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문서는 ICL 8차 국제대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문서는 스파르타스시트 68호 영어판 (2023년 9월)으로부터 번역되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소련의 붕괴에 뒤이은 30년은 세계 역사적 규모에서 상대적인 안정의 시기였다. 이 시대에는 위기들과 유혈충돌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규범이었다기 보다는 예외였고 20세기의 격변들에 비하면 가벼웠다. 무장충돌들은 강도가 보다 낮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고, 세상의 많은 부분들이 사회적 자유화를 목격했다. 국제 노동계급에게 재앙적 패배였던 소련의 파괴에 뒤이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가?
제국주의 지배계급과 그들의 아첨꾼들은 이러한 전개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결정적으로 증명했다고 선포했다. 맑스주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로부터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중국공산당(CPC)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환심을 사려하고 사회주의를 순전히 의례행사적 목적으로 격하시키면서 경제적 세계화를 위한 기수가 되었다. 많은 친모스크바 스탈린주의자들은 단순히 해체되었다. 트로츠키주의 그룹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적 운동, 긴축정책과 인종주의의 뒤를 쫓았고, 혁명적 정당을 위한 필요성을 정당화할 수 없었다. 일부 “맑스주의자들”이 미래의 사회주의를 계속해서 설교했지만, 아무도 자유주의적 승리주의에 대한 혁명적 반대를 건설하지 못했다.
오늘날 자유주의의 전진이라는 바람은 멈추었다. 코비드-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정세의 반환점을 의미했다. 위기가 규범이 되어가고 있으며, 안정은 예외가 되어 가고 있다. 미국 헤게모니가 위협을 받고, 안정에 우호적이었던 모든 요소들이 붕괴되면서, 앞에 놓인 길이 평탄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이는 거의 없다. 여전히 자유주의를 방어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 특히 노동자운동에서 - 그들은 더 이상 확신을 가지고 있지도 공세적이지도 않는 반면, 자신들의 발 아래에서 땅이 녹고 있음을 느끼게 되면서 신경질적이고 방어적이다. 오늘날 자유주의는 우익, 그리고 좌익 포퓰리즘, 이슬람주의, 힌두 민족주의로부터 중국 스탈린주의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자유주의자들 자신들이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를 위한 기준들을 둘러싸고 서로 분열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움이 커지면서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들이 주도권을 재확보하기 위하여 애쓰는 가운데,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는 조직되지 못하고 방침을 상실한 채로 있다.
레닌이 시작했고 트로츠키가 이어서 계속했던, 오늘날 세계의 임무들과 동역학들에 적용되는, 노동자운동을 기회주의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투쟁이 다시 한번 시작되어야만 한다. ICL 8차 국제대회와 이 문서는 자유주의적 승리주의라는 소비에트 이후 시대에 대한 비평을 통해서,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로 특징지어지는 오늘날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분석과 강령의 몇 가지 기본 요소들을 개괄함으로써 이 투쟁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세계의 노동계급이 재앙과 분쟁에 직면하는 가운데, 노동계급을 권력으로 지도할 능력이 있는 혁명적인 국제적 전위정당에 대한 긴급한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더 존재한다.
Ⅰ. 유일 강대국 세계의 기원들
미국은 2차대전으로부터 자본주의 세계의 논쟁의 여지없는 지도자로서 부상했다. 미국의 국내경제는 세계 GDP의 50%를 차지했다. 미국은 세계 경화보유고의 80%를 보유했고,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으며, 세계 최대 채권국이었다. 미국은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하여 이 패권을 사용했다. 브레톤우즈 체제는 미국 달러를 국제기축통화로 확립했고, 미국 패권을 공고히 하고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기초를 놓기 위하여 일련의 기구들 (UN, IMF, 세계은행, 나토)이 창립되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적 힘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주요한 견제세력을 대표했다. 적(赤)군은 가공할 군대였고, 적군의 통제력은 동유럽 전체에 이르렀다. 미국 제국주의와의 지속적인 합의를 확보하기 위한 스탈린의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거래도 가능하지 않았다. 소련의 존재 그 자체와 강력함이 미국 자본주의의 패권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세계 전역에서, 반(反)식민지 투쟁들이 절정에 있었고, 반(反)제국주의 세력들은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지지를 위하여 소련을 바라보았다. 승리한 1949년 중국혁명은 미국에서 신경질적인 반응과 공황상태를 야기하는 가운데 비자본주의 세계의 무게를 더욱 증가시켰다. 참으로 세상은 2개의 경쟁하는 사회체제들을 대변하는 2개의 경쟁하는 영향력이라는 영역들로 나뉘었다.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이 스스로를 재건하고 미국이 반공산주의 군사도발을 하나하나 감행하면서, 과다한 확장의 첫번째 분명한 징후들이 나타났다.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패배가 국내와 해외에서의 경제적, 정치적 혼란의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었다. 1970년대 초에, 소위 “미국의 세기”가 조기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믿음에 강력한 이유들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의 혁명적 기회들이 (프랑스 (68년), 체코슬로바키아 (68년), 퀘벡 (72년), 칠레 (70-73년), 프로투갈 (74-75년), 스페인 (75-76년)) 모두 패배로 끝났다. 이 패배들을 보증함으로써, 노동계급의 기회주의 지도부는 제국주의에게 안정화를 위해 꼭 필요한 여지를 제공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에, 제국주의가 사유화와 경제적 자유화라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작을 의미했던 공세로 돌아섰다. 1981년 레이건은 PATCO 항공교통통제사들의 파업을 분쇄함으로써 미국 노동계급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겼다. 국제노동계급의 더 한 패배들이 이 패배의 뒤를 이었는데, 1985년 영국 광산노동자들의 패배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고, 미국은 중국과의 반소동맹을 통해 중-소 분열을 활용하던 상황에서, 이 시대에는 어느 때보다 더 큰 압력이 소련에 가해졌다.
80년대 말에 이르러, 소련과 동구블럭은 심각한 경제적 정치적 곤경에 처했다. 적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폴란드에서 연대노조의 반혁명적 승리는 모스크바에 있는 지배 관료집단을 더욱 사기저하시켰다. DDR(동독)을 팔아버리고 독일의 재통일을 수용한 이후, 오래 걸리지 않아 모스크바는 소련 자신을 팔아버렸다. 수십 년 동안의 스탈린주의적 배신에 의한 노동계급의 사기저화와 융합된 세계 제국주의의 압력이 10월 혁명의 성취들에 대한 최종적 청산으로 귀결되었다. 1991년에 이르러, 세계의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들의 희생을 대가로 계급세력들의 국제적 균형이 결정적으로 제국주의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Ⅱ.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반동적 성격
미국산 초제국주의
소련 붕괴 이후, 세계질서는 더 이상 2개의 사회체제들의 갈등에 의하여 정의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헤게모니에 의하여 정의되었다. 미국에 필적할 수 있는 개별 나라나 나라들의 그룹은 없었다. 미국의 GDP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경쟁자인 일본 GDP의 거의 2배였다. 미국은 국제 자본흐름을 통제했다. 군사적으로는 어떤 열강도 근접조차 하지 못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미국 모델은 모든 나라들이 그것으로 수렴할 것으로 기대되는 진보의 최정점으로 선포되었다.
많은 측면에서 부상했던 질서는 거대 열강들이 세계를 공동으로 약탈하는 것에 동의하는 체제인 “초제국주의”와 흡사했다. 이것은 칼 카우츠키가 제기했던 바와 같이 금융자본의 평화적 진화가 아니라, 2차 대전 후 유럽과 일본 제국주의의 잿더미에서 건설된 단일강대국의 패권에 의하여 초래되었다. 미국은 그들의 잔재들로부터 이 제국들을 재건했고, 냉전 동안 그들을 반공산주의 동맹 속에 통합했다. 냉전이 끝난 후, 이 제국주의 공동전선은 깨어지지 않고 여러모로 강화되었다. 예를 들면, 독일의 재통일은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유럽에서의 긴장고조로 귀결되지 않고 미국과 나토의 축복과 함께 이루어졌다.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예외적 안정은 자기 경쟁자들에 대하여 미국이 가지고 있던 압도적인 이점들과 많은 수의 과거 미개발 시장들의 금융자본에 대한 개방으로 설명될 수 있다. 1989년에는 세계인구의 3분의 1이 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살았다. 그 해 시작되었던 반혁명의 파도는 많은 노동자국가들의 완전한 파괴나 혹은 중국의 경우처럼 집산화된 경제의 기초들을 유지하는 가운데 제국주의 자본에 대한 개방으로 귀결되었다. 이 발전들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수명연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시장에서의 지분을 두고 서로 분열하는 대신, 독일, 프랑스, 영국과 미국은 동유럽을 서구라는 정치적 경제적 우리 속으로 가두기 위하여 함께 일했다. 유럽연합(EU)과 나토는 협력하여 그야말로 러시아 국경들로까지 확장되었다. 아시아에 유사한 상황이 존재했다: 미국과 일본이 함께 중국과 동아시아 남동아시아의 다른 지역들에서 경제적 자유화를 조성하고 활용했다.
주요 열강들의 공동전선은 세상의 나머지 부분들에게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명령들에 따르는 것 말고는 거의 대안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IMF와 세계은행은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관계들에 따라서 규칙들을 다시 고쳤다. 이 “신자유주의”는 80년대에 이미 진행 중이었지만, 소련의 파괴가 그것에 새로운 추진력을 제공했다. 미국이 윤곽을 잡아 놓은 길을 따르기를 거부했거나 그것을 따르는 것을 거부당했던 당했던 소수의 나라들 (이란, 베네수엘라, 북한, 쿠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은 국제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을 제기하지 못했다.
이 편리한 힘의 균형은 제국주의자들에게 수익성 좋은 투자기회를 창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무역과 연계된 위험들을 줄여주었다. 자본가들은 주요한 갈등이나 대단히 적대적인 정부에 맞서 그들을 지켜주었던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패권을 의식하면서 외국에 투자하거나 국제무역을 할 수 있었다. 이 요소들은 국제무역에서의 중대한 성장, 생산의 대량 해외위탁, 국제적인 자본회전의 폭발, 즉 세계화로 귀결되었다.
세계화에 대한 맑스주의적 답변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옹호자들은 세계화가 세계의 많은 부분들에서 생활수준의 중대한 향상과 일반적으로 더 낮은 소비재 가격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지난 30년에 걸친 노동의 국제적 분할의 확대가 국제적으로 생산력들의 발전으로 귀결되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낮은 그리고 중간 정도 수입을 가진 나라들에서 일인당 에너지 소비가 2배를 넘었고,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은 국제적으로 90% 증가했으며, 자동차 생산과 철강 생산이 2배를 넘었다. 일견, 이들 진보적인 발전들은 자본주의가 그것의 최종적인 단계에 도달했고, 독점자본의 지배가 기생주의와 장기적인 쇠퇴로 귀결된다는 맑스주의의 제국주의 이론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태들의 경로가 모순되기 보다는, 맑스주의적 분석만이 그것들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떻게 자유주의적 세계질서가 점진적인 사회적 경제적 발전이 아니라 사회적 재앙으로 귀결되는지 보여줄 수 있다.
