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17/12/21

다시 쓰는 몸일기

 

1. 월요일 꽉 막히는 김포한강로에서 잠시 정체가 풀리는 틈에

빙판길에서 차가 미끄러졌다.

브레이크 톡톡톡 밟기, 사이드브레이크 사용 등등의 대처를 통해

겨우 차를 세우고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다 내쉬지도 않고 조금 남은 상태에서

엄청난 충격과 엄청난 굉음. 

매번(? 단 두번이지!) 느끼는 바지만 사고의 순간은 느리게 느리게 

시간의 솜털이 느껴질만큼 생생하게 기억된다. 

쾅하는 소리, 뭔가 깨지는 소리, 밖에서 또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가봤더니

어떤 남자가 미안하다고 괜찮냐고 막 그럼.

나는 보자마자 "제가 지금 입시때문에 빨리 가야해서 시간이 없다"라고

(이때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같다. 착한 사람 만나서 다행이지)

연락처만 주고 받고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 남자는 자기는 학생이라 명함이 없으니 메모지를 주면 적어주겠다고 했다.

메모지를 주고, 볼펜을 줬는데 안 나왔고

다시 가방을 뒤져 만년필을 찾고

그러면서도 계속 "입시 때문에 빨리 가야한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던 나.

 

연락처를 받고 다시 운전해서 길을 가는데

차가 엄청나게 막혔다.

원래 서울의 목적지를 찍고 가다가

개화역을 찍었을 때가 소요시간 25분이었고

사고가 났을 때엔 소요시간 10분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한 시간을 더 도로에 서있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2~3분이 채 지나지않아

또다시 미끄러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이대로 굴러떨어질 것같다는 상상과

모든 걸 포기하고 구급차를 부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죽을 거같은 공포가 주기적으로 몰려들었다 잦아들고 몰려들었다가 잦아들었다.

 

 

그날밤에 남편은 내게 

"사고가 났는데 왜 전화를 안했어?" 물었다.

나?

운전대를 양 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겨웠거든.

사고난 시간이 8:43분.

내가 이 시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정신에도 그 남자가 적어준 전화번호가 맞는지 나는 번호를 꾹꾹 눌러가며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 전화번호도 알려줄겸.

그런데 운전해서 가는데 가슴이 터질 것같고

식은땀이 나면서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차는 꽉 막혀있었다.

그런데 옆에 갓길같은 데로 경찰차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래서 112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했다.

전화를 받은 남성은 내게 GPS를 켜라고 하고

(네비가 켜져있으면 GPS도 켜져있는 거죠? 물었더니 그렇다고)

접수됐으니 기다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있다가 관내경찰인 듯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지금 사고 직후인데 운전을 할 수가 없으니 나를 좀 태워달라고 했고

경찰은 김포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개화역엔 못간다 했다.

 

구급차를 불러줄까요? 했는데

구급차가 와도 교통정체는 어쩔 수가 없을 것같았다. 

결국 내가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견디기로 했다.

순간순간 갓길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지금 죽으면

'아까 그 때 갓길에 세울걸'

하고 후회하며 죽겠지?

 

이런 생각을 한 열번은 하며

1시간을 견뎠다. 

심장에 공포가 작은 얼음 알갱이처럼 점점이 박혔을 것이다.

 

1시간 늦게 면접장에 도착해서 두번째날 면접을 진행하고

밤에 학교에 가져다준 렌트카를 운전해서 집으로 가는데

낮의 공포는 다시 엄습해왔고

나는 서울에서 강화까지 깜박이를 켜고 천천히, 천천히 

3시간이 넘는 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화요일, 밥을 먹을 때에도, 수업을 할 때에도, 시도때도 없이 가슴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나서 일상이 불가능한 상태.

남편이 한의사선생님으로부터 얻은 조언대로

엑스레이를 찍으러 병원에 왔고

병원의 한의사 선생님은 입원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심.

 

그래서 입원중이다.

월요일부터 몸의 생리활동이 멈춘 듯한  느낌.

면접에 집중하느라 각성제가 필요해서 커피를 마셨고

(그런데도 화장실엔 자주 안감)

점심과 저녁으로 제공되는 도시락을 꼭꼭 씹어먹었으나 반은 남겼고

그럼에도 체한 상태.

배변은 전혀 안되고.

 

그래서 흰죽과 간장만 먹고 있는 중이다.

흰죽을 꼭꼭 씹어서 입에 물이 고일때까지 기다려서 삼키고

열심히 걷고 틈틈히 자고 그래서 이제 가슴 쿵쾅거림은 멈춤.

