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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쉬면서 나만을 생각해 보자고.

13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04
    고백하다(5)
    말걸기
  2. 2006/04/04
    오랜만에 자전거 타다(2)
    말걸기
  3. 2006/04/01
    두 가지 증상(2)
    말걸기
  4. 2006/03/27
    [펌] "Girl 7.0 업그레이드해 Wife 1.0 만들고 나니"(3)
    말걸기
  5. 2006/03/24
    [팝콘 한 봉다리]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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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3/23
    손짓, 부름, 부탁... 뭐 이런 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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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6/03/15
    뒤로 미루기와 놀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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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6/03/14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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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3/03
    &quot;여자는 재미로 사랑을 하지 않아요.&quo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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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3/02
    마누라, 첫 출근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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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다

 

오늘 엄니한테 일 그만두었다고 고백했다.

 

"왜 그만두었니?"

"뭐 할거니?"

"아버지는 네가 돈은 못벌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데..."

 

등등

 

"좀 쉬어야겠어서."

"올 가을까지는 놀래."

"..."

 

 

그리고, 두 가지 말씀.

 

"돈 못 번다고 위축되진 말아."

"이왕 쉬는 거 한 번 가보자던 히말라야 가보자."

 

 

 

 

나 올가을에 히말라야로 효도관광 갈거다.

 

 

오랜만에 자전거 타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다. 지난 겨울 내내 이제까지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사실은 1월 내 생일날 한 번 탔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별로 좋지도 않고 쪽팔리니 그냥 겨울 내내 자전거 한.번.도.안.탄.걸.로.할.란.다.

 

 

요즘 밤에 잠도 안 오고 해서 11시가 넘어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홍제천변 연가교에서 시작해서 성산대교 북단 근처 홍제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을 경유해 가양대교 방면으로 강을 따라 내려갔다. 성산대교 북단과 가양대교 북단 중간쯤부터는 비포장 자전거도로다. 여기서부터는 '고수생태공원(?)'이라나 뭐라나 해서 키가 작은 숲이다. 따뜻한 계절이면 그 숲에서 새소리 벌레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예전엔 이 공원을 가로질러 가양대교 북단까지 가곤 했었는데, 오랜만인지 어둡고 울퉁불퉁한 길에 자신이 없어서 잠시 쉬다가 방향을 돌렸다.

 

 

잠시 쉬면서 흔들리는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가양대교다. 한강물에 반사되는 가양대교 불빛을 받아 강물에 떠 있는 것들이 보인다. 새떼다. 철새들 같은데 울어대는 소리만 듣고서는 무슨 새인지 모르겠다. 물론, 눈으로 본다고 해서 알 리도 없다. 밤에는 이렇게 강물 위에 내려 앉아 쉬나 보다. 나름대로 장관이었다. 나 같은 친구는 별로일 것 같아서 그냥 쉬라고 자리를 비켰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는데 이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강 북쪽 길을 따라 서강대교 북단까지 갔다. 성산대교 북단부터 양화대교 북단까지는 길이 곧게 뻗어 줄창 내달리기는 좋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은 없다. 양화대교 북단을 지나면 길도 약간 좁아지면서 분위기가 좋아진다. 절두산 성당을 지나 서강대교 북단을 찍고 잠시 쉬면서 친구 사진 몇 장 찍어줬다.

 

 

이 친구 덕에 나름대로 폼잡고 한강변 잘 달렸다. 다시 홍제천으로 들어서니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오랜만에 너무 무리한 듯하다. 그래도 땀을 빼고 달리니 맘은 편해졌다.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한 것(진짜 시작한 거 맞나?)만으로도 '두 가지 증상'을 거역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약간 생겼다. 역시 운동이란 꾸준히 해야 돼.

 

아직 3시도 되지 않았는데 잠이 온다. 자야지.

 

 

두 가지 증상

 

요즘 두 가지 증상이 생겼다. 요즘이라 하면 앓던 몸살을 지난 주 주말쯤에 끝낸 후부터이다. 그리고 두 가지 증상은 '잠 안자기'와 '심장의 불편함'이다.

 

이 두 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난 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의 일이다. 잠을 못 자고 왠지 불안해서 밤을 새고 해가 뜨면 잠이 들던 날은 자주 있었다. 그냥 괴롭고 귀찮아지고 피곤해도 잠에 들지 않는 자학을 하던 일. 이런 건 예사로 반복되었다. 당에서 일하면서 점점 더 심해진 증상이었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이런 적은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열흘 가까이. 한편으로는 지금이야 일을 하지 않으니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는 생각은 든다..

 

왠지 모를 불안에 떨면서 잠을 거부하는 증상에 더해지는 '심장의 불편함'은 꽤 오랜만이다. 너무나 너무나 스트레스가 심하고 몸이 쇠약해지면 슬쩍 찾아오는 증상이었다. 돌아보니 분노, 앞날 예측 불가, 위협, 자존심의 상처, 두려움, 꽤나 괴로운 질병의 발병 등이 원인이거나 동반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도 이런 것들 때문인가?

