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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위로

나루의 포춘쿠키 올해의 위로들을 보면 나의 포춘쿠키와는 사뭇 다르다.

나한테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나루의 문구들을 보면 정말 포춘쿠키에는  뭔가 있다.

방금 눌러보니 "당신의 사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라고 나오더니

한 번 더 눌러보니 "새로운 로맨스거나 그럴 가능성이 다가옵니다"라고 나오고.

그래요. 알겠다고요. ㅋ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남편이 깜짝 놀라 뭘 먹었냐고 묻는데 난 오늘 JP감독이 끓여준 김치국에 밥만 말아먹었을 뿐.

곰곰히 혼자 생각해보니 나는 오늘 평소에 안하던 일을 했다. 

1. 교육 끝난 후 뒷풀이를 가지 않았고

2. 누군가를 만나서 술 대신 커피를 먹었으며

3. 머리가 아플 정도의 집중력으로 이야기를 했다.

'뒷풀이=알콜'로 생각해보면 매일 술을 마시는 건 아니기 때문에 1번이 원인은 아닐 것이고

2번, 커피를 드물게 마시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두드러기가 났던 적은 없었으니

3번이 원인인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한테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의아하긴 하다.

심리적 요인 때문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일은 김형경의 <성에>에 등장하긴 한다.

김형경의 소설 속 여주인공은 극심한 배신감과 충격으로 식중독에 걸린다.

어쩌면 내 경우엔 2번 커피와 3번 심리적 긴장의 조합이 식중독으로 왔을 수도.

내 생애에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서 곰곰히 생각해보다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관계에 대해서 이만큼 집중해서 고민했던 적이....

정말 없었구나, 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나라는 사람이 좀 싫어지고 한심해보인다.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져왔다.(이건 이성애자로서의 남녀관계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사람에 대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버릇은 

갑작스레 서울생활을 시작한 14살 이후부터 생긴듯하다.

적당하고 평범하게 사는 듯 보이려고 노력했고 

그 시간이 지나면 그 공간의 사람들은 모두 내 삶에서 떠나보냈다.

대학에 와서 관계와 사람들에 대해서 좀더 여지를 두었던 건 사실이지만

역시나 지금,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는 건 각별한 애정을 쏟아주었던 몇 사람의 선배 뿐이다. 

그건 그분들 덕이지 내 노력은 아니다.

 

무수히 다양한 이유들로 조용히 선을 긋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생글거리지만 그렇게 조용히 멀어져왔다.

이런 식의 결벽의 이면에는 집착이 존재하고 있었다.

스무살 이후 연애라는 걸 시작한 후 그걸 알았다.

누군가에 대해서 선을 넘는 순간, 나는 그 사람에게 초인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거다.

생각해보면 사랑(? 연애라는 단어가 더 적당하겠구나)에 대해 많은 환상이 있었던 듯.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이렇게 하지 않아? 사랑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연애라는 것 또한 관계의 보편적 질서에 따른다는 것을 나중에사 알게 되었다.

사실 안 것도 아니다. 이제 와서 이렇게 정리하는 것일 뿐.

 

사랑이나 사람에 대해서 더이상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이라는 걸 했다.

남편은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었고 다행히 그 사람이 나를 사랑했다.

남편이 밤늦게 들어와도 나는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다.

남편은 가끔 내게 물었다. "내가 밤에 늦게 들어오면 걱정되지 않아? 왜 전화 안해?"

내가 말했다. 전화를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자꾸 언제 들어오는지 신경이 쓰일 것이고

그러면 당신도 피곤하겠지만 나도 피곤하니까. 자꾸 기대를 하게 되니까.

그랬던 것같다. 예의를 지키고 그 사람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한순간에라도 저 지극한 사랑이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잊지않고 살았다.

그리고 알아갔다. 아,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저런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구나.

 

관계의 보편적 질서 위에서 천천히 천천히 사랑을 했고 그때서야 알았다.

어떤 관계든 그렇게 공을 들이는 거라고.

폭풍같은 열정으로  누군가 고백을 하고 그 고백에 황홀해하며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

나는 환상 속에서 임파서블한 미션을 바래왔던 거다.

그 사람이 좋긴 한데 그 호감의 색깔이 어떤 건지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감정에 휘말려 저절로 연애를 시작하고, 

환상에 빠진 상태에서 연애라는 관계를 오해했던 거다.

당신과 내가 오누이였으면 좋았겠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결국 오누이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깊은 상처를 주고 받은 후 헤어졌다.

그런 식의 오해나 실수는 피차일반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얼렁뚱땅 관계가 시작되고나면 돌이킬 수 없어 최면을 걸었을 지도 모른다.

 

서른 살 이후에도 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어떤 사람에게 매혹되는 일을 가끔 겪어왔다. 

친밀감일 수도 있고 소통의 기쁨일 수도 있으며 연민이거나 고마움이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그런 상태에서 계기가 생기면 화르륵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이상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예전의 상태를 이제사 진단하고 정리한다.

환상과 미숙함 때문에 떠나보냈던 내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이제사 반성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최선을 다했다.

훗날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정말 알 수 없지만 한때의 매혹을 그렇게 정리한다.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때로는 모멸감 때문에 선을 긋고 아웃시켜왔던 버르장머리를 고치느라

오늘 내 피톨들이 그렇게 힘들었나봐. 글을 쓰는 동안 두드러기들은 가라앉고 피멍들이 남았다.

이 멍들은....정말이지....훈장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

 

2. 엄마...