몸이 편해지니 먹고 싶은 것들이 막  생겨남.

어제부터 겨자가 들어간 건 뭐든 먹고 싶음.

 

영등포구청 맞은편 이한스시의 초밥과 따뜻한 사께.

강화만사성의 양장피.

그리고 강력하게 달콤하고 입에 살살 녹는 바나나킥.

 

무의도병원에 오니 무의도 한의원에 다니는 선배가 생각이 나서

문자를 했고

마침 어디 놀러갈까 생각했다던 선배는 병원에 와서 놀다가 방금 가셨고

나는 오늘부터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일기를 쓰는 중이다.

 

 

2. 오늘 골도법 검사라는 걸 했다.

악력 측정을 하는데

내가 "힘껏 하나요?" 물었다. 

일상적인 손힘을 보는 건지, 최대치의 힘을 보는 건지 몰라서.

 

사실 월요일 사고가 나던 그 날도

내가 이걸 견디고 참아야하나, 아니면 119 불러서 구급차 타야하나

계속 갈등했다.

내가 견뎌야하는지, 아니면 못 견디겠는 이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는거다.

 

골도법 검사하는 선생님은 살짝 어이없어 하면서

힘껏 해야죠. 하셨고

힘껏 했다.

 

총평:요가 하시냐? 몸이 유연하다

악력도 그 나이대 다른 여성들보다 세다.

하지만 근력을 좀 기르는 게 좋겠다.

코어운동을 검색해 볼 것.

 

3. 아침에 글을 쓰고 있는데

담배냄새가 났다.

화장실엘 가보고

밖으로 나갔다가 냄새를 따라가보니

비어있는 옆방의 창문이 열려있고

방금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간 흔적이 있었다. 

 

얼른 2층에 내려가서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오고

"맞죠? 누가 여기서 담배 피운 거 맞죠?" 확인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맞다고 하신 후 조처를 취하겠다 하셨다.

 

어떤 조처를 취하실까?

오전 중엔 엄청 궁금했다.

내가 있는 3층엔 어제까지만 해도 방 3개에만 사람이 있었다.

다른 두 방에 가서 "담배피우시면 안돼요" 할려나?

물리치료실에 가보니 사람들이 많았다.

2층 입원환자가 3층에 올라올 수도 있겠군.

나는 그 때부터 혼자 추리를 해보는데

모든 남자들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다 남자만 담배피우라는 법  있나, 여자일 수도 있어,

라고 생각하니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웠는데!

 

결국 담배냄새가 엄청 나는 한  남자를 주목하게 됨.

이름을 알아두려 했으나

먼저 나가버려서 놓침.

 

방으로 돌아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덜컹 소리만 나면 나가보고 또 나가보고 하다가

혁명사를 공부한 같은 과 88학번 선배가 와서 놀다가

치료받고 와보니 빈 입원실이 다 잠겨있었다.

 

처음엔 다 잠겨있는 줄 모르고

내 방 옆방만 잠겨있는 것같아서

왔다갔다 하면서

누가 나오나 지켜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나와서

다른 방문들 손잡이를 돌려보니 다 잠겨있었음. ^^

 

확실하게 해결해주신 병원 관계자분들게 감사

 

4. 사진 네 개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2시 20분인데 2시로 잘못 보고 내려가서

2시로 알고 왔다고 하니 시간을 조정해줌.

다시 올라와서 보니 2시 20분이 맞음.

노안이야.

 

밤에 창밖을 보는데

5개월 전 이맘때

같은 곳에 앉아서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종필 생각에 눈물짓던 때가 생각났다.

 

그런데 그 때 저 주차장에 모름이가 있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모름이를 다시 살려내고

살아난 모름이를 부산으로 보낼텐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 쓴 것 넣으실 때는 오른쪽으로. 왼쪽 것이 뜨겁다'

이 문장은 뭔가 묘하게 이상하다. 

넣는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넣어야만 왼쪽 것이 뜨겁다.

그런데 넣는 사람에게 오른쪽으로 넣으라고 하면서

그 사람에게 '왼쪽 것이 뜨겁다'라고 일러주는 이 지시문  +  설명문은

사람에 대한 신뢰로 가득차 있구나...

 

바나나킥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선배가 사주었다.

내가 "형 나 바나나킥이 너무 먹고 싶어. 한 개만 사다줘" 했는데

형이 두 개를 사다줘서

한 개는 냠냠 맛있게 먹고 한 개는 남겨두었다.

나중에 또 냠냠 맛있게 먹어야지.

주치의선생님한테는 비밀로 해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