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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8일:일상은 연기처럼

교통사고가 났다.

2011년 2월에 면허를 따고 첫 운전이 서울에서 강화 가는 것.
이사갈 때 차를 운전할 사람이 나말고 없었다.
사고는 4월에 논두렁에 빠져서.
맞은편에서 차가 와서 비켜서있었는데
전날 비가 와서 부드러워진 흙더미가 무너졌다.
남편은 출장중이었고
밤새 열이 내리지 않은 은별을 돌보다가
새벽같이 병원엘 가는 길이었다.
그래도 혼자 논두렁에 빠지는
혼자 사고라 혼자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오늘 사고는 좀 컸다.
하은 데려오기 당번이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열심히 강화까지 운전.
초지대교에서 곧 끝난다는 문자 받고서
가는 길이라 답문 보내고 열심히 갔다.
온수리에 들어서자마자
뒤쪽에서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고 
안경이 벗겨졌고
차가 통제불능 상태에서 버스 정류장을 박살냈고
다시 뒤로 미끄러져 택시를 박았다.

골목에서 튀어나온 차가
내 차의 뒷바퀴부분을 박았고
내 차는 반대편으로 튕겨져나가 버스정류장과 택시를 
차례로 박은 거.
온수리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차에 탄 사람들이 지나가며 유심히 바라봤다.
내가 처음 한 생각은 맞은편에 차가 오지 않아서 다행
두번째 한 생각은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
그리고......
슬프게도 세번째 한 생각은
온수리 (부자)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뭐라고 입방아를 찧을 것인가에 대한 공포였다.

가해차량의 보험사직원은 와서 사진을 찍고 탐문을 하는데
내 차의 보험사직원은 안왔다.
상대방 보험사직원 말이 내 차 직원은 20분쯤 후에 온다고.
상대방 보험사 직원이 사진을 찍길래
나도 얼떨결에 사진을 찍었다.

가해차량 운전자의 친구가
자꾸 자기 친구가 내 차의 앞쪽을 박은 거라고 말하고
그쪽 보험사직원도 내게
"직진차량 우선이지만 주변을 살피지 않은 내 잘못도 있다"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스러운 건 
버스정류장에 부딪쳤다가 다시 튕겨져나온 내 차에
받힌 택시의 기사아저씨가
"뒷바퀴쪽을 박았는데 주변을 살필 겨를이 있었겠냐"
라고 편을 들어주신 것.
경찰이 온 후에 그분이 목격자로 진술을 하셨다.

인성병원에 가래서 갔는데 문 닫았다 하고
다시 강화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는데
여기저기 만져보면서 어디가 아프냐고 그러는데
목과 어깨가 아프다고 말해서 거기를 찍고
다시 침대에 돌아와앉으니 무릎이 아파서
옷을 걷어보니 무릎에도 멍이 들어서
다시 무릎도 찍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자꾸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초의 충격은 분명 그 아저씨가 내 차를 박아서인데
나중에 차가 멈춘 후 나와봤을 때
펼쳐진 엄청난 풍경이 내게는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가해차량은 오른쪽 라이트 쪽만 조금 찌그러진 정도인데
내 차는 앞쪽이 거의 다 나갔고 
왼쪽도 뒷바퀴 쪽은 다 나갔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자꾸 걱정하니 남편이
원래 가해차량은 제어가 가능하지만
피해차량은 돌발적인 충격을 받으면 제어가 불가능해서
이리저리 피하려다가 더 많이 파손되는 거라고 하는데.

사고 순간이 백분의 1초 정도로 느리게 흘러가고
최초의 충격 이후에는
차가 그냥 허공에 뜬 듯 버스정류장을 반파하고
다시 스르르 뒤로 물러서서 택시를 박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무음의 상태에서 
아니 진공 상태에서 
시간의 솜털 하나하나를 다 세는 느낌으로
겪었다.

내일은 세 개의 회의가 있고
오늘은 두 개의 글을 써야했고
그래서 하은을 데리고 집에 간 후에
얼른 밥을 먹고 열심히 일할 계획이었는데
모든 것이 사소해져버렸다.

내 차의 블랙박스는 고장이고
택시 아저씨의 차에 블랙박스가 있었는데
그게 안 읽히는데
운행중이 아니어서 찍혔을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음모론의 신봉자가 되어서
나는 억울한데
가해자인 온수리 사람, 경찰도 온수리 사람,
보험사 직원도 온수리 사람이니
가해사실까지도 조작되지 않을까
심한 공포를 느꼈다가

또 한 편으로는
왜 이렇게 사고가 크게 난 걸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 앞에서
그냥 공허하다.

일상은 연기처럼
가뭇없이 흩어져버렸고
이제 나는 내일부터 진상조사에 착수해야할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집에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은과 남편과 하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그 아저씨도 불쌍하다.....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다가
점점 이성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오늘의 깨달음
사고는 정말 한순간.
사고는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것.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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