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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의제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위한 시론: 제1장

한동백 | 집행위원


1. 보편-특수-개별


과학의 핵심은 탐구 대상으로 되는 사물의 자기 순환적인 내적 전개 양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전개 양상을 사유로 전유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운동에서 일관되게 관철되는 것, 항상 변화하는 것, 경험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상호 관계 그리고 이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의 확장적 재생산 등을 빈틈없이 파악해야 한다. 이를 파악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보편-특수-개별이다. 예를 들어, 파리목에 속하는 모든 곤충이 가지는 보편적인 생체학·해부학적 내용과 구조는, 파리목에서 여러 과가 나뉘어진다고 하더라도 일관되게 관철된다. 그런데 파리목은 한편으로는 그에 속한 과를 포괄하는 하위 분류를 통해서만 규정된다. 과거 파리목의 구기 구조는 흡입형 또는 찌르기형으로만 분류되었으나 추가적인 종 연구된 현재는 다양한 형태의 구기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승인되고 있다. 더 나아가 생태적 특수성과 연관하여 (파리목의 보편성을 구성할) 파리목의 생태적 기능과 역할에 관한 보편적 연관에의 지식 또한 보다 구체화되었다. 이처럼 특수성은 대상의 존재양식의 구체성을 표지한다.

 

어떠한 규정도 절대적으로 고립될 수 없음을 승인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객관적 실재와 개념의 이 세 계기를 이해한다면, 그것들이 상호 규정 및 보완적이며 연속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사고 지반 위에서 특수는 보편의 분지이자, 규정된 보편으로 된다. 이 규정된 보편인 특수는 그것이 전개되어, 자신을 규정하는 분지적 규정성을 확립하고, 이 분지와 관계를 맺을 때 이 특수는 후행하는 보편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렇게 규정된 보편(특수)에서 다시 그것의 분지로 전개되어나가는 것은, 보편의 구체적 내용을 드러내는 과정인 동시에, 보편 그 자체의 의미를 참되게 확립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개별이라고 한다. 개별의 두 계기는 보편과 특수이다. 즉, 보편과 특수의 통일이 개별1이다. 개별은 가장 구체적인 것이며, 모든 생동하는 직관의 현실적 계기이다.

 

실지 생물 분류 체계에서 상위 분류의 구체적 내용은 하위 분류의 내용에 의해 규정되며, 하위 분류를 규정하는 속에서 상위 분류의 내용은 더욱 확고해진다. 더 나아가서, 상위 분류의 내용이 풍부화함에 따라 하위 분류의 일반적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는 객관적인 것과 관계를 맺는, 주관적인 것에서만 실재하는 범주가 아니다. 보편-특수-개별의 전개 운동은 한편으로는 객관적 사물의 기본적인 존재 양식이기도 하며, 오히려 주관적인 범주 상에서의 보편-특수-개별은 이것의 반영이다. 객관적 사물, 즉 존재는 그것이 수많은, 다른 사물과 연관하여 한편으로 자신의 고유한 내용을 지양·보존하고, 또 어떠한 내용은 그 필연적 법칙성에 따라 폐기하며 자신을 전개해 나간다. S. L. 밀러의 유리 실험은 무기물이 다른 사물 규정(열, 전기 에너지)과 연관하여, 그것의 특수로서 유기물로 전개되는 필연적 법칙성이 존재함을 입증하였다. 이는 무기물이 특정한 조건 속에서 유기물로의 전개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용을 드러내 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함으로써 무기물의 질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존재 양식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보편으로의 풍부화한 복귀로서 개별[구체적 보편]이기도 하다. 이후 이어진 S. 폭스의 실험은 간단한 유기물에서 상대적으로 복잡한 유기물로 전개되는 필연적 법칙성이 존재함을 입증하였다. 여기서 간단한 유기물은 이제 보편으로, 상대적으로 복잡한 유기물은 규정된 보편으로서 특수가 된 것이다. 이로써 유기물의 객관적 성질이 드러났는데, 이 내용이 개별이다.

 