 

 

집안일에 막 재미를 붙이려는 순간에 몸살이 걸렸고 무기력해졌다. 그러고 나니 두 달 가까이 별로 한 일이 없다는 조바심, 깨끗하게 정리해야 할 일을 정리하지 않은 불쾌감이 점점 커지더니, 조금씩 싹을 보이던 삶의 재미를 밟아버리고 있는 듯하다.

 

성격은 급한데 게으르고, 약간의 강박은 있는데 눈앞에서 시원하게 마무리되는 건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여기까지는 다 내 의지의 문제이긴 한 것 같다. 그냥 하고싶거나 해야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그때 그때 다 해치워버리면 되는데, 스스로 안하고 개기니까 그런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의지와 달리 외부의 압박이 있다. 남들에게는 내가 일을 그만두었다는 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해된다. 그러니 주변으로부터의 '기대'라는 게 있다. 이게 왜 이리 부담스러운지. 또 퇴직금 문제도 그렇다. 당연히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할 상황이 닥칠거라는 게 날 괴롭게 만든다. 갈등은 피곤하니까.

 

어쩌면 이런 날들이 언제까지 계속될까를 생각하는 게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불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잠을 못자는 건 영혼이고 심장이 시끄럽게 요동치는 건 육체. 불안은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에고...

 

 

[펌] &quot;Girl 7.0 업그레이드해 Wife 1.0 만들고 나니&quot;

 

madger의 블로그에서 유머를 하나 퍼왔다.

유머와 이 유머에 대한 madger의 짧은 글을 함께 퍼왔다.

 

[펀 곳] : http://blog.naver.com/madger/20005254303

 

 


 

 

재미있는 이야기

 

 

수신 : 마이크로소프트사 판매담당 엔지니어께 
발신 : *** 
제목 : 업그레이드 실패

 

안녕하십니까? 저는 작년에 Girlfriend 7.0 을 업그레이드하려고  Wife1.0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업그레이드하고 보니 많은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Child.exe 라는 새로운 파일을 생성하더군요.  이로 인해 많은 C 드라이브 스페이스를 잡아먹어 하드용량이 충분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사의 사용 설명서에는 이러한 사항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Wife 1.0 프로그램은 설치와 동시 다른 프로그램에  자동 링크가 될 뿐 아니라 모든 다른 프로그램을 자동 제어하고  심지어 제가 즐겨 찾는 프로그램들인 Smoking 10.3,  Drinking 3.5, Saturday Night Disco 5.0, Playboy Club 6.0 등과  충돌이 됩니다. 


또한 Wife 1.0을 실행 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들인  Night Club 4.3이나 북창동 7.0, 총각파티 3.1, 아래허리 카페 3.0 등을 볼 수가 없습니다. CD에 실려 있는 원본 디스크로 별도 LOADING 해야 볼 수 있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RE]여자친구를 Wife로 Upgrade 할 시 문제점  
수신 : *** 님께 
발신 : 마이크로소프트  

 

 

편지 잘 받았습니다.  님께서 겪고 있는 문제들은 모든 남성 사용자들에게 공통으로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문제는 많은 분들이 Girl Friend 7.0 을 Wife 1.0 으로 업그레이드 하고자 생각하신 그 이유는 Wife 1.0 이 UTILITIES & ENTERTAINMENT  프로그램이라고 오해한데서 기인합니다.


Wife 1.0은 Utility 프로그램이 아니라 OPERATING SYSTEM 입니다. MS DOS 와 같은 종류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프로그램을 제어하고 운영하게끔 고안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설치하면 UNINSTALL 이나 DELETE 명령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OPERATING SYSTEM 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고객들께서 Girl Friend 8.0이나 Wife 2.0 을 설치하려고  해 보았으나 더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었으며 금전적 손실도  무척 크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사용설명서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페이지 다섯째 줄에 Child.exe 파일의 생성과 Divorce.com 파일에 대한 경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3페이지에는 Wife 1.0 을 효과있게 작동시키는 여러 가지 명령어 및 액세서리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command C:APOLOGIZE 를 실행하면 Wife 1.0 과  다른 프로그램의 충돌을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님이 구입하신 소프트웨어는 이제껏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것이며 경제적인 것입니다.

 

부가 써비스 프로그램으로 Laundry 1.0, Cleaning 97.0,  Massage 2.0 등의 다채로운 소프트웨어가 무상으로 제공되었습니다.  

 

기존의 귀하가 즐기시던 프로그램을 이것으로 대체하여 즐기시기 바랍니다. Wife 1.0 의 운영 시스템을 보완하고 하드의 용량을 키우시려면  Flower 2.1, Chocolate 5.0, Movie 8.0 등 을 추가로 깔아놓으시면 매우 좋습니다.

