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from 너에게독백 2005/02/03 17:46

산오리 ,알엠, 스머프님의 글과 그 덧글들을 읽다가 오만 잡생각이 다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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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고등학교 동창 남자 녀석이 전화를 했다.
보통 밤12시가 암묵적인 통금시간이기 때문에 나는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 처럼 종종 걸음을 처서 집앞 엘리베이터에 당도 했을 때였다. 

이 녀석 술취한 목소리다.
"어디냐?"
"응. 집앞"
" 나와라 한잔하자"

나랑 같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일년에 두세번 정도 만나서 술을 먹고는 했었다. 그리고 종종 밤늦게 메신저에서 , 전화를 해서, 포장 마차에서 한잔하자고 나오라고 하곤했다. 나는 부모님한테 혼나기 때문에 못나간다고 언제나 거절했다.
그냥 저냥 넘어가곤했는데 이번에는 술에 취해서였는지 끈질겼다.
" 안돼. 지금이 몇신데? 나 죽어."
어쩌고 저쩌고 실갱이를 하다가 이놈이 대뜸 이런다.
"비겁한 놈"
"뭐라고?"
"솔직히 니가 용기가 없어서 그렇지. 부모가 뭐라고 그렇게 절절매냐. 비겁한거지."
나는 그 순간 확 스팀을 받았다.
"야이새꺄 뭐라고? 비겁해? 허? 비겁해? 알았다.
너이새끼 이제부터 전화하지마. 너 다시는 안본다 새끼야." 소리는 지르지 않았고, 약간 부들부들 대면서 퍼부어줬다. 그리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음날 전화가 왔다. 그녀석이다.
"여보세요."(왠지 목이 왈칵했다)
"뭐하냐?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능청스러운 목소리.)
"왜 전화했어!"

"어제 내가 너한테 전화 했었더라"

"어어. 기억이 안나신다? 니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나신다?"
"응."
난 아직도 안믿는다. 기억하고 있다 이자식. 대화가 잘 생각이 안나서 재현을 할수 없지만 그런 말을 흘렸다. 그냥 저냥 나는 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짧게 말했고. 문제가 뭔지 알겠냐고 물었다.

"미안하다"

"야. 넌 말야. 마초새끼야!"

"(능청맞게 웃으며) 미안해."

나는 전화를 끊었고. 이후에도 아주 가끔 그 친구를 만난다.

왜 이렇게 화가 심하게 났었는지는 잘 설명을 못하겠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럴법한것을 이야기 해보자면..

12시는 내가 대학 1학년때 아버지한테 뺨맞아가면서 얻어낸 나름의 투쟁의 성과물이었다.
내 남동생은 전화 한 통 없이 새벽에 들어오고, 새벽에 술먹으러 나간다.
나는 대학 다니는 5년동안 차근차근 나의 활동시간을 늘여갔다.
외박을 하기 위해서 무수한 거짓말을 첬다. MT ,시험 공부, 과제물..이것도 너무 자주하면 화를 부를까봐 다이어리에 체크하면서 해갔다. 처음에는 한달에 1번 할까 말까. 그리고 어느새 보니 일주일에 1번씩...처음에는 애걸 복걸해서 허락을 받던것이 이제는 엄마말대로 통보가 되었다.

누가 나보러 비겁하다고 한단말인가.
실은 엄청 폼은 안나는 저항이고, 투쟁이다. 부모님을 기만하는것이기도하고. 물론 사이사이 소리지르고 울고 불고 싸운다. 그치만 그걸 매일 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가 정부도 아니고 자본도 아닌데, 그분들의 방식에는 나름의 당위가 있어서 막무가내로 꺽어봤자 꺽이지도 않는다. 그냥 포기하고 인정하는 부분을 만들고 그게 생활이되면 자신들도 모르게 내 의견에 동의 하시는 부분이 커지는 것 같다.

