "그래서 트로츠키 동지는 노동자 국가로부터 자본가 국가로의 군사적 개입(?)이 없는 (미래의) 변화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다. 1933년에 그것은 개량주의의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으로 불려지곤 했다."고 결론 내린다. 그것은 1937년에도 똑같이 불려진다. 나에게는 순전히 논리적인 주장을 크레이포는 역사적 예측으로 간주한다. 내전에서의 승리 없이 관료는 새로운 지배계급을 낳을 수 없다. 이것이 내 생각이었고 여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외에, 현재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관료에 의해 시작된 단지 예방되고 있는 내전일 뿐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모든 퇴행과 왜곡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의 유례가 없는 발전을 담보하는 혁명에 의해 창출된 국가의 경제적 기초까지는 닿아있지 않다. 누구도 특히, 장기간의 세계적인 쇠퇴의 경우에, 관료로부터 탄생한 새로운 지배계급의 복원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국가를 통해서 "일정정도" 자신의 수중에 생산력을 장악하고 있는 관료의 현재 사회적 지위는 이러한 이행의 과정으로부터의 극도로 중요한 이탈의 지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가능성의 문제이지 이미 벌어진 사실은 아니다. 계급은 경제적 원인의 산물인가 아니면 정치적 원인의 산물인가? '배반당한 혁명' 에서 나는 현재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려고 시도했다. 이 정의는 9개의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일련의 서술적이며 신중한 공식들이 그다지 과학적으로 정연하지는 않다는 것에 동의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대하여 솔직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항상 모험이다. 크레이포는 이 정의에 관하여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에 대하여 다른 것을 가지고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만약 새로운 착취 사회가 과거의 것에 비하여 우월한지 아니면 열등한지 말하지 않으며, 이 새로운 사회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필연적인 국면인지 혹은 이것이 단순히 역사적인 "우연"인지에 관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에서 정식화되었던 것과 같은 우리의 일반적인 역사적 전망의 관점에서, 관료에 대한 사회학적 정의는 대단히 중요하다. 부르주아지는 선천적으로 새로운 생산양식의 인자로서 세상에 등장했다. 부르주아지는 새로운 생산양식이 자신의 가능성을 소진하지 않는 한 역사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노예소유주들, 봉건영주들, 중세의 기능공들 등 과거의 모든 사회적 계급들과 관련해서도 똑같은 주장이 가능하다. 그들의 시대에, 그들은 인류의 진보에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생산체제의 대표였고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크레이포는 "관료계급"의 역사적인 위치를 평가하고 있는가? 그는 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크레이포 자신의 도움을 받아 여러 번 소비에트 국가의 퇴행은 세계 혁명 즉, 소위 정치적인, 그리고 "정세적인[conjunctural]" 원인의 결과라고 여러 번 반복했다. 새로운 "정세적인" 계급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진정으로 의심스럽다. 만약 크레이포가 사회적 정권들의 역사적 연속의 관점으로부터 나온 그의 다소 조급한 개념을 증명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분명히 그는 스스로가 관료에게 소유계급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용어상 남용일뿐만 아니라, 더욱이 우리의 역사적 전망에 대한 완전한 일탈로 귀결될 수 있는 커다란 정치적 위험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크레이포가 이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맑스주의 개념을 수정할 만한 충분한 이유들을 인식하고 있을까?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이 내가 크레이포를 뒤따르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비에트 관료가 소유계급의 어떠한 "미덕"(조직적 안정성, 특정한 도덕적 규범 등)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소유계급의 모든 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말해야만 한다. 노동자 국가는 여전히 국가, 야만적 과거의 산물이며, 후진적이고 고립된 국가에서는 두배로 야만적이며, 비우호적인 조건하에서는 승인할 수 없는 지경으로 퇴행화될 수 있으며, 소생을 위하여는 보충적인 혁명을 필요로 할 수도 있음을 경험으로부터 배워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국가는 우리의 길에서 필연적인 국면으로 남아 있다. 이 국면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영구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면 극복될 수 없다. 그리고 변증법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크레이포 동지의 모든 주장을 하나 하나 따를 수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체 맑스주의 개념 전체를 개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크레이포가 사실을 사실대로 분석하지 않고 미리 생각한 주제에 유리하게 주장 논리들을 모은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본질적으로 반 변증법적이며, 그래서 반 맑스주의적인 것이다. 