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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3/23
    전주의 수수께끼 : 콩나물국밥 먹고 나서
    말걸기
  2. 2006/03/12
    추억도 나도 영원하지 않다
    말걸기
  3. 2006/03/08
    <전가복(全家福)>을 먹다.(4)
    말걸기

전주의 수수께끼 : 콩나물국밥 먹고 나서

 

지난 주 목요일(16일) 새벽에 전주를 잠깐 들르게 되었다. 남도 맛기행의 시작이었다. 전주의 음식은 맛있다 하니, 그 새벽에도 맛집은 있으리라 맘대로 단정하고 시내로 접어들었다. 새벽 2시경이었으니 왠만한 식당은 다 문을 닫았을테고, 이 시간에 영업할만한 국밥집을 찾아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시내를 몇 바퀴 돌았다. 정보가 없으니 불빛이 많은 이 골목 저 골목을 마냥 뱅글뱅글 차를 타고 돌았는데, 문득 [삼백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 [삼백집]의 간판. 왼쪽 인물은 동행한 W씨.

 

 

내게 '삼백집'이라는 이름은 추억의 밥집 이름이다. 10년도 더 전에 방언답사를 위한 사전답사랍시고 진안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친구와 후배와 함께 셋이서, 아는 동네도 아니고 하니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찾았다. 군청과 전화국이 모여 있는 곳 근처에 [삼백집]이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식당이 있었다. 이름이 독특했고 무엇보다 콩나물국밥만 파는 이른바 전문식당이어서 왠지 끌렸다.

 

뚝배기 그릇에 젓갈을 넣어 끊인 콩나물국밥이었는데 그 독특한 맛과 깊은 맛에 취해 입천장 다 벗겨지도록 먹었다. 한 그릇을 다 먹고나니 속이 든든해 타지라는 생경함, 그래시인지 쪼그라드는 마음은 다 없어졌다. 다시 배고파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배부름으로 하루를 꽉꽉 채워 이 일 저 일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진안의 [삼백집]은 그 후 몇 차례 더 찾을 기회가 있었다. 진안에 방언답사 본답사도 갔고, 친구들이랑 여행도 갔었고, 지금은 마나님이 된 애인이랑 놀러도 갔었다. 그때마다 식당은 제자리에 있었지만 한 번밖에 더 먹어보질 못했던 것 같다. 이 식당은 아주 나이가 많이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을 하셨는데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 보니 무슨 사정이 있는 듯했다. 진안까지 가서 이 [삼백집]에서 콩나물국밥을 못먹는 건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지금도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전주의 [삼백집] 바로 오른쪽에도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애초에는 이 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내가 [삼백집]이 옆에 있는 걸 발견하고선 이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차에서 막 내리려는데 택시 한 대가 식당 앞에서 서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삼백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순간 '잘 찍었다' 싶었다. 새벽까지 술마시고 출출한 속 풀기 위해 택시까지 타고 오는 걸 보니 전주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는 식당인 게 분명했다.

 

@ 전주 [삼백집]의 콩나물국밥과 모주

 

콩나물국밥집에는 당연 모주도 있으니, 콩나물국밥과 함께 모주도 주문했다. 모주를 먼저 맛보았는데, 모주에 무엇을 넣었는지 맛이 무척 진하고 강했다. 위의 사진을 보아도 무척 진해 보인다. 약재 같았다. 따뜻하게 데운 모주는 강한 맛 때문에 쉽게 들이켜지지 않았다. 몇 모금 마시고선 입을 더 대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모를까 전주 [삼백집]의 모주는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집의 콩나물국밥은 밥을 넣고 끓인 국밥이었는데, 이처럼 끓여서 만드는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하는 집을 찾기는 어렵다. 대신 말아주는 콩나물국밥이 있는데, 홍대 앞에 [전주남부시장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98년도 홍대 앞을 매일같이 들락거릴 때는 자주 갔었던 집인데, 이집의 콩나물국밥은 주인 아주머니 성격마냥 아주 깔끔했다. 모주도 맛있었다. 이 집은 반찬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데 젓갈도 맛나는 걸 주문해서 차렸다. 요즘은 홍대 앞에는 밥 때에 가는 게 아니어서 오랜 동안 이 집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조만간 가보고 싶은 곳이다.