이런 시시 껍절한걸 계산하고 일일이 싸워야 쟁취해야 하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자식이 너무 당연하게 이야기 해서 열이 받쳤던거 같다. 그래 네 말이 사실 맞다. 내가 용기를 내서 부모님을 설득한다면 되는거다. 나이가 몇갠데, 아직도 부모가 내 귀가 시간을 통제한단말인가. 그런데 열받는다. 나는 투쟁한다. 그런데 너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너는 무슨 투쟁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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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지하철 승강장에서 술취한 아저씨 두명이 큰소리로 떠들면서 내옆에 섰다. 정확히는 한 사람이 떠들었고 술에 취했다. 그 아저씨는 술에 취하면 설교하는 타입인거 같았는데, 다른 한 아저씨를 향해서 설교중이었다. " 야 이사람아. 기브앤 테이크야. 주는게 있어야지 받는게 있다고.응 알겠어? "로 시작해서..내가 알아들은 소리만 옮겨 보자면..
니가 회사에 해주는게 있어야 너도 불만을 이야기할수있고. 권리를 이야기 할수 있다는거지. 조직은 3배수여야해.3배수 알어? 니가 300원 해줘야 100원 준다고. 니가 능력이 있어야지. 어쩌구 저쩌구..
그니까 직장 상사인듯한 아저씨가 부하직원인 아저씨한테 혹은 같은 회사 상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나가는 아저씨가 술자리에서 직장생활에서 고충을 이야기한 잘 안나가는 아저씨한테 설교하는 중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잘하는건데, 우리 이모부는 노가다 목수인데, 아빠는 이사람만 보면 술먹으면서 인간이 노력을 해야지 맨날 불평만하면 안되는거다. 알았냐 이사람아 하면서 설교를 늘어 놓는다.

쓰고 보니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일을 생각하다 보니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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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월은 우리엄마 노동강도가 평소의 10배쯤 높아지는 달이다. 할머니 생신, 그리고 3일뒤에 할아버지 생신 그리고 1주일 뒤에 구정 그리고 또 일주일쯤 뒤에 증조 할머니 제사 또 제사...이미 할아버지 생신까지 하고 앓아 누웠다. 할아버지 생신 잔치후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차안에서 타박을 한다.
"이제는 아주 그냥 일반 집에서 먹듯이 차리는구만. 돈도 하나도 안들이고."
우리엄마는 집안 시끄러워질까봐 참고, 변명한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서 큰 헛기침을 하면서 꿍시렁거린다. 아빠도 눈치가 있어서 이내 조용해 진다. (내가 여러번 지랄지랄해서, 아빠는 나를 약간 무서워한다. 부부싸움을 하면 엄마가 나한테 전화해서 일찍 들어오라고 할 정도니..)

엄마가 시댁, 아빠 욕을 나를 앉혀 놓고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들이 받어. 싸워. 할머니 집에 가지마. 김치도 해주지마."
엄마는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큰 명절이 있으면 엄마는 아프다. 엄마가 아프다 하면
나, 아빠, 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누워있어. 일하지마. 약먹어. 병원가"

아주 가끔 아주 가끔 나는 못내 설겆이를 하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화내고, 청소를 한다. (그런데 나도 이런거 고작해도 몸이 후들후들 떨리기 때문에 ..-_-; 엄마가 쫒아 다니면서 그만하라고 한다.)

아무도 근본적인 해결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로지 엄마 몫인것 처럼.
아무도 같이 싸워주지는 않는다. 나도. 이렇게 입바른 소리만 해댈밖에. 그리고 '도와주는' 정도 밖에. 나는 엄마 처럼 살지는 않겠지만 엄마 삶이 잘못되었다고, 당신은 싸웠어야 한다고 말은 못하겠다. 엄마도 나름대로 싸우고 있고, 상처 투성이다.



내가 예민하다는걸 인식한 순간 나는 이미 싸움을 시작한거다. 아무런 소리를 못낼때도 있고 실패할때도 있고, 지치거나 게으름을 피울때도 있지만. 싸움은 시작된거다.
(그나저나 예민하다는 말 너무 많이 써서 지겹다. ㅎㅎ 그래도 그말이 희화되지 않기를.)




p.s 이번 설날에는 같이 싸워보겠다고 '두렵지만' 결심한다.
설날이 지나도 아무런 이야기가 안올라오면 달군이 도망쳤구나 하고 말아주시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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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3 17:46 2005/02/03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