이것에 관한 몇 가지 예를 들겠다. a)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오래 전에 정치권력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잃었다...." 크레이포는 정확하게 언제인지에 관하여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우리 경향이 "오랫동안" 환상을 키워왔다는 인상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는 1923년에 관료가 심대히 흔들렸으며, 독일의 패배와 그 뒤를 이었던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사기저하만이 그들의 지위를 안정화시켰다는 것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중국 혁명(1925-27년) 동안에, 위기가 비슷한 국면으로 반복되었다. 1차 5개년 계획과 히틀러의 정권장악(1931-33)을 예비했던 독일에서의 거대한 격동이 다시 한번 관료의 지배를 위협했다. 결국, 만약 스페인 혁명이 승리했더라면, 그리고 만약 프랑스 노동자들이 그들의 1936년 5-6월 공세를 결론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용기와 전투성을 회복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테르미도르 정권을 타도했을까라고 우리가 잠깐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오로지 세계 전역에서의 가장 처참하고 의기소침하게 하는 패배의 연속만이 스탈린 정권을 안정화시켰다. 크레이포는 그 자체로 매우 모순적인 결과와 그것을 낳은 과정과 이 과정의 반영이었던 우리의 정책을 대비시킨다. b) 관료가 국가 자원을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하나의 집단으로서만 처리하고 있으며, 고립된 관료들은 국가소유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주장을 논박하기 위하여, 크레이포는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의 권리를 자신의 후손들에게 전해줄 수 있기까지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길드 초기에, 우두머리는 동료들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 등등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크레이포는 정확하게 "길드 초기에", 길드는 아직 계급으로 나뉘지 않았으며 현대의 관점에서 우두머리는 "부르주아지"가 아니었다는 하찮은 것은 치워두고 있다. 양질전화라는 것이 크레이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c) "사적 소유가 부활했고, 상속이 부활되었다 ..." 그러나 크레이포는 이것이 개인적 사용 목적의 재산에 관한 일이며, 생산수단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관료가 심지어 높은 지위에 있는 관료들조차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지위로 인해 그들에게 열려있는 물질적 자원들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며, 펜놀림 하나로 수많은 관료의 가족들이 최악의 빈곤으로 내던져지는 정확하게 현재의 "숙청"이 관료 자신들과, 그들의 가족은 물론이고, 국가소유 사이의 고리가 전체적으로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를 증명한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을 잊고 있다. d) 현재의 지배도당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예방되고 있는 내전이 지배도당은 혁명적 세력에 의해서 말고는 타도될 수 없음을 다시 증명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혁명은 국가소유와 계획경제의 기초에서 발전해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관료의 타도를 1917년의 사회혁명과는 달리 정치혁명으로 규정했다. 크레이포는 이러한 구분이 "궤변의 영역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렇게도 통렬한가? 왜냐하면 동지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의 재장악이 또한 사회적 중요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30, 1848, 그리고 1870년 9월의 부르주아지 정치혁명들 또한, 그것들이 전국적인 소득의 분리를 중대하게 변화시켰던 한 사회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크레이포 동지, 이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초좌익 형식론자들의 창출물이 아니다. 그 자체로 중대했던 소위 정치혁명에 의해 유발되었던 사회적 변화들은, 특히 뛰어난 부르주아지 사회 혁명이었던 위대한 프랑스 혁명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부차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크레이포 동지에게 부족한 것은 비율에 대한 감각과 상대성의 개념이다. 우리의 젊은 동지는 양질전화의 법칙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변증법의 가장 중요한 법칙이다. 부르주아지 학문의 세계의 권위자들은 변증법 그 자체가 "궤변의 영역"에 있다고 알고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e) 크레이포가 M. Yvon의 사회학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Yvon의 개인적인 관찰들은 정직하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가 La Revolution proletarienne의 작은 천국에서 안식처를 발견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Yvon은 "경제", 푸르동의 용어로 "작업장"에 관심이 있었지 "정치" 즉 일반화된 경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형식상 푸르동주의 학파에 속한다. 