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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 소송 패소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원고가 참여한 이른바 '옥션 소송'이 패소했다.


1.

 

말걸기도 1만 원 내고 원고가 되어 2년을 기다렸는데 기분 나쁘다.
기분 나쁜 이유는 이렇다.

 

져서 기분 나쁘다.
게다가 옥션이 이겨서 기분 나쁘다.
옥션측 변호인이 김앤장이라는데 김앤장이 이겨서 기분 나쁘다.
1심 판사가 과실은 있어도 위법은 없으니 배상해 줄 필요 없다고 해서 기분 나쁘다.
세계일보 따위들이 변호사만 돈벌이 시켰다고 원고들 바보 취급해서 기분 나쁘다.
경제지들은 잘못된 판결이라고는 하는데 '보안시장'이 위축될까 걱정되어서 그렇다니 기분 나쁘다.
이런 중대한 상황에 소송대리인 김변호사가 소송원고인들이 모인 카페에 등장하지 않아서 기분 나쁘다.
수만 명의 1만 원들은 분명, 인건비를 포함한 소송 비용에 쓰여졌겠지만 '공익 소송'답게 비용이 공개되지 않아 기분 나쁘다.

 

이 와중에 소송원고인들의 카페에 이런 분석이 있다.
결국 대법에서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하긴 할 텐데
1심에서 원고들 패소시켜야 원고들이 떨어져나가 배상액을 줄일 수 있다고...
1심 원고 14만 6천 명 중 항소할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긴 하다.
이 얘기야 그럴듯한 음모론일 뿐이지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2.

 

대한민국에는 기업에 대한, 뭐랄까, 경외심이 가득한 것 같다. '기업이 잘 돼야 너도 좋고 나도 좋다' 따위와 함께 '기업이 흔들리면 큰일난다'는 두려움을 내포한 경외심. 사실 이런 경외심은 사주, 대주주, 몇몇 경영진에게만 100% 이익을 주는 생각일 뿐인데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모토는 이것이 아닌가 싶다.

 

"망해야 할 기업은 확실하게 망해야 한다!"

 

물론, 이 선언과 실현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있다. 법인이라는 게 자본주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서 기업이 망하면 법인이 사라질 뿐이지, 그 동안 엄청난 돈 챙긴 사주, 대주주, 경연진은 안 망한다는 점이다. 이 체제에서 경영진에게 덤탱이 씌울 수 있는 죄목은 배임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망할 기업을 살리려고 애쓴다거나, 망하지는 않더라도 기업이 큰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짓은 안해야 한다. 정부 정책이 기업들 배불리는 기획을 하고 국세청과 검찰과 법원이 뒤에서 봐 주고 꼴이란!

 

임금 팍팍 올리고 노동시간 단축하고 이거 어기면 사장 다 감옥에 쳐 넣고, 세금 떼어 먹으면 평생 그 돈의 수천 배 값도록 해서 다시는 기업 못하게 하고, 이상한 물건 팔거나 소비자 물 먹이면 손해배상 하느라 기업 거덜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진정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사실 이건 가장 '자본주의다운 나라'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장사 잘하는 기업은 엄청나게 '경쟁력 있는 기업'일 테니까.

 

앞으로 한동안, 아주 오랜 동안 국가 권력은 기업에게 오냐오냐 하겠지만, 그 권력을 변화시켜야 할 인민들은 이제부터라도 기업은 강하게 키우자고 해야 한다. 이 말을 못하는 이유는 하나인데, 기업이 망하면 거기서 일하던 노동자들 생계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민들과 인민들을 대표한다는 정당과 노조는 항상 타협을 한다. 조금이라도 살만한 세상이 되려면 기업에 대한 경외심을 버리고 망할 기업을 망하게 하자며, 동시에 실업자도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고 난리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옥션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특히 '과격한'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그리고 만약 옥션이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면 이번 '옥션 소송'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의식차가 커질수록 국가는 요동치기 마련이다. 지배계급이 그 의식차를 계속 무시하면 혁명이 일어날 테고, 적절히 줄이려고 노력하면 안정적인, 그리고 조금은 살기 좋아지는 자본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법원도 눈치 보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옥션 소송'에서 지는 일은 없겠지.


3.

 

솔직히 1만 원 내고 기다리면 몇 십 만 원 돼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리 되지 않아서 기분 나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