특수는 규정된 보편인데, 여기서 특수의 산출은 즉자적 보편의 본성이다. 오로지 보편은 개별로서 현현하며, 이 매개 과정은 전개 운동의 계기가 된다는 것은 수많은, 복잡한 자연현상, 그리고 인간 사회 현상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편-특수-개별이 변증법적으로 상관한다는 이러한 통찰은 헤겔이 제공하였다. 하지만 헤겔은 『논리의 학』에서 절대이념의 자기 운동이라는 관념론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여 보편-특수-개별을 신비적인 개념의 자기 운동2으로 설명하였다. 헤겔의 개념 논리학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범주와 개념은 이념의 절대적 자기 운동이라는 본질 속에서 정립된 그것의 계기이자 산출자로 된다. 그러나 헤겔 체계의 신비주의적 외피를 거둬내고 본다면, 그의 보편-특수-개별 범주 서술은 실로 보편과 특수, 특수와 개별, 개별과 보편 간 관계의 진리를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특수-개별에 대해서 헤겔 체계의 신비주의적 외피를 거둬내는 작업은, 헤겔의 저서에서 단순히 피상적으로 취할 것만 기계적으로 취하고, 버려야 할 것 역시 이리 버리는 방식으로는 발견될 수 없다. 그것은 이론적 구조물의 내용과 형식 및 전체와 부분이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행해지는 형이상학적 및 절충적 방식에 불과하다. 보편-특수-개별에 대한 헤겔의 체계에 내재되어 있는 관념론적 지반은 일부 문장을 제외시키고 만족하는 방향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그의 보편-특수-개별의 내용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관념론적 지반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그것을 유물론적으로 승화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주체성은 주체로서만 존재하고, 인격성은 인격체로서만 존재한다”3는 헤겔의 견해와 관련지으며, 그의 보편자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 바 있다(표시되는 모든 강조는 모두 인용자의 강조):

“헤겔이 국가의 기초인 현실적인 주체들에서 출발하였다면, 그가 신비한 방식으로 국가를 주체화시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 [주체성은 주체로서만 존재하고, 인격성은 인격체로서만 존재한다는; 인용자] 헤겔은 그것들을 그것들의 주어들의 술어들로 파악하지 않고, 이 술어들을 자립시키고 그것들이 그 후에 신비적인 방식으로 주어들로 변하게 만든다. 술어의 실존은 주체이다. 따라서 주체는 주체성 등의 실존이다. 헤겔은 술어들, 객체들을 자립시키지만, 그는 그것들을 그것들의 현실적 자립성, 즉 그것들의 주체로부터 분리시켜 자립시킨다. 그런 후에 거기에서 현실적 주체가 결과로 나타나지만, 이에 반해 우리는 현실적 주체에서 출발하여 이것의 객체화를 고찰해야만 한다.”4

헤겔에 따르면 보편자의 고유한 존재 방식이자, 그 필연적인, 그리고 가장 구체적인 존재 형식은 개별자이다. 이 변증법적으로 타당한 견해로부터 그는 그러나, 추상적으로 사유된 개념의 계기로서 보편자를 『법철학 강의』에서 현실적 범주의 그것들과 등치시킨다. 이 문헌에서 드러난 보편자에 대한 그의 견해는, 국가의 기초인 현실적 주체를 개별의 계기로서 보편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으로 일관된다. 더 나아가 그는 국가를 개별로 상정할 대신, 되려 “주체의 유일한 존재 방식은 주체성”임을 들어, 국가를 술어와의 관계로부터 떼어내어 ‘국가로 표현되는 보편(자)’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실지 보편-특수-개별에 대한 변증법적 관점을 견지한다면 국가는 현실적 주체 총체의 전개 결과인 개별자로서, 그리고 이 현실적 주체는 보편으로 총화되어야만 한다. 즉 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제 계기인 “현실적 주체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이는 항상 사물의 전개 과정에서 선행 보편과 지속적으로 그 규정력을 생성해나가며 또 소멸하는, 변화하는 개별자와 관계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헤겔은 실제적인 존재(주체)에서가 아니라 보편적 규정의 술어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리고 어쨌든 이 규정의 담지자가 여기에 존재해야만 하기에 신비한 이념이 이러한 담지자가 된다. 이것은 이원론인데, 헤겔은 보편자를 현실적 유한자, 즉 실존하고 있는 것, 규정된 것의 현실적 본질로서 고찰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현실적 존재를 무한자의 참된 주체로서 고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

특정한 술어를 추상적인 언술을 통해 보편으로 ’승화‘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주체는 곧 주체성”의 필연적 사례로 헤겔이 언급하는 것은, 헤겔이 보편에 대해 관념론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헤겔은 신적 주체로서 보편을 상정하여, 그것을 “순수하고 완전한 형식 규정”으로서 다룬 바 있다. 이것은 그가 보편-특수-개별의 변증법적 상관을 견지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보편에 대한 전통 형이상학적 관점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모순된 견해 사이에서 ’보편과 상관하지 않는 개별‘은 언제나 등장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는 보편-특수-개별 간 제 관계에 대한 변증법 체계는 한갓 우연적인 체계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헤겔의 한계와 관련지어서 『논리의 학』의 내용을 숙지한다면, 헤겔의 한계를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논리의 학』에서 헤겔의 보편-특수-개별에 대한 혁명적인 통찰을 계승하되, 그가 관념론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엥겔스는 〈실재의 전개라는 양상〉 속에서 보편, 특수, 개별을 이해하였는데, 『자연변증법』에서 이러한 이해 방식이 판단과 관계되어 나타난다:

“모든 형태의 운동은 다른 모든 형태의 운동으로 전화될 수 있고, 전화될 수밖에 없음이 밝혀진다,[보편자; 인용자] … 역학적 운동이 특수한 상황 하에서(마찰을 통하여) 하나의 다른 특수한 운동형태, 즉 열로 이행하는 성질을 보여주었다, … 마찰이 열을 만들어 낸다는 개별화된 사실이 기록된다.”6

모든 형태의 운동은 다른 모든 형태의 운동으로 전화될 수 있으며, 또 전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태는 보편자, 그리고 어떠한 마찰이 열을 만들어 낸다는 사태는 개별자가 된다. 이것의 중항, 즉 매개항은 역학적 운동이 특수한 상활 하에서는 열로 이행한다는 특수자이다. 여기서 보편-특수-개별은 사태가 지니는 내용 규정의 전개 양상으로 간주된다. 개별자는 보편자의 내용을 간직하고 있으며, 보편자는 개별자를 통해서만 현실화된다. 보편자의 실현, 즉 구체적인 관철은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개별자로 나타나며, 그것은 오로지 특수자라는 매개항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보편과 개별, 보편과 특수 간의 관계를 항상성, 불변성, 고립성이 관철되는 유와 종의 종차 관계와 동일시하는 형이상학적 견해사태의 내용 규정을 완전히 사상하고, 형식 규정만이 종차 관계를 통해 그 보편과 특수를 실현한다고 주장하는는 보편-특수-개별을 필연적 전개 양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과정으로서의 모든 사태가 이전 사태의 내용에 근거하여 생성될 수밖에 없음을 승인한다면,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사회적 존재아니면, 이것에 지양되어 있는 자연의 규정력 일반까지 모두 포괄하여의 부단한 자기 전개 과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히스톤 단백질이 빠르게 변형되었다”는 사태의 내용을 이루는 전 측면은 서로 고립된 게 아니라 연관을 이루고 있는데, “빠르게 변형되었다(빠르게 변형된 것-이다)”라는 술어는 필연적으로 단백질과 연관을 이루어서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고, “히스톤 단백질” 역시 서로에 대해 그러한 통일된 관계를 지닌다. 이러한 연관이 곧 내용이 되며, 이 연관 규정이 일체성을 이루는 동일성의 규정이 되었을 때 그것을 형식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히스톤 단백질이 빠르게 변형되었다”는, “(단순) 단백질7이 빠르게 변형되었다”는 사태를 그 보편으로 간직하고 있는데, 화학적으로 단백질의 빠른 변형은 항상 특수한 조건에 놓여 있는 단백질, 즉 단백질의 특수자 및 그것의 변형을 수반하게 하는 관계의 결합으로 표지된다. 이 경과에서 단백질의 빠른 변형을 결정짓는 보편적 원리는 차이성으로 현상하는 특수자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제출되며, 히스톤 단백질에 대한 그것 역시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개별로 나아가는 객관적 운동의 심연을 관찰하였을 때, 그(개별자)에 보편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과정속에서 파악되는 것이다. 이때 보편성은 가장 초보적으로는 1. 귀납적으로 확인된 유사성의 범주로 취급된다; 그 다음 2. 이 유사성이 일련의 순서경향성을 띠는 계열로, 즉 역사적인 형태(또는 시간적 연관)를 띠고 있음이 관찰되었을 때 유사성의 범주는 재조정되고 비로소 특수와의 연관 속에서 고찰된다. 이 단계에서 보편성은 더이상 단지 유사성이 아니다. 히스톤 단백질은 열, pH 변화 등에 의해 변성될 수 있으며, 열 충격 단백질 등에 의해 복구될 수 있다. 뚜렷한 형태의 알파 나선 구조와 양전하를 띤 아미노산의 공존은 DNA 결합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해명한다. 그리고 이는 이 〈특수한 단백질〉의 변형 속도와 그 정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 연구 결과는 단순 단백질, 즉 〈단백질 일반〉의 변성, 특정 아미노산 연결 구조 조성에 따른 단백질-리간드 상호작용 예측, 자체 복구 메커니즘과 접힘(folding)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렇게, 선행적으로 이해된 보편적 연관은 그보다 특수한 연관과의 통일 속에서 더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E. V. 일리옌코프는(Ilyenkov)는 자기 분화 원리를 지반으로 하여 차이를 포괄해 나가는 이 구체적 보편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방법론에서 핵심 개념의 하나임을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적는다: “[그것은; 인용자] 이전의 발전 형태를 기초로 하고 그 틀 안에서 새로운 구체적 발전 형태가 등장하며, 새로운 체계의 구체적인 보편적 원리가 되고, 그 자체로 연대순으로 앞선 발전 형태를 그 구체적 역사 속에 포함시킨다.”8