 

특히 Diamond 18.0은 구입가가 비싸지만 Wife 1.0 의 운영 체계를  획기적으로 보완해 줍니다.  

 

참고로 아래의 프로그램들은 바이러스 감염을 초래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 Secretary 3.3  - Room Salon 5.5  - Miari 6.9  - 588 Blues 9.0  - 완월동 5.0 - 초량동텍사스 4.5  

 

특히 다음 제품을 깔면 컴퓨터가 완전히 뻑납니다.   - Second 1.0  - Girl Friend 9.0  - Married Women 1.0  - Widow 8.8  - Young Chicken 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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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ger의 글]

 

유머 효과의 또다른 방식은 이야기 구조의 반전이나 번복이라는 형식과 기대 파괴라는 내용의 결합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유의 발랄함과 예외성을 통하는 방식이다. 그것을 통해 웃음 뿐아니라 신선함도 함께 준다. 

 

특히 위 유머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또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은유의 바다를, 암만 먹어도 배부리지 않은 미식을 즐기는 기분으로, 기분 좋게 유영하는 것과 같은 쾌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유머는 철저하게 남성 시각 중심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실이 웃음의 효과를 반감 또는 그 이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기능을 할 것이다. 웃음에도 사실 코드가 있다. 이 유머에서 놓칠 수 없는 비유머러스한 코드는 일부일처제 중심의 가족 도덕률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난을 조금 피해나갈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수비 능력이 있다.

 

 

 

[팝콘 한 봉다리]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말걸기["여자는 재미로 사랑을 하지 않아요."] 에 관련된 글.

아래의 글은 야스피스가 월간 <금비>에 쓴 원고이다.

수다 중 '문'이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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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한 봉다리]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영화를 보면서 그가 생각났다. 몇해 전 ‘성적 소수자’를 취재할 무렵 ‘르포’를 맡았던 나는 종로의 게이 커뮤니티 지도를 인터넷에서 찾아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만의 공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 ‘친구사이’의 도움을 얻어 처음으로 소개 받은 게이가 그였다.
종로3가 뒷골목의 한 게이 카페에서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던 그는 “기사에 이름이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을 분명히 하고 얘기를 시작했다. 일류대 경영학 박사였던 그는 뜻밖에도 유부남이었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게이임을 알게 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들어간 동성애 사이트에서 동성애자들과 채팅을 하면서 그는 불현듯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자각했다. 그날 이후 아내와의 관계는 틀어졌고 우연히 그가 들어갔던 사이트를 보게 된 아내는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난 참 불행한 인생”이라며 한탄을 했지만 사귀고 있는 애인을 소개하면서는 행복한 웃음을 보였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번에 <금비>와 함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본 주인공은 민주노동당 서대문구위원회 소속 당원인 강00, 조00, 문00 등 세 명이었다. 동성애자가 한 명 정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30대 중반인 이들 셋은 모두 이성애자다. 아니다. 셋은 모두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단정은 섣부르고 구분은 무의미하다. 단지 이들 중 한 명은 이성과 결혼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이성과 열애중이며, 또 다른 한 명은 현재 연애중은 아니지만 “자아를 잠식 당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할 따름이다.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연출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남성성이 짙은 카우보이들의 세계를 다룬 슬픈 ‘러브스토리’이다. 도저히 동양인이 만든 영화라고 보기 힘든 ‘아이스 스톰’과 ‘센스 앤드 센서빌러티’로 미국인들을 놀라게 만든 이안 감독은 전작들과 완전히 다른 ‘와호장룡’을 만들어내더니 이번 영화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의 감독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에 빠져보자.
 
20세 청년인 에니스 델 마와 잭 트위스트는 1963년 여름 와이오밍주에 위치한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방목일을 하게 된다(오해를 피하자면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닌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와이오밍주는 물론이고 이 세상 어디에도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산은 없다. 캐나다에서 찍은 이 영화 때문에 와이오밍주 관광청 전화통만 불이 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름 한 철을 같이 보내던 도중에 이들은 짧은 사랑을 나누게 되고 가슴 속으로만 타들어가는 이별을 했다. 약혼녀였던 알마와 결혼해 딸 둘을 낳은 에니스는 여전히 가난한 품팔이 인생을 살았다. 잭도 농기계상의 딸 로린과 결혼해 아들을 낳고 장인의 사업을 도우며 살았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어느 날 잭이 에니스에게 엽서를 보내 이 둘은 운명적인 해후를 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시 확인한 그들은 매년 한 두 번씩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만나면서 사랑을 나눈다. 에니스의 아내 알마는 남편이 친구라던 잭과 처음 재회하면서 진한 키스를 나누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둘은 이혼을 했다. 에니스는 잠시 캐시와 사귀지만 결코 관계를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한편 ‘자기에게 춤을 청하지 않는 남편’을 둔 로린은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할 뿐이다. 더 이상 영화 줄거리를 얘기했다간 스포일러로 찍힐 것 같아서 영화 얘기는 여기까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지만 엔딩곡 두 곡이 끝날 때까지 극장의 불은 켜지지 않았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두 노래를 듣고 나서 우리는 말없이 극장문을 나섰다. 늦은 밤 힘겹게 찾아 간 맥주집에서 나눈 이야기는 이렇다.

