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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 서열

 

베이징 올림픽 끝났다. 더운 여름에 재미난 구경 많이 했다. 특히, 한국 야구는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야구팬을 그만 둔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한국 야구팀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쩜 그리도 재밌게 야구 하냐.

 

'우생순' 여자핸드볼팀이 안타깝다. 준결승전 노르웨이의 마지막 골은 찝찝하기 그지없다. 핸드볼을 두고 언론은 4년만에 한 번씩만 반짝하는 관심이라고 연일 동정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별로 즐기지도 않는 핸드볼이 4년만에 한 번씩이라도 관심을 받는 게 이상한 거다. 그건 순전히 국가 간 힘겨루기 대회인 올림픽 때문인 것이다.

 

 

국가 간 힘겨루기 대회 최종 순위를 보니 거의 깡패 서열이다.

 

● 종합순위 (10위)

 

중국 (51 21 28)

미국 (36 38 36)

러시아 (23 21 28)

영국 (19 13 15)

독일 (16 10 15)

호주 (14 15 17)

대한민국 (13 10 8)

일본 (9 6 10)

이탈리 (8 10 10)

프랑스 (7 16 17)

 

● 메달획득 순위 (20개 이상)

 

미국 (110)

중국 (100)

러시아 (72)

영국 (47)

호주 (46)

독일 (41)

프랑스 (40)

대한민국 (31)

이탈리아 (28)

우크라이나 (27) - 종합순위 11위

일본 (25)

쿠바 (24) - 종합순위 28위

 

( : G8)

 

이번 올림픽에는 204개국이 참가해서 그 중 42.6%인 87개국만 메달을 획득했다. 참가국수의 4.9%에 해당하는 10위까지의 나라들은 전체 메달 958개 중 56.4%인 540개를 챙겨갔다. 3.9%의 G8은 전체 메달수의 39.8%에 해당하는 381개 메달을 거머쥐었다.

 

그 잘난 1등을 해본 선수를 자기 국적으로 둔 나라는 55개국(27.0%)이다. 302개의 금메달 중 196개를 10위까지의 국가들이 차지했다. G9은 121개를 차지했다. 각각 64.9%와 40.1%에 해당한다. 메달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10위까지의 국가들이 메달이라기보다는 1등을 차지하기 위해 무척 애쓴 결과로 보인다.

 

G8 중 캐나다는 19위를 차지했는데 분발 좀 해야겠다. 이스라엘은 동메달 1개로 공동 81위를 차지했는데 이웃들 괴롭히는데 돈발라치기 하느라 운동선수 못 키운 것 같다. 호주는 요즘 부쩍 나라 밖에서 힘쓰는 일 잘하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는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쿠바는 왠지 강해지고 싶은 강박이 느껴진다.

 

어쨌든 '세계질서'를 주무르는 국가들이 올림픽에서도 잘 나간다. 지들이 잘하는 종목에 메달이 더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만 봐도 올림픽은 그들이 '세계질서'를 주무른 결과일 뿐이다. 깡패국가들이 모여서 룰을 정하고 그 룰에 따라 200여 개의 국가를 불러내 경쟁을 시키다니.

 

 

최근 한국 스포츠는 제도화된 종목보다는 개인화된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는데, 이는 스포츠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비교적 투명하게 성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도 영역이 바보가 되어서 그렇기도 하다. 이를 테면 박태환, 김연아, 박세리 이후의 여성 골퍼들과 축구를 비교해 보라.

 

참으로 미스테리한 것은 대한민국이 스포츠 경쟁에서는 대단히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나라', '성깔 있는 나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 정도의 성적을 거둘 만큼 돈과 인력을 스포츠에 투자해서 성과를 낼 능력을 지닌 나라가, 어디 딴 데 가서는 자신감에 찬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 않다. 통상이고 외교고 어처구니 없다.

 

한미FTA 협상이나 미쇠고기 수입 협상을 보면 개기는 맛이 전혀 없다. 6자회담에서도 툭하면 따 되는 느낌이다. 당당하지 못해서 그렇다. '쎈놈'한테 살살거리기를 잘하면 떡고물이 떨어지는 줄 안다. '쎈놈'은 살살거리는 놈을 가장 하찮게 여긴다는 사실을 모른다. 약해도 개기는 놈을 어려워 하지.

 

대한민국은 '충분히' 강한 나라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이지만 국민국가 질서에서도 어느 수준까지는 인민을 이롭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포츠에만 투자하지 말고 정치에도 투자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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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지 꽤 지난 시각에) 졸면서 썼더니 글이 좀 이상하네. 깡패국가 따라잡자는 식으로도 읽힐 수 있겠다. 흐흐. 깡패국가만큼이나 '힘쎈 놈'이 깡패국가들에게 마구 휘둘려서 인민을 위태롭게 하는 게 한심할 뿐이다. 힘이 있으면 이로운 데 쓰기를 바라며, 이것은 확실히 정치의 영역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