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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매력

 

봉준호의 <괴물>이 흥행하리라는 건 개봉 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말걸기도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인기 좀 빠지면 여유 있게 봐야지 맘 먹고 있었는데, 자형이 보고 싶어해서... 지난 토요일 밤에 3시간이나 기다린 후에 맨 앞자리에서 고개 쳐들고 봤다. 개봉 3일 만에 포스트 올리면 재미 없을 것 같아서 이제야 올려 본다.

 

 

우선, <괴물> 안 보신 분들 함 보시길.

 

맨 마지막에 자막 올라가는 거 끝까지 보시고 끝에 무슨 장면이 있는지 알려 주시길. 영화 분위기 상 자막 끝에 뭔가 있을 듯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카가 얼른 나가자해서 밖으로 나오니 괴물의 괴성이 들렸다. 단순한 효과음일 수도 있고.

 

그리고, 이 포스트 읽고 영화 보면 재미 없을 수도 있으니...

 

 

 

영화 <괴물>의 놀라움은, 대놓고 다 보여주면서도 일일이 설명조로 관객을 설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벌어진 일을 주욱 늘어놓는다(물론 아닌 것도 있지만). 그런데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거랑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봉준호는 천재이거나 천재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야기의 뼈대는, 가족들이 괴물에게 잡여간 손녀=딸=조카를 구출하려 했다가 결국 딸=조카가 죽자 복수하는 내용이다.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생겨서 할아버지, 아빠, 삼촌, 고모가 손녀=딸=조카를 구출하려 한다면 부딪힐 법한 상황을 보여준다. 놀라운 가족애를 제쳐둔다면, 그 있을 법한 상황이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데에 또 감탄한다.

 

<괴물>은 사회에 대한 많은 명제를 보여준다. 극으로 보여줘서 그렇지 그 명제들은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깝다.

 

- 미군이 한강을 오염시켰다(혹은 여전히 오염시키고 있거나 오염시키고 있을 것이다).

- 재수 없으면 죽거나 죽을 위험에 처한다.

- 가난하고 똑똑(이건 사회가 인정하는 똑똑)하지 못하면 남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 대한민국 정부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면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 미합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보다 가진 건 많을지 몰라도 그들의 문제 해결 능력은 대한민국 정부나 매한가지다.

- 불법 거래를 할 때는 바가지 쓰기 쉽상이다.

- 뭐 좀 해보려면 구청 과장하고 잘 지내야 한다.

- 핸드폰 좋은 거 쓰면 재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근데 안 도와주면 그것도 말짱 꽝).

- 한강의 괴물은 숙성된 먹이를 좋아한다(^^;).

- 기타 등등.

 

수많은 진실을 보여주지만 결정적인 건 이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요소(괴물)는 제거되어도 문제의 원인(한강 오염)은 밝혀지지 않는다."

 

갑갑한 현실을 보여주긴 해도 이 영화가 통괘한 건 괴물을 제거한 자들은 이래저래 무시당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힘 없는 자들이 통쾌하게 역전하는 내용은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지만 그래도 좋다. 문제를 해결했어야만 하는 자들을 조롱할 거리를 주니까. 그리고 삼남매의 카리스마 넘치는 괴물 제거 전투는 아름답기까지하니 더더욱.

 

 

한편, <괴물>에서의 가족은 통념과 다른 느낌을 준다. 삼촌과 고모의 조카에 대한 사랑은 현실적이지 않은 듯하다. 사랑이 그렇다기 보다는 딸, 조카를 둘러싼 남매들의 관계가 현실적이지 않다고나 해야 할까. 모두 아빠고 엄마 같다는 느낌.

 

'결손가정의 청소년은 삐뚤어지기 쉽상(!)'이라는데, 먹이감이 된 위급한 상황에서도 어쩜 그렇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래서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탄생시키도 한다.

 

감독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족에 대해서는 현실보다는 지향을 보이고 싶지 않았나 맘대로 추측해 본다.

 

 

약간은 촌스러워도(돈발라치기한 헐리우드 영화에 비한다면) 특수효과로 탄생한 괴물이 너무나 익숙한 공간에 나타난 것도 재미다. 맨처음 괴물이 난동을 부린 서강대교 남단 시민공원 장면은 말걸기에게 기억이 있다.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사람들을 여기저기 앉혀놓고 스텝들이 이래저래 설명을 하던 그날 잠시 그곳에 있었다. 잠깐 머물다 그 자리를 떴지만. 꽤나 더웠던 날로 기억한다. 촬영하는 거 구경이나 해둘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