 

 

- 강 : 남자가 보기에 여자들이 웃길 것 같아. 캐시가 에니스한테 “여자는 재미로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남자도 그럴 것 같아. “나도 그런데….” 이혼한 다음에도 추수감사절 날 초대해서 칠면조 먹이고, 옛날 얘기 꺼내고 말이야.

 

- 문 : 알마가 불쌍해.

 

- 강 : 연애의 대상만 다를 뿐이지 연애의 코드를 잘 따라간 영화야. 기다리는 사랑은 너무 슬퍼. 애인한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웃음)

 

- 조 : 산에 들어갔을 때 둘이 사랑에 빠지기 전에 뭔가 복선이 안 깔려있었던 것 같아. 너무 충동적이었던 거 아냐?

 

- 강 : 원래 충동적인 거야. 사는 얘기 나누고 서로 의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 조 : 굉장히 충동적이었어. 운명적 만남이라면 뭔가 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좀 당황스럽더라구.

 

- 문 : 그러니까 사랑이지. 운명적 사랑? 어떻게 사랑이 운명적일 수가 있어? 게이가 둘 있다고 해서 연애를 한 게 아니야. 한 순간에 필이 꽂힌 거지.

 

- 조 : 잭은 충동적으로 시도했어. 에니스는 처음에 놀라고 당황하다가 순식간에….

 

- 강 : 이해하고 못하고 문제가 아니라 영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 조 : 에니스가 어렸을 적에 마을에 있던 게이가 잔인하게 살해된 거를 봤잖아. 그런 공포 때문에 에니스를 뿌리칠 수밖에 없었지.

 

- 문 : 그러고 보내니까 이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지. 만약 가정을 꾸리지 않고 연애를 했다면 헤어졌을 거야.

 

- 강 : 근데 남자들끼리지만 둘 사이에 사회적 관계가 설정되지 않아? 한 명은 식사 준비하고 천막을 지키고, 다른 한 명은 밖에서 양떼를 몰고 말이야.

 

- 조 : 둘한테 성역할의 구분이 있었어. 중간에 서로 역할을 바꾸는데 성역할에 따라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지지.

 

- 문 : 잭이 여성적이야.

 

- 강 : 감정이 풍부하게 나오잖아. 에니스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오고 에니스가 난감해 하며 돌려보내니까 울면서 가잖아. 그나저나 배경이 너무 예뻐.

 

- 조 : 사랑에 빠지려면 그런 데 있어야 하나.(웃음) 에니스가 잭의 제안을 거절했던 거는 어떤 것 때문일까.

 

- 강 : 뭔가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잖아. 성장배경에도 나오고 부모가 일찍 죽고 어렸을 때 형과 누나가 결혼해서 떠나고….

 

- 문 : 그렇게 가족한테 버림을 당하니까 자기는 가족을 못 버리는 거지.

 

- 강 : 확신도 없을 거고. 외로움에 너무 익숙해져서 딸이 같이 살자고 해도 못 산다고 하잖아.

 

- 조 : 둘한테 직접적인 억압을 없었던 거잖아.

 

- 강 : 심리적 억압이었지. 근데 이게 숙명적인 사랑일까.

 

- 문 : 숙명이나 운명? 그런 건 다 환상이야. 당사자에겐 어쩔 수 없는 거야. 솟구쳐 나오는 감정….

 

- 강 : 나도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영화에서는 ‘사슬’이라고 나오지. 어쩔 수 없는 그런 거.

 

- 조 : 오지게 걸렸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적으로 엮이는 거지.

 

- 강 : 결혼식장에 가면 각 커플마다 정말 험난 파도를 넘고 그런 우여곡절이 있어. 근데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나면 일상의 감정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지. 하지만 잭과 에니스는 그게 아니니까 더 애틋하게 되는 거야.

 

- 문 : 너무 슬프잖아.

 

- 일동 : 그래.

 

- 문 : 잭이 에니스한테 같이 살자고 했던 거랑 (이성애자인) 내가 어떤 여자한테 같이 살자고 하는 거와는 달라. 잭이 죽고 나서야 에니스는 맹세한 거지. 잭이 자기 셔츠 안에 에니스의 셔츠를 담아놓았던 것처럼 평생 자기 셔츠 안에 잭의 셔츠를 품고 살 것을 말이야.

 

 

다시 드는 생각. 동성애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이성애자들이 차마 느끼지 못하는 사무치는 감정에 복받쳤을 것 같다. 아니, 게이들의 사랑이 현실과 달리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려진 것을 보고 허탈해 할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슬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취재원이었던 그가 다시 떠올랐고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엔딩 곡 “The Maker Makes”의 음률이 생생했다.


