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나는 어떡하지?

The Dispossessed님의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에 관련된 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었다.

돌이켜보면 수업엔 거의 들어가지않았는데

수업 바깥에서 선배들에게서 참 많은 것을 배웠던 것같다.

등록을 하기 위해 줄기차게 해야했던 아르바이트도 벅찼고

그래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7년반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자진퇴교를 하려 했을 때 엄마가, 언니 졸업식에도 일을 쉬지 않아 언니를 울게 했던 엄마가

집에 드러누우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언니한테 전해들었었는데...

아무튼 엄마가 "내가 학비도 못대주는 못난 어미라서..."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좀 짜증이 났다.

어쨌든 그래서 졸업을 하긴 했는데 대학졸업 후 최근까지

졸업장이 필요한 직장에 다녀본적이 없다.

그런데....작년부터 영상원에서 강의를 하나 맡았는데 그 때 처음 졸업증명서를 냈었다.

 

최근 다른 대학에서 강의하던 푸른영상 선배가 경력증명서 떼러 왔다가 말해주기를

"요즘 일거리가 뚝뚝 떨어진다. 학교별로 mfa학위 있는 사람만 강사로 쓰라는 공문이 내려왔대"

그래서 같이 밥을 먹으며 이제 앞으로 저런 학위 없으면 강의도 못하는 건가하는 생각도 했다.

사실 5~6년 전부터 독립영화감독들도 대학원진학, 유학, 어학연수 등 다양한 자기계발을 하는데

그걸 보면서 나도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에 빠지기도 했고

요즘들어 그런 마음은 더해진다.

 

잡담을 하다 선생님이 새로 방송대에 입학하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생님은 10여년 넘게 논술교수법에 대해서 공부하는 모임에서 활동하셨는데...

그중 어떤 멤버들은 그 성과를 가지고 학위를  땄다고 한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에서의 소외감을 나도 안다.

 

2005년부터 지적장애인미디어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하고 개척하다시피했는데

함께 했던 한 멤버가 그 과정을 소스삼아 논문을 쓰고(물론 그 분 혼자 했던 경험도 소스가 되었다)

나름 전문가로 호명되고 있기 때문이다.(논문썼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았다. 약간의 배신감)

작년에 일군의 교수들이 장애인미디어교육가이드북 제작 사업을 맡았다고 한다.

그 중 한 분을 만났는데 우리가 그 전에 만들었던 가이드북을 보여주면서

"이보다 더 잘만들 수는 없다.

그런데 미디액트가 요즘 찍혀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맡았는데 도와달라"고 하셨다.

처음엔 그 진정성에 감화되어 일을 맡을 뻔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곰곰히 몇 번을 생각해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다.

집필을 내가 했다 하더라도 그건 함께 했던 사람들이 같이 이룬 성과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성과를 자기화시키는 것같았다.

그 중에 한 사람을 데려감으로써 기존의 성과들을 싹 다 가져가는 거다.

약간 딴 소리인데  경향일보나 한겨레기자들을 조선이나 중앙일보에서 데려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단지 한 기자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기자가 활동기간 동안 쌓아와썬 인맥, 정보원들을

다 가져가는 거나 마찬가지.

 

어쨌든 이 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앞 멤버의 책을 보았는데 그 분이 참고문헌에다 학위논문만 쭈르륵 써놓은 걸 보고 홱 돌았다.

학계에서는 현재까지 지적장애인미디어교육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 멤버가 아마도 그 점에서는 장점을 가질텐데 어떻게 함께한 성과를 기반으로 하면서

언급 한 번 없을 수 있냐는 말이다.

물론 그 분도 자기 필드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함께 개척한 부분까지 언급한 번 없이 두리뭉실하게 가져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전화해서 얘기했더니 자기는 우리 책을 참고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앞의 그 교수의 부탁을 내가 거절한 후에

며칠 후, 그 멤버가 내가 이전에 부산에서 발표한 글을 확인하는 전화를 몇 번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혹시라도 제가 쓴 글을 인용하시려면 이번엔 인용주석 정확히 달아주세요.

이번에는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썼던 글은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의 역사와 전망'이었다.

아마도...그 교수의 부탁이 그 멤버에게 간 것같았다.(그 추측은 맞았다)

 

좋아서 했던 일이고 내 전문분야도 아니지만 어떤 이는 그 열매를 따북따북 잘 챙긴다.

그렇게 챙겨주는 것이 고맙다.

하지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싹을 키우고 열매를 따는 그 모든 과정을

혼자 한 것으로 오해하게 하지는 말아야지.

나는 뭘 원하는 것일까 가끔 생각한다.

나루의 표현처럼 '언급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건 또다른 의미의 명예욕인가?