 

총괄하여 객관적 실재와 개념의 세 계기의 전진성(前進性)의 측면을 먼저 논한다면, () “단백질이 변형되었다”라는 보편은 단백질이 변형된, 또는 변형될 수밖에 없게 한 계기를 그 자신의 필수 구성물로 지니며, 이는 항상 특수한 형태로 현현한다. () “히스톤 단백질이 빠르게 변형되었다”라는 특수자(또는 개별자) 역시 자신의 분지를 확보해 가며 그 스스로가 후속 보편이 된다. ()는 온도가 일정 수준에 달한 것을 포함하여, 그것이 변형될 수밖에 없게 한 수많은 (얼핏 봐서는 외적인 관계로 보이는) 규정을 총체성 하에서 그 근거로, 즉 그 자체 내에 지닌 것이다. 헤겔은 『논리의 학』 「본질론」의 마지막 장에서 형이상학적 인과론의 동어반복적 한계를 지적하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보편-특수-개별의 계속된 전개(=전진)로 파악하여 〈개념논리학〉을 정립한다.

이처럼 전진성은 두 항 모두에 적용된다. ()는 “히스톤 단백질이 빠르게 변형되었다”라는 보편의 구체적인 자기실현, 자기 복귀로서 자신의 분지를 형성하고 자기 운동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지닌다. “히스톤 단백질” 역시 수많은 개별자로, 그리고 “빠르게 변형되었다”는 것 역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빠르게 변형되었는지에 관한, 그 개별자로 전개되어 나갈 것이지만, 이러한 주어-술어 전개의 구체적 내용을 톺으면 총체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제약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주어와 술어가 서로를 대해 ‘완전히’ 독립적임을 강변하는, 개념에 대한 형식논리학의 견해에 정면으로 대립한다. 헤겔은 이 관계를 개념의 자기 부정을 시원으로 하는 전진의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개념의 제 계기(die Momente des Begriffs)는 바로 이 개념의 자기반성이나 혹은 개별성을 통하여 저마다의 자립적인 총체성(selbständige Totalitäten)을 이루지만, 그다음으로 개념의 통일은 오직 이들 자립적인 총체성의 관계로서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체 내로 반성한 제 규정은 저마다의 규정된 총체성인바, 이 총체성은 본질적으로 서로 무관심하고 무관계하게 존립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서로의 교호적인 매개를 통해 존재한다. 규정작용은 바로 이상과 같은 여러 개의 총체성과 이들 총체성의 관계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오직 그 스스로가 총체성이며, 이렇게 조성된 총체성이 다름아닌 판단이다그러므로 판단은 첫째로 주어(Subjekt)와 술어(Prädikat)라고 불리는 두 개의 자립적인 부분을 포함한다.”9

 

그 어떤 규정의 구체성도 자기 자신의 보편즉 자신의 역사적 발생 조건과 개별추상적인 자기의 발전을 통해 다시 자기를 재생산하는 것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이는 항의 내부에서도 보편과 특수로 분화됨을 포괄하고 추동한다. 하나의 낱말, 정의는 그것이 진정 객관적 사태, 외적 실재와 동일성을 지니는 구체적인 것일 수 있으려면 이미 자체 내에 주부(主部)와 술부(術部)를 간직즉, 단일 개념의 판단으로의 전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편적 연관 및 법칙은 항상 그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특수자와의 결합 속에 있는 전체의 틀에서 관찰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이에 이어질 특수와 이 특수와의 하강적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관계로써 “단백질의 빠른 변형”의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고 탐구자는 그것이 자신의 특수자에 어떠한 규제력을 행사하며 자신을 보존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3. 특수(히스톤 단백질)에서 발견된 “빠른 변형”의 조건이, 그 보존에 있어서 실은 연구 대상으로 설정된 (상대적) 최초 보편(단순 단백질)의 매개적인 자체 재생산 구조에 의해 지정되었던 것임이 밝혀지면 이제 이전의 역사적인 고찰 형태는 실험적으로 언제나 재현이 가능한 논리적 순서로 상승한다. 이때 대상의 역사성은 두 번째 단계에서 파악된 역사적 순서와 완전히 다른 순서로 표현된다. 이는 보편-특수-개별이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의 변증법과 만나는 지점이다.

 

세 번째 국면에 이르러서 특수가 어떻게 하여 지배적인 원리로 되는 이 보편에 의해 정립되는지가 더 분명하게 밝혀진다. “이 ‘특수한 에테르’, 즉 시간적으로는 후행하지만 지배적인 원리가 되는 새롭고 더 높은 형태의 운동에 대한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인 그것은 과학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먼저, 내재적이고 구체적인 보편적 모순으로부터 그 자체의 핵심 요소로 이해되어야 한다.”10 보편적 연관, 보편적 모순 그리고 일반법칙은 오로지 이러한 관계를 거침으로써만 자신을 유지하고 복제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보편이 구체적 보편이다.