첫째로, 생산력들에서의 지속적인 성장을 설명하기 위하여 금융자본에 진보적인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전혀 없다. 줄어든 군사적 위협, 약화된 노동운동, 해외투자에서의 위험감소, 광범위한 자유화라는 소련의 붕괴에 뒤이은 상황들이 제국주의로 하여금 잠시 동안 쇠퇴를 향한 제국주의의 경향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실제로, 트로츠키 자신이 이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것이 정확하게 발생했던 것들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희생을 대가로 한 계급세력들의 관계에서의 극적인 변화에 뒤이어, 자본주의는 새롭게 연장된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제는 규범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쇠퇴를 향한 제국주의의 전반적 경향의 일시적인 유예에 불과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자본주의의 방어자들에게는, 동유럽의 기형화된 노동자국가들에서의 생활수준을 오늘날의 그 나라들에 비교함으로써 계획경제들에 대한 자유시장들의 우월성이 증명된다 (폴란드가 표준적인 예이다). 사실, 이 주장은 - 불평등, 여성의 지위, 대량 이민 등 - 특정 측면에서 조건들이 악화되었음을 심지어 제쳐두더라도 논박될 수 있다. 정통 맑스주의자들, 즉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그것들의 거대한 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고립된 노동자국가의 계획경제들은 발전된 자본주의 열강들의 더 높은 생산성과 노동의 국제적 분할 때문에 그들에 대하여 승리할 수 없음을 항상 주장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소련 스스로 (그리고 나중에는 소련의 동맹들과 함께)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이라는 방책을 통하여 선진화된 자본주의 나라들을 추월할 수 주장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평화공존의 불가능성이 이러한 주장을 배제한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항상 소련과 기타 바르샤바 조약 나라들에 엄청난 경제적 군사적 압력을 유지했는데, 이러한 공세들로 인해 이 나라들의 경제적 실적이 방해를 받았다. 고립과 빈곤이라는 조건들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시도들과 함께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관료적 부실경영이 이것에 추가되었다. 자본주의 폴란드에서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폴란드의 세계경제로의 완전한 통합에서 기인한다 -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쑥대밭이 된 전후 경제로서는 불가능한 것. 사람들은 포위 공격을 당하는 성(城)의 생활수준들과 그렇지 않은 성의 생활수준을 공평하게 비교할 수 없다. 계획경제들의 우월성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발견하는 적대적인 국제환경에도 불구하고 성취했던 거대한 진보를 바라본다면 완전히 명백하다. 이것은 소련, 쿠바, 중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그렇듯이 폴란드에 대해서 사실이다.
세째,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방어자들은 2차 대전 이래로, 그리고 소련 붕괴 이래로는 더욱 전쟁들의 강도와 수가 줄었기 때문에, 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점진적으로 평화로 귀결됨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들의 몇몇 측면들이 논쟁이 될 수 있기는 하지만, 지난 75년 동안의 어떠한 충돌도 2번의 세계대전에서 벌어졌던 산업에서의 엄청난 파괴에 근접하지 않았음은 부정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유럽연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주요 논거로 남아있다. 진실은 새로운 세계대전의 부재가 미국이 자신의 경쟁자들을 압도한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필연적으로 일시적인 역관계. 레닌이 아래와 같이 설명했듯이:
소비에트 이후 시대가 상대적 평화의 하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많은 엄청나게 잔혹한 전쟁들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지워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의 군사적 강력함을 과시하고 금융자본의 확장을 통하여 수억 명의 인민들을 “평화적으로” 종속시킬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미국군대는 저강도 전쟁들에 거의 끊임없이 개입해왔다. 세상을 평화로 이끌기는커녕, 이 동역학은 다시 한번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한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새로운 전쟁들을 준비할 뿐이다.
넷째, 생산력들의 성장은 어떤 신화적인 자유무역 때문이 아니라 소수의 열강들이 통제하는 독점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그리고 그 멍에 아래에서 발생해왔다. 이것은 어떠한 중단기적 진보가 세상의 특정 지역들에서 있었다 해도, 그것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주요하게는 미국의 금융적 충동에 대한 증가된 의존과 함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사회경제적 지표들을 보면, 1990년대 이래 멕시코에서 생활수준에서의 개선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에 대한 더욱 심화된 경제적 종속, 그리고 인민의 특정 계층들, 특별히 농민들의 참상을 대가로 한 것이었다. 이 상황은 성장의 시기에는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의존국들로부터 막대한 이윤을 빼내고, 위기가 닥치면 그들은 터무니없는 정치적 경제적 양보들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의존국들에 대한 민족적 억압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이 단기적인 경제성장은 제국주의에 대한 노예화의 대가밖에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소련의 붕괴는 인류의 진보가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의 승리를 알렸다는 것인데, 이것은 미국 금융소득 생활자들의 세계에 대한 지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계급의 바로 그 지배가 생산력들의 더 한 발전을 제한하고 사회적 쇠퇴로 귀결시킨다. 이것은 미국 자신에 대해서 다른 무엇보다도 더 진실이다. 제국주의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것은 미국경제의 성격을 완벽하게 서술한다. 미국의 국제금융 이자의 전례가 없는 성장은 강대국 미국의 바로 그 근원인 한때는 강력했던 산업적 기반을 도려내 왔다. 사업의 해외이전, 고질적인 미비한 사회간접자본투자,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택가격들, 피를 빨아먹는 보건산업, 너무나도 고비용의 질 낮은 교육: 이 모든 것들이 미국 자본주의의 증가하는 기생적 성격의 산물들이다. 심지어 미국의 군사적 강력함조차 산업공동화에 의하여 손상된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난폭한 투기, 이자율 낮은 대출, 그리고 돈을 찍어내는 것을 통하여 나라의 경제적 쇠퇴를 보상하려고 애써왔다. 트로츠키가 언급했듯이, “이 허구의 자본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사회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더욱 가난해질수록 더욱 부유한 것처럼 보인다” (“세계경제위기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새로운 임무들,” 1921년 6월). 이것은 경제적 재앙을 예고한다. 나라의 전체 사회적 기본구조가 썩고 있으며,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들의 점점 더 많은 층들이 극빈의 상태로 내던져진다.
이 내부적 쇠퇴는 세계에서 경제적 비중의 하락과 결부된다. 1970년에는 세계 GDP의 36%를 차지했던 반면, 현재의 미국경제는 24% 미만을 차지한다. 모든 제국주의 나라들이 이 경향을 뒤따랐다. 1970년에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5대 열강들이 세계 GDP의 60%를 차지했던 것에 반해, 오늘날 이 열강들은 40%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국제수출에서의 경이적인 증가가 쇠퇴를 야기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 거대한 프롤레타리아트를 창출하면서 많은 나라들을 현대 자본주의적 관계들 속으로 더욱 통합해왔다.
이것이 세계경제에서의 그들의 비중을 증가시켜 온 소위 중위소득 국가들, 특히 중국이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들은 국제금융자본에 종속된 채로 있다. 금융적 힘에 관한 한, 미국에 도전할 자는 없다: 달러는 여전히 대권을 장악하고 있고, 미국은 주요 국제기구들을 통제하며, 20대 자산관리 기업들 중에서 14개가 세계 GDP의 대략 절반에 해당하는 45조 달러의 복합자본을 통제하는 미국회사이다. (다른 6개의 최고 자산관리 회사들은 스위스, 프랑스, 독일, 혹은 영국 기업들이다. 60대 회사 중에, 중국, 남한 혹은 기타 소위 “신흥 산업화 국가들”의 회사는 없다.) 미국이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패권적 지위와 줄어드는 실제 경제적 힘 사이의 점증하는 모순은 지속이 가능하지 않으며 세계에서 점증하는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의 근원적 원인이다.
세계무역의 성장, 신식민지 국가들의 산업화, 중국의 발전 - 이 모든 요소들이 미국의 패권을 잠식하고 있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은 현재의 동역학을 되돌려야만 한다. 이것은 중국과 대결하는 것, 신식민지들을 억누르는 것, 관세장벽을 높이는 것, 자신의 동맹국들로 가는 빵부스러기를 줄이는 것으로 세계화의 기초를 해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본적으로, 세계화에 반하는 가장 확정적인 논거가 생산력 발전들이 미국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 계급이라는 세계화가 의존하고 있는 바로 그 계급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 그 자체가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유지하거나 “치유”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이 반동적 환상에 불과함을 설명해준다.
이것은 1989년처럼 미국이 자신의 지위를 성공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세계 노동계급의 재앙적 패배들을 대가로 해서만 오직 벌어질 수 있으며, 바꿀 수 없는 제국주의의 쇠퇴를 멈추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적 압제를 끝장내고 진정으로 높은 발전단계가 시작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노동계급이다. 실제로 세계화는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를 더욱 강력하게, 더욱 국제적이게, 그리고 과거 어느 때보다 민족적으로 더욱 억압받게 만드는 것에 의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잠재력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것이 증가된 정치적 강력함으로 변화되지 않아왔다. 이 측면에서, 소비에트 이후 시대는 노동운동을 참으로 뒤로 내던져왔다.
III. 자유주의와 소비에트 이후의 세계
자유주의 승리주의
소련의 붕괴는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인 국제적 역관계에서의 주요한 변화들로 귀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요한 이데올로기의 변화들로도 귀결되었다. 냉전 동안, 서구의 지배계급들은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의 폭정에 맞서는 민주주의와 개인적 권리들의 방어자들로서 스스로를 내세웠다. 근저에서, 이것은 기형화된 노동자국가들과 반(反)식민지 투쟁들에 대한 적대행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였다. 소비에트 블럭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는 죽었다고 선포되었고, 자유주의 승리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는데, 이것은 “공산주의”와의 대결로부터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새롭게 개방된 시장들로 침투하는 것으로의 제국주의자들의 우선 순위들의 변경을 반영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 (1992년)은 소비에트 이후 시대 초기의 자만과 승리주의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인류문명의 정점으로 선포되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갈 운명이었다. 당연히, 제국주의 자본의 전 세계로의 실재하는 바로 그 확대가 이런 환상적인 관점의 근저에 있었다. 자유주의 승리주의는 이런 과정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였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경제적, 사회적 진보의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 백인의 책무의 현대화된 버전.
미국이 소비에트 이후 시대에 다양한 군사적 개입들을 주도했다는 것이 이 이데올로기적 덮개의 이면에 있다. 1차 걸프전쟁과 세르비아 개입은 “작은 민족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소말리아 개입은 “굶주림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함이었다. 유엔은 이 이데올로기를 “보호의무”로서 신주단지에 모셔두었다. 그 독트린의 이름이 알려주듯이, 강대국들에게는 세계의 억압받는 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군사적으로 개입할 의무가 있다고 선포되었다. 아들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대하여 그렇게도 많은 반대가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그 전쟁이 이 카테고리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 시대에 미국의 다른 개입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없었다. 미국의 개입들의 목적은 장기적인 경제적 혹은 전략적 혜택들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미국의 세계패권을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이라크에서 처럼 개입들에 반대했던 미국의 동맹들은 미국이 작은 나라 하나를 분쇄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기 위하여 많은 자원들을 투자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미국 질서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더 좋다.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지구 구석구석으로의 경제적 침투가 이 시대의 무장 분쟁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세계화의 과정은 일련의 이데올로기적 원칙들 전부를 동반했고, 그것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일종의 제국주의적 국제주의가 대부분의 서구 나라들에서 의견일치가 되었다. 민족국가는 과거의 것이라고 회자되었고, 자유무역, 자본시장개방과 높은 수준의 이주가 진보와 세계평화를 향한 길로 여겨졌다. 다시 한번, 이들 고귀한 원칙들은 지배계급의 특정한 이해관계를 반영했으며 억압당하는 나라들의 민족적 권리를 짓밟고, 서구를 탈산업화하며, 값싼 노동력을 수입하며, 제국주의 자본과 상품에 대하여 시장들을 개방하도록 하기 위하여 휘둘러졌다.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노동운동
2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에는, 노동계급은 어디에서도 의식적인 혁명적 전위를 자신의 지도자로 가져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은 일련의 의미있는 성취들을 이루었다: 소련, 전후의 새로운 노동자국가들 (중국, 쿠바, 베트남, 그리고 라오스가 나중에 합류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강력한 노동운동. 후자는 강력한 노동조합들과 대중적 노동자정당들을 포함했다. 그러나 이 경우들 각각에서, 기회주의적인 관료적 지도부들이 노동계급 힘의 이 근거지들을 항상적으로 약화시켰고 속을 후벼냈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노동조합들이 격렬한 집중 공격하에 있었을 때, 그들의 지도부들은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희생들에도 불구하고 이 공세들을 물리칠 수 없음을 증명했다. 동유럽에서는 소비에트 관료집단이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를 팔아버릴 때까지 하나씩 싸움 한번 없이 팔아버렸다. 이 패배들 모두가 합쳐져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후 지위 전체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약화되고 방침을 잃은 노동운동으로부터 더욱더 많은 성과들을 비틀어 빼앗으면서, 자신들의 강한 지위를 밀어붙이던 자본가들이 이 재앙들을 활용했다.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노동조합원 수가 하락했고, 국유화되었던 산업들과 공익사업들이 사유화되었고, 한때 강력했던 이탈리아 공산당과 같은 노동자정당들은 간단히 해산되었고, 서구에서는 더욱더 많은 산업들이 문을 닫았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들 객관적 타격들이 노동운동에서는 의기소침과 우익으로의 이동을 야기했다.
