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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노동자

 

노예는 신분의 세습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존재하는 수많은 천민들은 신분 제도를 수용했고 수용한다. 하지만 그들이 나서서 신분 제도를 옹호하고, 신분 세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는 않는다(단, 신분을 거부하려는 당돌한 자식을 말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왜일까? 힘 없이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니 부당한 신분 제도에 항변은 못하지만 신분 세습이 자신들에게 행복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뻔한 얘기다.

 

세습은 지킬 게 있는 자들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이 또한 당연한 얘기다. 북한은 권력을 세습하고 남한은 부를 세습한다. 독점적 권력일수록 세습 과정은 유독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김정일은 어떠했을까? 또 김정은의 손엔 누구 피가 가득하게 될까? 이건희의 부가 자식들에게 온전히 이전될 수 있도록 남한의 관료들과 판사들은 열심히 노력해왔다. 각각의 체제를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

 

세습은 이처럼 가진 게 아주 많은 이들에게만 행복한 제도는 아닌 것 같다. 현대자동차노조가 대의원대회에서 단협안으로 사실상 정규직 세습안을 채택한 것은 현대자동차 정규직은 지킬 게 꽤 많다는 걸 보여 준 것이다. 그 지킬 게 뭘까?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에 대비되는 신분으로서 정규직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가진 현대자본주의는 '부'라는 매개 없이 신분 그 자체가 세습되는 방식을 거부하는 체제인데, 이처럼 신분을 세습하겠다는 포부는 대단히 체제 저항적 성격을 지녔다.

 

지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놀라운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는 아니다. 이 정책은 강력한 노조가 있는 대형 사업장에서는 이미 관행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 아닌가? 의문이 생기는 것은 왜 이 시점에 정규직 세습이 부각되는지이다. 현대자동차노조가 단협에 명시하지 않고서는 이 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일까? 아니면 바람직한 세습이 극소수에 한정되는 것보다는 좀 더 큰 소수에게 확대되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이 있기 때문일까?

 

보수언론들이 노조의 공공성과 연대를 운운하며 현대자동차노조를 비난하는 꼴이 재수없기 이루 말할 수 없으나, 87년 이후 목숨을 건 노조민주화 투쟁의 성과를 20년 넘게 자기들 사업장에 묶어두려 했던 대형 노조의 정치적, 도덕적 타락이 이제는 막장을 향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