 

첫 번째 국면에서 세 번째 국면까지, 보편-특수-개별의 존립 구조를 고찰하였을 때, 특수와 교차하지 않는 ‘순수한 보편’이 있다고 믿으면서, 이것이 사회과학 분석에서 특수성에 관한 아무런 관찰도 없이 곧바로 유효한 해명 원리로 쓰일 수 있다고 간주함은 보편의 변증법적 성격에 대한 몰이해에 기초해 있다. L. 횔(Höll)은 이러한 순진무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침한다: “스스로 실험해 본 적 없는 순진한 학생만이, 낙하하는 물체의 법칙에 대한 간단한 실험에서 물체가 실제로 갈릴레이의 법칙이 “규정한” 그대로 움직일 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 과학의 이론적 법칙은 이상화된 현실, 즉 본질과 필연성의 관점에서 파악된 현실을 표징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순수한]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합법칙적 맥락은 “단지” 실제 과정의 경향일 뿐이다.”11

 

레닌은 이러한 내용을 인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개념의 객관성, 개별자 및 특수자 속에 있는 보편자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헤겔은 객관적 세계의 운동이 개념의 운동 속에 반영되는 것을 연구할 때, 칸트와 그외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심오하다. 마치 단순한 가치형태, 즉 주어진 한 개의 상품과 다른 하나의 상품이 교환이라는 개별적 행위는 이미 자기내에 미발달된 형태로 자본주의의 모든 주요한 모순포괄하듯이, 가장 단순한 보편화, 제 개념(판단, 추론 등등)의 최초의 가장 단순한 형성이라는 것은 인간을 통한 세계의 심오한 객관적 연관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전진하는 것을 본래적으로 의미한다.”12

더 나아가서 보편-특수-개별에 대한 형이상학적 견해는 제아무리 발달하여 봤자 헤겔이 옳게 밝혀낸 바와 같이, 추상적인 판단으로서 반성 판단이라는 늪에서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다. 반성 판단은 경험적으로 확인된 몇 가지 ’공통성‘을 자의적으로 추출하여 그것을 추상적 보편화하는 판단이다. 보편과 개별, 유와 종에 관한 형이상학적 견해에 머무는 이상, 보편에서 개별로의 전개 과정을 고려하는 유(類)와 종(種)을 형성할 수 없으며, 항상 경험적 제한성에서 기인하는 자의성으로 구성된 ’보편적 대상‘을 매개로 하여 유를 형성할 수밖에 없기에 항상 반성 판단에 머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유는 한편으로 그것의 종에 대한 종으로 파악될 수도 있고, 다시 그 반대문단의 초입부에 언급되었던 바로 그 상태로 파악될 수도 있다는 심각한 결함을 가진다. 예를 들어, “(ⅰ) 모든 사과는 (ⅱ) 일정한 단맛을 내는 과육을 가진 과일에 (ⅲ) 속한다”라고 할 때, (ⅱ)는 (ⅰ)의 유으로 되고, (ⅰ)는 (ⅱ)에 대해서 종이 된다. 그러나 (ⅱ)는 (ⅰ)에 대한 추상으로서 성립된 추상적 보편에 불과하다. 즉 (ⅱ)는 계속 자기 전개하는 (ⅰ)의 내적 연관을 사상한 채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ⅰ)와 (ⅱ)간의 관계는 필연적이지 못하다. (ⅰ)에 대해서 어떠한 ‘경험적 보완물’을 붙여나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가 된다. 헤겔은 이를 “주관적 범유성“(subjektive Allheit)이라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ⅰ)가 (ⅱ)에 대해서 종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모호한 사태로까지 퇴행하게 된다. 즉 어느덧 비대화된 (ⅱ)는 (ⅰ)의 ’개별자‘ 내지는 서로에 대한 한갓된 추상적 동일자(ⅰ)에 대한 (ⅱ)의 관계와 그 반대의 관계에서 추상적으로 동일자적 관계를 내포함으로서로 전환된 것이다. 헤겔은 전칭판단반성 판단의 일종인을 다루면서, 반성 판단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타당하게 총괄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전칭판단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해 보면, 결국 앞에서 지적된 바 있는 즉자대자적인 성격의 보편성을 이미 전제된 것으로 간직하고 있던 주어가 이제는 이 보편성을 자체 내에 정립된 것으로서도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이라는 표현은 첫째로 인간이라는 유(類)를 나타내지만, 둘째로는 그 모든 인간이 개별화된 상태에서 유(diese Gattung in ihrer Vereinzelung)13를 나타내는바, 여기서 이 모든 개별자는 동시에 유의 보편성으로까지 확대되며, 반대로 보편성도 개별성과의 이와 같은 결합을 통하여 바로 이 개별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규정된다. 이로써 정립된 보편성은 전제되었던 보편성과 다름없게 같아진 것이다. … 이로써 개별성은 더 이상 단초적인 상태에서의 개별성, 이른바 카유스14와 같은 개별성일 수는 없고, 오직 보편성과 동일한 규정 혹은 보편의 절대적 피규정성이다.”15

