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와 다수

from 너에게독백 2005/05/23 21:13
개울님의 '남자친구 있어요'를 보다가 생각난것을 언제나 처럼 두서없이 끄적여본다.

# 남자친구 있어요?
예전에 여성학 관련 수업을 들을때, 끼리끼리(현재 한국레즈비언상담소) 간사분이 오셔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워낙 재미있게 말씀을하시는 데다가, 무겁게만 느껴지고 조심스러워하게 되는 성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특유의 가벼움으로 전환시켜서 이야기하시는 분이라서인상에 남아있다.오히려 그 가벼움 앞에서 청중들이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몰라하던 그 어색한 웃음과 표정이 유쾌해 질 정도였으니까.
그분이 어디선가 아르바이트를 할때 같이 일하던 분들은 언제나  "남자친구있어요?"하고 묻곤했단다. 그래서 뭐사실대로(?)"없다"고 무심히 대답하곤 했는데, 어느날 같이 일하게된 여자분이"애인있어요?"하고 물어보는데,눈물이 날만큼고마웠다고 웃으면서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다.(눈물까지는 아니었나?? 내 기억은 그리 정확하지못해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지모르겠지만 대강 맥락만 이해해 주길)

# 넌 어쩌다 이성애자가 되었니?
우리학교에서 있었던 최초의레즈비언문화제 슬로건이다. 흔히 동성애자에게"너 어쩌다 그렇게 됐냐?" 하고 묻는 질문을 비꼰 슬로건이었는데. 그때 당시학교에서 온갖 호러스러운 일을 목격 했다. 문화제 관련 자보와 포스터에는 다음날 "그게정상이니까"라는답변들이 친절히 붙어있더라.그리고 관련 자치단위 방에는 기름이 뿌려지고 - 혹자는성유라고하던데..-  포스터는 떼어지고 플랜카드는 칼로 난도질당했다. 한친구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명의 위협을느낀다고 매일 무서운 망상에 시달린다고진지하게 이야기 했었다. 앞서의 이야기랑다른 이야기이기도하고, 아주 같은 이야기이기도한 이야기가 아닐까. (개울님 글에 정상 비정상 어쩌고 하는"객관적인"체하는 덧글이조금 있던데 나는 무섭더라.사실 이제는좀웃기기도 했지만;)

# 착각
사실 '남자친구있어요?'는 내가 주로생활하던 작은 사회권내에서는"뻘타"수준으로 대학에 들어와서 어떤 누구도 그렇게 질문하는것 을 본적이 없다. 물론 1학년때 선배가"애인이랑약속있다"는 둥의 표현을 하는 것을 보고 "엑 저사람 왜저래?"하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여성에게 남자친구있냐는 표현이 상대를 이성애자로 전제한 후에 나오는 이성애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거라는것을"배운"후에는 "애인"이라는 말이 전혀낯설지않았다."애인이 있냐?"  "연애 하냐?"라는 말이 당연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남자친구있냐는것이 "보통"의 질문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아주 잊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것은 잘못이 아니다. (알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도 차버리는게 곤란하고 알고도 그러는게 나쁜거다) 나는 그것을 가끔 잊고 당황하곤하지만. 아무튼 개울님의 글과 덧글을 읽다가 내가 아주작디 우물속에 살고 있는게 확실하구나하고 느껴진다.

#다수와 소수
나는  나이도 어리고 아시아의 분단 국가에 살고 있고 백인도 아니고 가난하고 노동자이며 심지어 여성이지만, 대졸 학력에이주노동자가 아니고 비장애인이다. 그리고정규직이다 (;;) 그리고 성을 판매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조건에 있는여성이다.나는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이며 피억압자의 위치에 있지만, 또 어떤 맥락에서는 다수자로 볼 수 있다.

솔직히요즘도 어떤 사람이 어떤 학교를 나왔는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거나 우월의식을 갖기도 한다.아직도 난 지체장애인을집회의 자리에서 혹은 토론회의 자리에서 마주치면 눈을마주치지 못한다. 그들의 장애를 과도하게 의식하고 어떤태도를취해야 할지몰라서움츠러 드는것이다. 이럴때 내 태도는 내가그렇게싫어하는 좀 진보적이다 하는 남성들이 여성주의적 주제 앞에서 마냥 침묵하면서중간이라도 가려고 하는 태도와 똑 닮았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앞에서 느릿느릿 걸어대면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곤 한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고의적으로 앞사람 신발 뒤축을 밟기도 한다.-_- 이럴때보면 나는 정신이이상한거 같다)그러다 퍼뜩 드는 생각이 앞사람이 장애인이라면,그리고 상대적으로늦게 걸을수 밖에 없는상황이라면?

# ...
아주 자주 의도적으로든 의도가 전혀 없었든 간에 어떤 집단이나 개인을 차별하거나 가해하게 된다. 아니사실 나는의도가 없이 행위가 성립할지는 의문이다. 차별하려는 고의적인 의도는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더라도 차별하는 마음,우열짓는마음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감하게 , 의도없이 맥락도 인지 못하고 차별하는게아닐까 ..

자신이자신과 자신 아닌것을 나누고 좋고 나쁨, 우월한것과 열등한것으로 나누고 그것을 근거로 혹은 자신이"정상 혹은 보통 혹은평균"이라는 근거에서 만들어진  "상식"의 이름으로  타인을 억압하거나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하루에도수백번씩 일어날 것이다. 자각하든 못하든. (지하철에서 멀뚱하니 앉아서 사람들 얼굴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마음에 자연스럽게떠오르는 인물평가들을 생각해보라.적어도 나는 수백번은 그짓을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 비판을 받거나 지적을받으면 자신이"억압자"가되었다는 생각에 괴롭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다그런것은 아니다" "그럴 의도는없었다" 이런 말은할 필요없이 조용히 배우고 반성하고 실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연스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솔직히 토론하면서 배우는것도좋겠다.그렇지만 언제든지 타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한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할것같다. 이런말하면서 자신을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참.부끄러워 진다. 내가 언제 조용히반성했다고 -_-;(이런 자학도 사실아무런 도움이 안되는데 나는 왜이럴까?)

다 쓰고 트랙백 하려니,, -_- 어제보다 훨씬 많은 글들의 물결. 사실 이미 나올 이야기는 다 나온데다가 내가 말하고싶었던 부분은 더 조리있는 말로 정리가 되어있는데.. . 괜히 뒷북치는 것같기도 하고 ^^;;

이 주제에 관련글 모음 포스트가 있어서 거기에 트랙백함.


덧. 괜히썼다는 생각이 갑자기 마구마구 든다.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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