제국주의 나라들에서는,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적 지도자들, 스탈린주의의 잔재들과 노동조합 상층들이 공공연하게 자유주의 승리주의를 받아들였다. 이 새로운 시대에는, 과거의 개량주의와 노동조합주의가 너무나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계급투쟁은 끝난 것으로 회자되었고, 노동조합들은 점잖아져야만 (즉, 무력화되어야만) 했으며, 사회주의는 기껏해야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노동자운동에서 사유화와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가 있었지만, 반대는 최소한의 것이었으며, 그것들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믿음에 의하여 약화되었다.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계획이 이들 우익으로의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영국 노동당을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노동자정당으로부터 미국의 민주당과 비슷한 것으로 바꾸려고 애썼다. 정부 안에서, 그는 현대화와 진보적인 사회적 가치들이라는 광택제를 바른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개혁들을 실행했다. 영국 및 다른 곳들에서, 이 새로운 “노동자들의 지도자들”이 노동운동의 존재 바로 그 자체와 그것이 건설되었던 모든 원칙들을 거부하면서, 전통적인 조직들은 더욱 약해졌고 내부가 도려내졌다. 노동조합들과 노동자정당들에서의 자유주의의 지배는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이 자기 자신의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것은 오늘날 노동운동의 쇠약해진 상태를 가져왔다.
제국주의에 의하여 억압당하는 나라들
서구와 일본에서는, 노동계급의 지위가 산업의 해외이전으로 인해 하락했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의하여 억업당하던 많은 나라들에서는 산업이 번창했으나, 소비에트 이후 시대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위가 여전히 상당히 저하되어 있음을 목격했다. 노동계급이 객관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와중에 이런 약화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나라들 사이의 광범위한 차이들을 고려하는 가운데 일반적인 경향을 찾을 수 있다. 80년대와 90년대 국제적 상황이 제국주의로 하여금 “개발도상의” 그리고 “부상하는” 나라들에 대한 자신의 장악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시켰다. 이번에는 국제적 상황이 제3세게 민족주의와 전투적 노동계급 정치들을 희생시켜 자유주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성문제, 인종, 그리고 종교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많이 진보하지 않았던 반면,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와 어느 정도까지는 정치적 자유주의(형식적 민주주의)가 지배적이 되었다.
정치적 수준에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의 국제적 수렴은 부분적으로 미국 외교정책의 결과인데, 미국의 외교정책은 사회적 격변을 저지하기 위한 이상적인 수단으로 민주적 개혁들을 점점 더 많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신식민지 나라들의 국내정권들은 국제적으로 노동운동의 약화에 의하여 또한 지대하게 영향을 받았다. 엘리트들은 양보들을 위한 여지가 허용되면서 자신들의 지위에 대하여 더욱 확고했던 반면, 급진적 변화를 포기하라는 압력이 자신들에게 가중되면서 피억압 인민들은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이것이 국내의 모순들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했고, 남한, 대만, 브라질, 그리고 남아프리카와 같은 나라들이 부르주아지 민주주의라는 방책으로 유사전체주의적 독재들을 대체하도록 해주었다. 탄압보다는 계급협조에 더욱 의존하게 된 정권들에게는, 변화되는 상황이 노동운동에 대한 양보를 위한 필요성을 줄여주었다. 예를 들면, 멕시코에서는, 70년 동안 지속되었던 구 협동조합주의적 단일정당의 지배가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노동조합의 영향력의 많은 것들도 이와 함께했다.
경제적 수준에서는, 소련의 존재가 신식민지 나라들로 하여금 2개의 열강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주었었다. 많은 정권들이 자신들의 경제의 중요한 부문들을 국유화했고, 그들 나라들에서의 자본 흐름들을 일부 통제했었다. 이들 모델들은 비효율적이고 부패했지만, 미국과 기타 제국주의자들로부터의 일정 정도의 독립성을 가능하게 했다. 소련의 붕괴는 이러한 모델들의 관짝의 마지막 못을 박았다. 신식민지 나라들은 스스로를 완전히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명령들에 줄 세우고, 자신들의 과거의 협동조합주의적인, 국가주의적 구조를 버리는 것 외에는 선택이 거의 없었다.
서구와는 다른 방식에서 이기는 하지만, 신식민지 세계의 노동운동 또한 강화된 자유주의적 압력들에 굴복했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와 같은 특정한 경우들에서는, 이전에는 탄압받던 노동계급 정당들, 노동자당(PT)와 남아프리카 공산당이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정권들의 집행자가 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지배정당으로부터 분리한 좌익 포퓰리스트 민주혁명당(PRD)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에 자신을 묶어 매었다. PRD 그 자신은 더 많은 미국 자본의 멕시코 침투에 반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가 보다 나은 조건에서 짓밟히기를 추구했다. 많은 나라들에서, 계급투쟁보다는 “인권”과 “밀레니얼 발전목표들”을 지지하면서, 노동운동은 자유주의적 NGO 세계와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의 노동계급이 경제적 힘에서는 성장해왔지만 자유주의와 세계 제국주의와의 통합을 향하여 밀어붙이는 강력한 민족적, 국제적 경향들에 굴종하던 지도부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무력화되었던 정세였다.
중국적 특징을 가지는 신자유주의
동독으로부터 소련까지를 요동치게 했던 반혁명적 파도 이후 중국공산당에게는 전망이 암울한 것처럼 보였다. 1989년 천안문 봉기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분쇄가 세계무대에서 정권을 고립시켰었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에게는, 중국이 소련의 길을 뒤따르고 성장하던 자유주의 민주주의 진영으로 통합되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뒤따랐던 길은 이것이 아니었다. 천안문과 동구블럭에서의 반혁명들로부터 중국공산당이 도출했던 교훈은 권력에 남아있기 위해서는 높은 경제성장을 강력한 정치적 통제와 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중국공산당은 70년대 후반에 등소평이 시작했던 농업과 산업에서의 시장자유화, 사유화, 그리고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이루어지는 “개혁과 개방”의 길을 강화했다. 현재 중국공산당의 권력 장악력은 어느 때보다 강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공산당과 그 옹호자들에게는, 중국은 자신의 지도자들의 통찰력 있는 정책들에 의한 역사의 흐름을 따라 안내받고 있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일렁이는 흐름들이 분명히 하게 할 것처럼, 이 표면적인 성공은 중국공산당의 항해 능력보다는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고인물과 관련이 있다.
“전 지구적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진 것으로 보이고, 등소평이 1992년 “남부 방문” 동안에 당이 외국자본을 환영할 것을 다시 한번 더 추진하면서, 제국주의 투자가 중국으로 몰려들었다. 경제특구들은 최고의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실행의 가치가 있는 탈규제화된 환경과 중국공산당이 순종을 보장하는 거대한 값싼 노동인력의 저수지를 제공하는 한편으로, 국가주도경제는 거대한 자원들을 사회기반시설과 공장들을 건설하는데 동원했다. 이 조합은 독점자본주의에게는 거대한 이윤을 만들어냈지만, 또한 중국에서의 경제적, 사회적 진보는 다른 어떤 곳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2008년 이후 3년 동안, 중국은 미국이 20세기 전체 동안에 사용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멘트를 사용했다. 1978년 이래, 중국의 GDP는 매년 평균 9% 성장해왔고, 8억의 인민들이 빈곤으로부터 탈출시켜왔다. 중국의 세계경제로의 통합은 생산성에서의 거대한 도약들을 가능하게 해왔고, 거대한 새로운 시장을 열었으며, 경제성장의 엔진과 세계무역에서의 상승으로 기여했다. 중국의 상승은 소비에트 이후 질서의 최고의 성공이면서도 최고의 위협 모두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자유주의적 도덕주의자들에게는, 중국공산당의 상업정책과 탄압적 정책들이 중국은 이제 자본주의이거나 혹은 심지어 제국주의라는 증거들이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에서 발생했던 것과는 달리, 중국의 스탈린주의 정권은 경제와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주요한 경제적 지렛대들은 집산화된 채로 있다. 많은 면에서, 현재 중국의 경제 정권은 레닌이 “국가자본주의”로 서술했던 것의 극단적인 버전을 닮아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하에서 자본주의 착취에 대한 특정 경제영역들의 개방.
등소평과 그의 후계자들의 정책들에 대한 맑스주의적 평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시장개혁들 혹은 자본주의와의 어떠한 타협이라도 단순하게 원칙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 그렇기보다는, 합의들의 조항들과 목적들과, 그것들이 노동계급의 전체적 지위를 강화했는지를 평가해야만 한다.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레닌은 소비에트 노동자국가에서의 외국에 대한 양보들에 대한 그의 접근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개괄했다:
레닌은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 러시아로 외국자본을 유인하고자 했다. 그가 이미 할 태세가 되어 있었던 타협들은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이 열외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가장 작은 암시조차 포함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반대로, 등소평은 1985년에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사이에는 어떠한 근본적인 모순도 없다”고 선언했다. 등소평과 그의 후계자들에게는, 그것은 세계혁명을 위한 시간벌기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와의 핵심적인 조화 속에서 중국을 발전시킨다는 헛된 꿈을 추구하는 것의 문제였다.
가공되지 않은 경제 데이터를 바라보면, 지난 30년은 놀라운 결과들을 만들어 내왔지만, 계급적 기초에서 중국 노동자국가의 힘을 평가해보면 그림은 매우 다르다. 중국의 성장은 모래라는 기초위에서 건설되어 왔다: 세계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 중국의 상승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중국이 더욱 강력해질수록, 중국은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의 경제적 국제화라는 자신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을 더 많이 침식한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와의 필연적인 투쟁을 위하여 국제노동계급을 조직하기는 커녕, 중국공산당은 수십년동안 분쟁을 회피하려는 수단으로서 “경제적 상호의존”, “다자주의”, 그리고 “상호승리하는 협력”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내 왔다. 그러한 평화주의적 환상들은 제국주의를 결정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노동계급을 무장해제함으로써 중국인민공화국(PRC)를 약화시켜왔다.
중국의 지위는 본토에서 등장해 왔으며 노동자국가의 파괴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강력한 국내 자본가계급에 의하여 더욱 침식된다. 이것이 사회체제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임을 인식하기는 커녕, 중국공산당은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국내 자본가계급의 기여들을 칭찬하면서, 이 계급의 성장을 공공연하게 격려해왔다. 그 권력이 노동계급의 착취에 기초하고 있는 계급이 노동계급의 국가권력에 기초한 정권인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치명적인 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맑스주의 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레닌에 대해서 말하자면, 심지어 그것이 자본가들을 위한 “150% 이윤”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외국자본에 대한 양보들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원칙이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을 보존해야하는 것과 그 조건들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레닌은 자신의 전체 전략을 러시아와 국외 모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잠재력에 기초했다. 이러한 전망은 역병처럼 혁명을 두려워하며,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관료적 특권들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공산당 관료세력의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공동의 번영”을 건설하기는 커녕, 중국공산당 정책들은 노동계급의 열망들을 억눌려진 채로 유지하고, 외국 노동자들과 경쟁하고 자본투자를 보장하기 위하여 가능한 처참한 노동조건을 유지하는 것을 추구해왔다. 이윤을 얻는 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인민들”이 아니라 관료들과 자본가들의 작은 도당들이다. 진실은 중국공산당이 중국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노동자들에 맞서 국내에서 해외에서 자본가들과 함께 일해왔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이 배신행위는 국제노동계급의 시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더럽히고 1949년 혁명의 방어를 침식한다.