즉 단초적인 개별자였던 (ⅰ)는 “객관적인 보편성으로 규정됨에 따라서 주어는 더 이상 이와 같은 관계 규정하에, 혹은 총괄적인 반성 하에 포섭되기를 그친다16 마찬가지로 반성 판단으로 구성된 반성적 추론은 오성적 추론으로서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으로 보편을 ‘관측된’ 개연성으로 환원하는 귀납주의가 지닌 결함이 그것인데, 논리철학 전선에서 이러한 결함에 대한 불충분한 경계 의식의 논리적 귀결은 보편에 대한 유명론(唯名論)적 편향이다.

 

헤겔에게 참된 보편은 단지 개연성으로 받쳐지는 반복이 아닐 뿐더러, 그것은 또한 추상적인 표상으로서 마음에 연상되는 정적인 공통항도 아니다. 그는 실재적인 보편성이 이러한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진정한 보편이란 자신을 차이로 분화하고, 그러한 차이 속에서 요지부동한 것이다.​17

보편-특수-개별의 변증법적 전개 양상은 미리 짜여있는 보편자, 특수자, 개별자라는 형식이 미지의 목적인에 의해 배열되는 게 아니라 이전의 사태가 자신의 내용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과정이다. 현재의 순간에도 그 부단한 전개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현실은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보편으로서 가장 구체적인 개별이다. 그러나 과학적 실천과 이론의 상승 작용은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한다: “엥겔스가 전하였듯이, 모든 실제적이고 결정적인 지식은 우리의 생각에서 특수성을 특성으로, 그리고 특성에서 보편성으로 끌어올린다는 사실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검토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식이 움직이는 범주는 특수성, 특성, 보편성이다. 또한 특수성에서 특성으로, 특성에서 보편성으로 상승하는 것은 한 가지 수단이 아니라 여러 가지 수단에 의해 수행된다.”18​ 여기서 보편은 단지 전진의 한 계기로서의 보편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보편, 즉 구체적 보편이다. 오해하면 안 될 것은, 보편과 특수, 그리고 개별 간의 관계는 내용과 형식 간의 관계도, 본질과 현상의 관계, 그리고 주요한 것과 비주요한 것과의 관계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지 형식은 내용이라는 본질규정의 특수일 수도 있으며, 또한 현상은 본질에 관해서, 그리고 비주요한 것은 주요한 것에 관해서 특수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 정반대의 방향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의 전개 양상은 언제나 포착된다. 특히 생산양식의 형식인 생산관계가 생산양식의 모순을 이루는 주요한 측면이 되었을 때, 대개 격화된 모순의 양상은 이 형식의 규정된 내용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하여 우리는 뒤의 세 쌍범주를 보편-특수-개별의 그것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기본모순의 격화 양상으로서 수많은 적대적 현상은, 본래 자본주의하 고유한 사회적 관계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이다. 예를 들어 봉건제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 간의 대립 양상그것이 바람직하든, 바람직하지 않든 간에은 나타날 수도 없었다. 스스로 해방하고자 하는 장애인과 이러한 경향을 적대하며 장애인을 차별하려는 세력 대립 양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애인은 봉건제 사회에서, 지역적, 문화적 특수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존재했겠지만, 현재보다 일반적으로는 극렬한 차별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서 장애인은 (차별을 당연시하는) 비장애인으로 현시되는 그들 스스로의 대립항과 현실적으로 대립하는 정치적 주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본제 사회가 확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생산력이 발달하여 몇 가지 형식적 자유 및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가 확립되면서 장애인은 기존의 제도를 통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대립의 계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력 발전에서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다. 환경에 대해서 말한다면, 봉건제 사회하에서 압도적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일방적인 모순이 존재했음에 반해, 오늘날 자본제 사회하에서 환경 문제는 노동을 먹고 자라는 자본의 끊임없는 자기 증식 운동에 피정립된 것이다. 자본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존재사회적 관계와 직접적이고 단순한 사물, 형태의 통일 자연과 인간 모순을 과거보다 더욱 첨예화한다.