“이 사슬을 끊고 네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조물주는 또 다른 사슬을 만드네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너를 향한 사랑의 눈금을 더 높이 그으며
너를 잊지 않으려 애쓰네
하지만 조물주는 사랑의 벽을 높이네
슬픈 운명의 사랑이여
오 주여, 저는 압니다
저는 압니다
당신이 제게 어떠한 행복을 주었는지
만족하고 살라면서”

 

 

손짓, 부름, 부탁... 뭐 이런 거

 

어제 오후 늦게 레디앙을 방문했다. 그저께 민주노동당 언론담당 정책연구원이랑 잠시 담소를 나누었는데, 내게 레디앙 소식을 물었다. 내가 19만원짜리 주주라고 떠들고 다녔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나도 조만간 사이트를 오픈한다는 소식만 들었지 어찌 돌아가는지 아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디앙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문득 정말로 레디앙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어차피 여의도에 갈 일도 있고 해서 어제 오후 레디앙에 먼저 들렀다.

 

19만원짜리 소액주주 주제에 간섭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몇 마디 거들게 되었다. 오픈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주주들에게 전화든, 메일이든, 문자든 보내심이 어떨지. 언론담당 정책연구원의 의견이었는데 내가 전했다. 레디앙 편집국장 이광호 아찌는 주주 메일링리스트를 만들어서 뉴스레터도 보내려고 하는데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한다. 레디앙은 나름대로 오래 준비한 인터넷 매체이긴 하지만 예상보다 어려움이 많고 그래서 준비도 기대보다 화려하지 못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야스피스는 내게 편집기자 할 생각 없냐고 물었다. 난 그게 뭐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광호 아찌도 이런저런 일을 해 줄 수 없겠냐고 했다. 언론사에서, 그 근처에서도 일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나 스스로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내 주변 정리하던 거 마저 하고 4월에 와서 도울 수 있는 일을 얘기해보자고만 했다.

 

 

며칠 전 강동에서 구의원 출마하는 황씨가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다. 내가 강동에서 도와준 거 소문나면 서대문에서 죽는다고 했다. 그 전화 받기 전에는 거제에서 전화가 왔었다. 지역위 사이트 만들어야 하는데 도와달란다. 난 그런 일 해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할 수도 없고 지금은 인맥도 다 떨어져서 소개시켜 줄 사람도 없다고 했다. 내 사직 소식을 듣고서 한 지역 활동가가 지방선거 정책 만드는 거 도와달라고 했었다. 난 그때 상태가 무지 좋지 못한 상황이라서 도저히 도와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요전에 봉포항 만나러 속초갔을 때, 농담이었지만 놀면서 쉬면서 그 동네 선거나 같이 해 보는 건 어떠냐는 얘기도 들었다. 서대문에서는 내가 선거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분위기다.

 

주변에서 손짓을 한다. 함께 일해보자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주로 선거철이라 선거일이기는 하지만 레디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아주 잠깐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실장과 사무국장과 얘기한 적도 있었는데 연구소에 필요한 몇 가지 일을 같이 해보는 것도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다.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하기도 하겠고, 할 일 없는 나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제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난 오래오래 쉬고 싶지만 내가 다 쉴 때까지 이러한 제안들이 유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제안이 재미없거나 무의미하거나 그다지 흥미롭지 못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몽창 다 깨끗하게 거절하는 것도 왠지 아쉽다.

 

만나는 사람들마다의 제안에 솔깃하는 건 내 귀가 얇은 탓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모든 게 다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정작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깨닫는 것 같다. 그 깨달음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차분히 있어야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깊숙히 개입할 일에는 열정을 쏟게 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지혜로운 판단을 하지 못해 기대에서는 무척 벗어난 인생의 길을 가버리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때마다 기회와 나의 선택의 시기를 맞추어가며 살아왔다. 인생의 기로란 이런 것인가 보다. 내 삶에서 아귀가 맞지 않는 첫 시절인 것 같다. 어쩌면 주변의 손짓, 부름, 부탁은 부담이기도 하지만 내 다음 인생을 위한 친절한 재촉일 수도 있다.

 

 

뒤로 미루기와 놀기

 

하던 일 때려치우고 할 일 없이 놀아도 영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몸에 아픈 구석이 있으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6년 가까이 일을 하다보니 사무실에 쌓인 내 물건들이 한 아름보다 더하다. 정리해야 한다. 내 컴퓨터가 한계에 다달았으니 업그레이드도 해야 한다. 맘 먹은 바가 있으니 자전거도 장만해야 한다. 오랜 동안 쓸고 닦지 못한 집안 구석구석도 손봐야 한다. 공부를 한다거나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도 차분히 해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성찰하는 데에 게을러서는 안되는 시점이다. 시간의 여유란 할 일 없을 때 누리는 게 아니라 할 일을 느긋하게 할 때 누리는 것이다.