IV. 자유주의와 함께 자유주의에 맞서 싸우기
1991년 이후 서구 전반에서의 강력한 정치적 의견일치가 좌익과 우익으로부터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 반대는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에 도전하지 않았으며, 하물며 미국 금융자본의 지배라는 이 질서의 물질적 기초에조차 도전하지 않았다. 좌익에서 등장했던 다양한 운동들은 자유주의적 도덕성에 기초하여 당시의 상황을 비판했는데, 즉, 당시의 상황이라는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적 토대 내부로부터 그렇게 했다. 그들이 자유무역, 전쟁, 인종주의 혹은 긴축정책에 반대하건 말건, 좌익에서의 운동들은 모두 전체 체제는 손상을 입지 않은 채로, 하지만 그것의 가장 잔혹한 측면들은 없이 유지하면서 제국주의의 과도함을 제한하는 것이 전제되었다. 레닌이 그의 시대에 제국주의에 대한 그런 비판들에 대하여 설명했듯이, 그 비판들은 “경건한 바램들”에 불과했는데, 그 비판들이 “제국주의와 트러스트들, 그리고, 그래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기초들 사이의 떼어놓을 수 없는 유대”를 인정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그리고 그래서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다양한 좌익운동들은 맹렬히 규탄했고, 탄원을 했으며, 시위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고기 대신 두부를 먹었지만,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진정한 반대를 건설하는 것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반국제화 운동
반국제화 운동은 1999년 시애틀 WTO 항의들 이래로 현저해졌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비슷한 운동들에 뒤이어, 이것은 결국에는 세계사회포럼을 탄생시켰다. 그 운동 자체가 노동조합들, 환경주의자들, NGO들, 원주민 그룹들, 무정부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의 혼합이라는 절충이었다. 이 꿀꿀이 죽은 어떠한 일관성도 혹은 공동의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수레바퀴가 도는 것을 막고자 했던 국제화의 패배자들과 자본주의의 순환이 덜 잔혹하도록 만들고자 했던 자유주의 좌익의 연합이었다.
노동조합들에서는, 국제화에 대한 반대가 해외생산이전에 의한 실직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에 의하여 이끌렸다. 만약 적절하게 지도되었다면, 이 정당한 노동계급의 분노는 국제적으로 계급세력들의 균형을 변화시키고 금융자본의 공세를 중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점자본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강력한 방어적 투쟁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공장점거들, 파업들, 노동조합 조직화 추진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반대의 짓을 했다.
미국에서 그들은 해외생산이전과 NAFTA에 반대했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지배를 적극적으로 축하했는데, 그들 스스로가 “공산주의와의 투쟁”에 대한 개입을 통하여 이것을 성취하도록 도와왔다. 노동조합들은 해외생산이전으로 귀결되는 바로 그 요소, 즉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한편으로 일자리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보호주의적 반멕시코, 반중국 운동들로부터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것에 이르기까기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를 지지했다. 유럽에서는 심지어 자유무역에 대한 형식적인 반대조차 훨씬 약했고, 많은 노동조합들이 적극적으로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유럽연합 찬성운동을 했다. 그들에 상응하는 미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들에 찬성하지 않았던 자들은, 오히려 “외국의 이해관계”에 맞서는 민족적 기초에서 노동과 자본 사이의 블럭을 추구하면서, 경제적 자유화의 뒤에 있던 지배계급에 맞서 투쟁하는 것을 거부했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그 결과는 대량 실업들과 지역들 전체의 쇠퇴를 동반한 노동계급의 완전한 파괴였다.
반국제화 운동의 다른 한편은 다양한 NGO들, 무정부주의자들, 생태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 그룹들로 구성되었다. 대부분의 이 그룹들 스스로가 주장했듯이, 그들은 국제화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더 공정한” “민주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국제화를 추구했다. 전에 설명했듯이, 제국주의의 멍에 하에서 국제화는 공정할 수가 없으며,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오로지 국제노동계급의 지위를 강화함으로써만 중단될 수 있었다. 반국제화 운동은 노동계급의 지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이 운동 스스로가 자유주의적 승리주의의 결과들에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 똑같은 자유주의적 승리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계급투쟁은 끝났고, 민족국가들은 국제적 협력들에 의하여 대체되었다고 주장했다 ... 그래서 분명히 이 운동은 국제화를 지원하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맞서는 계급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이 운동이 국제화를 기본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바라보았고, 노동계급과는 기껏해야 무관한 것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수백만의 일자리 상실에 반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좌익들은 특정 노동조합 관료들과 반동적 정치인들이 지껄이던 보호주의적 배외주의를 규탄했지만, 일자리들과 노동조건들을 방어하기 위한 강령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했다. 이것은 미국의 해외 팽창의 혜택을 위하여 보호주의와 배외주의를 또한 규탄하고 있던 부시와 클린턴 세력들의 좌익 메아리로 존재함을 의미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노동계급의 일자리들에 대한 실제 방어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약탈을 강화하는 것에 대하여 제동을 거는 것으로 그들의 지위를 강화할 것이라는 것이 반국제화 운동이 거부한 기본적인 진실이다. 국제주의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은 “자유주의적”이고 “계몽화”되지 말아야만 하고, 노동계급은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하여 단결해야만 한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 계급에 대한 어떠한 투쟁이라도 국제노동계급을 목적의식적으로 단결하게 하고, 노동계급을 그들의 민족적 지도부들로부터 분리하도록 하게 할 것이다.
반국제화 운동이 몇몇 폭동들을 야기하는 것에는 성공했던 반면, 이것들은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위협은 아니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충성으로 마비되어버렸던 이 운동은 궁극적으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금융자본의 파괴적인 공세에서 하나의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결국, 사실상 노동운동과 좌익 전체가 심지어 NAFTA와 유럽연합에 대한 형식적 반대조차 기각했다. 국제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무기력이 수백만의 서구 노동자들을 트럼프, 프랑스의 르펜, 그리고 이탈리아의 멜로니와 같은 악선동가들 쪽으로 밀어냈다.
미국과 유럽의 2008년 이후 반기득권 좌익
2007년 신용거품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정점을 나타냈다. 그 뒤의 경제위기는 증가된 세계무역, 생산성 향상, 정치적 그리고 지정학적 상호합의라는, 안정과 경제성장에 기여하던 동역학이 작동을 멈추고 후진하면서 중대한 전환점을 의미했다. 그 위기와 그 여파는 소비에트 이후 시대를 끝내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침식하는 경향들을 가속화했다. 서구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긴축정책의 파도에 뒤이은 수백만개의 일자리 상실들과 강제퇴거들이 깊은 정치적 불만을 창출했다. 1990년대 이래 처음으로, 주요한 정치운동들이 등장했는데, 이것은 소비에트 이후의 상호합의의 핵심기둥을 공격했다. 우익에서는 보호주의, “다자주의”에 대한 반대, 그리고 공공연한 배외주의가 주류가 되었다. 좌익에서는, 그것이 긴축정책에 대한 반대였고, 국유화들에 대한 요구들이었으며, 일부 세력에 의한 나토에 대한 반대였다. 이 운동들의 성격들은 폭넓게 다양하지만, 하나의 결론이 드러난다: 2020년 일부 쇠퇴 이후 포퓰리스트 우익이 오늘날 다시 활력을 띠면서 등장하고 있는 반면, 좌익의 반기득권 운동들은 대부분 붕괴했다. 무엇이 이 실패를 설명해주는가?
반기득권 좌익은 2008년에 뒤이어 강화되었던 수십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공격들로 인하여, 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개입들에 대한 반대에 의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 운동들은 당시의 상황에 맞서서 반응했지만, 그것과 결정적으로 단절하지 않았다. 자신들만의 방식들로, 각자가 사회적 조건들의 저하에 책임이 있는 제국주의 부르주아지 계급과 제휴되어 있었다. 이 경향의 표준적 견지자들이 영국에서는 코빈, 미국에서는 샌더스, 그리스에서는 시리자, 스페인에서는 포데모스이다. 그들과는 반대로, 프랑스의 멜량숑은 아직은 눈에 띄게 실패하지는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그의 운동은 그것과 대응관계에 있는 외국 상대방의 붕괴로 이끌었던 모든 재료들을 포함한다.
샌더스의 경우, 그는 미국 제국주의의 양대정당들 중의 하나인 민주당의 대표자이다. “억만장자 계급”에 대한 “정치혁명”에 관한 그의 연설들은 억만장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에 대한 그의 충성을 고려할 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다. 게다가,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이라는 자유주의 개혁주의 정치인으로서 샌더스가 약속했던 주요개혁은 더 반동적인 공화당 자본가들에 맞서 “진보적” 민주당 자본가들과 함께하는 것에 항상 종속되었다. “우익과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샌더스는 자신이 의거한다고 주장했던 원칙들을 배신했다. 샌더스가 자신이 대변했던 운동의 열망들을 더욱 짓밟을수록, 그는 민주당 기득권세력에서 더 많이 상승했다. 오늘날 민주당의 외부에서 샌더스 없이 이 운동을 재창출하고 싶어하는 자들은 그것이 지배계급에 대한 굴종으로 귀결되는 자유주의적 개량주의 강령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유지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화해시켜려고 하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라도 필연적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2개 세력들 중 하나에서 지지를 추구할 것이다. 미국 정치의 반동적 순환을 깨고 진정으로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은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모두를 완전히 반대하는 자기 자신의 정당을 필요로 한다.
코빈 운동은 샌더스 운동과 비슷했지만, 두 가지 중요한 측면들에서 달랐다. 첫번째는 민주당과는 달리 노동당이 부르주아지 노동자정당이라는 것이다. 샌더스는 민주당의 기득권에 의하여 중단되었지만 코빈은 노동당의 지도부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를 노동당의 노동계급 기초가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코빈은 외교정책의 문제들에 관하여 레드라인들을 넘었다는 것이다. 나토와 EU에 대한 그의 반대, 우크라이나에서의 2014년 나토가 지원했던 쿠데타에 대한 그의 비판들, 팔레스타인 인민들에 대한 그의 지지, 그리고 핵무기들에 대한 그의 반대는 지배계급에게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영국 기득권세력의 극렬한 적의와 그 자신의 당에서 그에 대하여 계속 진행 중인 반란에 직면하여, 코빈에게 주어진 대안은 지배계급과 직접적으로 부딪치거나 굴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화주의와 노동당 개량주의라는 코빈의 강령은 계급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그것의 완화를 추구한다. 그래서 모든 순간 코빈은 지배계급과 그의 당의 우익을 달래려고 애썼지 그들에 대항하여 노동계급과 청년들을 투쟁으로 조직하지 않았다. 코빈은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프로그램의 갱신, 스코트랜드 자결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나토,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브렉시트에 관하여 굴종했다. 심지어 샌더스보다 더 분명한 코빈의 예가 계급투쟁 행위에 있어서 개량주의라는 완전한 무기력의 고전적 경우이다.