 

부문 운동의 객관적 근거인, 부문 운동의 대상이 지니는 대립적 특성은 자본주의 기본모순의 지배적 규정력 아래에 놓여있다. 각 부문 운동의 객관적 대상은 그것이 자본주의 기본모순의 규정된 보편으로서 특수라는 매개항을 갖는 구체적인 개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각 부문 운동에서 대상으로 하고 있는 사회 문제는 그것 자체가 자본주의 기본모순이라는 보편의 구체적인 실현 및 관철 과정이며, 그러한 문제의 총괄이 곧 자본주의 기본모순이라는 보편의 존재 양식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흔히 계급모순이라 일컬어지는 노자 대립은 자본주의 기본모순의 개별로서, 이것의 외화인 동시에, 다양한 부문의 운동의 대상이 지니는 계기로도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다양한 양상이 존재한다: Α. 자본주의 기본모순으로부터 곧바로 규정된 보편으로서 각 의제의 객관적 대상이 정립되기도 하는가 하면; Β. 자본주의 기본모순으로부터 파생된 노자 대립의 개별적 양상이 각 의제의 객관적 대상의 형성을 가속화하는 매개항으로서 특수가 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여기서 두 번째 양상(Α)은 대표적으로 노동자 처우개선 문제에 있어서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 간의 관계와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필시 노자 대립의 규정된 보편인 특수이다. 실지 이는 한 기업 또는 산업 영역에서 노자 대립을 첨예화하는 조건이 소멸할 경우,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둘 사이의 대립이 크게 소멸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것을 먼저 해소해야 할지는 단지 상대적이며 상호 규정적이다.

 

단, 특수한 역사적 계기들인접한 소련 사회주의의 영향, 강력한 중앙 교섭 능력을 지닌 노동조합의 존재, 제국주의 초과이윤을 원활히 전유할 수 있는 국제경제적 지위 등에 의해 노동 조건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에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의 그것과, 이남 사회의 그것 사이의 적대 강도는 현저한 차이점을 보인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에서 이 적대의 해소는 보편 전선과 특수에 산재한 문제의 상호 해결로써 이루어졌는데, 그 시발점은 일반적으로 노동 조건의 개선에 있었다. 그러므로 직장 내에서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상대적으로 직위가 높은 남성 노동자 또는 부르주아에 의한 ‘갑질’, 노동 현장에서 낙후한 성 역할의 침투, 기타 직장 내 사회적 문제 등은 자본주의 기본모순의 주요한 현상형태를 드러내 주는, 그것의 존재 양식으로서 특수(또는 개별) 사태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규정된 보편인 노자 대립동시에 이 사태에 한해서는 언급된 것의 보편인이 규정적인 매개항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 조건의 상승을 위한 여러 방면의 투쟁이 “여성 및 남성 노동자 간 단결에 기여”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공문구가 아니다. 이와 반대로 경제적 생활양식에서 후진적인 농촌 경제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으며, 그러한 결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발전 정도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문 나라에서는 (경제 외적인 요인을 주로 포함하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여성과 남성 간 적대의 실천적 표출이 억제되며, 이는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를 띤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상대적으로 높은 직위에 있는 남성 노동자나 사업자의 ‘갑질’ 문제를 간략하게만 다루어 보아도 내용은 쉽게 관찰된다. 그 개별적 사태는 노동자와 자본가 간 관계라는 조건이 없이는 성립하기 힘들다. 그리고 대개 그러한 사태에서 피해자는 여성 노동자이고, 남성 노동자, 그리고 남성 사업자는 그것의 반대물의 위치에 있는 개별적 사태도 실은 보편에 내재해 있는 내용의 실현이다. 대부분 여기서 거론된 문제는 이윤을 무한대로 증폭하려는 인격화된 자본으로서 자본가의 경영 일환19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계기로 지니는 개별적 사실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노동자에게는 이것을 거스를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조건 역시 언급된 문제를 더욱 격화시키는 요인이 된다.20

언급된 관계 규정은 본질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간 적대적 관계로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적대 관계의 구체적인 성립, 또는 발전 양태는 여성과 남성 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여성이 종속될 수밖에 없게 하는 규정들을 필연적으로 붙이고 나온다. 노동운동이 이 특수성을 계급전선에서 합당하게 인식하고 이에 기초한 실천 노선을 정립하지 못한다면 자본가의 공세에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 노동운동의 성장은 특수항을 전(前)-계기인 (추상적) 보편으로 덮어쓰는 방식이 아니라, 특수항의 제 계기를 포괄하는 확장적 보편을 스스로 가꾸어 나갈 때 이루어졌다.

이 문제에는 첫 번째 양상(Α)의 내용 역시 침투되어 있다. 특히 자본주의 하 노동력 재생산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생겨나는 여성 실업자 및 반(半)실업자 문제, 30대 이상 여성의 비중이 높은 저임금 직군 내에서의 차별 문제는 첫 번째 양상이 가하는 규정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두 양상의 상호 작용 과정이 다층적 구조를 이루어 형성된 전선은 여성 외 장애인, 환경, 성소수자, 심지어 동물권 문제로까지 확대되어 그 규정력을 확보하고 있다.