 

 

전주 [삼백집]의 콩나물국밥은 3,500원. 모주는 1,500원. 모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3,500원에 국밥 한 그릇을 먹게 된다. 이 집이 내 활동 반경에 있는 집이라면,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보 맛이면 적잖이 찾게 될 듯하다. 하지만 이 집의 콩나물국밥은 감동의 맛을 지니지는 못했다. 끓여서 나오는 국밥 치고는 좋다. 하지만 진안 [삼백집]과 홍대 앞 식당의 콩나물국밥에 비하면 '진짜 맛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이번 콩나물국밥도 그러했지만, 작년에 민주노동당 전북도의원인 김민아 의원에게 소개받아 찾아간 한정식집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간장게장을 먹고 싶어서 김민아 의원에게 전주에서 잘하는 식당을 소개해달라고 하였다. 전주 한옥마을 근처 식당 밀집지역의 한 식당을 소개해 주었는데 분위기 좋은 한옥집에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식사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집은 간장게장만 맛있었다. 다른 반찬은 아주 짜거나 하는 등 별로 맛이 없었다. 간장게장을 잘 만들 정도면 다른 반찬도 왠만히 만들 수 있을텐데 말이다. 전주를 지날 때 간장게장을 먹고 싶어도 이집에는 다시 들르지 않을 것 같다.

 

전주는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도시다. 함 팔러도 갔었고 여행도 갔었고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해서 들른 적이 있다. 갈 때마다 '전주시 향토음식 지정업소'라는 간판이나 누군가의 소개로 식당들을 찾았었는데 기대에 미치는 식당은 없었다. [삼백집] 아주머니에게 진짜 맛있는 비빔밥집 소개해 달라니까 이 집 저 집 소개를 해주셨는데 그러면서도 하시는 말씀 '진짜 맛있는 건 아니구...'

 

타지인인 나로서는 수수께끼다. 도대체 전주에서 맛있는 음식점은 어디에 있을까? 전주에서 오래 오래 살면서 맛집만 찾아다닌 분이 있다면 소개 좀 받고 싶다. 진짜 맛집.

 

 

전주의 [삼백집]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듯하다. 찾아가고자 한다면 아래 지도를 참고하시라. 063-284-2227


@ [삼백집]의 위치. 서쪽 다리를 건너서 죽 가면 예수병원. 오른 쪽 아래는 옛 도청.

 

 

추억도 나도 영원하지 않다

 

3월 9일(목)-10일(금), 이틀 동안 동해안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목적은 첫째 놀고 쉬는 것이었고, 둘째 앞으로의 날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둘째 고민은 여행에서도 지속되고 얘기되었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앞으로 뭐하고 살지 생각하는 시간은 한 동안 계속될 것이다.

 

 

첫날, 숙소인 영랑호리조트에 도착했을 때 영랑호는 왠지 겨울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재섭는 골프장은 빼고. 예전에도 영랑호를 방문했을 때에는 눈이 내린 겨울이었다. 춥고 쌀쌀한 바람이 불기는 해도 영랑호는 겨울의 황량함이 살짝 느껴지는 그런 때가 좋아 보인다. 예전 방문 때에도 묵었던 영랑호리조트에 묵었는데 그때는 참 좋았던 시설이 지금은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에 아주 잘 꾸며진 리조트며 팬션이며 콘도를 수없이 지나쳐 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추위가 몸속을 깊이 파고들 때까지, 경포호에 비하면 작고 아담한(?) 호수인 영랑호 물가를 천천히 거닐었다. 물은 무척 더러워 기분을 깨긴 했으나 호수는 평온한 분위기를 풍겨 '쉬러 온 자'에겐 좋은 벗이었다.

 

 

저녁은 우수사랑의 솜씨로 맛나는 음식을 먹었다. 쇠고기 불고기와 돼지 불고기 두 가지를 모두 준비했다. 부러운 주부의 솜씨였다. 나도 그런 경지에 오를 날이 오겠지. 8일(수)에 저녁밥으로 무엇을 준비할까 고심한 적이 있었는데, 파란꼬리가 카레 재료를 사다두었으니 이왕 카레가 편할 듯했다. 감자에 싹이 나서 새로 사야했는데, 그래서 점심 식사 전에 모래내 시장에 나가서 감자를 사왔다. 먹는 건 절대 못참는 내가 배고픔을 참으며 시장통을 헤매고서는 '필요한 감자'만 달랑 사왔다는 건 나 스스로도 놀란 일이었다. 기이한 현상이었다. 빵이며 튀김이며 오뎅이며 순대며 떡볶이며 호떡이며 등등을 그냥 지나치다니... '집에 가서 밥 차려먹으면 돼'하면서...