시리자의 경우는, 시리자가 유럽연합이 강요해왔던 긴축정책에 대한 거대한 반대의 결과로서 그리스에서 권력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다르다. 시리자의 배신의 깊이만이 시리자의 부상의 신속함과 필적할만하다. 유럽연합의 긴축정책 패키지를 압도적으로 거부했던 국민투표를 2015년에 조직한 이후, 시리자는 그리스 노동인민들에 대한 심지어 더 가혹한 공격들을 위한 제국주의의 요구들에 수용함으로써 인민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짓밟았다. 이 배신의 이유는 시리자의 계급적 성격과 강령에 있다. 그리스에서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조직화된 노동계급이다. 그러나 시리자는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다. 시리자는 자신이 나라를 유럽연합에 유지하는 가운데, 그리스의 자본가들은 물론 그리스 노동자들과 피억압인민들 모두를 위하여 복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화는 현실과의 첫번째 접촉에서 폭발해버렸다. 시리자의 배신 때까지 대부분의 좌익이 시리자를 응원했던 반면, 공산당은 심지어 그리스가 제국주의에 의하여 억압받고 있음을 부정하면서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양쪽 모두의 정책들의 결과들이 그리스 인민들에게 내 던져졌다. 이 대실패는 그리스에서 계급적 독립성과 노동자권력을 위한 필요성과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융합하는 정당에 대한 긴급한 필요성을 보여준다.
세계가 날카로운 위기의 시대에 돌입하면서, 서구에서의 노동자운동은 그것이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있던 세력들에 의한 배신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고 의기소침해져 있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의심의 여지없이 우익을 위한 성장들로 귀결될 것이겠지만, 노동계급과 인민대중들의 새로운 고양이 다시 한번 자유주의적 현상유지의 대변자들에 대한 정치적 대체자들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할 것이다. 패배들과 반동의 새로운 순환을 피하기 위하여 과거 실패들의 교훈들을 도출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코비드-19, 자유주의의 재앙
코비드-19 팬데믹 동안, 좌익은 자유주의 기득권세력에 대한 온순한 반대조차 하지 않았다. 전세계의 부르주아지 계급들이 붕괴하던 보건체제들과 끔찍한 생활조건들을 고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수개월 동안 계속해서 자신들의 인민들을 가두었을 때, 좌익은 어느 때보다 더 엄격한 봉쇄들을 응원하고 요구했다. “과학을 따른다”는 명목으로 노동계급에 대한 모든 공격들이 받아들여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지 계급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 위하여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심지어 맑스주의자임을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여 창문 밖으로 내 던져졌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수백만이 바이러스에 의하여 죽었고, 수백만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가족들은 여성들과 어린이들, 그리고 인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희생의 대가로 집에 갇혔다. 과학이 이런저런 반동적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상황에서, 수백만 명의 인민들이 “과학”에 반기를 들었고, 목숨을 구해줄 백신들을 거부했다. 보건체제는 구조되었는가? 아니다. 모든 곳에서 보건체제는 전보다 훨씬 더 나쁘다. 노동인민들은 바이러스로부터 보호를 받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위험한 조건들에서 계속해서 노동했다. 노인들은 보호를 받았는가? 그들 중 다수가 노후한 요양원에서 죽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질과 수명이 사회적 고립과 운동부족으로 줄어들었음을 목격했다. 요양원과 양로원의 위기는 어느 때보다 나빴다.
“목숨들을 구한다”라는 명목으로, 자유주의자들과 좌익들은 정부들과 “과학”에 절을 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나가 있었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들에 상응하는 대답을 스스로 추진하고 보장할 할 필요가 있었다. 노동조합들은 단순히 작업장을 폐쇄하거나 대단히 위험한 현장에서 노동하는 것에 반대하여 안전한 작업장을 위하여 투쟁할 필요가 있었다. 노동조합들이 아니라 사업주들과 정부들이 작업안전을 통제하는 한, 노동자들은 막을 수도 있었던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보건과 학교 노동조합들은 환상에 불과한 나중에 있을지 모르는 성취들을 위하여 희생하지 않고, 보다 나은 조건들을 위하여 투쟁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희생들은 공공 서비스들을 구했던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이 공공 서비스들을 심지어 더욱 쥐어짜도록 허용해 주었다. 오직 지배계급과 지배계급의 봉쇄에 맞선 투쟁 속에서, 그것이 보건이건, 주택이건, 노동조건이건, 공공운송이건, 노인에 대한 보살핌이건 간에 위기의 이면에 있는 사회적 병들이 다루어질 수 있었다.
봉쇄들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완전한 복종이 팬데믹의 재앙적인 결과들에 대한 어떠한 반대라도 우익과 음모론 세력들에 의하여 주도되도록 보장해 주었다. 봉쇄에 반대하는 시위들이나 의무적인 백신접종에 반대하는 항의들에 참석했던 인민들의 다수가 팬데믹 동안의 자본주의적 정책들의 사회적 결과들에 대한 정당한 분노로 참석했다. 이 감정들의 선두에 서서 이 분노들을 노동계급의 조건들을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으로 이끌기는 커녕, 좌익들은 압도적으로 그들을 규탄했고 국가가 그들을 탄압하는 것을 응원했다.
팬데믹에서 좌익과 노동운동의 완전한 배신의 기초는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전 과정 동안 놓였다. 전 세계적 규모의 이 위기가 닥치고 부르주아지 계급이 어느 때보다 더 민족적 통합을 필요로 했을 때, 노동자운동은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서 충성스럽게도 “과학”과 “공동희생”의 뒤로 노동계급을 결집시켰다. 정부들과 대부분의 좌익은 팬데믹을 깔개 밑으로 쓸어담아 감추려고 애쓰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재앙의 결과들은 노동계급과 청년들이 정답들과 대안들을 찾도록 강제하면서 그들에게 깊은 각인을 남겼다.
V. 쇠퇴하는 자유주의적 질서
교만이 히스테리로 변한다
1980년대로부터 2000년대 초까기, 세계정치의 동역학은 미국 지배력의 상대적 강화에 호의적이었다. 미국이 자신의 경제, 군사, 그리고 정치적 지위를 더욱 개선할수록,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강화하는 구심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 자기 강화의 동역학은 소련에서의 반혁명의 여파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것은 미국의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직접개입으로 광범위한 정치적, 경제적 자유화를 가능하게 했다. 당시에는 역사의 흐름들이 미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밀고 나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물리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다. 필연적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결과들은 대항세력들의 강화를 강제했다. 자원을 소진하고, 국내 및 해외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반대를 강화하던, 미국의 점점 더 신중하지 못한 군사개입들은 지정학적 재앙들이었다. 재정적 탈규제와 탈산업화는 미국의 경제적 힘을 공동화했고, 전체 세계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고 위기가 쉽게 닥치도록 만드는 가운데 미국의 경쟁자들을 강화했다. 미국의 지배계급이 자신의 반동적 이해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자유주의를 더욱 사용할수록, 그들은 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더욱 키웠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 호의적인 동역학이 약해지고 그것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는 점증하는 신호들이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의 쿠데타와 분쟁, 그리고 2016년 도날드 트럼프의 당선과 브렉시트는 모두가 이런 경향의 중요한 표시들이었다.
미국이 자신의 힘이 약해진 것을 느끼면서, 미국의 교만은 히스테리로 변했다. 중국과 러시아와 대적하고, 동맹들을 쥐어짜며, 점점 더 많은 나라들에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미국은 자신의 힘을 강화하기 위하여 더욱더 강하게 노력한다. 그러나, 이 노력들은 계속 늘어나는 비용에 직면하고 있고, 수확은 줄어들게 하고 있다. 자신의 약화를 막아내기는 커녕, 미국의 대응은 지금까지는 그것을 고착화시켜 왔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에 뒤이은 오늘날, 세계정치의 동역학이 뒤집혀 왔다는 것이 분명하다. 세계정치의 동학은 가속화하는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해체를 가리키고 있다. 나토와 러시아가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들은 영구적 적대의 국면에 처해 있다. 좌익(멕시코)와 우익(인도, 튀르키에) 모두의 표현을 취하면서, 인민주의적 민족주의가 비제국주의 세계에서 부상하고 있다. 서구에서의 정치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와 결별함으로써 제국주의적 지배의 강화를 추구하는 자들(트럼프, 독일을 위한 대안, 르펜, 멜로니)과 자유주의적 십자군전쟁을 밀어붙임으로써 제국주의적 지배를 강화하려는 자들(바이든, 투르도, 독일 녹생당) 사이에서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다.
세계의 증가하는 불안정성은 누구에게도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분쟁의 성격을 둘러싸고 논쟁이 부상한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이것은 민주주의와 전제정치 사이의 경쟁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이것은 자유시장과 국가개입 사이의 경쟁이다. 스탈린주의자들과 제3 세계주의자들에게 이것은 헤게모니와 다극체제 사이의 경쟁이다. 모두가 틀렸다. 정답은 공산당 선언의 단순하지만 예리한 구절들에 있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들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래서 오늘날 혼란에 빠진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계급투쟁의 법칙들을 따른다. 세계를 모양짓는 근본적인 분쟁은 중국공산당과 미국 자본주의자들, 트럼프와 바이든, 푸틴과 나토, 혹은 멕시코의 로페즈 오브라도르(AMLO)와 양키 제국주의 사이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 단계에 있는 자본주의의 사회적 쇠퇴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관계 사이의 것이다. 이런 이해관계에 의하여 안내받지 못하는 자들은 닥쳐올 혼란 속에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인류진보를 위한 투쟁을 전진시키지 못할 것이다.
국제경제: 거대한 폰지사기
앞서 설명했듯이, 미국 헤게모니는 제국주의의 성장 잠재력에서의 일시적인 개선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에 걸친 자본주의 세계의 장기간의 안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경제적 상황에서의 이런 개선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확장의 가능성들은 소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뒤집히고 있다. 그 결과는 상당한 정도의 생산력 파괴와 이것과 함께 다가올 모든 불안정성일 것이다. 레닌 이후의 제3 인터내셔널에서 트로츠키가 썼듯이, “계급들뿐만 아니라 국가들도 풍성하고 늘어나는 할당량보다 부족하고 줄어드는 할당량을 두고 훨씬 더 치열하게 싸운다.” 이 요소가 현재의 세계정세를 뒷받침하며, 상황에서의 주요한 변화가 없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8년에서 10년이라는 호황과 불황의 주기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정상적인 부침들이다. 붕괴와 극심한 공포가 과도한 투기와 과잉생산의 뒤를 따른다. 소비에트 이후 시대가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 성장 가능성들이 쇠퇴하면서, 투기와 신용대출이 주요한 방식이 되었는데, 이것으로 미국은 전체 질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2008년의 “대침체”의 여파는 이것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있을 수 있는 불황에 직면하여, 미국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신용대출과 통화확장을 조직했다. 이것이 빈혈성 성장을 만들어냈지만, 자산가격들에서의 거대한 성장을 야기했다. 심지어 대부분의 부르주아지 경제학자들에게, 이것은 나중의 훨씬 거대한 붕괴를 위한 조건들을 마련하고 있음을 의미했을 뿐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흔들리는 성장의 각각의 조짐에 대한 각본이 똑같았다: 신용대출을 늘림으로써 문제를 회피하기. 코비드-19 팬데믹 동안, 이 각본은 다시 한번 어느 때보다 더 심하게 반복되었다. 경제의 거대한 부분을 정지시킴으로써 야기된 결과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본가들은 그냥 돈을 찍어낼 뿐이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이런 접근의 가능성들이 불가피한 “물가인상의 도래”와 함께 그 한계에 도달했다.
