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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죽고 절벽을 내려간다거나 하기 위해서 땅을 걷고 절벽을 긴다. 그러다가 공기의 저항을 받아 속도를 대폭 줄인 낙하산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참 대단해. 이런 것도 발명하고.

 

 

요즘은 즐기기 위해 낙하산을 타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재미난 발명품은 역사상 이런저런 '작전'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을 터이다. 땅에서 걷거나 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갈 수 있어서 '작전'이 위력을 발휘할 터이다. 그리고 낙하산은 항상 '작전'을 짠 배후의 명령에 의해 내려온다. '작전'에는 임무가 있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낙하산을 탄다.

 

그러니까 낙하산은, (놀이가 아니라면) ①보통의 수단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가기 위한 방편이고, ②창공에서 그것을 뿌리는 배후의 목적을 위해 내려온다.

 

 

일반적인, 혹은 정상적인 방편이 아닌 방편으로 어떤 지위를 차지했을 때, '낙하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낙하산은 배후, 즉 '빽'이 있다. 배후의 목적은 주로 돈, 세습, 편의, 자기 목적 달성 따위다. 험한 산 앞에서 정상적인 방편으로 기어서라도 가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몹시 기분 상하는 일이다. 그래도 세상이 다 그런거니까...

 

 

민주노동당의 정책부장이었던 우수사랑은 연초에 민주노동당에서 해고되었다. 해고의 진짜 이유, 그러니까 인사권자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드러난 이유는 이렇다. 우수사랑은 정책연구원이 아니니까 당 정책위원회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사무총국에 가서 예전의 보직(총무실)을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동복지(보육을 포함한) 분야는 여성위원회 등 사무총국 산하 기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어쨌든 사무총국으로 가라고 했다. 우수사랑 자신도 그러했고 소속된 제3정책조정위원회에서도 그러했고, 정책위 구성원들이 아동복지를 담당할 적임자인 우수사랑을 다른 부서로 옮기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아동복지 영역을 버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그럼에도 인사권자들은 이 의견을 무시했고 우수사랑은 인사를 받아들이지 않아 내쫓겼다.

 

이 일은 지방선거 전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지방선거가 끝나자 아동복지 정책을 담당할 사람이 정책위원회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지방선거 후 우수사랑은 다시 당 정책위에서 아동복지 정책을 담당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연락을 받았단다. 인사, 참 재밌게 한다. 우수사랑은 이미 인생의 계획이 있는데 왜 돌아가겠나. "안 가!"

 

결국, 8월 16일 인사발령으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는 새로운 아동복지 담당 정책연구원이 왔다. 이 새 아동복지 담당자는 지난 3월 10일 조직실의 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일하고 있던 사람이다. 조직담당자가 정책연구원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이라면 좀 웃긴다.

 

 

현 지도부의 계획 중 하나가 조직실을 조직1실과 조직2실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조직1실은 현재 조직실 업무라 보면 무난하고 조직2실은 현재 부문위원회(여성, 노동, 농민, 학생 등)를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오래 전부터 당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던 거라 이런 분화 자체가 현 지도부만의 '색깔'은 아니다. 어쨌든, 조직2실 설치를 전제하고 P씨를 3월 10일에 조직실의 부장으로 발령을 냈다. P씨는 조직실이 분화하면 조직2실에서 여성부문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조직실 분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방선거 출마를 하게 된 여성위원회 J국장은 중앙당직을 사직할 의사를 밝혔었다. 그래서 여성위원회 입장에서는 더더욱 P씨를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J국장은 사직 의사를 철회했다. 조직2실은 설치되지 않았고 여성위원회 상근자 티오도 줄지 않았다. P씨는 한 순간에 조직실에서도 여성위원회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지도부의 관련자들이 모여서 결정을 내린 게 바로 P씨를 아동복지(보육을 포함) 담당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낸 것이었다. 정책연구원은 해당 분야의 전공과 활동 경력을 주요하게 판단하여 뽑은 사람들이다. 2004년 처음 뽑을 때에도 그러했고 중간중간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뽑을 때에도 그러했다. 처음 뽑았을 때 청탁으로 뽑힌 사람이 둘이 있긴 한데 이들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만한 이력(둘 중 하나는 알고 보니 형편 없었지만)은 갖고 있었다.

 

P씨는 당에서 여성운동을 하고 싶었을 터이고 당 지도부도 그렇게 하라고 여성부문 업무를 담당할 조직2실에 가기 전에 조직실로 발령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아동복지 담당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냈다?

 

예전에 우수사랑더러 정책위원회에서 나가라고 할 때 정책연구원이 아니니까 나가라고 했었다. 정책연구원만 정책위원회에 있어야 한다면 우수사랑을 정책연구원 시켜주든가. 이미 정책연구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처사였다. 일반 상근자와 정책연구원을 애써 구분한 지도부가, 일반 상근자인 P씨를 정책연구원으로 발령을 낸 건 일관된 태도일까?

 

일반상근자 딱지가 평생 갈 이유도 없으니 정책 분야 능력이 있으면 정책연구원, 아니 그 이상이라도 해야지. 그런데 이번 발령은 P씨의 아동복지 분야 정책 활동 경험을 심사한 결과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개별 분야 정책연구원을 뽑을 때 이런 식으로 뽑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책연구원이 대단한 존재라서 그런 게 아니라 당 조직이 커지고 쪽수가 많아지면 업무도 분화하기 마련이고 그 업무를 수행할만한 이력과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 게 제대로 된 절차라는 것이다. 인터넷실에 프로그래머가 필요한데 프로그래밍 능력은 안보고 "너 컴퓨터 잘 하니까 인터넷실로 가서 일해!"라고 하면 그게 멀쩡한 인사냐는 것이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여성운동을 해왔고 그러고자 하는 사람한테 아동복지(사실 상 보육) 분야 정책을 맡겼다는 것이다. 여성 문제를 다루어 왔다면 아동복지 문제도 다룰 수 있다고 판단한 지도부의 생각이 걱정스럽다.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다니.

 

 

8월 16일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 '낙하산'이 떨어졌다. '낙하산'에 매달린 당사자도 불쌍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는 다른 절차로 들어왔고 그 때문에 대등하지 못한 입지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서 얼마나 괴로울까?

 

그리고, '낙하산'을 떨어뜨렸으면 '작전'이 있어야 하는데 '낙하산'을 집어던지 자들의 '작전'은 과연 무엇일까? 아동복지(보육) 정책 강화? 아님, 여성위원회를 책임지는 박최고의 정책위 내 인맥 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