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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1.

언니가 온열조끼라는 신기한 것을 보내줘서

오랜만에 작업실에 왔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를 벌레들의 시체며

쌓인 먼지.

그래도 보자기들로 덮어둬서 장비들에는 먼지가 없다.

오늘은 2015년의 마지막 날이다.

청소를 하려고 했으나 청소를 시작하면 2015년을 청소하며 보낼 것같아

작업일지를 쓴다.

 

1년이 한꺼번에 나와있는 달력을 받았다.

벽에 붙여놓고 시간의 흐름을 통으로 가늠해보려 한다.

부산영화제가 보통 7월말 마감이니

그 때를 마감으로 잡고

작업을 시작하자.

 

2.

윤이형의 <루다>를 읽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여자였다.

나는 같은 점도의 글이라면 남자작가를 선호한다.

그건 남자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누리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온갖 혜택을 받아오면서 무뎌졌을 것이 분명한 감성들이(배부른 돼지!)

수련이든 상처든 질곡이든

예리하게 빛난다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이형은 여자였다.

그리고 이제하의 딸이었다.

이름난 불문학자의 딸이 만든 다큐멘터리 <볼테르와 춤을>이

은근히 심사를 뒤틀리게 했던 것처럼

<루다>에 대한 호감이 반감하는 것이 느껴졌다.

숨쉬는 공기 안에 이미 뭔가가 들어가있었을 것이다.

자원있는 자들이 모든 곳을 장악하는 때.

그나마 상처가 동력이 되고 고통이 특별함을 선사하는 이 곳 예술계에서도

선행학습이 효력을 발휘한다.

싫다.

 

3.

사랑하는 하은

너와 서서히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한 것같다.

 

이 곳이 나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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