미국에서의 급격한 이자율 상승이 세계 경제체제로부터 광대한 양의 유동성을 흡수하고 있다. 워렌 버핏이 유명하게 말했듯이, “상승하는 조수는 모든 배들을 띄운다.... 오직 물이 빠지면, 당신들은 누가 홀딱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를 발견한다.” 15년의 금융완화 이후, 경제의 거대한 부분들이 “홀딱 벗고 수영을 해”오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자 그 결과들은 재앙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으며, 근본적으로 국제신용조건들을 통제하기 때문에, 설사 미국이 위기의 진앙으로 판명된다고 해도, 미국은 그 결과들에 대하여 나머지 세계가 책임지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지배적인 지위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특히 개도국의 세계에 대하여 파괴적일 것인데, 스리랑카, 파키스탄, 그리고 레바논과 같은 이들 중 많은 나라들이 이미 깊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 결과들은 전지구적일 것이며, 필연적으로 현재 미국이 동맹들로 여기는 열강들로부터의 타격을 포함하여, 세계질서에 더욱 타격들을 가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경제적 기득권세력의 상당한 부분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세계경제 전망들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눈을 감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좌익의 특정 부위들은 높은 수준의 정부 부채는 염려할 것이 없으며, 노동인민들은 지금의 높은 이자율 정책으로부터 보다는 낮은 이자율과 더 많은 정부 부채로부터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것은 바라건대 다음 선거를 지나서까지, 한 번 더 문제를 회피하기를 원하는 부르주아지 계급 안에 있는 자들의 메아리이다. 모든 정책 대안들은, 그것이 높은 부채이건, 높은 물가인상이나 물가하락이건 간에,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공격하기 위하여 사용될 것임이 진실이다. 기저를 이루는 근본적인 문제는 종이 위에 존재하는 자본과 세계경제의 실제 생산능력들 사이의 거대한 불균형이다. 어떠한 금융상의 묘기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노동계급이 정치적 경제적 통제력을 취하여, 합리적인 방식으로 경제를 재조직하는 것이다.
우익 경제학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해결책은 자유시장이 그 자신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재앙적 위기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약한 자는 죽고 강한 자가 더욱 강하게 되도록 하라. 그러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갔다. 세계경제는 다른 나라의 독점체들과 경쟁하는 소수의 거대 독점체들에 의하여 지배당한다. 어떠한 나라도 자신의 독점체들이 붕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만약 포드와 GM이 파산한다면, 이것은 미국의 자유기업 체제를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토요타와 폭스바겐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자유시장들이 아니라 독점체들로 귀결된다. 한편으로는, 이것은 국제적 규모에서의 중앙집중화된 계획생산을 향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하에서 독점체들은 쇠퇴와 기생주의로 귀결되면서 생산력들의 성장을 방해한다.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과 같은 사회민주주의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국가개입과 규제를 가지는 자본주의라는 “혼합경제”가 만병통치약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경제와 정부 그룹들에서 이것은 이단으로 여겨졌지만, 계획이 다시 유행하게 되고 있다. 이것은 계몽의 결과가 아니라 특정 국가의 자본주의가 파산을 모면하도록 떠받쳐지고, 중국과 경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계급투쟁을 통하여 자본가들로부터 양보를 쟁취할 수 있지만, 제국주의의 모순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체제의 비합리성과 기생주의는 자본주의적 축적이라는 바로 그 동역학들에 기인한다. 정부는 그 자체가 자본주의 금융가들의 작은 도당에 대한 균형추가 아니라 그들의 집행위원회이다. 정부가 경제문제에 간섭할 때, 그것은 궁극적으로 제국주의 지배계급에게 혜택을 주기 위함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군사적 도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소련 붕괴 이래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단연코 가장 큰 도전이다. 한 강대국이 그렇게도 직접적으로 미국을 거역할 확신을 가졌다는 것은 - 그리고 아직까지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 진정한 상전벽해를 가리킨다. 이 전쟁은 지난 수십년 동안의 어느 것과도 다르다. 이것은 저강도 반(反)반란 전쟁이 아니라 고강도 산업화 전쟁이다. 그 결과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뿐만 아니라 유럽과 국제 열강의 균형에 지대한 충격을 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2개의 결정적인 행위자들은 러시아와 미국이다. 전쟁은 러시아가 자신의 영향력 내부에 있다고 생각하던 나라들로의 수십 년 동안의 나토의 동쪽으로의 확장의 결과로서 발생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필수적인 전략적 이해관계로 바라보며, 자신의 궤도에 확실히 우크라이나를 확보하거나 스스로가 패배할 때까지 분쟁을 기꺼이 고조시키려고 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보다 복잡하다. 미국에게 우크라이나는 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으며, 미국은 유럽의 주변적 벽지로 고려한다. 서구의 자유주의 기득권 세력에게는, “우크라이나 방어”는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방어하는 것에 관한 것, 즉, 미국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장소에서 할 권리이다.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패배는 미국에게는 치욕스러운 타격일 것이다. 이것은 나약함을 가리키고, 유럽의 정치적 기득권세력에게는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과들을 야기할 것이며, 나토의 미래에 대한 의문부호를 낳을 것이다. 이런 주어진 고위험이라는 조건에서,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은 우크라이나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무기를 공급하면서 끊임없이 전쟁을 고조시켜왔다. 러시아는 부분적 동원을 소집하는 것으로 대응해왔으며, 우크라이나의 군대를 파괴하고 있다. 미국은 전쟁의 고조를 밀어붙이는 한편으로, 미국과 미국의 동맹들은 전시경제와 직접적인 개입으로 러시아 군대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기 위하여 아직까지는 전력을 다하지는 않아왔다. 지금은, 전쟁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통제를 둘러싼 지역적 분쟁으로 남아있다.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은 모든 곳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자신의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의 뒤로 결집해 왔다. 그러나 전쟁의 사회적 결과들이 매일 반란의 씨앗들을 뿌린다. 맑스주의자들에게는, 최고로 중요한 것이 이 분쟁에서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전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지도부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증가하는 모순에 개입하는 것이다. 미국이 지배하는 자유주의 질서로 오늘날 정의되는 제국주의 체제 그 자체가 우크라이나에서의 분쟁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는 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폭정을 끝내는 것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중국 혹은 인도 프롤레타리아건 간에 세계의 노동자들은 오직 이 기초위에서만 단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반적인 전망의 응용은 각각의 나라에서의 고려들에 따라서 다른 구체적인 표현들을 가진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정부의 승리가 제국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승리는 세계 제국주의로부터의 러시아의 독립성을 더 진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를 러시아의 소수 지배자들의 혜택을 위한,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신의 계급 형제자매에 대한 억압자로 만들게 될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외교정책에 가하는 어떠한 단기간의 패배라도 우크라이나 민족에 대한 억압자가 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인민들 사이의 갈등은 이 지역에서 세계 제국주의 세력들을 강화해줄 뿐이다. 위대한 10월 혁명의 방식대로, 각자의 지배계급들에 맞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의 혁명적 공동전선이 나토와 유럽연합에게 훨씬 더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총구들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소수 지배자들을 향하여 돌려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혁명적 단결을 위하여!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은 미국, 유럽연합, 그리고 나토가 그들의 동맹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하여 피가 마를 때까지 쥐어짜고 버리는 장기판의 졸로 우크라이나를 이용하고 있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독립은 제국주의와 공조함으로써 얻어지지 않을 것인데, 이것은 워싱턴에 대한 노예상태를 의미할 것이고 러시아로부터의 영구적 적대를 보증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부에 의한 러시아 소수민족들에 대한 억압에 또한 반대해야만 한다. 러시아 소수민족들에 대한 그러한 방어는 젤렌스키의 책략들보다 100만배 더 크렘린의 전쟁노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국경들과 소수민족들의 권리에 대한 문제는 만약 이 문제가 소수 지배자들과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 음모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쉽게 민주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이 워싱턴의 명령하에,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혜택을 위하여 살육으로 보내지고 있음이 매일매일 더욱 분명해진다. 그들은 이 미친 짓거리를 끝장내기 위하여 러시아의 노동계급과 단결해야만 하며, 그 어떤 다른 것도 더 심각한 대학살과 억압으로 귀결될 뿐일 것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첸, 그리고 모든 다른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위하여!
서구에서 노동자들은 우크라이나에서의 민주주의를 위한 나토의 십자군전쟁의 이름으로 희생할 필요성에 관한 엄청난 선전폭탄을 맞아왔다.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와 세계의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방어하기 위하여 미국, 독일, 영국,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금융기생충들과 국내에서 자신들을 빨아먹는 독점체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그들은 바로 그런 세력들에 충성하는 노동조합의 반동적 도당들과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을 일소해야만 한다. 국내에서 그들의 배신들은 나토의 탱크들과 폭탄들로 해외에서 “민주주의”를 수립하자는 그들의 요구들과 떼어놓을 수 없다. 만약 “평화”, “노동조합투쟁”, 그리고 심지어 “사회주의”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전쟁광들과 제국주의의 머슴임을 공언한 자들의 옷자락에 매달리는 평화주의와 중도주의적 늪이 없었다면, 이 배신자들은 오래전에 결딴이 났을 것이다. 반전운동은 만약 이 운동이 노동운동 속에 있는 사회적 배외주의를 달래는 자들을 제외한다면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들을 중단하라! 유럽연합과 나토를 타도하라! 유럽소비에트합중국을 위하여!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점점 더 많은 노동인민들이 러시아를 제국주의에 맞서는 세력으로 바라본다. 이 잘못된 믿음은 미국, 서구 유럽과 일본의 멍에로부터 그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푸틴은 반제국주의자가 아니며, 민족해방을 위한 어떠한 나라의 투쟁에서도 동맹이 아닐 것이다. AMLO, 남아프리카의 라마포사, 인도의 모디, 그리고 중국의 시진핑이 푸틴에 호의적이거나 공공연하게 적대적이지 않은 것이 정확하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푸틴에 대한 지지는 이 지지가 그들의 삶의 조건들을 개선하고 혁명적 투쟁없이 제국주의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환상으로 제국주의에 억압당하는 나라들의 노동계급을 안심시킨다. 세계의 피억압 대중들로부터의 가장 작은 고조의 징후에 대해서라도, 제국주의에 억압당하는 나라들의 반동적 지도자들은 오늘 그들이 규탄하는 똑같은 제국주의자들을 바라볼 것이다. 진정한 반제국주의 세력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그리고 서구의 노동자들이다. 그들 그리고 세계의 노동자들은 그것이 열강들에 의한 것이건 스스로가 억압받는 민족들에 의한 것이건 모든 민족적 억압에 반대함으로써만 공통의 국제주의적 기치 주변으로 단결될 수 있다. 제국주의 소유 자산들을 국유화하라!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중국: 스탈린주의적 일대(一帶)인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로(一路)인가
중국으로 하여금 지난 30년 동안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했던 동역학들이 점점 더 빨리 풀림에도 불구하고, 국제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2022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시진핑은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중국공산당에게는 불행하게도, “다자주의 무역체제”의 진전은 미국의 행동들에 무엇보다도 달려 있으며, 미국은 현재의 경향들이 지속되도록 허용할 수 없다. 미국은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지위를 떠받치기 위하여 세계의 나머지로부터 양보들을 강제하거나, 혹은 스스로 추락하면서 그 자신과 함께 구조 전체를 붕괴시킬 것이다.