도대체 우리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토요일에 결혼식이 끝나고 엄마 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날씨가 춥다고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직감적으로 누군가 집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는 길은 엄청 막혔고 남편과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엄마는 저녁이 되어 다시 전화를 했고 내가 평소처럼 상냥하지 않자 머뭇거리는 듯했다.

나중에 밤에 다시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사실은 집에 손님이 와있어서 그랬다"며 사과했다.

엄마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남의 집에 방문하며 양해를 구하지 않은 우리가 잘못한 거니까.

당신도 사생활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까먹어서 미안.

 

아저씨는 플레이보이였고 엄마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결별을 선언했다.

그런데 엄마가 다시 아저씨에게 돌아간 거다.

우리가 보기엔 플레이보이였지만 예전의 아저씨는 엄마에 대해서는 주 파트너임을 공인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 후 엄마의 지위는 급격히 하락해서 많은 파트너 중 한 사람임이 공인되었다.

그러면서도 아저씨한테 매달리는 엄마를 보면 진짜 신경질+ 짜증.

그래도 애써 이렇게 위로한다.

'00네 엄마는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는데 엄마가 우울증에 빠지지 않은 게 어디야?'

 

그래도 삐진 건 어쩔 수 없어서 며칠동안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사실 난 엄마한테 매일 전화하는 사람) 

엄마는 내가 삐진 걸 알았는지 남편에게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나는 또 그게 짜증이 나고...

그러다가 오늘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어제도 엄마와 통화를 하긴 했으나 그건 엄마가 건 전화였고 

그리고 사무실이라 애써 상냥하려 했으나

나만큼 예민한 우리 엄마는 당연히 내 삐짐을 알아차렸을 거다.

 

오늘 전화하니 엄마가 너무나 좋아했다.

나는 왜 전화했냐면 푸른회원들한테 주소 바뀌었으면 알려달라는 문자를 보내야하는데

네이트온 문자도, 파란닷컴 문자도 다 써버려서

엄마의 T-월드 문자 100개를 쓰기 위해서다.

회원들 전화번호를 쫘르륵 치고서 전송하려니 인증번호를 묻길래 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양심이라기 보다는 연기력이라고 해야하나...?)

엄마한테 상냥하게 안부를 묻고 용건을 말했다.

엄마는 반가워하며 열심히 알려주셨다.(티월드 왜 이러냐, 열개씩 보낼 때마다 인증번호를 묻다니...)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참 나쁘긴 하다. 불쌍한 엄마. 내일부터는 매일 다시 전화해야지.

      엄마, 나한테 연애의 기술 좀 배워, 라고 말하고 싶지만 엄마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는다. 

      사실 연애의 기술이라는 건 진심을 다하는 사람에겐 무가치한 거다. 

 

3.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정독도서관까지 가서 빌렸다.

내가 찾으려는 문장은 이 책에 없었다.

문장의 앞 뒤를 좀더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그럼 어디에 있는 거냐

좀 읽다가 그 빡빡함에 질려 글자만 읽었다. 좀 재밌는 부분을 발견.

 

결론:"이것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랑의 삶을 제자리에 놓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자기도움 안내서에 의지한다.

최근의 베스트셀러인 <규칙들>은 여자들에게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지침을 제공한다.

여자는 남자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해

스스로를 잘 잡히지 않고 손에 넣기 힘든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남자는 추적자가 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하며 여자는 스스로를 억제하고,

스스로를 획득하기 힘든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규칙들>은 관심이 있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지 말라고 충고하며,

최종 순간에 남자의 데이트 초대에 응하지 말라고 충고하며,

그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보여주지 말라고,

그리고 특히 남자가 그녀에게 전적으로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성적 관계를 갖지 말라고 충고한다.

......................

오늘날 사랑은 유혹의 문제에 머문다.

주체 안에 있는 주체 자신보다 더한 그 무엇은 여전히 열정적 애착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그리고 제1장에서 보여준 것처럼 장벽과 상징적 금지는 사랑-대상의 매혹에 크게 기여한다.

........................

이 책은 대 성공이었으며, 저자들은 <규칙 소녀들>을 위한 운동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을 통한 조언이라든가 여성들의 지지 모임 같은 것말이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남자와 사귀고 싶은 여자는 규칙을 지지하는 모임과 접촉을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그녀가 스스로를 억제하고 남자에게 전화를 걸지 않도록 할 수 있도록

다른 여자들이 도움을 준다.

하지만 어떤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데 마침내 성공할 때 무엇을 하는가?

<규칙들>의 저자에게 결혼은 여전히 여자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목표이다.

하지만 결혼을 했을 때라도 여자는 자신을 잘 잡히지않고 손에 넣기 힘든 존재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

사랑은 두 주체의, 혹은 더 좋게는, 그들의  "무의식적 지식들"의 우연한 조우이며, 상대편에게서 그들이 가지지 않은 그 무엇을 겨냥한다. 이 신기루같은 조우의 순간에 우리는 그 조우가 우연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타자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 서로를 계속 놓치는 한에서만 지탱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 파트너 안에 있는 그/녀 자신(그/녀의 존재)보다 더한 어떤 것에 대한 이와 같은 추구 속에서 사랑은 손쉽게 증오에 길을 내준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증오할 때 역시 우리는 우리의 조우의 우연적 성격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자들 속에서 우리가 싫어하는 어떤 실체적 특징(그들의 문화, 그들의 피부색, 그들의 음식 냄새 등등)을 필사적으로 확인하려 한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증오를 객관적 필연속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이 밀도. 

정말 감당하기 힘들지만 감당하기 힘든 행간 사이에서 뭔가가 아스라이 잡힐 것만 같다. 

하지만 모든 부분을 머리 싸매고 읽을 시간은 없거든.

허문영이 인용한 그 문장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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