 

이런 변화는 주부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게 우수사랑의 의견이다. 아줌마답게 다음부터는 밥먹고 배부를 때 시장엘 가란다. 그게 살림하는 아줌마들의 노하우란다. 금요일 아침에는 파란꼬리가 밥을 잘 먹고 출근했을까 걱정이 들었느데 이런 걱정은 예전과는 다른 걱정이었다. 파란꼬리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걱정은 항상 있었지만 '밥을 먹었을까'는 새롭다. 사람은 확실히 변한다. 사랑받기 위해서라도 이제 나는 열심히 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저녁을 뽀지게 먹었다. 헉헉대며... ㅎㅎ

 

우수사랑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우수사랑의 남편과 함께 동명항에서 회를 떠왔다. 잡어들이기는 했으나 그 가격에 그만한 양을 먹을 수 있는 건 동명항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동명항도 예전의 맛과 싱싱함과 저렴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다. 속초 바로 위에 있는 고성군 땅 봉포항이 더 낫단다. 다음에는 봉포항에서 회를 떠야겠다.

 

'봉포항'은 9시경에 영랑호로 왔다. 교육이 있어서 늦었단다. 우수사랑 내외와 봉포항과의 수다는 이런 저런, 정해놓지 않은 얘기들이었다. 동명항의 회는 밤 늦게까지 안주가 되었다.

 

 

금요일 아침은 별미로 시작했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도 늦었다. 동명항에서 멀지 않은 '사돈집'이라는 곰치국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곰치는 최고의 해장음식이란다. 물곰탕이라는 메뉴로 있었다. 흐믈흐믈한 고깃살이 독특했다. 아구를 먹다보면 아주 흐믈흐믈한 부위가 있는데 꼭 그런 느낌이다. 물곰탕은 생선만 곰치로 바꾸었지 재료는 여느 매운탕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데다가 속도 아주 편한 음식이었다. 보통의 매운탕이라면 아침 첫 식사로는 자극적이어서 약간 거북할텐데 말이다.

 

 

사돈집의 곰치국을 먹고나서 바닷가 한번 구경하고 봉포항과는 헤어졌다. 선거 준비로 일이 바쁘니 계속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이 있으니 본격적인 등산은 어렵고 설악산 권금성에 케이블카나 타고 오르려 했는데, 바람이 세게 분다고 케이블카를 운행하지 않았다. 산 구경은 해야 하겠고 오대산 상원사로 가기로 했다.

 

 

상원사 가는 길에 배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지만 봉포항이 소개해 준 입암리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입암리 이정표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입암메밀타운'이라는 음식점은 폼나고 크게도 지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5천원짜리임에도 이런 맛을 가지고 있다는 건 큰 축복이었다. 나는 물막국수를 먹었는데 그 많은 양을 몇 젓가락으로 술술 다 넘겨버렸다.

 

양양공항 근처의 '실로암'이라는 막국수집이 있다. 10여년 전에 처음 갔을 때 아주 감동적으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국수와 동치미가 따로 나와서 동치미를 국수에 부어 말아 먹었었다. 아주 독특한 막국수를 잊을 수 없었다. 두어번 먹어본 후 한참 후에야 작년에 다시 가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약간 헤매고 찾은 실로암은 달라져 있었다. 동치미를 부어 먹는 막국수가 아니었다. 만들어져 나왔다. 나름대로 개성있는 맛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왠지 옛날 맛은 아니었다. 그래도 난 만족스럽게 먹었다. 좀 비싸기도 했지만...

 

이곳 현지 사람들이 '실로암'보다는 '입암메밀타운'을 찾는단다. 이유는 맛이다. 변해버린 맛보다는 여전한 맛을 즐기나보다. '입암메밀타운'의 막국수는 실로암의 막국수와는 아주 다른 종류의 것이다. 육수가 아주 좋다. 다음에 또 가야지. 지금도 생각난다... 먹고싶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강렬한 맛을 안겼다.