10여 년이 넘는 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들이 증가해오고 있다. 중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실제의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 경쟁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더욱 분명해지면서, 미국은 압박을 단계적으로 강화해오고 있다. 증가된 압박은 중국공산당으로 하여금 경제와 정치적 반대 (예를 들면 홍콩)에 대한 내적통제를 강화하고 군사적 지위를 강화하도록 밀어붙인다. 이것이 이번에는 미국으로 하여금 나사를 더욱 조이도록 이끈다. 이 가속화되는 동역학이 공공연한 군사적 갈등의 조짐을 보이면서 수십년 만에 가장 높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들을 야기시켜 왔다.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 무조건적으로 중국 방어를 옹호하는 것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일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중국에 대하여 광적으로 적대적인데, 그것은 바로 중국 경제의 집산화된 핵심이 가능하게 했던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진보 때문이다. 이것이 노동계급이 방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기생적인 중국공산당 관료세력의 방법들과 목적들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법들과 목적들에 따라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트로츠키는 소련과 관련하여 “소련방어의 진정한 방법은 제국주의의 지위들을 약화시키고, 전 지구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와 식민지 인민들의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다” (배반당한 혁명, 1936)라고 설명했다. 현재의 중국에 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 전략은 무엇보다도 현 상태의 유지를 고수하고자 하는 중국공산당이 추구하는 전략과는 천양지차다. 우선, 중국공산당은 세계를 억압하고 중국을 지배하고자 하는 그 똑같은 계급의 대표자들인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그리고 제이미 다이먼과 같은 미국 자본가들에 기대어 미국과의 관계들을 복원하고자 한다. 그러한 책략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의 잠재적 동맹을 소외시키면서, 미국 노동자들의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증가시킬 수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에 억압당하는 나라들의 피억압 인민들에 관하여 말하자면, 중국공산당은 그들의 해방을 옹호하지 않고 이 나라들의 엘리트들과의 환상에 불과한 동맹들을 옹호한다. 저들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사기꾼들은 최초의 난관에 부닥쳤을 때, 혹은 제국주의자들이 제공하는 더 좋은 뇌물에 중국을 포기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을 방어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인민해방군(PLA)의 강화에 기대를 거는 보다 호전적인 어조의 소리를 내는 목소리들이 중국 관료집단 내에 있다. 우리는 PLA의 기술적인, 그리고 전투 능력들에서의 발전을 환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군사적인 것들은 정치와 별개가 될 수 없으며, 군사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도 지배계층의 보수적 이해관계가 중국을 침식한다. PLA의 방어전략의 핵심기둥은 장거리 타격 능력들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소위 “제1 도련선”에 대한 군사적 통제권을 추구함으로써, 중국 주변의 이 섬들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분쟁의 경우에서라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의 지지가 아무리 많은 작은 바위들을 보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일 것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로부터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를 진정으로 내던져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역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노동자들과 농민들과의 반제국주의 동맹을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민족주의적 전략을 가진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대의에 따라 필리핀, 일본, 베트남,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있는 노동자들을 획득하려는 시도를 해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는 커녕, 중국공산당은 주변 나라들의 민족적 감정들과 내부의 계급적 적대감들 모두를 무시하면서, 오로지 단기적인 군사적 이점들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제국주의자들의 반중국 공세를 도와왔다.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이보다 더 사실일 수가 없다. 대만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자본가계급의 지배하에서 잔혹한 억압의 고통을 겪어왔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과 지역 부르주아지 계급에 맞서 그들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투쟁하도록 대만의 노동자들을 고무하기는 커녕, 중국공산당의 전략은 지역 부르주아지 계급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지배를 내려놓고 중화인민공화국에 합류하도록 납득시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 목적을 위하여,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일국양제” 정책하에서 대만에서의 자본주의적 경제관계들과 정치행정을 유지할 것을 서약한다. 노동자들에게는, 중국공산당은 해방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자본주의적 착취와 스탈린주의적 탄압을 약속한다. 놀랍지도 않게, 이 “오직 부정적인 결과만 낳는” 제안은 대만의 대중들을 재통일로 획득하기 위하여 한 것이 거의 없다.
중국공산당의 플랜 B는 직접적인 군사개입인데, 이것은 타이완 재통일에 있어서 잠재적으로 성공적일 수는 있겠지만, 특히 만약 지역 노동계급으로부터의 강한 반대에 직면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만약 중국공산당이 이 길을 가야 한다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대만 자본가들과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인민해방군을 방어할 것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전략을 위해서 그렇게 싸울 것이다. “일국양제”라는 파산당한 계획에 반대하여,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혁명적 재통일”을 위하여, 즉 대만에서 자본주의에 맞서는 사회혁명과 본토에서 관료세력에 맞서는 정치혁명을 통한 재통일을 위하여 투쟁한다. 이 전략은 공통의 계급적, 그리고 민족적 이해관계 주변으로 중국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것이다. 이것은 미국과 대만 부르주아지 계급 사이의 반공산주의 동맹을 침식할 뿐만 아니라 중국을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전세계의 피억압 인민들의 봉화로 바꿀 것이다.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계속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선언하지만,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될 사례라고 믿지 말아야만 한다. 국가통제의 어떠한 흔적이라도 버리고 다시 한번 제국주의 약탈에 중국을 열고 싶어하는 중국과 외국의 자본주의자들과 연계된 강력한 세력들이 있다. 그러한 결과에 대해서는 사력을 다해 싸워야만 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불만의 압력이라는 조건에서, 자본주의자들을 강력하게 탄압하고 전통적 모택동주의의 반제국주의와 평등주의 수사를 다시 꺼내면서 당을 왼쪽으로 멀리 옮길 수도 있는 지배계층 내부의 흐름들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등소평의 시장개혁들과 마찬가지로, 광란적인 대중동원에 기초한 평등주의적 경제자립을 위한 모택동의 시도들은 중국에 대한 세계 제국주의의 경제적 목조르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실제로, 모택동의 정책들이라는 재앙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을 붕괴의 벼랑으로 내몰았고, 중국공산당의 “개혁과 개방”으로의 이동으로 직접적으로 귀결되었다.
중국공산당의 우여곡절은 기생적 관료계층이 고립된 노동자국가라는 한계 내에서 자신들의 특권화된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단지 다른 방책들을 반영할 분이다. 모택동으로부터 시진핑까지 중국공산당의 주장들과는 반대로, 사회주의는 일국 내에서는 건설될 수도 없고, 제국주의와의 평화공존은 가능하지도 않다. 중국 노동계급이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계급적 독립성, 국제주의, 그리고 세계혁명이라는 진정한 맑스 레닌주의적 원칙들에 기초한 당 속에서 단결하여 사리사욕을 도모하는 중국공산당 관료들을 쓸어 없애는 것이다. 관료들을 몰아내라! 제국주의와 반혁명에 맞서 중국을 방어하라!
Ⅵ. 혁명적 지도부를 위한 투쟁
세계가 새로운 역사적인 위기의 시대로 접어드는 가운데, 노동계급은 정치적으로 무장되어있지 않은 채로 있다. 모든 곳에서, 노동계급은 패배에 패배를 주관해온 관료들과 배신자들에 의하여 이끌린다. 거대한 도전이 닥쳐올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진정으로 대변할 노동계급의 지도부들을 건설하는 임무가 가장 긴급하게 제기된다. 어떻게 그런 지도부들을 건설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혁명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중심적인 문제이다. 앞으로 있을 불가피한 사회적 정치적 격변들이 대중들을 현재 그들의 지도자들에 맞서 일어서게 할 것이고, 노동자운동 내에서 급진적 재편들을 위한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의 실패한 정책들을 거부하고 현재의 임무들을 올바르게 제기할 이미 존재하는 혁명적 중핵들 없이는 이 기회들은 탕진될 것이다.
레닌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훈
영구혁명(1929)에서, 트로츠키는 레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된 정치정당을 위한 투쟁이 그의 삶의 중심적 부분을 구성했다.” 모든 수정주의의 새로운 물결이 거부하는 레닌주의의 핵심개념이 바로 이것이다. 시대의 우세한 압력들에 따라서 다른 모습들을 취하지만, 수정주의는 근저에서는 항상 생경한 계급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종속으로 구성된다.
전위정당에 대한 레닌의 개념은 전쟁에 반대한다고 맹세해 온 제2 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 압도적으로 애국심있게 그들 자신의 정부들의 뒤로 줄을 섰던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 그 성숙한 형태를 갖추었다. 전쟁 동안 그의 저작들 속에서, 레닌은 이 역사적 배신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상승하던 제국주의라는 앞선 시대에 의하여 준비되었고 뿌리를 내렸는지를 보여주었다. 소수의 열강들에 의한 셀수없이 많은 인민들에 대한 착취가 초(超)이윤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노동계급의 상층부들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사용된다. 그 습성들, 이데올로기, 그리고 목적들에서, 이 층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맞서 부르주아지 계급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대부분의 사회민주당의 완전한 굴종은 노동자운동 내에 있는 친자본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인 것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인터내셔널의 혁명적 세력이었던 다수를 마비시키거나 끌어들였음을 보여주었다.
이 경험으로부터, 레닌은 노동자운동의 친자본주의 인자들과의 통합은 자본가계급 그 자체에 대한 정치적 종속을 의미하며,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배신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의 화력의 대부분이 노동자운동 내에 있는 중도주의자들을 향했는데, 이들은 사회주의의 원칙들을 공공연하게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에 대한 공공연한 배신자들과의 통합을 기어코 유지하려고 애썼다. 레닌은 중도주의자들이 대중들을 혁명의 길로 지도할 수 있는 정당 건설에 대한 주요한 장애물로 나섰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는 이 교훈이 성공적인 10월 혁명에 결정적이었던 반면, 독일에서는 제때에 이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것이 1919년 스파르타키스트 봉기의 패배로 이어졌다. 전쟁과 혁명의 잿더미들로부터, 혁명을 위하여 투쟁함을 주장하는 모든 정당은 노동자운동의 친자본주의자들 그리고 중도주의 세력들로부터 정치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분리해야만 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제3 인터내셔널이 창립되었다.
전후 혁명적 파도들이 잠잠해지면서, 자본주의 안정화의 시대가 뒤따랐는데, 이것이 소련을 세계의 현장에서 고립된 채 버려두었다. 레닌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거부하면서 스탈린주의가 부상했던 것이 이 맥락에서이다. 소련을 방어하기 위하여 국제 노동계급에 의한 혁명의 확장에 의지하기보다, 스탈린은 다른 계급 세력들에 점점 더 의존했다. 그것이 쿨락들이었건, 중국의 국민당이었건, 영국의 노동조합 관료집단이나 제국주의자들 그 자신들이건 간에, 스탈린은 소위 단기간의 이점들을 위하여 노동계급의 장기적 이해관계를 희생시켰던 협정들을 맺었다. 이것은 소련을 강화하기는 커녕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총체적 지위를 침식하면서 차례차례 유혈참사로 이어졌다.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와 새로운 제4 인터내셔널을 위한 투쟁은 그것이 노동자운동 내에 있는 사회민주적 그리고 스탈린주의적 경향들에 맞서 국제 전위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었다는 것 때문에 레닌주의의 연속이었다. 트로츠키 자신을 포함하여 제4 인터내셔널 중핵들의 육체적 절멸이 정치적 방침상실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학살에 뒤이은 혁명적 기회들에서의 패배로 이어졌다. 그 결과는 스탈린주의와 세계 제국주의의 강화였다. 소련 자체의 파괴에 이르기까지의 더 한 재앙적 좌절들로 귀결되었던 것이 그때 이래의 제4 인터내셔널을 재건하는 것에서의 이 역사적 패배들과 실패였다.
소비에트 이후 시대: “맑스주의자들”이 자유주의로 투항한다
소련에서 반혁명의 시기에, 트로츠키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던 세력들은 압도적으로 가만히 있으면서 10월 혁명의 남아있던 성취들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응원했다. ICL은 소련의 방어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 맞서는 정치혁명이라는 트로츠키의 강령을 위한 투쟁에서 홀로였다. 작은 규모와 정치적 허약함들에도 불구하고(“영구혁명을 방어하기 위하여”, 스파르타시스트 68호 영어판, 2023년 9월), ICL은 시대의 결정적인 시험에 직면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ICL의 허약함과 고립은 새로운 역사적 시대의 새벽에 혁명적 좌익의 비참한 상태에 관하여 많은 것을 말해준다.
