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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30호>희망광장의 봄은 다시 시작된다

정리해고제도와 비정규법 폐기라는
희망광장의 목표
정리해고로 관계가 파괴되고, 잔인한 국가폭력에 의해 ‘함께 살자’는 소박한 외침이 좌절되는 순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많은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정리해고의 요건은 98년 이후 계속 완화되어 손쉽게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되다보니, 기업들은 KEC처럼 노조를 무너뜨리려고, 콜트-콜텍에서처럼 공장을 해외이전하려고, 풍산마이크로텍처럼 땅장사를 하려고 정리해고를 저지르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려 죽음을 생각하는데, 사장들은 공장을 이전하고 매출도 늘어 떵떵거린다. 이 기막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투쟁을 했던 노동자들은 용역폭력과 법제도의 폭력에 시들고 있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이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애써 맺은 단체협약도 부인되고, 조합원만 골라서 해고당했는데도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는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어떠한가? 대법원은 불법파견에 대해 묵시적 계약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파견법에 의거 불법파견으로 2년 이상 일한 자들만을 정규직으로 인정해버렸다. 이런 판결을 뛰어넘어 전체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한 노동자들은 사측의 폭력에 시달렸고 징계해고 당했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99% 희망광장’에는 이런 노동자들이 모였다. 3월 10일부터 31일까지 정리해고·비정규직 투쟁사업장 60명이 시청광장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했다. 더 이상 한 사업장의 문제 해결만으로는 이러한 억울함과 폭력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 정리해고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가 모든 노동자의 문제라고 생각한 이들이 모였다. 자기 사업장의 현안 해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문제를 양산하는 비정규법과 정리해고제도에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너무 거창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법과 제도와 언론과 경찰권력이 노동자들의 입을 막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지금, 정리해고제와 비정규법 폐기를 수면 위로 올려보자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성을 보았다. 이미 90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한해 10만 명이 넘는 정리해고자들이 있다. 열심히 일하고도 길거리로 밀려난 이들의 분노와 불만은 이미 폭발 직전이다.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아직 숨죽이고 있지만, 방향이 명확하고 용감하게 나서는 이들이 조금씩 많아진다면 이 힘이 거대한 폭풍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자본가들과 정부는 이 투쟁이 가져올 폭발력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참으로 가혹할 만큼 탄압을 했다. 1인시위도 가로막히고, 꽃분홍색 조끼를 입고는 길거리를 지날 수 없다는 이유로 여러번 불법감금도 당했다. 기자회견에도 해산명령이 내려지고 청와대에 민원서류를 접수하러 가는 길도 번번이 가로막혔다. 쌍용자동차 진압을 잘 한 일이라고 떠드는 경찰에 항의하다가 6명이 연행되고, 청와대에 민원서류 접수하러 가다가 7명이 연행되고, 심지어는 광화문에서, 그리고 문화제를 하다가 3명이 더 연행되었다. 남대문서, 종로서, 서대문경찰서에서 참여자들에게 소환장을 날리고 협박도 가했다.
이 거대한 무력 앞에 때로는 무기력했다. 한걸음을 떼기조차 어려운 조건에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하게 선전을 하지 못했다. 광장을 열면서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해주기를 원했지만 충분하게 선전도 되지 못했고, 핵안보정상회의로 서슬퍼런 공권력의 압력 때문에 다른 이들이 광장에 들어오기도 어려웠다. 너무나 춥고 바람도 많이 불고 때로는 눈보라도 날렸다. 언론은 총선에만 관심을 둘 뿐,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에게 무관심했다. 때로는 우리끼리만 투쟁하는 것 아닌가 하여 많이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희망광장 토론회를 하면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더 잘 알게 되고, 문화인들이나 종교인들과 함께하면서 위안을 얻었고 ‘길, 그 끝에 서서’를 함께 부르고 춤추며 하나가 되었다. 연행된 이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치열하게 싸우면서 신뢰를 쌓았다. 종이봉투를 쓰고 강남지역을 선전하는 ‘봉투단’과 플래시몹 등 아이디어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알리면서 열의있는 모습에 감탄도 했다. 희망광장에 참여한 이들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아꼈다. 연대의 정이 깊어졌고, 이제 모두가 함께 투쟁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함께 투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희망광장을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된 가장 중요한 성과이다.

더 많은 이들을 만나
새로운 희망광장을 열 것이다
이제 시청에서의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서슬퍼런 핵안보정상회의 기간도 견뎌내면서 어렵게 쟁취한 시청 땅 한 편은 정리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우선 투쟁하는 이들을 더 많이 만날 것이다.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로 고통받는 100여개 투쟁사업장 동지들을 만나, 그 동지들과 더불어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사업장 현안으로부터 전체의 과제로 나아가기 위해서 서로를 설득할 것이다. 그렇게 투쟁하는 이들 모두가 만나서 다시 광장을 열 것이다.
아직 정리해고제도와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이 충분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직 숨죽이고 있는 무수히 많은 비정규직과 해고노동자들을 충분하게 모으지 못하고 있다. 다시 시작하는 희망광장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텐트를 짊어지고 함께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알리고 공간을 활짝 열 것이다. 그리고 정리해고제도와 비정규직법에 대해서 정치권이 분명하게 폐기의 입장을 낼 수 있도록 압박하는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법을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의 요구를 갖고 8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파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투쟁하는 이들이 먼저 나설 것이다. 이제 봄이다. 투쟁하는 이들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의 봄도 오고 있다.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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