 

 

오대산을 처음 가본 건 95년이었다. 상원사와 월정사를 구경했었다. 깊은 산 중의 상원사. 크지 않은 절이었지만 깊이와 장중함이 느껴지는 절이었다. 철분 많고 찬 약수를 한모금 마시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이번 상원사 방문은 실망이었다. 건물도 신축하고 옛 건물도 칠을 새로 하는 등 절터를 정비했지만 촌스럽다는 느낌만 생겼을 뿐이었다. 이 절의 역사는 오래 되었기 때문에 고증을 제대로 해서 사옥을 잘 정리하거나 아니면 옛 스타일을 아니더라도 멋지게 정비하면 될 것을, 주제넘을 참견을 하자면, 졸부들이 하듯이 지들 보기에만 만족스러운 모양새로 만들어 놓았다. 약수도 한 모금 못 마시고 월정사로 내려갔다.

 

월정사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큰 절로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달라진 느낌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큰 절로 있다 싶었다. 상원사와 월정사 사이의 10여 km의 비포장도로에 대한 추억이 있는데, 그 추억도 왠지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5월이었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파란꼬리와 함께 걸어 내려온 적이 있었다. 높고 굵게 뻗은 나무숲과 계곡 사이로 난 비포장 도로는 낭만 그 자체였다. 그 때 보았던 통나무 다리도 없어졌다. 확연히 티나게 달라진 건 사람의 손길이, 문명과 기계의 손길이 많이 닿아 닳고 닳아진 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계곡의 얼음과 굵은 나무 숲이 위로는 되었다.

 

 

추억 속의 그곳을 다시 확인하는 것은, 그곳이 여전할 때는 기쁨을, 달라졌을 때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번엔 확실히 확인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강산에서 먹는 음식도 달라진다. 내게 가장 큰 아쉬움은 오대산의 실제 모습이 나의 추억과는 다르다는 데에 있다. 내 머릿속이 착각 속에 빠져 있던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쉬움은 컸다.

 

 

오대산에서 잠시 길을 돌려 경포호 근처의 초당리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초당두부를 먹어보자고. 우수사랑의 큰 언니가 강릉에 산 적이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선호한다고 소개해 준 식당엘 갔다. 맛있었다. 훌륭한 두부인 건 사실이지만 지난 해 주의장의 안내로 먹었던 두부맛에는 못미친다. 밀양에서 언양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자리한 간판도 없는 허름한 두부집. 언제 한 번 다시 가 보아야겠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서부터는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내 인생을 생각해야 하는 때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려야 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게 버거울 따름이다.

 

다음 주에는 이런 부담을 다시 한번 미루게 될 강진 여행이 계획되어 있다. 지금으로써는 어떤 여행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속초보다는 마음이 더 무거울 듯하다.

 

 

<전가복(全家福)>을 먹다.

 

한편으로는 무척 억울하고 슬픈 일이기는 하나, 또 한편으로는 '축복'할 법한 일이 있다. 우수사랑이 사직을 결심한 일이다. 뭐, 7년 세월을 정리하는데 스트레스 안 받을 리는 없고...(스트레스에는 맛있는 음식이 좋다!)

 

우수사랑이 6일(월) 낮에 전화 한통을 내게 건네더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했다. 그 순간 확 땡기는 건 별로 없었는데 요즘 제일 먹고 싶은 훠거탕은 비싸니 만두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자 우수사랑이 최근 정보 하나 입수했는데 이촌에 요리 잘 하는 중국집이 있다더라. 이촌역 근처에 [야래향(夜來香/02-797-7179)]이라는 중국요리집이 소문이 났단다.

 

중국집? 중국요리? 코~올!

(게다가 사준다고까지 했으니 얼마나 감사, 또 감사할 일인가!)

 

오늘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이촌역에서 만났다. 좀 헤맸다. 그래서 이 요리집을 찾아갈 지 모르는 블로거들을 위해 찾아가는 팁을 하나 알려주려고 한다. 이촌역(1,4호선) 4번출구로 나와서 조금만 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시라. 차로까지 직진하지 말고 골목길 한 블럭만 가서 왼쪽으로 터~언 하시고 주욱 가다보면 오른편에 상가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 2층에 [야래향(夜來香)]이 있다.

