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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야>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야 A Mother Should Be Loved

감독 : 오즈 야스지로

배우 :

장르 : 드라마, 가족영화

상영시간 : 73분

제작년도 : 1934년

국가 : 일본



일본만의 예랴, 돌려돌려 사랑을 말하는 방식.

인내하고 깊이 묻고 그를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가족이라서 용납된다.

알기 때문에 십수년 같이 부대껴와서 그런 깊은 속 못알아주면 미안한거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거기서 사랑이 싹튼다.

핵심은 애잔한 가족사랑, 이정도 되겠다.

 

그런데,

가족도 사회화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핵가족화 단계를 지나 독립된 개인으로 사생활이 강조되는 모던한 지금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돌려 말하거나 알아주길 바라거나 내식대로 합의없이 사랑하면 재수없는 그뿐이다.

집착으로 매도되거나 스스로 결정에 얽매일 뿐이다.

변증법적인 사랑이라던가? 깨지고 터지면서 사랑하는게 상식적이다.

그게 '쿨'하다.

본심 숨기고 오해할 걸 알면서 사랑이라는 면죄부로 장난치면 재수없다.

자기 감추고 낮추고 참고 조화를 위해 위장하고,, 넌더리난다.

지금 그딴식으로 나오면 그걸 애잔하게 무덤까지 갖고 가느냐?

아니다, 어떻게든 터진다.

구조상 부딪히고 깨진다.

현대는 조흘라 돌아가는 사회다. 얽매이다가는 사회 부적응 된다.

전통적으로 가족에 집착하다간 정신병원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장 동의하는 장면은 마지막 자막으로 생략된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그 이전의 온갖 해프닝은 한마디로 시간 낭비였다.

자기 체면과 입장에 대한 쓸데없는 의식내화였다.

그러느니 행동하기 전에 자기 입장에 대해 솔직히 졸라게 얘기했어야 했다.

지가 무슨 카리스마라고 속 깊은 척한다.

동생은 사실을 알았을때 지가 무슨 큰 잘못했다고 질질 짜고 지랄이다.

그럴땐 쫓아가서 한대 패주고 질질짜던가 침튀기면서 함께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영화의 그 상황에서 바로 무릎꿇고 짜대는건 무능력의 증명이다.

개년.

영화 이후 이야기를 가정해 보면 동생은 다시 형의 속깊음에 존경하게 될 것이고

어머니는 그 사건을 계기로 더욱 공고해진 가족의 결속을 대견해하며 원천적인 문제에 대해선 외면할 것이고

주인공은 가출을 반복할 것이다.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일본 전통 가족 문화, 개년.

(주는거 없이 일본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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