 

 

조금 전에 여의도 당사 근처에서 돌아왔다. 어제 오후 늦게 행인에게 빌려줄 책들이 있어서 들고 나가기는 했지만 애초에는 사무실 한 켠에 아직 남아있는 나의 자리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하루에 다 정리하지 못할 양이긴 하지만 하는 만큼이라도 해 두면 좋을 일이다.

 

낮에 집에서 몇몇과 채팅을 하고 이래저래 알아볼 것 알아본다고 서핑하다가 늦게 나갔다. 수다 좀 떨다보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저녁도 오래 앉아 먹고 나서는 새벽 1시가 다 되도록 당구를 쳤다. 이 시간이 재미없었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맛나는 삼겹살 배불리 먹고, 즐겁게 당구도 쳤으니 잘 논 것이다.

 

사람들과 즐겁게 노는 건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나에게는 꿀꿀한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당구를 치는 게 훨씬 이롭다. 지금 내 처지에 노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뒤로 미루기'이다. 이 점이 나의 생활태도의 문제 중에 하나다. 이왕 제대로 푹 쉬기로 마음 먹었으니 해야 할 일을 천천히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당장 하지 않는 것은 하기가 싫어서이다. 하기 싫은 이유는 아마도 '회피'에 있는 듯하다. 단지 게으름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 '회피'는 두려움이나 자신감 상실 등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사무실 내 책상과 책장을 정리해버림으로써 내가 6년 가까이 공들여 일한 일터에서 멀어지는 걸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당에서 일하는 걸 나는 영광으로 여겼다. 내 인생을 바쳐야 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떠나야 할 때가 되어 떠나와 놓고선 여직 나의 마음은 기대고 있는 듯하다. 나의 짝꿍을 제외하면 당을 나의 전부로 여기고 있었으니, 당과의 인연을, 끈끈한 나의 일부가 아닌 객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심리적 이별이란 이렇게 어려운가 보다. 두려움이 내 마음 속 깊이 틀어 앉아 열심히 저항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픈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병원도 가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일을 핑계로 얼마나 오래 미루어 왔던가. 그토록 미루어 온 일을 지금도 미루고 있는 건 나를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일 수 있다. 건강한 몸뚱이를 바라면서도 이를 위해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니.

 

빨래를 한다거나 설거지는 한다거나 하는 자잘한 일들에서 나는 작은 만족감을 얻는다. 집안일에 익숙해지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런 일이라도 집에서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더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즉, 의지를 가져야 한다.

 

지금 나의 심리적인 상태로서는 자전거가 있어야 운동을 하게 될 것이고, 컴퓨터가 있어야 내가 바라는 적극적인 작업을 하게 될 것이고, 병을 치료해야 더 많은 의욕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나의 의지가 약하다. 의지가 약한 건 그 다음의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두렵고 자신감을 갖지 못해 회피하는 나, 그런 삶의 태도를 갖는 지금의 내가 바로 위기가 아닌가 싶다. 놀더라도 내가 할 일을 회피하고 않고 놀아야 시간의 여유를 더욱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살 지가 고민이라 했다. 또 하나의 나의 고민은 회피하는 나 자신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나의 태도는 바꾸어야 한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

 

이 글은 전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이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은 지난 3월 5일에 막을 내렸고, 나는 가지 못했다. 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무엇을 하고 살까 고민 중이다. 다른 심각한 고민들도 있지만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니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무엇'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무엇'이란 꼭 '직업'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과 돈벌이가 일치하는 삶이 곧,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내게 그런 복이 올까는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고민하는 건 '돈벌이'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이다.

 

민주노동당직을 사직한 건 잘 한 일인 것 같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잘 된 일이 될 것 같다. 아직 민주노동당과 심리적 이별은 하지 못해 헤매고는 있으나 이것도 어떻게든 정리될 것도 같다.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잘 그만두었다'를 여전히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하던 일을 그만 두어버리고 나니 앞으로 할 일이 잡히질 않는 나의 상황에 반전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한동안 나의 자아를 잠식한 존재가 아닌였던가. 나에게서 민주노동당을 떼어 내려 하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점점 더 알 수 없어진다.

 

이런 상황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큰 혼란이다. 이 혼란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는 싶지만 자꾸 회피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기대하는 나 스스로에게 가장 큰 독 중 하나가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 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알아내는 것도 힘들어한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은 2월 경에 지나가는 길에서 광고를 보고 알게 되었다. 3월 5일까지였으니 시간을 내서 가고자 했지만 이래저래 시간이 맞질 않았다. 정신 바짝차리고 꼭 봐야겠다고 맘을 굳게 먹었다면 시간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 나의 의지란, 가는 한숨에도 날라가 버리는 가벼움을 몸뚱아리로 가지고 있다.