소련 붕괴의 결과들은 맑스주의자임을 주장하는 모든 자들에게 대단히 파괴적이었다. 세계의 우익으로의 - 보나파르티즘이나 파시즘으로가 아니라 자유주의로의 - 가파른 이동은 조직적 그리고 정치적 청산주의를 향한 엄청난 압력을 만들어냈다. 세계정세의 이러한 전환이라는 상황에서, 맑스주의자들의 임무는 최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패배들의 교훈들과 자유주의에 대한 정치적 반대에 기초한 혁명적 노동계급 전위를 천천히 인내심있게 재건하는 것이었다. ICL은 소련 붕괴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맑스주의” 좌익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에 대한 혁명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을 거부했다 (“소비에트 이후 시대 ICL의 수정주의”, 스파르타시스트 68호 영어판, 2023년 9월).
자유주의에 적응하고 독립적인 노동계급 전진의 길을 계획하기 위하여 싸우지 않음으로써, “맑스주의” 좌익은 새로운 시대의 안정과 상대적 번영에 직면하여 나침반이 없는 채였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맑스주의” 좌익은 위기 퍼뜨리기와 제국주의가 그것의 반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특정 잔혹행위들이나 반동정책들을 지적하는 것에 의존했다. 이러한 것은 겨우 지배적인 자유주의와 딱 들어맞았는데, 지배적인 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의 확장을 통한 세계에 대한 “평화적” 착취라는 맥락에서 전쟁과 인종주의와 같은 “과도함”을 억제하고 싶어하는 비평가들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소비에트 이후 시대의 전쟁들, 긴축정책, 그리고 민족적, 인종적 억압은 물론 노동자들과 청년들이 들고 일어서기 위한 토대들이었다. 그러나 이 들고 일어섬이 혁명적 내용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 다양한 투쟁들을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 지도부가 어떻게 그 투쟁들을 전진시키는 것에 대한 장애물이었는지를 폭로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정당한 반란의 감정과 이 재앙들을 초래하는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충성 사이의 모순들을 격화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 운동들을 그것들의 자유주의 지도부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임무였다. 그러나 소위 맑스주의 조직들 누구도 이것을 당면과제로 정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는 커녕, “혁명가들”은 실제로는 부르주아지 운동들이었던 것에 약간의 맑스주의적 색채를 제공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태에 대한 자유주의적 반대의 파도 각각에 스스로를 달라 붙였다.
더 우익적인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은 자신들의 맑스주의적 허세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그것이 녹색당들이건, 미국의 민주당이건, 영국의 노동당이건, 혹은 브라질의 PT이건 간에 신자유주의의 좌익을 건설했다. 제4 인터내셔널인 척하는 프랑스의 어니스트 만델 추종자들은 공언된 목표가 더 이상 노동계급 혁명이 아니라 단순히 “온화한 사회적 자유주의에 대한 전략적 대안”(Daniel Bensaid)을 창출하는 것이었던 무정형의 반자본주의 신당으로 대체하면서 그들의 혁명적 공산주의동맹을 청산했다. 다른 자들은 최악의 종파주의 속으로 숨었다. 세계 사회주의 웹사이트로 알려진 데이비드 노드 추종자들은 세계화의 시대에 노동조합들은 “단순히 국제적으로 조직된 기업들에 진지하게 도전할 능력이 없다”고, 그래서 노동조합들은 완전히 반동적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들의 모든 급진적 장황함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이 반노동조합 입장은 노동조합의 자유주의 지도부를 도전받지 않도록 내버려 둘뿐이다.
ICL과 국제주의자 그룹(IG)와 같은 보다 중도주의 그룹들은 계속해서 혁명적 지도부의 필요성과 “개량주의와의 결별”을 일반적으로 선언했지만, 이것을 그 새로운 시대에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것에 있어서 주요한 정치적 임무인 자유주의로부터 좌익을 분리할 필요성으로부터 분리했다. 필연적으로, 나머지 좌익 (그리고 서로간)에 대한 ICL과 IG의 논박들은 혁명적 노선들을 따라 계급투쟁을 지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원칙들과 추상적인 용어에 기초했다.
30년 동안의 방침상실과 자유주의에 대한 굴종의 결과는 자명하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오늘날, 혁명을 견지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조직들은 노동계급 투쟁의 경로에 영향력을 거의 가지지 않은 채 분열되어 있고, 약하며, (글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경화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십 년 동안 성공적으로 활동해오지 못했던 그 똑같은 틀에 갇혀 있는 채로 있다.
오늘날 제4 인터내셔널을 위한 투쟁
오늘날 혁명을 위한 투쟁은 시대의 핵심적인 성격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에 기초해야만 한다. 미국 제국주의는 지배적인 열강으로 남아있고, 미국이 건설해 온 세계질서가 계속해서 세계정치를 정의하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는 경쟁 제국주의 열강들의 공격적인 상승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인 중국과 어느 정도의 자주성을 가지지만 세계 제국주의에 의존적이고 억압받는 채로 남아있는 지역 열강들에 유리한, 모든 제국주의 나라들의 경제적 군사적 무게감의 상대적 상실에 의하여 도전받고 있다. 현재의 동역학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된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성과 잠재적으로 재앙적인 국제적 중요성을 가지는 지역분쟁들 (우크라이나, 대만 등)을 가리킨다. 세계질서에 대한 압력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각각의 나라들 내부의 내부적 압력들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가 주도권을 재확보하기 위한 가장 깔끔한 방법은 중국에 큰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관료집단은 세계 제국주의, 성장하는 자본가계급,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중국 내부에서 엄청난 모순들을 키워왔다. 소비에트 이후 평형의 와해가 이 모순들을 악화시킬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장악력은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봉쇄들에 맞서는 작지만 의미있는 항의들에서 보이듯이) 특히 내부적 불안에 직면해서는 밖에서 보이는 것처럼 견고하지 않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경제적 조건들이 개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수세적으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자본가들도 관료집단에 의하여 쥐어짜지는 것을 수세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침내, 중국은 소련처럼 반혁명에 쓰러지거나, 프롤레타리아트가 들고 일어서 정치혁명을 통해 관료집단을 쓸어 없애고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를 수립할 것이다. 언제 이것이 결정될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다. 반혁명분자들과 노동계급의 불만 모두를 강력하게 탄압하는 관료집단에 의한 거친 지그재그 행보들이 모든 마지막 결투에 앞서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중국과 관련하여 혁명가들의 임무는 반혁명과 제국주의적 공세에 맞서 1949년 혁명의 성취들을 방어하는 한편으로 관료집단이 국제혁명을 위한 투쟁을 배신함으로써 어떻게 이들 성과를 매번 침식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질서에 대한 그들의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과 미국의 제국주의 동맹들에 의한 투쟁은 그들의 국내 인민들에게 계속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을 수반할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사회구조가 이미 내부로부터 썩고 있다. 생활수준이 붕괴되면서, 이자율 낮은 대출, 독점이윤들 그리고 투기 거품들에 의하여 유지되는 균형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수많은 서구 나라들이 노동계급 안에서 증가하는 불만의 지표들을 보여주어 왔다. 프랑스가 가장 폭발적이었지만,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들조차 노동조합 투쟁에서의 상승을 목격해왔다.
이 투쟁들의 첫번째 파도들은 패배하고 있는 반면, 조합원들에 대한 압력은 상승만 하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어떠한 문제도 현상에 대한 일시적인 조정을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이것이 노동계급을 혁명적 투쟁의 길로 지도할 수 있는 노동조합 지도부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제기할 것이다. 이 발전을 무디게 하는 주요 장애물은 혁명적 강령에 기초한 반대파들을 건설하기는 커녕 아주 조금 더 좌익적인 그러나 친자본주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지지하는 소위 ‘혁명가들’이다. 그러한 중도주의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만 오직 노동조합들을 그들의 현재 친자본주의 지도부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위협들이 축적되면서, 자유주의는 어느 때보다 더 과격하고 신경질적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필사적으로 현상에 매달리는 자유주의적 소부르주아지 계급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증가하는 우익 반동에 직면한 피억압 인민들 사이의 정당한 두려움을 반영하기도 한다. 서구에 있는 혁명가들은 상승하는 반동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이주자들, 인종적 소수계들, 그리고 여성과 기타 성적으로 억압받는 인민들을 방어하는 운동들에 족쇄를 채우는 자유주의와 분리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경찰개혁이나 국가에 대한 호소들과 같은 자신들의 강령들의 특정한 고립된 요소들에 대한 맑스주의처럼 들리는 비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유주의가 어떻게 피억압 인민들의 투쟁들을 전진시키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장애물이라는 것임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만 오직 대중들에 대한 자유주의의 장악력이 깨질 수 있다. 이것은 투쟁의 옆선으로부터가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적 압제의 경우에 대한 계급투쟁적 반응을 제공함으로써 투쟁 내부로부터만 이루어질 수 있다.
쇠퇴하는 세계질서의 충격들이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나라들을 가장 강하게 칠 것이다.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닌 것 같았던 더 나은 삶이라는 전망이 이제 수억 명의 인민들에게 닫혀가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 있는 새로운 노동계급의 층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을 대변한다. 제국주의에 억압당하는 나라들의 대중들은 점점 더 촌락들이라는 고립을 떠나 도시화 되어왔고,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왔으며, 세계와 연결되어 왔다. 세계생산에서 그들의 증가하는 역할은 그들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지만, 그들의 유일한 전망은 더 심한 궁핍화이다. 포퓰리스트 세력들을 전면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커가는 불만의 큰 파도이다. 이 나라들의 허약한 자본가계급들은 자신들을 쓸어 없애려고 위협하는 아래로부터의 압력과 국제적인 자본 흐름들을 통제하는 그들을 부리는 제국주의자들의 압력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만 한다. 좌익적 악선전과 종교적 반계몽주의는 사회적 불만에 관한 뚜껑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효과적이었음이 지금까지는 증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했을 때, 군사독재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제국주의에 의하여 억압당하는 나라들에서, 열강들의 손아귀로부터의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과 다른 대부분의 기초적인 민주주의적 임무들의 해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투쟁들이 격화될수록, 민족 부르주아지 계급들은 사적소유의 재단에 민족해방과 노동계급과 농민 해방을 희생시키면서 배신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매 단계에서 폭로될 것이다. 혁명가들은 그 싸움에 개입해야 하고, 각각의 단계에서 어떻게 모든 피억압인민들의 선두에 있는 노동계급만이 해방으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도, 권위주의 혹은 반계몽주의 정부들에 대한 투쟁은 가장 작은 양보 혹은 친제국주의적 자유주의적 근대화 대안세력들과의 동맹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단지 민주주의적 개혁을 위한 세력들을 제국주의에 결박시키면서 반동을 강화하게 될 뿐이다. 부르주아지 계급이 “반제국주의” 좌익의 색을 스스로에게 칠하는 나라들에서, 제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앞으로 밀어붙임으로써 그들의 거짓 위선들을 폭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떠한 것도 옆에 비켜서 있으면서 혁명을 설교하는 것보다 더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일 수는 없다.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타격을 가하는 어떠한 개혁들이라도 방어하는 것은 의무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단코 부르주아지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것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노동계급은 자신이 자기 자신의 방책들과 목적들, 즉 혁명적 계급투쟁의 그것들을 가지고 제국주의와 투쟁함을 항상 분명히 하면서 기어코 자신의 독립성을 방어해야만 한다.
오늘날 국제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세력들은 극소수이다. 명확한 강령과 관점에 입각한 재편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제4 인터내셔널을 위해 투쟁하는 세력들을 재건하고 재편하는 과정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이 문서를 제출한다. ICL은 내부적인 논란과 정치적 방침상실의 수렁에 빠져있었지만, ICL이 시작한 강화의 과정이 다가올 사회적 격변과 충돌의 시대에 ICL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부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전진한다. 트로츠키가 아래와 같이 설명한 바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