정리는 안되지만 말로 표현못할 억울함 같은 게 가슴 안에 있다.

 

최근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2000년부터 미디어 속 장애인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kbs 3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소개를 했었다.

하늘 출산 때에는 산후조리기간에 해당하는 한달분, 4개를 한꺼번에 녹음을 하기도 했었다.

둘째 출산 직전에 정리했는데 내가 그만 둔 건 아니고 그만두기를 통고받았다.

사실 당시 피디가 나의 발음이 안좋다고 몇 번 지적하기도 했었고

너무 지루하다는 얘기도 몇 번 했었기 때문에 수긍했다.(그 피디는 참 날 안좋아했었다. ^^;)

어쨌든 담당작가언니가 아기 낳고 있으면 나중에 부른다고 했는데 별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른 프로그램 <함께하는 세상만들기>에서 같은 일을 시작해서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한동안 원고청탁이 넘쳐났었다. 장애인 관련 신문들이 다 청탁을 해오길래

그 때 생각하기를, 이 분야로 직업창출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커뮤니티를 만들고

글쓰기교실도 진행하면서 성과를 나누려 노력해왔다.

아쉽게도 지금은 활동이 멈춘 상태이다.

2기 필진 중 한 분이 투병 중이라서 자연스럽게 멈춰버렸다.

 

그런데 저번 주에 '장애인식개선드라마 전문가 간담회'에 갔는데

어떤 분이 2005년부터 <내일은 푸른하늘>에서 영화를 소개해오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물론 나는 깜짝 놀랐다.

행사가 끝난 후, 그분이 자기가 낸 책을 주최측에 드리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지나온 10년 동안에는 나름의 드라마가 있다.

사람들은 장애인영화, 그러면 <아이엠 샘>이나 <레인맨>을 떠올리지만

사실 <더 록>이나 <와니와 준하>같은 영화에도 장애인이 등장한다.

나도 처음에는 유명한 장애인영화들만을 소개했지만 어느 순간 밑천이 떨어져서 고생을 했었고

그러다 인식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면서 10년동안을 해오고 있다.

나의 포인트는 그 짧은 순간에 잠깐 등장하는 장애인 캐릭터에 담겨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영화들을 조사하고 소개해왔다.

2005년에 시작한 그 분도 나름의 노력을 해오셨겠지만

내가  저번 주 그 자리에서 느꼈던 것은 밭을 일군 사람의 자리는 어디일까라는 의문이었다.

 

정말 그 사람은 나를 몰랐을까?

나중에 내가 그 사람한테 제가 2004년까지 그 꼭지를 진행했었다고 소개를 하니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한 것같다"라고 얘기했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꾸 의심이 가는 거다. 

어떤 의심?

"당신 정말 나 몰라요?

내가 각종 장애인신문들에 남겨놓은 그 무수한 데이터들을 참고하지 않았어요?"

이런 의문이다. ㅋ (나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걸까?? *^^*)

그 사람 책을 한 번 사서 읽어볼까 생각 중이긴 한데

이런 일들은 말이다...정말 표가 안나는 거다.

 

몇 년전에 장애인드라마모니터 강의에 갔다가

앞시간 강사의 강의안에 내 글이 통째로 들어있는 걸 보고

부들부들 떨며 다섯병에게 자문을 구한 후 그 사람에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카피레프트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나의 데이터들이, 나의 글들이 어떠한 인용도 없이 쓰여지고 다른 이의 글로 둔갑되어있는 걸 보면

망연자실해진다. 이걸 어떻게 해야해?

따지면 구차해지는 것같고 그냥 넘어가면 홧병으로 돌아가실 것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야해?

 

공부방선생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따.

학위를 따서 자기가 이룬 성과는 자기 논문에 착실히 담아.

나처럼 다른 사람 좋은 일 시키지 말고."

 

들에 핀 꽃처럼 내가 숨쉬는 공기처럼

활동이 이뤄낸 성과는 만인이 향유해야한다.

그런 생각으로 일하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다.

물론 선한 의도의 연구자들도 많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만인이 향유한다고 생각하며 생산해낸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학위를 가진 이들을 찾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한 개의 촛불은 존재만으로 유용하지만

촛불이 많아지면, 아니 백열등도 생기고 형광등도 생기고 샹들리에도 생기면

사람들은 첫번째 촛불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나는....어떡하지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딸까?

하지만 그건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젊은 날에 대한 배신'이고

나이들어가는 스스로에 대해 늙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닐지.

내가 지금 학위를 딸까 말까 망설이는 이유는 학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학위를 인정하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기 위해

이름표를 다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아는데

나는.... 어떡하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