 

2024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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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직접적으로 이미 보편성이 즉자대자적으로 특수성을 이루었듯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특수성도 또한 즉자대자적으로 개별성인 것이다.” (G. W. F. Hegel, 『대논리학』, 제3권, 임석진 역, 파주: 자유아카데미, 2022, 87.)텍스트로 돌아가기
  2. 레닌은 이에 대해 “개념은 물질의 최고의 산물인 두뇌의 최고 산물이라고 전도시켜라”라고 하였다. (V. I. Lenin, 『철학노트』, 홍영두 역, 서울: 논장, 1989, 116.)텍스트로 돌아가기
  3. MEW, Bd. 1, Berlin: Dietz-Verlag, 1981, 224.; K. Marx, 『헤겔 법철학 비판』, 강유원 역, 서울: 이론과실천, 2011, 69.텍스트로 돌아가기
  4. Loc. cit.; 위의 책, 69-70.텍스트로 돌아가기
  5. Ibid., 224-5.; 위의 책, 70.텍스트로 돌아가기
  6. MEW, Bd. 3, Berlin: Dietz-Verlag, 1978, 493.; F. Engels, 『자연변증법』, 윤형식, 한승완, 이재영 역, 서울: 중원문화, 1989, 229.텍스트로 돌아가기
  7. 단일 폴리펩타이드 사슬로 이루어진 단백질.텍스트로 돌아가기
  8. E. V. Ilyenkov, Dialectics of the Abstract & the Concrete in Marx’s Capital, tran. S. Kuzyakov,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82, 219.텍스트로 돌아가기
  9. 『대논리학』, 제3권, 2022, 109.텍스트로 돌아가기
  10. Dialectics of the Abstract & the Concrete in Marx’s Capital, 1982, 219.텍스트로 돌아가기
  11. L. Höll, „Einige Fragen der dialektisch-materialistischen Auffassung des Allgemeine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34 (10), 1986: 916.텍스트로 돌아가기
  12. 『철학노트』, 1989, 129-30.텍스트로 돌아가기
  13. 가령, (I)는 처음에 범유성으로서 (II)의 다종으로서 취급되었지만, 어느덧 모든 사과는 하나의 범유성을 이루고, 이 범유성에 (II)가 지니는 술어적 내용―주관적인 수준에서 성립된 ‘범유성’인―이 종으로 정립된다. 즉 모든 인간이 개별화된 상태에서 유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과는 개별화된 상태에서 유가 된 것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14. 헤겔이 예시 판단문에서 단초적인 개별자로 상정했던 주어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15. 『대논리학』, 제3권, 2022, 152-3.텍스트로 돌아가기
  16. 위의 책, 154.텍스트로 돌아가기
  17. „Einige Fragen der dialektisch-materialistischen Auffassung des Allgemeine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34 (10), 1986: 917.텍스트로 돌아가기
  18. B. M. Kedrov, “On The Dialectics of Scientific Discovery”, Soviet Studies in Philosophy, 6 (1), 1966: 24.텍스트로 돌아가기
  19. "‘지난 3년간 시장변화에서 경쟁업체의 수가 증가한’ 기업체에서는 여성을 채용할 의사가 3.5%p 감소(모형 2)하고 ‘경쟁업체와 비교하여 주력 제품/서비스가 가격이 매우 저렴’한 기업체나 ‘품질이 매우 우수한 업체’에서는 각각 8.9%p, 7.0%p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지미, 「「사업체패널조사」의 고용관련 여성차별과 그 결정요인」, 『노동정책연구』, 7 (3), 2007: 81.) 해당 논문의 한계와 무관하게, 이 논문에 따르면 채용 외, 승진 문제에 있어서도 이윤 실현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위의 책, 83-4.)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특히 경쟁력이 낮은 자본일수록 여성 및 여성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는 연구라 할 수 있다. 직장 내 여성 노동자에 대한 처우 문제가 자본의 이른바, ‘경영 전략’과 관계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사례는 상당히 많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0. “노동조합 역시 여성의 권익향상과 경력형성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은 직원의 처우개선과 경력유지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 노조는 조합원의 이해와 입장을 대변해주고, 인사결정자의 불합리한 차별적인 대우로부터 조합원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들이 노동조합을 통하여 남녀차별문제를 회사에 제기할 때, 자신들의 주장에 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2000). 실제로 여직원이 대부분 노조에 가입한 한 공기업에서는 남녀의 호봉차별이 노동조합을 통한 문제제기를 통하여 시정되었다(이주희 외, 2004: 174).” (김수한 & 신동은, 「기업 내 여성관리자의 성차별 경험」, 『한국사회학』, 48 (4), 2014: 102.)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