 

마티스 등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렬이 든 어느날이었다. 혼자 집에 있었다. 왜 보고 싶어 할까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 때 그림을 배웠었고 계속 그리고 싶어 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한 때, 그림을 그리던 시절과 그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일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그림을 모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돈이 있으면 헌책방에서 그림책을 샀다. 유명한 작가의 그림책들.

 

지금도 나의 책 무더기 속에는 마티스의 작품집이 있다. 최고로 유명하고 높이 평가받는 작품들만 엑기스로 모아놓은 컬렉션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작품집이다. 그러니까, 한 때는 이런 작품집을 모으고, 인쇄된 한 작품 한 작품을 감상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문득, 예전에 이러고 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마티스의 작품집과 그 주변에 꼽혀 있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집을 보면서 행복해 했었다. 그래, 행.복. 그 기억이 살아나자 난 너무 슬퍼졌다. 난 지금 행복하지가 않다. 무엇을 하고 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불행 속에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행복을 잊고 살 정도로 생활은 팍팍할 따름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날 울었다. 집에서 혼자 울었다. 소금기 꽤나 빠지도록 울었다.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으니 땀보다도 짠 눈물이었을 것이다.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은 나에게 이런 의미가 되었다. '가보지도 못한 곳, 그래서 더 선망하게 된 곳'. 마티스의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될 날은 언젠가 올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 마티스만 있는 것은 아니니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나 스스로 작품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면 가야겠다. 중요한 건 보는 게 아니다. 보고 있는 내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갖는지를 깊이 알아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림에 강한 반응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하고 살까? 예전의 꿈과 의지를 찾을 수 있을까? 꼭 그 길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예전의 꿈과 의지를 확인할 필요는 있는 듯하다. 내 인생은 길 것이기 때문에 시간에 쫓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내가 정작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알아보기를 회피한다면 죽을 때까지 떠돌이 마음을 간직한 채 불행하게 살 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살게 될까.

 

 

 

&quot;여자는 재미로 사랑을 하지 않아요.&quot;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이안)>을 보다.

 

 

금융비적규직 사업 일환으로 발간하는 월간 <금비>라는 잡지가 있다. 이 잡지에 '영화보고 수다떨기'라는 꼭지가 있는데, 공짜로 영화보고 수다만 떨면 되는지라, 얼씨구나 좋다구나 무작정 영화를 보겠다고 나섰다. 3월호가 찍은 영화는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이안)>이었다.

 

게이의 사랑을 다룬 영화, 그리고 이안의 작품이라는 얘길 듣고 그의 또 다른 작품 <결혼 피로연, 1993>을 떠올렸다. 이 영화에서는 갈등하지만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 동성애를 보여주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기 위해 상암CGV로 가던 길에서도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로크백 마운티>은 슬픈 영화다. 이 영화를 두고, '아름다운 사랑', '위대한 러브스토리'라는 수사를 붙이는 건 영화 팔아먹기 위한 비평에 불과하다. '슬프고 억울한 사랑'이라 해야 한다.

 

 

- 에니스 : "내가 너무 재미 없었지?"

- 캐시 : "여자는 재미로 사랑을 하지 않아요."

 

- 알마 : "난 바보가 아냐. 내가 모르는 줄 알아?"

 

- 잭 : "네게 난 가끔 만나는 친구일 뿐이지만, 난 널 20년이나 그리워했어."

 

- 로린 : "희한하게도 남편들은 자기 아내에게는 춤을 청하지 않지요."

 

 

부모를 잃고 누나와 형도 결혼한 후에 떠돌이 신세가 된 에니스 델 마와, 부모의 목장일을 도우며 사는 잭 트위스트는 어느 해 여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 방목일을 하게 되었다. 둘은 짧은 사랑을 했고 가슴 속으로만 타들어가는 이별을 했다. 에니스 델 마는 알마와 결혼해서 딸 둘을 낳았고 여전히 가난한 품팔이 인생을 살았다. 잭 트위스트는 농기계상의 딸 로린 뉴섬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으며 장인의 사업을 이은 로린을 도우며 살았다. 이렇게 4년이 지났고 에니스와 잭은 다시 만났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다시 확인한 그들은 매년 한 두번씩 휴가가듯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에니스의 아내인 알마는 에니스와 잭의 첫 재회서부터 그들이 연인이라는 걸 알았다. 몇 년 후 에니스와 알마는 이혼을 했다. 이혼 후 에니스는 캐시와 사귀기도 했다. 캐시도 떠났다. 잭은, 갑부인 장인이 이혼만 한다면 주겠다는 위자료로 에니스와 목장을 가꾸길 원했다.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자기에게 춤을 청하지 않는 남편'을 둔 로린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돈 버는 일에만 몰두했다. '춤을 청하지 않은 이유'는 훗날 깨닫는다.

