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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싫어!

 

너나나나님의 [추석 때 일하기] 에 관련된 글.

 

 

말걸기는 명절이 싫다. 이번 명절은 진짜 싫었다.

 

 

명절에는 파란꼬리 부모님댁에도 가야 하고 말걸기 부모님댁에도 가야 하는 게 싫다. 연휴의 여유. 여유라기보다는 그 방만함을 맘껏 누릴 기회가 없어지니 아쉬움이 크다. 그도 그렇지만 '어른들' 앞에서 명절다운 '예'를 지키는 게 못마땅하다.

 

사실은 파란꼬리네도 그렇고 말걸기네도 그렇고, 명절이라고 제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는 이보다 자유로운 명절을 보내는 가족들을 한국에서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먹어야 할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가족 관계에 따른 '역할'이 주어진다. 이런 역할 가지고 티격태격 하지도 못하는 분위기가 명절이기도 하다.

 

 

지난 추석 연휴. 이번의 그 기나긴 연휴는 여느 명절과는 달랐다. 우선 파란꼬리 부모님께서 말걸기네로 올라오셨다. 이사 후 집구경도 못하셨다면서 일요일에 올라오셨다. 말걸기가 먼 길을 가야 하지 않아서 감사했고, 또 맘 편한 집구석에서 지낼 수 있어 감사했다. 그렇지만 식사 준비는 호스트네가 해야 한다는 거...

 

게다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파란꼬리 작은아버지네 식구들도 함께 왔다. 전날까지 언제 온다, 누가 온다는 말도 없이 당일 오후에 전화 한 통 날리며 방문이라니. 이것 참. 4인분 식사가 7인분으로 늘어야 했다.

 

말걸기는 계획을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싫다. '처가네 식구'들이라 크게 짜증도 못내고 있었는데 여기에다가 다른 사소한 일들까지 겹쳐 그날은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말걸기는 기분이 얼굴에 나 드러나는 성격이라 파란꼬리는 심통난 말걸기 눈치 보고 지냈단다. 큰 일에는 별로 맘 상하지도 않으면서 작은 일에만 예민한 말걸기.

 

그래도 그날 방문한 파란꼬리 사촌들과 놀다 보니 마음은 조금 풀어졌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파란꼬리 부모님께 대접한답시고 말걸기가 미역국을 끓였는데 평소보다 맛이 없었다. 이게 왜 말걸기를 화나게 했는지 모르겠다. 혼자서 신경질 팍팍 내고. 명절날 맛 없는 걸 먹게 되어서이거나 아님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파란꼬리 부모님은 맛없는 미역국을 드시고선 조금 있다가 고향인 부여로 내려가셨다. 그날 말걸기와 파란꼬리는 말걸기 부모님댁에 가려고 했다. 말걸기 엄니가 부탁한 일이 있어서 이걸 끝내고 개봉동으로 가야했다. 이 일이라는 게 30분이면 끝나야 하는데 반나절 넘게 붙잡게 되었다. 하여튼 물건은 좋은 거 써야 한다니까.

 

늦게라도 가야 추석 당일 날 말걸기 엄니가 음식 준비하는 걸 아침부터 도울 수 있으니 밤 10시가 다 되었지만 집을 나섰다. 그런데 왠 걸. 버스 막차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버스가 끊겼다. 이눔의 고양시 버스! 다시 집을 빽.

 

 

추석날 개봉동에 도착했을 때 말걸기 엄니는 명절 음식 재료를 준비해 두었다. 혼자 일도 많이 하셨군. 어쨌든 이번 명절 부침개는 말걸기가 다 부쳤다. 튀김까지 해부렸네.

 

추석날 점심. 저녁. 다음날 아점까지 만들고 차리는 일과 설거지. 심지어 과일 깎는 것까지 99%의 일을 말걸기, 말걸기 엄니, 파란꼬리가 다 했다. 아홉이 모여서 셋만 일하니 확실히 불공평하긴 하다. 근데 이러는 것도 다 핑계가 있다.

 

말걸기 아버지는 당연히 일은 안 한다. 이거야 설명이 필요 없고. 누나는, 자기 말로는 시댁에서 일을 많이 하고 와서 허리가 아프단다. 어째 명절마다 똑같냐. 자형은 이 집 사위인데 사위가 나서서 집안일 하기 참 멋적은 데가 있다. 이건 말걸기도 좀 안다. 그래서 자형은 상 펴고 닦고, 불판이 필요하면 가스렌지 꺼내고 등등을 한다. 조카는 초딩 2년인데 딱히 일 시키기에도 적당치 못한 나이다. 가끔 상 닦으라는 정도.

 

문제는 말걸기 형네다. 형수는 한 달 후면 해산한다. 배가 산만큼 나왔는데 일 안 한다고 갈구기도 좀 그렇다. 그래도 하는 척은 하는데 이걸 보면 말걸기 엄니는 일하지 말라고 말리신다. 그럼 형수는 바로 제자리. 아무리 그래도 자리에 앉아서 과일도 못 깎나? 게다가 형은?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 않는 스타일인데 이번 명절에는 깜짝 놀랄 일까지 목격했다. 추석날 저녁에 비빔밥을 해 먹었는데 형수가 형 밥까지 비벼 주더라. 이것 참.

 

 

말걸기가 부침개 하나에 천 원 씩 내고 먹으라 해도 죄다 생까더라. 그 돈 모아서 일한 사람들끼리 맛나는 거 먹을라 했더만. 이번 명절은 참 얄미운 생각만 가득했다. 말걸기는 짜증나서 다음 명절부터는 집에 있자고 했지만 파란꼬리는 말걸기 엄니 혼자 음식 준비하는 거 못 봐주겠단다. 그래서 가서 일해야 한단다.

 

음... 그래서 말걸기가 생각해 낸 건 다음 명절부터는 말걸기 엄니만 말걸기네로 오시라 하고 셋이서 맛 나는 거 해먹는 거다. 아니면 다들 돈 많이 벌어서 명절마다 각자 외국 여행들 가거나.

 

 

 

이번 연휴에 먹은 음식마다 말걸기가 참견했는데 죄다 맛이 별로였다. 꿀꿀한 연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