이것이 정확하게 그가 좌익반대파와 관료사이의 투쟁 중에 중립을 지키도록 해주었다. 1937년 오늘날에(!) 사회적 경향을 구분하는 것 없이 "레닌으로부터의 유산"을 위한 투쟁에 대하여 그가 말해야 하는 것이 그의 완전히 경멸적이고 전혀 혁명적이지 않는 소부르주아 개념을 폭로한다. 계급이라는 관념은 Yvon에게는 추상인데 그는 이것을 "현장"이라는 추상의 상위에 둔다. 크레이포가 다른 어떤 이론적 영감의 원천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슬픈 일이다! 소련에 대한 방어와 사회애국주의 불행하게도 매우 깨지기 쉬운 이 사회학적 골격은 통째로, 우리가 말했듯이, 크레이포가 전쟁 중에 소련과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구분의 필요성으로부터 도망치도록 도와줄 뿐이다.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그의 논문의 마지막 두 문단이 특히 [이것을] 알려주고 있다. 크레이포는 우리에게 "유럽과 세계의 모든 전쟁이 우리 시대에는 제국주의 분쟁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오직 스탈린주의자와 개량주의 바보들만이, 예를 들면, 미래의 전쟁 위험은 파시스트 정권이나 민주주의 정권에게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 권위 있는 테제를 잘 표시해 둬라. 이번에는 맑스주의의 무기로부터 차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정도 단순화한다면 이것은 진실이다. 이것 이후 즉시, 소련을 "제국주의 전쟁의 옹호자"로서 규정하고 비난하기 위하여 크레이포는 우리에게 "베르사이유 조약 진영에서, 현재 이것의(소련의) 외교는 반대 진영의 히틀러의 외교처럼 똑같은 도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받아들여 보자. 그러나 전쟁의 제국주의적 성격이 파시스트 외교의 도발적인 역할에 의해 결정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스탈린주의자나 개량주의 바보들만이 그것을 믿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다른 사람들이 소비에트 국가에 대하여 똑같은 비판을 적용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일부 "침략자들"을 징벌하기를 열망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적 소유의 정권을 분쇄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제구주의 국가들에서 패배주의자이다. 그렇지 않은가? 소련에 대한 독일의 전쟁에서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이 스탈린과 리트비노프를 징벌하는 것에 관하여 신경 쓰지 않는 한, 소련의 경제적 기초를 바꾸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크레이포는 오로지 즉각적으로 반대의 길을 택하기 위하여만 그의 기본적인 테제를 확립해왔다. 그에 따르면 위험, 진정한 위험은 모든 사회애국주의자들이 새로운 배신을 위한 구실로서 소련에 대한 방어를 택할 것이라는 것에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의 어떠한 모호함도 치명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현재는 소련에 대한 '무조건적인 방어' 즉(!!!) 우리 나라와 소련에서 혁명에 대한 사보타지나 혹은 패배주의와 혁명 중에서의 선택이 필요하다" 거기에 우리가 있다. 크레이포에 따르면 노동자 국가에 대한 방어는, 심지어 노동자 국가가 가장 진정한 노동자 국가일 때조차도, 동맹을 맺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부르주아지와의 신성한 단결을 체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것은 소련의 사회적 성격에 관한 문제가 전혀 아니다. 뭐가 문제인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이, 여기에 수수께끼의 열쇠가 있다. 크레이포는 자본 W와 함께 하는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것이 독일, 소련에 반대하는 것인가, 혹은 반란 중에 있는 모로코에 반대하는 것인가 여부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데, 이것은 이 모든 경우에 사회애국주의의 지배로부터 탈출할 유일한 가능성으로서 "군소리 없는 패배주의"를 선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우리는 아주 명료하게 초좌익주의는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깃발에 진실로 남아있게 될 절대적인 보증을, 즉 존재하지도 않는 보증들을 요구하는 기회주의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런 유형의 비타협성은 화가 나서 자기 친구들에게 "나 좀 말려 줘, 뭔가 엄청난 짓을 할 꺼야"라고 말하는 소심하고 유약한 인간형을 생각나게 한다. 나에게 신비롭게 밀봉된 테제를 주고 나의 눈에 불투명한 가리개를 덮어주시오, 혹은 다른 어떤..... 내가 뭔가 엄청난 일을 할 것이오! 진정으로 우리는 수수께끼에 대한 열쇠를 찾았다! 그러나 예를 들면 크레이포는 어떤 경우에도 1918년과 1923년 사이, 혹은 초좌익들 양보를 하기 위하여 적어도 1918년과 1921년 사이의 소비에트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적 성격을 의심하는가? 이 기간에 소비에트 국가는 국제적으로 정책을 전환했으며 일시적인 동맹을 추구했다. 동시에, 패배주의가 "적들"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동맹국들"에서도 모든 제국주의 국가 노동자들의 임무가 된 것이 정확하게 이 기간이다. 소련에 대한 방어의 임무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신의 부르주아지에게 신뢰의 표를 제공하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은 평화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의 연속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련을 자신의 혁명적 정책에 의하여 방어하지, 결코 부르주아지에 굴복하지 않지만, 언제나 구체적인 환경들을 수용했다. 