 

안에 들어가 보니 격조 높은 중국요리집이라기보다는 잘 정돈되고 깔끔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밥먹기 좋다. 우수사랑이 메뉴판을 보더기 <전가복(全家福)>을 먹잔다. 다양한 해물과 송이, 청경채 등을 센 불에 삽시간에 익히는 요리인 모양이다. 근데 이 비싼걸? 대짜 65,000원, 소짜 55,000원. 헉! 이 요리가 이곳의 백미라고 들었단다. 사준대는데 감사히 먹어야지.

 

재료가 무척싱싱하다. 짜거나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다. 간장과 고추기름에 살짝 찍어서 먹으면 좋다. 맛이 얕지가 않다. 지금은 밤이라 그런지 그 맛과 빛깔을 묘사하기 귀찮아지니 궁금하신 블로거는 무슨 수를 쓰든 돈 다발 들고 함 가보시라. 후회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후회한다면 말걸기가... "그랬소?"하고 한 마디만 할테니 내게 보상은 기대하지 말고...

 

<전가복(全家福)>을 먹고나서 매운 짬뽕을 하나 나누어 먹었는데, 이것도 국물 맛이 깊고 재료가 싱싱해 <전가복(全家福)> 다음으로 먹는 식사로 손색이 없었다. 이 집의 짬뽕은 신촌의 완차이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었다. 여기에는 맵지 않은 짬뽕도 있었는데 <전가복(全家福)>이 해물덩어리인지라 한국사람 입맛에는 매콤하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듯하다. 하지만 그 맵지 않은 짬뽕 맛도 다음에는 꼭 음미하고 싶다.

 

대부분의 중국요리집과 달리 아쉬움을 달래는 마지막 코오~스, 후식도 두 가지나 나왔다. 이런 데는 첨 가봐서 나 혼자서 내심 무척 감동해마지 않았다. 개찹쌀떡과 리치. 다른 요리집은 둘 중 하나만 주던데... 아닌가?

 

이상 기억을 위하야 남겨 논 기록. 그래도 <전가복(全家福)>이 무슨 요리인지 검색하다 보니 유래를 찾았다. 슬픈 일 후에 기쁜 일. 그 잔치를 위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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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복 全家福 (네이버 지식 검색에서)

 

진시황 35년, 진시황은 유학자들의 학문과 사상을 온갖 방법으로 탄압했다. 당시 주현(朱賢) 이란 유생이 있었는데, 그는 진시황의 모진 탄압을 피해 산 속 동굴에서 숨어 지냈다. 낮에 는 자고 밤에 일어나 생의 풀과 열매를 먹으며 은둔했다.

 

몇 년뒤 진시황이 죽고 그의 아들 호해(胡亥)가 제위에 오르자 주현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 러나 집에 당도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 허물어진 담벼락뿐이었다. 일 년 전 큰 홍수 가 나 주현의 아내와 자녀가 어디론가 피난을 간 것이었다. 주현은 상심한 나머지 죽을 마 음으로 강물에 뛰어들었다. 마침 지나가던 어부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를 구해주 었고, 주현은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어부에게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어부가 말하기를, 작년 홍수 때 주(朱)씨성을 가진 한 소년을 구해 준 적이 있는데, 그 소년이 성실하고 재주가 많 은 것이 선비의 자식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소년이 살고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주현이 어부가 가르쳐준 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소년은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길가에서 물고기를 팔고 있던 주현은 지나는 사람들 속에서 자기 아내를 발견했다. 뜻밖의 상봉에 두 사람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주현 가족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기로 했다. 특별 손님으로 초대받은 어부는 주현 일가를 위하여 솜씨 좋은 요리사를 초빙했고, 요리사는 천신만고 끝에 다시 만난 주현 일가 를 축복하며 산해진미 좋은 재료로 심혈을 기울여 음식을 만들었다. 온 가족이 다 모이니 행복하다는 뜻에서 이 요리도 '全家福' 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중국 강남 일대의 전 통 요리로 사랑 받고 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찍은 가족 사진을 전가복 이 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 요리 이름에 담긴 좋은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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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식가겠지?

네이버 피셔님의 One & Only Fisher에 실린 [야래향(夜來香)] 탐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