 

 

여느 연인과 부부가 그렇듯이 에니스와 잭의 사랑도 대칭을 이루지는 않았다. 사랑을 양으로 잴 수는 없으니 각자의 사랑 중 누구의 것이 큰 지는 비교할 수는 없고, 단지 그 관계에 대한 생각이나 표현 방식, 삶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음으로 에니스와 잭은 사랑하지만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잭은 에니스의 이혼을 반가워했다.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에니스는 잭의 인생 설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니스가 잭을 '가끔 만나는 친구'로만 생각했을까? 에니스가 잭과 함께 살기를 거부한 건 잭인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운명을 거스르는 남녀의 사랑은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순수하며' '위대'하다. 그러나 두 게이의 사랑은 운명을 거스를 힘도 없었다. 그들만의 공간인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 듯 일년에 한두번 '밀회'를 가질 뿐이었다. 자연 빼고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그들만의 공간에서. 둘만의 공간에서는 행복하지만 따지고 보면 슬프고 억울할 따름이다. 캐시에게서 "여자는 재미로 사랑을 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에니스의 마음은 어땠을까. 캐시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을 설명할 수도 없는 에니스, 슬프고 억울하지 않은가.

 

한국에서도 통상의 가족을 이룬 동성애자들이 있다. 이성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들이 겪었을, 겪게 될 지도 모르는, 어쩌면 겪길 바라는 동성과의 사랑을, 통상의 결혼에서의 '외도'나 '로맨스'로 보아야 할까? 나같은 헤테로야 이 영화를 보고 슬퍼하면 끝이지만, 동성애자들은 사무치는 아픔을 느껴야 할 지 모르겠다. 현실보다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오히려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한 그들의 느낌을 듣길 바라는 것조차 해서는 안될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일상에서 사랑을 누릴 권리도 없는 에니스와 잭이 사랑을 이룬 결말은 슬플 따름이다. 에니스와 잭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랑이 가능했다면 함께 살다가 성격차이로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사랑이었다. 나는 20년이란 세월에서 쌓인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그냥 가슴이 아플 뿐이다.

 

 

사회가 허락하지 않은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한 사람들은 에니스와 잭으로 그치지 않는다. 알마와 로린 또한 배신감과 허무함으로 수십년을 살았고, 죽음까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에니스와 잭의 관계를 알고 있던 알마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살아가던 로린. 그들이 불행한 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받지 못함을 표현할 수도 없고 관계를 쉽게 떨칠 수도 없었다. 금기는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첫 장면에서 동양화가 연상된다. 아름다운 산과 숲, 양떼를 담은 화면은 아름답다. 두 개의 노래가 흐르는 마지막 크레딧에서는 눈물이 난다. 영화 어디에서도 에니스와 잭은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연인'이 아니라 '친구'라는 게 더욱 슬프다. "He Was a Friend of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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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 지 얼마 안된 영화를 두고 이런저런 감정을 표현하기란 어렵다. 그 장면에서, 그 사건에서 어쨌다 저쨌다를 다 풀어버리면 글 읽는 사람은 김샐 것 같아서다. 시간이 더 지나면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글을 써볼까...

 

 

마누라, 첫 출근하다

 

긴 시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마누라가 오늘 교사로서 첫 출근을 했다.

 

학창시절의 기억은 결코 교사의 꿈을 꾸지 못하게 했단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삶을 모색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 교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려받은 피에 이끌린 바도 있어 보인다. 아버지는 현직 교사이시고 할아버지는 교장, 증조부는 훈장이셨단다.

 

교육대학원을 진학했고 두 번만에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오늘 아이들과 첫 만남을 맞이하게 된다. 학교의 방침으로 오늘 입학식에서, 가르치게 될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 앞에서 하게 될 취임사를 준비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시가 한 편 있습니다. 한 시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오기로 한 자리에서 그 사람을 기다립니다. 어찌나 긴장을 하고 예민해져 있는지,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님이 오셨는가 하여 깜짝 놀랍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그를 향해 다가갑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자세로 살고 싶습니다." (마누라의 취임사 원고에서)

 

마누라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할 것이다. 이때문에 고생도 많을테다. 아이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어찌나 긴장을 하고 예민해' 할 지 상상도 간다. 지난 주부터는 온통 학교가서 아이들과 무엇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해야 할 첫 마디가 무엇이어야 할까, 담임이 된 학급에서 반장은 어떻게 뽑아야 할까, 짝꿍은 어떻게 지어 줄까, 자리는? 번호는? 책은 어떻게 읽힐까... 등 무척 세세한 것까지 고민이 끝이 없다.

 

학교는 학교다. 대한민국 학교다. 양심을 갖고 있는 수많은 교사들의 고통의 현장이다. 무엇보다 상처투성이로 자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무지기수다. 좌절 또 좌절이 일상이 될 지 모르는 학교에서 건강한 교사로서 아이들과 건강하게 지내길 기원한다. 그리고, 앞으로 약 30년 간 꿈을 가꾸어야 할 마누라에게 축복을 기원한다.

 

다음은 취임사 원고에서 인용한 그 시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