이것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첫 4번의 대회의 가르침이었다. 크레이포는 이들 가르침을 소급하여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가? 항상 금융자본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불성실한 "비개입"을 주장하는 대신에 만약 블룸[Blum]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인 카발레로와 네그린을 지지했었더라면, 크레이포는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자신의 단호한 반대를 포기했겠는가? 혹은 스페인에서 투쟁하고 있는 두 진영 사이를 차별화할 의무를 단념하고 자신의 정책을 이러한 차별에 순응시켰겠는가? 똑같은 것이 극동에도 적용된다. 만약 잉글랜드를 따르는 장개석이 내일 일본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한다면, 크레이포는 중국을 돕기 위하여 신성동맹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크레이포에게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자신의 정책에 영향을 끼칠만한 어떠한 차이도 없다고 선포할 것인가? 크레이포의 대안은 이렇다. 신성동맹을 맺는 것을 통한 소련, 이디오피아, 스페인 공화국, 식민지 중국 등에 대한 방어인가 아니면 신비롭게 밀봉되고 전망적으로 질서 정연한 온전한 패배주의를 통한 방어인가. 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대안은 실제 사태의 첫 번째 테스트에서 가루로 부서질 것이며 가장 어리석은 종류의 사회애국주의에 문을 활짝 열게 될 것이다. 크레이포는 "전쟁에 대한 우리 자신의 테제들이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모호함으로부터도 면제되어 있는가?"라고 묻는다.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패배주의의 필요성을 분석하면서, 그것들이 "전쟁에서의 구체적인 정세에 의해 야기되는 구체적인 실천의 성격에서의 중대한 차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묻는다. 예를 들면, 소련과 일본 사이의 전쟁의 경우에 우리는 "소련으로 군수품을 보내는 것을 사보타지 하지 말아야"만 하며, 결과적으로 우리는 군수품 공장 등을 사보타지 하는 파업을 선동하는 것을 피해야만 한다고 테제는 지적한다. 우리 눈을 믿을 수 없다. 사태들이, 특히 프랑스에서, 이 점에 관한 우리의 테제를 확연하게, 논쟁의 여지가 없게 확증해주었다. 수개월 동안의 노동자 집회들이 "스페인에 비행기를!"을 외쳤다. 블룸이 약간의 [비행기를] 보낼 것을 결정했다고 잠깐 상상해보라. 이 특정한 순간에 항만 노동자들이나 선원들의 파업이 진행중이라고 상상해보라. 크레이포는 무엇을 했을까? 그가 "스페인을 위해 비행기를"이라는 외침에 반대했을까? 그가 파업중인 노동자들에게 이번 비행기들에 대해서 예외를 적용하자고 설득했을까? 그러나 소련은 실제로 비행기를 보냈다(내가 매우 잘 아는데, 매우 비싼 가격으로, 그리고 자본가 정권에 대한 지지라는 조건을 달고).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소비에트 노동자들이 이 선적을 사보타지할 것을 주장해야 하는가?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만약 내일 프랑스 노동자들이 두 척의 군수품을 실은 배가 프랑스를 떠나 한 척은 일본으로 그리고 다른 한 척은 중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크레이포의 입장은 무엇일까? 나는 그가 장개석에 대한 그의 입장을 숨기지 않고, 그리고 차우템프스에 대한 조금의 신뢰도 표현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게 도꾜로 가는 배는 선적을 거부하고 중국으로 향하는 배는 내보낼 것을 요구할 만큼 충분한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정확하게 우리의 테제가 "전쟁에서의 구체적인 정세에 의해 야기되는 구체적인 실천의 성격에서의 중대한 차이들이 있을 수 있다"로 말하는 것이다. 테제 초안이 출판되었을 때에는 이 정식화와 관련하여 의구심들이 여전히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디오피아, 스페인, 그리고 중일전쟁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는 우리 테제의 모호함에 대하여 말하는 자는 나에게는 아무 것도 배우고자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잊으려고 하지도 않는 초좌익 보본[Bourbon]인 것으로 보인다. 크레이포 동지, 모호함은 전적으로 당신 쪽에 있다. 당신의 글은 모호함으로 가득차 있다. 이제 진정으로 그것들을 없애야 할 때이다. 나는 동지가 동지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테르미도르 관료의 억압에 대한 혁명적 분노를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감정만으로는,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객관적인 사실들에 기초한 올바른 정책을 대체할 수는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뼛속으로부터 부패해 있는 스탈린주의 관료를 타도하고 몰아낼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이것 때문에 히틀러나 미카도에 대한 임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방기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에 의한 스탈린 타도는 사회주의를 향한 거대한 전진이다. 제국주의의 스탈린 분쇄는 반혁명의 승리이다. 이것이 소련에 대한 우리의 방어의 엄밀한 의미이다. 세계적 규모에서 우리의 이러한 관점은 민족적 규모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방어와 비슷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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